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절대 미각
약탈자들의 토벌이 끝난 뒤.
“합류하겠습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으니, 받아 주신다면…….”
정수아의 그룹원들이나 노예로 붙잡혀 있던 생존자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고.
약탈자들의 경우.
“흐, 흐흐흐흐……흐익…….”
“마, 맛있어.”
“제발 한 입만 더…….”
“내게 복종하기로 맹세한다면. 매일 같이 이런 요리를 먹여 주지.”
“충성 충성!!!”
약간의 갱생 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
각성 작업이 진행되긴 해야겠지만, 부대의 인원이 꽤 늘어나게 되었다.
새로운 부대원들에게 맞춤 장비를 마련해 주기 위해 공방에서는 불이 꺼지질 않았다.
“저 사람들 분량만큼 리자드 가죽이 되려나?”
“음~ 아직은 괜찮을걸요?”
“아직 괜찮다는 건, 재고가 모자라긴 하나 보네.”
“그렇죠. 그래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걸요? 계속 리자드 가죽을 쓰는 건 무리겠지만, 저도 실력이 꽤 늘었으니까. 다른 괴물의 가죽으로도 처음 만들어 드린 정도 퀄리티는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이것도 처음 예상했던 인원에 비하면 적은 편이긴 했다만.
실망할 필요는 없겠지.
“제가 교류하던 그룹들한테 저는 이쪽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전하고 왔어요.”
정수아가 말했다.
그녀는 여러 그룹과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으니 가능하면 그쪽 그룹들도 흡수하고 싶었다.
“그쪽 반응은 어때?”
“나름대로 설득을 해 보긴 했는데. 아직은 망설이는 것 같아요.”
“그런가.”
“다들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니까요. 조만간 선택을 내리게 되겠죠. 아마 좋은 방향으로 기대해도 될걸요?”
“이유가 뭐지?”
“저 약탈자들, 꽤 유명한 녀석들이거든요. 그런 놈들이 전멸했고, 그걸 전멸시킨 게 군인들이다. 그런 소문이 생존자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거든요.”
뭐?
우리가 약탈자를 토벌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이라도 있었던 건가.
“정확히는 저희 그룹이 돌린 소문이지만요.”
“아.”
뭐 소문의 출처는 중요하지 않겠지.
중요한 것은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 그 자체였다.
‘군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된다면 우리에게 합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생겨날 테니.’
엄청난 호재다.
* * *
새로운 부대원들과 약탈자의 기지에서 얻어 온 물자들의 정리 등.
전투의 후처리가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조장들을 모아 연 회의 자리에서.
나와 조장들은 길드 메시지창을 열었다.
[무당 : 던전이라.]
산맥에 남아 있는 박태준 병장.
녀석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던전.’
부대에 합류가 결정된 뒤.
정수아가 가장 먼저 알려 온 정보였다.
RPG 계열의 게임에는 필수라고 해도 될 만큼 자주 등장하는 존재다.
이름의 기원은 성의 지하 감옥 같은 것이라지만, 최근에 와서 그 의미는 꽤 달라졌다.
특정 종류의 몬스터가 모여 있는 장소.
형태나 종류 같은 거야 워낙 각양각색이니 뭐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에서의 던전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최고의 파밍처라는 거지.’
경험치.
아이템.
모두, 필드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수아는 조금 더 힘을 기른 뒤에 자신의 그룹을 이끌고 공략할 계획이었다던가.
이번에 약탈자들과의 싸움에서도 느꼈지만.
당장은 우리가 강자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뒤처질지 모르는 일이다.
당장 군내를 정벌하려고 하기에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니까.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어갈 수야 있나.
여기까지 들으면 그저 장점밖에 없는 장소로 보이기도 하지만.
던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필드에 비해서 난도가 높은 경우가 많단 말이지.’
그래서.
우리 길드의 무당 선생에게, 앞날을 좀 점쳐 봐 달라 한 것이다.
[무당 : 네가 말한 그 장소에 뭔가 있는 건 맞는 것 같군.]
[셰프 : 어때? 우리가 공략해도 괜찮을까?]
[무당 : 으음. 그건.]
그런데.
[무당 : 당장은 추천하지 않고 싶군.]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
[사수조장 : 점괘가 좋지 않은 겁니까?]
[무당 : 행이냐, 불행이냐를 따진다면. 당장은 불행이군. 아마 지금 공략하기엔 난이도가 있는 던전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만.]
나와 부관들의 시선이 정수아를 향해 집중됐다.
“왜, 왜 그러시죠?”
“박태준 병장님 말로는. 그 던전. 엄청 어려운 곳이라는데요?”
“네?”
당황한 정수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도 저희 그룹에 각성자가 30명쯤 되면 공략해 보려고 했어요. 그 정도로 힘든 곳일 줄은 몰랐죠…….”
“그 정령으로 던전 안쪽은 못 보나요?”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로 사기적인 특성은 아니라서요. 방울이도 던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더라구요.”
하긴.
정찰을 통해 던전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한들 난이도까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오히려 소름 돋는 건 저예요. 지금이야 여러분들께 던전에 대한 정보를 넘겼지만…… 원래는 저희 그룹끼리 공략하려 했으니.”
“무난하게 그룹을 키운 뒤에 공략하려고 했다가 큰일이 날 뻔했군.”
“군단이 어려울 정도의 난이도라면 각성자 30명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을 테니까요. 으으. 그 생각을 하니 또 소름이…….”
정찰에 특화된 정수아의 능력.
그리고 일종의 예지에 가까운 박태준의 능력.
같은 정보 계열이지만, 꽤 큰 차이가 있었다.
‘……태준이 녀석이 있어서 큰 피해를 보는 일은 피한 셈인가.’
정수아의 정령안으로 새로운 정보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그걸 건드렸을 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박태준의 천문은 지나치게 랜덤이고.
다행인 점은 두 능력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준다는 것이다.
정수아의 정령안으로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고.
박태준의 천문을 통해 그곳에 가도 될지 아닐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
‘드론, 이 아니라. 정령사를 영입함으로써. 우리 활동의 안정성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셈이지.’
아무튼.
던전은 당장 공략하기 힘든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하니.
새롭게 합류한 생존자들을 각성시키며 힘을 키우기로 했다.
“힘을 키운다…… 라.”
식당의 일을 마무리한 뒤.
방에 복귀한 나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이번엔 운이 좋았지.’
약탈자들의 대장 녀석.
‘갱생’한 약탈자들이 말한 정보에 따르면 원래는 평범했으나, 식인을 반복한 끝에 저런 형태가 되었다던가.
처음엔 그럭저럭 상대할 만했지만.
약탈자들을 죄다 집어삼킨 뒤에는 아니었다.
광일이 녀석조차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의 강적.
운 좋게 직업 퀘스트, 대적자 척살이 나타나 줘서 다행이지.
그로 인한 전투 능력 상승이 없었다면 큰 피해를 당할 뻔했다.
‘힘은 키워도 키워도 모자라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하급 요리사 (2차 직업) Lv. 19]
[힘 : 19]
[민첩 : 30]
[마력 : 18]
[행운 : 24]
[특성 : 하급 단도 숙련, 하급 요리 숙련, 하급 식재료 감별(강화), 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소스, 전투 식량]
[포인트 : 8,182pt]
[랜덤 스킬북x1]
오랜만에 열어 보는 상태창.
그동안 꽤 일이 많았다 보니.
전에 열어 봤을 때와 비교해보면 꽤 높아진 수치가 눈에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포인트.
“8천? 미쳤네.”
보통 포인트를 이렇게까지 쌓아 두는 경우는 없다.
다른 병사들 모두 쓸 수 있는 만큼 모이면 곧바로 쓰고 보는 편.
하지만 난 전투직도 아니다 보니.
굳이 쓸 필요를 못 느껴 아껴온 포인트가 4천 정도.
거기에 이번에 처치한 ‘이상식욕자’ 녀석에게서 얻은 포인트를 합치니 저런 수치가 나와 버렸다.
슬슬.
쓸 때가 됐지.
‘아. 그 전에.’
상태창에도 나타나 있는 물건을 먼저 써야겠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자.
내 눈에만 보이는 무형의 책 한 권이 잡혔다.
[랜덤 스킬북]
[직업과 관련된 스킬을 랜덤으로 1종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획득한 스킬북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표지조차 없는 얇은 책 한 권.
이걸 읽으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난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그러자.
머릿속에 정보의 물결이 밀려 들어왔다.
[스킬 - 절대 미각(new)]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맛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최고의 요리사는 또한 최고의 미식가이기도 한 법!]
[당신의 미각이 극한에 도달합니다.]
[요리의 맛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느끼며, 재료에 담긴 작은 특징 하나까지 캐치할 수 있게 됩니다.]
[효과 1 (패시브) - 자신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긍정적으로 크게 상승합니다.]
[효과 2 (액티브) - 스킬 사용 시, 본인에 한해 요리에 담긴 작은 [특징]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새롭게 얻은 스킬의 이름은 [절대 미각].
미각이 극한에 도달하게 만들어 주는 스킬이라.
음…….
이건.
“꽝이네.”
맛을 잘 느끼게 된다면야 뭐.
맛있는 요리 먹을 때 기분은 좋겠지.
하지만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첫 번째 효과는 나쁘지 않아. 내 요리를 내가 먹었을 때 효과도 늘어난다는 뜻일 테니.’
내가 만든 요리의 효과가 나 자신에게만 더 강하게 적용된다.
즉, 버프의 효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라, 버프 효과가 늘어난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일 것 같다는 것 정도이다.
본격적인 전투 특성과 비교하면 좀 모자람이 있기는 하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진 않다.
문제는 두 번째 효과.
특징을 끌어올린다는 건 무슨 말인지 감도 잘 안 온다.
“아니, 뭔 스킬이 나 자신한테만 적용되냐.”
이왕이면 부대원들에게 효과적인 스킬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으로는 드디어.
쌓아 왔던 포인트를 털어 낼 때가 됐다.
“포인트 상점.”
작게 그 이름을 중얼거리자.
[포인트 상점]
[최근 구매 항목 - 평범한 식칼 - 5pt]
[딱딱한 호밀빵 - 10pt]
[평범한 강철검 - 30pt]
[평범한 방패 - 30pt]
내게 쓸모없는 물건들의 목록은 보지도 않고 주르륵 넘겨 버렸다.
그렇게 최하단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포인트를 바로바로 쓰게 하는 이유가 나타났다.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민첩) - 1,000pt]
[능력치 상승의 물약(마력) - 1,000pt]
[랜덤 스킬북 – 3,000pt]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추후 패치를 통해 아이템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무려.
능력치와 스킬을 얻게 해 주는 물건들.
“나야 전투직도 아니다 보니까, 급하게 투자할 이유가 없었지만.”
전사나 마법사 같은 전투 계열 각성자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포인트가 모이는 대로 저 물약들을 통해 능력치에 투자를 한다.
“어디 보자. 내가 가진 포인트로는 물약을 8개 사거나 스킬북 두 개에 물약 두 개인가?”
즉.
어떻게 사용하든 간에 물약을 최소 두 개는 구매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일단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을 구매하기로 했다.
[1,000pt를 지불합니다.]
[잔여 포인트 – 7,182]
눈앞에 나타나는 빨간색 물약.
“이 물약은 그래도 좀 알고 있지.”
다른 부대원들은 이미 포인트가 되는 대로 구매하고 있는 물건이니까.
당연히, 능력치 상승 물약을 이미 먹어 본 녀석들에게서 들은 게 있다.
‘섭취할 경우, 능력치를 1에서 3까지 랜덤하게 늘려 주는 물약.’
누가 게임 같은 세상 아니랄까 봐 이런 것도 랜덤이다.
1이 뜨면 안타깝겠지만.
부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2만 떠도 포인트 값은 하고도 남는 것 같다던가.
3이 뜨면 다른 사람한테 자랑도 못 한다고 한다.
기만자라고 욕먹는다는 이유.
덤으로, 물약이지만 맛도 꽤 괜찮다고 한다.
콜x 같은 음료수 맛.
“제발 3, 아니. 2만 떠도 좋으니까 1만 아니어라.”
그다지 의미는 없는 기도를 하며.
물약의 뚜껑을 따고 입 안에 내용물을 들이부었다.
은은한 라임 향이 느껴지는 청량한 맛.
물약에 담긴 마력이 입 안을 통과해 몸 곳곳에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띠링.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을 섭취하였습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은 바와 같은 내용.
‘1에서 3이 증가한댔지. 어느 정도 증가했느냐가 중요한데.’
살짝 긴장한 채로 나타나는 메시지를 기다렸다.
제발 1만 아니길 바라며.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먼저 눈 앞을 가렸다.
[스킬 - 절대 미각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자신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크게 상승합니다.]
“……?”
[힘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