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맹인을 눈뜨게 하시고 (1)
나와 부대원들은 정수아와 그룹원들을 데리고 부대로 복귀했다.
“신 병장님? 이분들은?”
“이번 원정에서 발견한 생존자들이다.”
“오, 그럼 신병들이라고 보면 되는 겁니까?”
“아직은 아냐, 인마. 저 사람들 쉴 만한 장소나 안내해 줘.”
마중 나온 병사들에게 그렇게 소개하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정수아가 의아한 듯 묻는다.
“저는 이 부대에 소속됐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그쪽은 어떻게, 대장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건지…….”
“아직은 괜찮습니다. 부대에 합류하는 대신 잡혀간 그룹원들을 되찾고 복수까지 해 주는 것이었으니.”
“아.”
“조건이 이행되기 전까지는 편하게 부르십쇼.”
그녀의 그룹원들은 병사에게 부탁해 생활관으로 안내한 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부대 안쪽으로 이동했다.
정확히는 식당 근처로.
탄약대대의 부대 식당은 부지가 넓은 만큼 여러 곳이 존재했으나, 우리도 탄약대대의 넓은 지역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내가 새롭게 자리 잡은 식당은 입구에서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
식량창고 쪽으로 향하자.
“어? 군단장님. 안녕하세요.”
창고 앞에 서 있는 병사 한 명이 보였다.
눈에 익은 얼굴.
박씨 할아버지의 두 손녀 중 한 명이었다.
‘언니 쪽이니, 얼음 마법사인가.’
얼음 마법사를 식량창고 앞에서 만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오늘 냉동 담당인가 보네.”
“네. 마침 지금 마법을 쓰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미안하게 됐네. 조금만 기다려 줘. 꺼내야 할 게 있어서.”
전기는 끊긴 지 오래.
나름대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차마다 기름을 뽑아오고는 있다만.
‘기름으로 돌리는 발전기의 효율은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지.’
부대에서 전기로 돌아가던 일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마법사들이 담당을 맡아서 해 주고 있었다.
냉장고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
지금은 창고 중 하나를 냉동고로 개조해 매일같이 마법사들이 극저온을 유지해 주는 식으로 식량을 보관하고 있었다.
난 그 냉동고의 문을 열었다.
떨릴 정도로 추운 창고 안에는.
수많은 몬스터 고기가 쌓여 있었다.
“와아. 대단하네요.”
“정령으로 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놀랄 거야…….”
“방울이의 시야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 거랑은 조금 다르거든요. 창고 안쪽은 보기 힘들기도 하고. 그런데…….”
창고 안쪽을 지켜보던 그녀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여길 왔다는 건,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거겠죠?”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하려는 일은 간단하다.
정수아의 능력, 정령안은 분명 강력한 특성이지만.
눈의 컨디션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
덕분에 컨디션 난조인 지금은 약탈자들의 본거지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눈에 좋은 걸 팍팍 먹여서, 눈이 좋아지면 되는 거지.’
어렸을 때의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비린내가 너무 심하다고 싫어했던 등 푸른 생선들.
먹기 싫다고 뻗대자 생선은 눈에 좋으니 커서 안경 끼고 다니기 싫으면 먹어야 한다던 어머니의 잔소리까지.
“괴물의 고기로 만든 요리라니…….”
이번에도 당사자는 먹기 싫다고 뻗대고 있지만.
눈에 좋은 거니까 먹어 주셔야겠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잡은 괴물 중.
딱히 시력에 특화된 괴물은 없었다는 것.
‘아무리 요리가 강력해도 결국은 재료의 영향이 9할 이상이야. 재료가 눈에 좋은 게 아니라면 아무리 잘 요리해 먹여도 큰 의미는 없겠지.’
얼마 전까지의 나였다면 이 상황에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시력이 좋은 재료가 없으면 시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내 능력의 큰 한계점 중 하나.
하지만…….
지금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냉동창고에 쌓여 있는 몬스터의 고기들.
내가 부상으로 누워 있는 동안 주변 정찰 나간 병사들이 처리한 듯 처음 보는 종류의 괴물도 많았다.
그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식재료 감별]을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
[사마자르]
[신선도 - 중(냉동)]
[특성 : 칼날 발톱, 외골격]
‘이건 아니고.’
[호그란]
[신선도 - 하(냉동)]
[특성 : 불굴, 돌진 특화]
‘이것도 아니야.’
쓸모없는 것들은 대충 넘기며 다음 괴물을 찾던 중.
[코틀니]
[신선도 - 상(냉동)]
[특성 : 위기감지, 십리안]
“찾았다.”
발견한 괴물의 고기는 따로 빼놓은 뒤.
계속해서 다른 괴물들을 살폈다.
[특성 : 야행, 어둠 시야]
“이거랑.”
[특성 : 붉은 분노, 적외선 감지]
“이것도 나쁘지 않나?”
괴물 중.
시력에 관련된 능력이 주 능력인 녀석은 없다.
하지만.
‘질이 안 되면 양으로 승부하면 되잖아?’
그 괴물의 주 능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식재료 감별]의 효과가 증가해 식재료의 정보를 보다 상세하게 볼 수 있게 된바.
뭐든 시력에 관련되어 보이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따로 빼서 정리했다.
“음, 대충 이 정도인가. 수아 씨, 밥은 좀 많이 먹으십니까?”
“네? 그냥 평범한 편인 거 같은데.”
“그럼 좀 분발하셔야겠네요.”
그러다 보니.
쌓인 고기들의 양이 상당했다.
“많이 먹어 주셔야 할 것 같아서.”
* * *
식당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에 내가 도전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코스 요리.’
가져온 재료들은 기본적으로 시력에 특화된 재료들이 아닌바.
하나하나의 요리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원하는 효과를 내기 힘들겠지.
하지만 여러 개의 재료로 하나의 코스를 만든다면?
그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효과.
즉.
내가 원하는 효과를 얻어 낼 수 있을 터.
‘다른 취사병들한테 배웠던 레시피들. 총동원해야겠구만.’
결국 요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맛이 가장 중요하니까.
‘요리의 종류 역시 하나여선 안 되겠지. 소스도 질리지 않도록 여러 맛을 내 줘야 할 테고. 아, 음식을 제공하는 순서도 고려해야겠네.’
부대에 있을 적에는 급양대에서 정해 준 메뉴를 그저 요리하기만 하면 됐지만.
코스 요리를 만들려고 하니.
내가 메뉴를 고안해야 한다는 것에 머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동시에.
‘큭. 재밌네.’
어떤 요리를 해야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 자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그렇게 먹인 요리를 먹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하면.
즐겁기 그지없었다.
“리자드 그레이비를 끼얹은 로스트 코틀니입니다.”
“……와아.”
그렇게
고심 끝에 첫 번째 메뉴가 나갔다.
나름대로 간부식당에 있던 괜찮은 그릇들을 가져와 플레이팅까지 했다.
요리는 시각으로도 즐겨야 한다고 하니까.
그 모습을 본 정수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솔직히 괴물의 고기로 만드는 요리라고 무시했는데. 엄청 맛있어 보이네요. 뭐로 만든 요리라고요?”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안 듣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는데.”
“……실언이었네요.”
리자드는 우리 부대원들을 잡아먹은 괴물.
녀석의 고기만큼은 썩어날 정도로 넘치다 보니.
그 요리로 만든 육수를 따로 모은 뒤.
밀가루를 조금씩 섞어 농도를 진하게 하고, 소금과 후추 등으로 간을 해 만든 그레이비 소스.
거기에 조류처럼 생긴 괴물인 코틀니라는 괴물의 고기를 오븐에 구웠다.
독을 지닌 괴물이라 독낭을 제거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맛은 나쁘지 않을 터.
정수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식기를 들었다.
내가 가진 요리 스킬을 알고 있는 여자.
내가 요리에 이상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 생각해 긴장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에게도 마땅한 선택지는 없다.
결심한 듯 고기를 소스에 살짝 찍어 입에 넣는 수아.
그리고.
반응은 예상한 대로.
“마, 맛있어.”
“당연하죠. 누가 만든 건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로 맛있다니. 취사병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런 건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당황한 듯 말을 흐리는 정수아.
내 요리를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약간의 감상평을 남긴 그녀는 감탄하며 바쁘게 식기를 놀리기 시작했다.
‘내 요리를 먹고도 싫어할 수 있을지 보자고 했지.’
뭐, 나 자신과의 내기였던 셈이지만.
승자는 내 쪽인 모양.
그녀가 식사를 재개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주방으로 돌아간 나는 다음 요리의 준비에 착수했다.
“은 물방울 젤리를 얹은 숄더 로치 구이입니다.”
“느끼한 맛을 젤리의 상큼함이 잡아 주고 있어……!”
지난번에 마트에서 확보한 슬라임 같은 괴물들.
그 젤리에 잼류를 섞어 상큼하게 만든 뒤 괴물의 고기와 같이 낸 요리다.
……고기의 원재료는 바퀴벌레를 닮은 괴물이었지만.
그런 건 먹는 사람이 알 필요는 없는 일이고.
“풀드 고블린 토스타다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에 든 고기는 촉촉해.”
마트에서 얻은 토티야에 고블린의 고기를 푹 삶아 찢어 넣은 뒤 [혼재된 마력의 기름]에 튀긴 요리다.
그 외에도.
"잘게 간 애쉬코어의 고기와 아라크론 계란으로 만든 소보로 파스타……."
“이 계란. 무슨 계란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고소하네요!”
거미 알이다.
“리자드 라구 소스를 부은 미노스 안심 스테이크…….”
“무슨 육즙이……!”
다른 괴물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던 괴물의 육즙이다.
뭐 어쨌든.
맛만 좋으면 된 거 아니겠어!
‘그나저나. 묘하게 반응이 좋네, 이 사람.’
좀 먹어 본 놈인가.
아무튼 요리해 주는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요리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메인 요리였다.
“코스 요리라는 게 이렇게 메인만 나와도 되는 거예요?”
“음.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라면 코스트를 생각해서라도 못 할 짓이긴 하죠.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사이드 요리용 재료가 모자라다 보니.”
뭣보다 부족한 것이 채소나 버섯 등의 신선 재료들.
우리한테는 없는 게 너무 많다 보니.
어쩌다 보니 메인으로만 밀어붙이게 되었다는 느낌.
‘그래도 맛의 배합에는 신경 썼다. 메인 요리밖에 없다는 건 오히려 강점이면 강점이지, 절하될 요소는 아니거든.’
그렇게.
모든 코스 요리의 시식이 끝난 뒤.
“더, 더는 못 먹어요.”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공된 디저트는 내가 만든 간단한 아이스크림.
그걸 먹는 정수아의 모습을 보며.
난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허공을 바라보았다.
‘코스 요리에 재료들이 가진 공통점은 하나. 내가 의도한 대로라면.’
슬슬.
익숙한 소리가 들려와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한 순간.
띠링.
[코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A - 리자드 그레이비 로스트 코틀니]
[B - 은물방울 젤리 숄더 로치 구이]
[C - …….]
.
.
.
[요리에 담긴 마력들에 담긴 공통된 성질이 발견되었습니다.]
[테마가 존재하는 코스 요리를 완성하였습니다.]
[인간종 최초로 ‘코스 요리’를 완성하였습니다.]
[앞서가는 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칭호 - ‘코스 요리사’를 획득합니다]
[칭호 - 코스 요리사]
[하나의 테마로 정립된 코스 요리를 완성할 경우 효과가 2배로 적용됩니다.]
의도한 대로.
코스 요리를 완성하자 떠오르는 메시지.
이걸 시도한 요리사 각성자는 나뿐이었는지 칭호까지 얻었다.
만족스러운 효과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
[공통된 마력 성질 - 눈]
[신영준의 자작 코스 요리 - ‘눈동자’]
[시식자의 시력이 매우 크게 회복됩니다.]
[시야에 관련된 모든 능력에 아주 큰 보너스가 제공됩니다!]
“됐다!”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의도한 대로의 효과.
정수아의 정령안은 눈의 컨디션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정령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도 훨씬 더 길어졌겠지.
“요리의 효과가 적용됐을 테니, 이제 그 눈으로 약탈자 놈들의 근거지를 찾…… 어?”
이 코스 요리를 기획한 것은 그녀의 능력으로 약탈자들의 기지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녀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뭔가.
달라진 모습이 보였다.
"저, 저기요."
"……."
"이, 이거 설마. 그 쪽 분이 한 짓인가요?"
그 달라진 점을 의식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정수아가 당황하며 나를 보고 말했다.
그녀의 손은.
시력을 잃고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던 자신의 양 눈으로 가 있었다.
“앞이…… 앞이 멀쩡하게 보여요.”
그래.
달라진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두 눈을 감고 있던 수아.
그 안에는 새하얗게 변한 눈동자만이 기괴하게 남아 있었다.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던 그 눈동자.
‘……는 온데간데없군.’
지금 그곳엔.
바닷물처럼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테마 - 눈]
[시식자의 시력이 매우 크게 회복됩니다.]
아니, 매우 크게 회복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정도란 게 있지.
‘그게 왜 멀쩡하게 보이냐.’
맹인의 눈을 뜨게 만들 정도라니.
그런 말은 없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