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54화 (54/227)

54화 대장장이 (3)

“이 칼. 쓰레긴데요?”

아차.

말해 놓고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칼.

멋있게 생긴 칼인 만큼 나름 정성을 들여 만들어 준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다.

“아, 죄송합니-.”

“클클. 주제에 칼 보는 눈은 있나 보구나.”

“……예?”

실례했다는 생각에 당황한 나와 달리.

박씨 할아버지는 오히려 별생각 없는 듯 키득키득 웃고 계셨다.

“그래. 그 쓰레기는 저기 치워 두고.”

“어. 예.”

“다음은 이거다.”

또 다른 칼을 건네는 할아버지.

이전에 쥐었던 칼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으나.

빻!

결과는 똑같았다.

나는 소신 있게 말했다.

“박씨 할아버지. 이 칼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걸 누가 몰라? 다음은 이거.”

용기를 가지고 한 소신 발언은 가볍게 묻혔다.

“흠. 다음은 이거.”

그렇게 다음 칼.

그다음 칼까지.

비슷하게 생긴 칼을 계속해서 넘기고, 휘둘러 보라고 하는 박씨 할아버지.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아무리 칼 보는 눈이 없는 나라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군요.”

“클클, 빨리도 눈치챈다.”

그렇게 몇 자루의 칼을 거쳤을까.

어느 순간.

서걱-

통나무에 턱턱 박혀 대던 칼들과 달리.

이번에 쥔 칼은 굵은 통나무를 가볍게 베어 넘겼다.

“어?”

“흠. 길이는 600mm 정도인가. 꽤 여유롭게 쳐주는구먼.”

그 모습을 보며 묵묵하게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박씨 할아버지.

이쯤 되니.

나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상태창을 연 뒤.

내가 가진 특성 하나를 확인했다.

그 특성의 이름은.

[하급 단도 숙련]

지금까지 반복된 일련의 행위는 즉.

“단도의 길이를 알아보신 거군요.”

“그래.”

하급 단도 숙련.

거기서 말하는 단도의 기준을 알아보는 행위였다는 것.

“말이 좋아서 단도지, 사실 칼에 있어서 단도라느니 하는 이름의 규격은 없거든.”

“그렇습니까?”

“봐라. 단도라는 이름 그대로 짧은 도가 곧 단도지. 근데 ‘짧다’의 기준은 또 뭐냐? 어떤 일에 쓰냐에 따라서 ‘짧다’의 기준도 변하는 법이잖냐.”

하긴.

사과를 자르는 데에는, 내가 쓰던 사시미 칼만 해도 엄청나게 긴 편일 테지.

하지만 그것도 단도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보통은 길이 자체로 규격을 정하지. 단도니 뭐니 하는 기준의 규격은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좀 확인을 해 본 거다.”

“그럼 이 멋들어진 칼들은?”

“음? 감각도 되살릴 겸, 돌아다니는 잡철들로 연습해 볼 겸 만든 것들이다. 애들 장난감으로도 못 쓸 잡품들이지.”

“…….”

내가 칼이 멋있다고 했을 때.

영 덤덤했던 반응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애초에 대충 만든 물건이었으니.’

그런걸 칭찬해 준다고 한들.

감흥이 있을 리가 있나.

‘나도 자세하게 모르던 내 특성을 파악해 주신 건가.’

내 스킬 [하급 단도 숙련]의 규격은.

약 600mm라는 것.

“꽤 길군요?”

내가 알기로.

일반적인 식칼은 15~25cm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큰 식칼도 30cm 이하가 보통.

‘내가 쓰던 후임 녀석의 일식용 사시미칼이 300mm 정도였지.’

그것도 사시미용이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그 정도로 길어진 것이다.

그 사시미칼만 해도 긴 편이었는데.

그것의 두배라니?

“평범한 식칼에 쓰이는 길이는 아니긴 하지.”

“역시 그렇죠?”

“그래도 대충 어느 정도를 기준으로 잡은 건지는 알겠구나.”

박씨 할아버지가 노트의 한 페이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거기엔 꽤 기다란 일식도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참치 해체 같은 데 쓰이는 녀석 중에서도 가장 긴 녀석이다. 이 녀석같은 경우가 600mm지.”

“이 그림의 칼이로군요.”

“그래. 그리고 참치 해체용 칼도 일단은 ‘식칼’이고.”

즉.

가장 긴 식칼인 셈이다.

“네 특성은 요리사로서 주어진 것이니까 말이다. 요리사인 네가 쓸 수 있는 길이는 식칼을 기준으로 딱 이 정도까지라고 정해 준 게 아닐까 싶구나.”

“과연…….”

사실.

내게는 그다지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존에 쓰던 식칼의 길이는 300mm 정도.

그 두 배까지 긴 단도도 내 특성이 적용된다는 것이니까.

칼의 길이가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거대한 몬스터들도 많으니까.’

아무리 내 칼질이 예리하다고 한들.

몸통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물에게 칼을 찔러 봐야 큰 의미가 없다.

바늘에 살짝 찔린 정도의 아픔에 그칠 확률이 높겠지.

‘0.01mm짜리 바늘로 수십 번을 찌른다고 한들 공룡을 죽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나마 [요리사의 눈]을 통해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으로 짧은 무기의 단점을 커버해 왔다만.

그 길이가 늘어난다는 것은 호재였다.

칼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것은 벨 수 있는 범위.

즉 파괴력이 높아진다는 것.

“다음은 이거다.”

“어,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좀 더 상세하게 알아봐야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에 박씨 할아버지가 건넨 것은 양쪽에 날이 달린 물건.

즉.

도가 아닌 검이었다.

“이름이 단도 숙련인 거부터 예상은 했지만, 양날 형태는 길이 상관없이 안 되는군.”

“이건 좀 아쉽네요.”

“다음은 이거.”

날의 면적이 넓은 중식도 같은 칼.

“날의 두께는 이 정도까지 허용이라. 도끼를 만들고 식칼이라고 우기긴 힘들겠구나.”

나중에 가서는 온갖 기괴한 형태까지 다 쥐었다.

손잡이 위에 날이 3갈래로 갈라진 칼.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진 칼.

톱날 형태의 칼.

손잡이를 기준으로 위아래에 날이 있는 칼 등등.

“이 정도면 되겠어.”

내 안에 담긴 칼에 대한 정의가 반쯤 무너져 내린 뒤에서야.

확인 작업이 끝났다.

“지금부터 작업을 들어가면 일주일 내로 끝날 게다. 아, 보고 갈 테냐?”

“볼 수도 있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재료를 녹이는 건 봐야지 않겠냐. 네 전리품인데.”

“예?”

그런 말을 하며.

공방 구석의 방문을 여는 박씨 할아버지.

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용광로.’

거대한 용광로가 가운데 위치한 방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군단장님.”

용광로 근처에는 두 명의 마법사가 대기 중이었다.

박씨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자매들.

각자 화염, 얼음 마법사로 각성했다던가.

석탄도 기름도 없는 지금.

열관리를 담당하는 건 저 두 마법사란 거다.

“혜진아. 불 넣어다오.”

“네.”

용광로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박씨 할아버지가 말했다.

화르륵.

용광로에 마법의 불길이 들이닥쳤다.

“더 세게!”

“네, 네!”

화르르륵-

요리사로서 화염 친화 특성이 있는 나지만.

그런 나조차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열기.

그렇게 용광로의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지자.

박씨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번에 말한 마지막 부탁. 지금 말하마.”

마법사들의 각출.

공방의 제작.

그리고 나중에 말하겠다고 한 마지막 부탁.

“저거, 좀 써도 되겠냐?”

“예?”

박씨 할아버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두꺼운 옷을 입은 공병들이 구석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들고 왔다.

내게는 눈에 익을 수밖에 없는 물건.

‘여왕의 칼날.’

6개의 발 외에도 2개의 칼날 같은 앞발을 가지고 있었던 흰 거미 괴물들.

저것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물건.

내가 직접 베어 넘긴 여왕의 칼날이었다.

“하핫. 마지막 부탁이란 게 이거였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이거. 꽤 가치가 높은 소재인 것 같거든.”

탄약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거미 괴물들.

몸통은 비교적 약하고, 열기에 쉽게 무너졌으나.

칼날과도 같은 두 개의 앞발만큼은 지독하게 단단했다.

거기에 날카롭고 열기에도 강했지.

그중에서도 여왕의 것은 특히나.

“다른 병사들한테도 한번 물어봤다. 네가 베어 버린 물건이니, 소유권은 너한테 있다고들 하더군.”

“저번에 말씀하지 않으시고 지금 와서 말씀하신 건. 서프라이즈 같은 겁니까?”

“그래. 꽤 위압감이 있지?”

확실히 여왕의 거대한 앞발이 가진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써도 되겠냐?”

“예. 아주 마음대로 쓰십쇼.”

“좋아!”

그걸로 내 칼을 만든다고 한다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있냐.

“대장 허가 떨어졌다! 바로 집어넣어!”

“옙!”

공병들이 힘겹게 옮긴 거대한 앞발이 용광로에 들어간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한 철을 녹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열기.

여왕의 발톱은 점차 붉게 달아오르더니.

곧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저것도 녹긴 하는군요.”

“대장장이의 스킬이 덕분이지. 그게 아니면 어지간한 열로는 택도 없다. 이미 실험해 봤지.”

“실험이라니요?”

“여왕을 제외한 거미들 앞발들 있잖냐. 그것들은 딱히 소유권도 없으니 병사들 무기로 쓸 때 사용하려고 이미 녹여 봤다. 물론 그것들 전부가.”

망치를 꺼내 들고 용광로에 다가가는 박씨 할아버지.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무기를 만들기 위한 예행연습이었지만 말이다.”

* * *

“완성이다.”

며칠 뒤.

내 눈앞에는 하나의 가죽 가방이 놓여 있었다.

요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편인 나도 이건 안다.

칼 가방.

“칼집이랑 가방은 상아 양이 만들어 준 물건이다.”

슬쩍 시선을 올리니.

박씨 할아버지 옆에 서 있는 이상아 조장이 보였다.

‘공방. 재봉사의 스킬에도 영향을 준다고 했지.’

칼 가방이나 칼집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으나.

막상 보니 아니었다.

[식재료 감별]

이름과 달리.

이제는 온갖 것을 다 감별할 수 있는 이 특성으로 확인해 본 결과.

[하급 재봉사의 정성이 담긴 마력의 가죽 칼집]

[안에 담긴 칼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합니다. 또한 칼날에 손상이 있을 경우, 칼집의 마력이 이를 천천히 복구합니다.]

[하급 재봉사의 정성이 담긴 마력의 가죽 가방]

[안에 담긴 칼에 미약한 마력을 부여합니다. 칼 가방에서 칼을 꺼낸 뒤 10분간 ‘예리함’ 버프가 부여됩니다.]

“세상에.”

“군단장님 쓰시는 거라고 하니까. 힘 좀 줘 봤어요.”

그동안 그녀의 제작 능력도 올라가고 거기에 공방의 보너스까지 부여된 덕일까.

주력 장비가 아님에도 기대 이상의 효과였다.

‘칼 가방이랑 칼집이 이 정도라면, 메인은 얼마나 대단한 거야.’

나는 두근거림을 안은 채로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두 자루의 식칼이 들어 있었다.

……둘?

“하나가 아닌 겁니까?”

“여왕의 칼날도 두 개였잖냐. 칼도 두 개는 나와야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애초에 요리사란 놈이 칼을 하나만 쓰고 다니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던 거야.”

“그죠. 지금까진 야채고 고기고 전부 그 일식도 하나로만 해결하신 거잖아요?”

대부분의 경우.

요리사들은 하나의 칼만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어떤 요리에 쓰이냐에 따라 다양한 칼을 구비하는 것이 기본.

물론 난 요리사가 아닌 일개 취사병 출신.

취사병이 칼을 구분해서 쓴다고 해 봐야 육류용 채소용을 나누는 정도?

거기에 고기를 자를 때 쓰는 중식도 정도가 전부였다.

‘진짜 요리사들이 쓰는 칼.’

전역하면 요리사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게 먼 과거의 일 같은데.

구색이나마 갖춰지기 시작한 셈인가.

“한번 쥐어 봐라.”

박씨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칼 한 자루를 쥐어 보기로 했다.

내가 쥔 것은 두 자루 칼 중에서도 긴 쪽.

칼을 손에 쥐자.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식재료 감별]

[독고구식]

[명장의 자질을 지닌 하급 대장장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일품.]

[품질로는 정평이 나있는 아라크론의 흰거미의 앞발로 만들어진 사시미칼.]

[여왕의 앞발은 특히나 훌륭한 재료로, 어지간해선 그 예기를 잃지 않는다.]

[대형 식재료의 손질을 감안한 디자인으로 식칼치고는 긴 편에 속한다.]

[특별한 마력 속성을 띠지는 않으나 단단하고 예리한 무기로써의 기본에 충실하다.]

[착용 시 힘, 민첩이 크게 증가합니다.]

[쉽게 마모되지 않습니다.]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한 종족의 수장이었던 존재의 한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투에 사용될 시 치명타를 입힐 확률이 증가합니다.]

형태 자체는 일식도에 가깝지만.

그 길이는 식칼이 아니라 숏소드만 했다.

내 특성의 한계.

600mm 길이의 칼인 거겠지.

손에 감기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후임 녀석의 일식도에 손이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쥐어 보니 그 생각도 싹 가실 정도.

칼 옆면에는 무언가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무늬 같은 것도 보였다.

“이 무늬는 뭡니까?”

“아. 그거? 제조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무늬다만. 꽤 멋들어졌지?”

“대단하군요.”

평생 칼에 대한 욕심 따위는 없었다만.

이렇게 쥐고 보니.

왜 후임 녀석이 장인이 만들어 준 식칼이란 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알 것 같다.

“다음 것도 쥐어 봐라.”

나머지 한 자루의 칼은 길이는 짧은 편이었다.

다만 날의 면적은 넓은 형태.

칼을 손에 쥐자.

독고 구식과 비슷한 설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칼의 이름은.

[검정중식]

“중식도로군요.”

“요리에 쓸 때는 가장 범용성이 좋은 칼 중 하나지. 전투에서도 쓸 만할 거다.”

그 말대로.

이쪽은 힘의 배분을 생각해서일까.

날은 두꺼우나 길지는 않았고 꽤 무게감이 있었다.

요리는 물론.

전투에서는 단단한 무언가를 깨부수는 도끼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자루의 칼 모두 감탄이 나올 정도의 일품.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독고구식.

그리고, 검정중식이라.

……음.

“이거. 이런 이름 써도 되는 겁니까?”

“앙? 내 작명이 불만이더냐?”

“……아뇨. 멋있네요. 뭐랄까. 예스럽기도 하고.”

탄약대대를 공략하기로 한 것은 탄약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설마 예기치 않게 얻은 전투의 부산물들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거기에.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될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망치의 면 부분에 가시 같은 걸 붙여도 망치로 인식하는지 시험해 보자.”

“고기망치 같이? 나쁘지 않네. 우리 공병들은 [망치 숙련]밖에 없으니까.”

“수비대 각성자들 [방패 숙련] 실험해 봤는데, 방패에 날을 붙여도 방패로 인식되는 거 같아. 아래쪽에 날을 붙여서 무기로 써도 되겠는데.”

“마법사들은 스태프를 만들어 달라는데…… 그게 뭘까요?”

공방 구석.

공병 각성자들이 모여 앉아 떠드는 모습이 보인다.

부대원들의 무기를 설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단도 숙련]의 규격을 확인한 것처럼.

다른 각성자들의 직업 특성에 맞춘 무기를 고안하고 있는 것.

‘……저 녀석들, 원래도 뭘 만들고 하는 걸 좋아했다고 했지.’

본래도 프라모델이나 DIY 등.

무언가를 만들고 조립하는 걸 좋아하던 녀석들.

거기에 공방 같은 제대로 된 생산 시설이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취미와 적성이 제대로 맞물린 데다가.

이제는 환경까지 갖춰진 셈.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다만.

“너희들. 전사로 활동할 때는 진짜 갑갑했겠다, 야.”

“어휴. 말도 마십쇼.”

“망치 숙련에 체력 향상 특성 있다고 냅다 전사직에 꽂는다니.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죠. 전투 특성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싸우란 건지.”

“큭큭. 나도 요리사니까. 무슨 느낌인지 알지.”

자재가 갖춰지고 공방까지 생긴 지금.

본업에 걸맞게 이것저것 만들고 연구하는 모습이 보기 괜찮았다.

“[대검 숙련]의 규격은 최대 사이즈에는 제한이 없는데, 최소 사이즈에 제한이…….”

“도적 계열 각성자들은 병장님처럼 [단도 숙련]이긴 한데, 스킬은 투척 위주가 더 많다는 것 같으니 대거 위주로.”

“흰 거미들 부산물, 안 모자라려나?”

“거기! 여기 차량 분해하는 것 좀 도와줘!”

지상에 내려온 뒤.

각성자의 숫자도 스무 명가량이 늘었다.

그렇게 각성자가 늘어나며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의상 전사조, 마법사조 같은 걸로 구분하고 있긴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 다르다.

전사조만 해도 광전사, 수비대, 기사, 검사, 창술사 등 다양하니까.

개중에는 내 ‘단도 숙련’처럼 특정 무기를 사용해야만 능력이 발휘되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포인트 상점에서 어떻게든 특성이 적용되는 무기를 구해서 사용했다만.

그 장비가 만족스럽지 않은 각성자도 많았고.

“이제부터는 아니야.”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본다.

리자드의 가죽으로 만든,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디지털 전투복.

‘멋도, 성능도 좋지만.’

평생 입어 본 적도 없는 맞춤형 의상이라 그런 것일까.

가죽 재질의 군복임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편안하다.

오직 나를 위해 만들어진 방어구.

그리고 이번에 얻은 두 자루의 칼.

“여왕이 무기로 쓰던 앞발은 두 개뿐이라, 당장은 두 자루밖에 못 만들어 준다.”

“그 큰 다리가 이 칼 한 자루가 된 겁니까?”

“시스템의 영향인지, 하나의 재료로는 하나의 아이템밖에 못 만드는 것 같더구나. 쓸 만한 재료를 더 얻는다면 가져오너라. 몇 자루든 더 만들어 줄 테니.”

앞으로 나를 위해 만들어질 무기까지.

“저는 이 두 자루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를? 요리사라면 용도에 따라 다양한 칼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법이야. 네놈은 우리의 대장이기도 하니. 적어도 열 자루는 갖춰야지 않겠냐?”

나뿐만이 아니다.

모든 길드원에게 각자에 맞는 무기와 방어구가 보급될 것이다.

탄약고를 탈환해 사수들의 총알 문제도 해결된 지금.

부대원들의 무장이 본격적으로 갖춰지기 시작했다.

산맥에서의 목표가 모든 부대원의 생존이었다면.

지상에서의 첫 번째 목표는 정착이었다.

그 정착을 이루어 낸 것이나 다름없는 셈.

그렇다면 이제는.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이제는 마경이 되어 버린 군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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