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56화 (56/227)

56화 정령사 (1)

[예민한 청각]이 포착한 전투 소리.

인간과 인간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문제는.

“가까워지고 있군요.”

“……우연이겠지?”

어느 한쪽이 밀리고 있는 전투인 것일까.

적을 따돌리기 위해 도주하는 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 소리의 진원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것.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우연이겠지만.’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소리.

거의 직선으로 접근해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건 마치.

“우리 위치를 알고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군.”

그럼 어떻게 할까.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고기는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까.

요리를 통해 기동력을 올린다면 후퇴하는 건 일도 아니지.

다만.

“궁금하네.”

“예?”

“누가, 무슨 이유로 같은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건지.”

나는 피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큭, 따돌릴 수 없는 건가.”

“포기하지 맙시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저기 앞에!”

도망치는 이들도 우리를 확인한 듯.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길목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이 우리에게 뭐라 말을 걸려던 순간.

“하하! 이제 도망치는 건 포기한…… 응?”

이들을 추격하던 또 다른 일단의 그룹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모습을 보자 주춤하는 그들.

“군복. 탈영병들인가.”

“이 근처까지 온 탈영병들도 있었나 보군.”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속닥거리는 것을 보니 우리가 못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다 들리는데.’

[예민한 청각(열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보니.

그들의 대화는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똑똑히 들려왔다.

-씁. 거의 다 잡았는데. 운도 없지.

-탈영병들이라.

-우리가 이길 수 있나?

-미쳤냐? 총 든 병사를 어떻게 이겨.

추격당하던 이들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만.

저들 입장에서 우리는 썩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건 알겠다.

-그렇다고 다 잡은 녀석들을 넘겨줄 수는.

-저쪽도 우리랑 마찰 빚기는 싫을 거야. 기다려 봐.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

“커험.”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시오.”

“흠. 안녕하십니까.”

“이런 곳에서 군 장병 여러분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긴 얘기는 필요 없고. 본론부터 들어가시죠.”

대화를 시도하려는 그에게 난 심드렁하게 말했다.

뒤에서 탈영병이란 건 확정 짓고 이야기하던 녀석들이.

군 장병 여러분은 무슨.

“이쪽 사람들이랑.”

공격받아 도망가던 이들.

“그쪽 분들.”

그리고 공격자들.

“무슨 관계입니까?”

“……음! 바로 본론이라. 시원하고 좋구려.”

공격자 측의 남성은 도망자 그룹 쪽을 흘깃 본 뒤.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쪽의 인간들은 우리 그룹의 물건을 훔치고 도주했소.”

“물건을 훔쳤다고요?”

“그렇소. 우리 입장에서는 꼭 붙잡아야 하는 범죄자들인 셈이지. 어떻게, 양보해 줄 수는 없겠소?”

남자의 말이 끝나자.

도망자 그룹 쪽에서는 화들짝 놀라며 반박했다.

“거, 거짓말입니다!”

“저희는 평범한 그룹인데. 저 녀석들이 갑자기 습격해 온 겁니다!”

“어쩜 저리 뻔뻔하게……!”

그러나.

그들의 반론 따위는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

공격자 측의 사내는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공짜로 넘겨달라고 하지는 않겠소.”

씨익 웃으며 도망자들 쪽을 가리키는 남자.

“어차피 장병분들이 원하는 것은 이들이 가진 물자들 아니오?”

“……그렇다면?”

사실은 남의 물자를 굳이 빼앗을 생각은 없다만.

저들은 우리를 약탈자 탈영병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일단 그런 거로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물자들은 모두 그쪽에 양보해 드리기로 하지.”

“뭐?”

물자의 양보.

그건 저 남자가 우리를 탈영병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나온 제안이겠지.

하지만 이건 꽤 놀라운.

아니.

이해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그럼 당신들한테는 뭐가 남지?”

“말했지 않소? 저 녀석들은 우리 그룹의 물건을 훔친 도둑놈들이라고! 물자는 사실 중요하지 않소. 하지만 우리를 배신하고 물건을 훔치고 도망간 녀석들.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지 않겠소. 우린 그걸로 충분하오.”

“흠.”

솔직히.

난 저들이 약탈자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을 코앞에서 확인한 셈이니까.

좋게 볼 수가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약탈자라면 응당 목표로 삼아야 할 물자를 양보하다니.

저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건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란 건데.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무슨! 그리고 이 녀석들아. 저분들이 그런 거 신경이나 쓰겠냐?”

“뭐, 뭐라고?”

도망자 측 생존자들이 반박하려 했으나.

되레 윽박지르는 공격자 측의 남자.

“생각해 보라고. 우리 군 장병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건 물자.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 도둑놈들.”

“……크윽.”

“서로 마찰 없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너희들이 거짓말이니 뭐니 하는 게 의미가 있겠어?”

그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조차 양보하기 힘들다고 한다면 충돌할 수밖에 없겠지만. 장병분들도 이런 곳에서 총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을 것 아뇨? 여기서 좋게 좋게 해결하는 게 어떻겠소.”

“글쎄.”

사실.

남자의 말이 크게 틀리진 않았다.

실제로 상당히 괜찮은 제안인 것도 맞지.

다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약탈자들일 때나 그런거고.’

이래 봬도 아직은 당당한 대한민국 국군의 장병.

남의 물자를 약탈할 생각은 없거든.

문제는 물자의 약탈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저 도망자들이 정말 공격자들의 그룹에서 물자를 훔친 이들이라면 우리가 개입할 일이 아니란 것.

반면 도망자들은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 결정이 달라지겠지.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남자.

그에게 눈을 맞춘 뒤 특성을 발동시켰다.

[특성 - 식재료 감별(강화)가 발동합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장류 - 인간종]

[신선도 - 중]

종족.

그리고 신선도.

식재료 감별을 통해 볼 수 있는 정보는 기껏해야 이 정도.

아니.

‘이 정도[였]지.’

얼마 전.

탄약대대를 탈환한 뒤 얻은 [특성 강화권].

난 이걸 통해 [식재료 감별] 특성을 강화했었다.

[식재료 감별]에서 [식재료 감별(강화)]로의 변화.

단순히 단어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그 차이는 컸다.

종과 신선도를 알려주는 문구 아래.

추가로 나타나는 메시지들의 나열.

[직업 : 신입 연쇄살인범 Lv. 7]

[능력치 : 힘 14, 민첩 16, 마력 5, 행운 3]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은신 기동, 최하급 연기]

[스킬 : 비골 찌르기, 흔적 제거]

그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허.”

“음?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동안 겪어 본 바로는.

각성자의 직업이 정해지는 데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실제로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던 인물이거나.

아니면 재능과 성향이 그쪽에 특화되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느 쪽이든.

[신입 연쇄살인범]?

저딴 직업을 가진 녀석은 처음 본다.

저딴 직업을 가진 녀석이 정상인일 리도 없고.

결정을 내린 나는 부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옙.”

“무기 들자.”

내 명령이 떨어지자.

“충성!”

근처에 편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무슨?”

그 모습을 본 공격자 측의 남자가 당황한 듯 말했다.

“무기를 들라니. 내가 이해하는 그 의미가 맞소?”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남자는 갑갑하다는 듯 말했다.

“말했듯이 우리는 딱히 나쁜 일을 하려는 게 아니오. 우리 그룹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는 이들을 추격해 왔을 뿐이지.”

“아, 그거야 뭐. 그러시겠죠.”

퍽이나 그러시겠다.

“혹시 더 양보를 바라는 거요? 그렇다면 차라리 말로 하시오. 여기서 총이라도 쏘는 순간 온갖 괴물들이 몰려들 텐데. 굳이 피를 보려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정말로 억울하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말투.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저 남자의 특성.

[최하급 연기]의 효과인 거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단 말이지.

남자 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형님, 어떻게 합니까? 싸웁니까?”

[식재료 감별(강화)]

[직업 : 신입 인간 사냥꾼 Lv. 4]

“자세히 보니 총 든 병사는 몇 명 없는 거 같은데. 잘하면 될 것도 같구먼. 조장이 정하쇼.”

[식재료 감별(강화)]

[직업 : 신입 약탈자 Lv. 6]

그 주변인들까지.

‘도저히 믿을 만한 구석이라곤 없잖냐.’

연쇄살인범이라는 살벌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나와 병사들을 슬쩍 훑은 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퇴하자.”

“형님?”

“큰형님까지 있으면 모를까, 우리끼리는 아직 무리야. 아쉽지만 포기한다.”

뭐야.

그냥 가는 건가?

등을 돌리고 물러나는 공격자들.

사내가 마지막으로 이쪽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군인이란 이유로 떵떵거릴 수 있겠지. 그 여유를 많이 누려 두도록 해. 그것도 길지는 않을 테니까.”

“무슨 의미지?”

“당신네들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각성자의 가능성이란 건 생각보다 굉장하거든.”

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다.

“총기 따위 무용지물이 되는 날도 머지않았지.”

“…….”

“그때까지. 오늘 일은 기억해 두도록 하지.”

거기까지 말을 남긴 뒤 떠나가는 남자.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기억해 둔다라.

‘그럼 지금 제거해 두는 게 나을지도.’

무슨 깡으로 저런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붙잡으려고 하면 붙잡지 못할 건 없다.

후환이 남을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죽여 버리는 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생각이 조금 거칠어진 느낌이 든다.

뭐, 죽이는 것까지 가진 않더라도.

썩 좋은 일을 하진 않을 것 같은 녀석들.

여기서 붙잡아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긴 하다만.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주변에는 괴물들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

저 녀석의 말대로.

여긴 위험한 장소다.

굳이 소란을 일으켜서 괴물들의 주의를 끌 필요는 없겠지.

“갔군요.”

“저 녀석들은 보내 줬다고 치고. 다음 문제는.”

공격 측이 모두 떠나간 뒤.

나와 우리 부대원들의 시선은 도망자 측의 그룹에게 향했다.

“저 사람들인데.”

일단 우리가 도와준 상황이긴 하다만.

저 탈영병 녀석들이 군인에 대한 인식을 나락으로 보내 버려서 말이지.

또 살려 달라느니 하는 소리나 할 게 뻔하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그게 고민이었는데.

생존자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가 싶더니.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예상과 달리.

두 눈을 감은 여인은 우리를 경계하기는커녕.

평범하게 감사를 전해 왔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 그래서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거고?’

아니.

그렇다기엔 저 떠나간 그룹과의 대화가 다 들렸을 텐데.

그냥 탈영병에 대한 소문을 못 들은 이들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띠링.

[무당 : 영준아.]

[셰프 : ……태준이?]

익숙한 인물에게서.

길드 메세지가 날아왔다.

[셰프 : 갑자기 무슨 일이야?]

[무당 : 점괘가 하나 나왔거든.]

그리고.

[네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내용은 꽤 흥미로운 것이었다.

[무당 :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도 꽤 자세하게.]

[셰프 : ……재밌네.]

* * *

나와 부대원들은 일단 조우한 생존자들을 데리고 군내를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그쪽은 위험이 크니까.

맘 편히 있기도 힘들단 말이지.

부대의 근처.

병사들이 정찰을 다니며 정리해 둔 안전한 건물 안에 들어선 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는 생존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건물의 한 방 안.

내 상대편에 앉아 있는 것은 생존자 측의 리더 격인 인물이었다.

분위기가 꽤 묘한 사람이었다.

두 눈을 감은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는 여인.

아무리 봐도 맹인인 게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평범한 맹인은 결코 아닌 듯.

두 눈을 감고도 평범하게 걷는 모습에서는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도 느껴졌으나.

‘뭐, 우리 부대에도 이상한 놈들 많다 보니.’

화나면 몸에서 푸른 전류가 흐르는 마법사나.

흥분하면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언어를 상실하는 광전사 등등.

겪어본 게 꽤 다양하다 보니.

어지간한 일은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내 질문을 들은 그녀는 이내 입을 열고 대답했다.

“무슨 일……이라고 할 만큼 복잡한 일은 아니에요. 저희는 평범하게 주변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저들이 갑작스럽게 저희를 공격했을 뿐.”

“정말입니까?”

“네, 아, 저들이 말한 도둑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에요. 오늘 공격당하기 전에는 본 적도 없던 사람들인걸요.”

“아. 그건 대충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그걸 어떻게 짐작하고 있었냐는 듯.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여인.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고마우실 거까지야. 사실. 이렇게 순순히 감사를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네? 도와준 분들한테 감사를 표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어.

사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난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군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아서요.”

“그런가요?”

“부대를 탈영한 몇몇 병사들이 벌인 악행이 좀 있는 것 같더군요. 덕분에 멀쩡한 저희 부대도 사람들의 의심을 사는 상황이라.”

“그렇군요.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신 거죠?”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럼 아무 문제 없네요.”

“…….”

그게 그렇게 되나?

무표정하게 말하는 여인.

나름대로 대화를 하면서 표정을 관찰하려고 했으나.

약간 멍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아는 척하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만.

그래도 일단은 대화를 해 보기로 했으니.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기에 앞서.

간단한 차라도 준비할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하시죠. 차도 있고, 커피도 있습니다. 그래 봐야 인스턴트이긴 합니다만.”

“차……”

전투차량에는 어느 정도 식량을 싣고 있는바.

부피도 적은 티백이나 인스턴트 커피 같은 것도 조금씩 실려 있었다.

일단 얘기를 하려면 그런 것이라도 대접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었으나.

“사양할게요.”

“네?”

“차라고는 해도 식량이잖아요. 식수 한 방울이 아까운 세상인데. 구해 주신 것으로도 감사한데 더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네요.”

아.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일단 우리가 점거한 탄약대대는 안쪽에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다 보니.

식량 문제는 아직 남았다 쳐도 식수 쪽에는 별생각은 없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는 그녀에게 말했다.

“굳이 사양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양심에 찔리는 게 있네요. 차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요.”

일단은 다시 제의해 봤으나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정말 예의상 거절하는 게 맞다 생각한 것일 확률이 높겠지.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사실일 수 있다.

다만.

‘흠.’

지금은.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단 말이지.

난 여전히 눈앞에 떠올라 있는 길드 메시지창을 보았다.

[무당 :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무당 :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도 꽤 자세히.]

‘무당.’

지금은 산맥 속의 부대에 남아 있는 우리 부대의 조장.

박태준 병장의 닉네임이다.

녀석의 직업은 천문관.

뭐 직업명과 별개로.

하는 일이고 능력이고 그냥 무당이나 다름없어서 저 닉네임인 거다만.

‘간만에 연락해 온 녀석이 한 말이 저거란 말이지?’

혹시나 싶어서 무슨 의미냐고 되물어 봤으나.

자기도 천문을 읽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태준이 녀석의 능력의 단점이 이거다.

자기가 말해 놓고도 자기가 무슨 얘기인지를 모른다는 거.

하지만…….

‘일단. 전해 준 내용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겠지.’

원할 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정보의 상세한 내용도 알 수 없지만.

얻게 된 정보 자체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즉.

‘이 여자는. 우리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여기서 중요한 건 두 가지겠지.

첫째는 그 ‘꽤 자세히’ 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둘째는.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이 여자가,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

우선.

첫 번째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난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차가 싫으시다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커피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정 마실 게 싫으시다면 간식거리는 어떠십니까? 먹을 건 많습니다. 제가 만든 간단한 쿠키 같은 것도 있고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것도 아니면…….”

그 후로도.

“그렇다면 이건…….”

“아뇨, 정말 괜찮아요.”

계속되는 권유.

그리고 거절.

같은 촌극을 몇 번이고 반복한 뒤.

나는 이번에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혹시 제가 만든 요리가 맛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러십니까?”

어렸을 적.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네 어머니가 하도 이거저거 먹을 것을 주시는 터라, 배불러서 못 먹겠다 거절했더니.

‘맛이 없어서 그러니?’

라고 진지하게 물어보시는지라, 어쩔 수 없이 몇 입을 더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꽤 당황스러웠지만.

이 정도까지 권유하면 한 입은 먹어 주는 게 예의라는 건 그때 배웠거든.

그러나.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역시 사양할게요.”

“……흠.”

역시.

아마 이건 예의라든가, 체면이라든가 취향이라든가.

그런 부류의 거절이 아니겠지.

왜, 예의상 거절하는 것도 3번까지가 국룰이라고 하잖냐.

그 이상 거절한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거든.

“맛이 문제가 아니라면, 역시.”

나는 준비 중이던 차를 한쪽으로 밀어낸 뒤.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했다.

“요리를 경계하고 계시는 거군요.”

“……네?”

움찔.

‘오.’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균열이 일었다.

이건 좀 통쾌한걸.

“그건…….”

“위험한 세상이니. 독극물 같은 걸 경계하시는 거라고 한다면 현명한 생각입니다.”

“아, 맞아요. 죄송한 얘기지만.”

“하지만 아마 그 이유는 아닐 것 같고.”

그야.

이런 세상에, 탈영병일지도 모르는 군인이다.

난생처음 보는 이들이 주는 음식.

위험하게 여기는 건 현명한 판단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생판 모르는 남이 권한 음식이란 게 핵심이 아니라.”

허리춤의 두 자루 식칼의 위치를 확인한 뒤.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만든 요리라는 게 핵심이겠죠.”

“…….”

우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태준이 녀석의 말.

그 범위는 확실히 알겠다.

‘이 여자.’

최소한.

내 요리 스킬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질문을 들은 여자는 머리를 굴리는 듯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더 찔러 주기로 할까?

“뭐, 말씀 안 해 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라서요.”

“……알고 있다니, 뭘 말씀하시는 거죠?”

“그쪽이 저희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나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굳게 감고 있는 두 눈동자를.

“그 눈 때문 아닙니까.”

“……그것까지 어떻게!”

놀란 그녀가 눈을 뜨자.

하얗게 변색된 눈동자가 보였다.

누가 봐도 실명된 눈.

하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셔도.”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내 눈도 보통 눈은 아니라서 말이지.’

사실.

아까부터 너무 잘 보이고 있었다는 거다.

[특성 - 식재료 감별(강화)를 발동합니다.]

[종족 - 영장류(인간종)]

[신선도 - 상]

[직업 : 정령사]

[스탯 : 힘 14…….]

[특성 : 정령안]

직업 정령사.

특성 정령안.

참나.

처음 민재 형이 마법사로 전직했다고 들었을 때도 참 놀랐었다만.

‘이젠 하다 하다 정령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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