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지하철 (1)
순간, 잘못 본 건가 했다.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다시 확인해 보니.
[힘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잘못 본 게 아니잖아?”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 본 결과.
힘 능력치가 정확히 5 상승해 있었다.
이게 뭐야.
“분명 부대원들 말로는 1에서 3 사이 랜덤으로 상승한다 했는데…….”
사실 다른 부대원이 운이 더럽게 없었을 뿐,
원래는 5까지 상승할 수도 있는 거였다던가-.
“그런 건 당연히 아니겠지.”
짐작 가는 이유는 하나.
[절대 미각]
[효과 1 (패시브) - 자신에 한해, 음식을 통해 얻는 효과가 크게 상승합니다.]
새롭게 얻은 스킬.
[절대 미각]의 효과.
그 안에 담긴 음식을 통해 얻는 효과가 크게 상승한다는 문구다.
“……아니, 물약도 음식으로 치는 건가?”
물약.
즉.
약이잖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졌으나.
“물약을 음식으로 쳐도 되냐…… 입니까.”
“어. 그나마 이런 거에 대해 알 만한 녀석이 너밖에 없어서.”
“저도 물리치료학과 출신이라.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닙니다만.”
의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의무병.
사의준 일병이 말했다.
그나마 약에 대해 알만한 것이 ‘치료사’로 각성한 이 녀석이니까.
“그거야 뭐.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 될 것도 없죠?”
그런 녀석이 안 될 것도 없다는 대답을 꺼내 든 것.
“안 될 것도 없다는 건 무슨 의미야?”
“능력치 물약의 경우에는 뭐 병을 치료한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먹으면 힘이 세진다든가 그런 거잖습니까?”
“그렇지.”
“이런 건 사실 약이 아니라. 자양강장제 같은 거죠. 그러면 기능성 음료로 분류하는 게 맞거든요.”
“기능성 음료?”
“편의점에서 파는 소화제나 숙취해소제. 비타민 음료나 자양강장제…… 뭐 그런 것들 있잖습니까.”
“아아. 그렇지.”
“그런 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약물이거든요. 그런데 약국에서만 파는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팔잖습니까? 이렇게 약국이 아니어도 팔 수 있는 의료품들을 의약외품이라고 합니다. 음료의 경우에는 기능성 음료라고 분류하구요. 그리고 음료는 아시다시피.”
음료.
액체를 많이 포함한, 마실 수 있는 음식을 뜻하는 말.
“음식에 포함된다. 그건가.”
“굉장히 너그러운 기준입니다만, 그렇게 보자면 음식으로 보지 못할 것도 없죠.”
“이해했어.”
건강 회복이나 체력 증진을 위해 먹는 게 일반적인 자양강장제.
능력치 증가를 위해 먹는 포션.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같이 묶어도 되는 건가?
‘내가 이상하게 생각해도 의미 없나.’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치 상승의 물약은 음료.
즉 음식이라고.
내 [절대 미각]의 효과가 적용된 결과.
음식의 효과가 극대화되어 작용.
1~3의 수치가 올라야 하는 물약이, 5의 능력치 증가를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는 건.’
머릿속에.
뜬금없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
음식이라면.
음식을 만들기 위한 요리 과정이 있을 것이고.
마침, 내 직업은 요리사다.
“……나도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그걸 가능하게 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특성 : 하급 식재료 감별(강화)]
물약에 들어간 재료와 조리법.
그 레시피를 알아 낼 수만 있다면.
[1,000pt를 지불합니다.]
[잔여 포인트 – 6,182pt]
방으로 돌아온 나는 물약을 한 병 더 구매했다.
거기에 특성을 사용해본 결과.
[‘능력치 상승의 물약(민첩)’의 감별 결과-]
[정체불명의 재료 ??%, 정체불명의 액체 ??%, 정체불명의 감미료 ??%…….]
[특성의 등급이 낮아, 재료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쯧.”
역시 그렇게 쉽게는 안 되나.
정체불명의 뭐시기로 도배된 감별 결과가 주르륵 나열된다.
재료만 알 수 있다면 온갖 시도를 통해 요리법을 알아내고 시도해 봤을 테지만.
강화되었다고 한들 이 특성의 단계는 하급.
모든 재료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힘들단 거다.
설령 재료를 알아냈다고 한들, 지금 단계에선 얻기 힘든 재료였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데 그때.
“어?”
정체불명의 어쩌구로 나열되던 감별 결과 사이에.
다른 문구 하나가 보였다.
[아룡의 심장 10%]
“이건.”
아룡의 심장.
이름만 들어도 뭔가 대단해 보이는 재료다.
능력치 물약에 들어간 재료 중에서 유일하게 감별이 된 물건.
저 재료가 내 감별 스킬로 감별이 가능할 만큼 저급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내 군장 가방을 뒤져 목함 하나를 꺼냈다.
그 목함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아룡의 심장]
[아룡의 심장입니다.]
과거.
김 중위에게 요리를 먹여 그를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했을 때.
‘헤어날 수 없는 맛’이라는 업적을 달성했었다.
그 보상으로 얻은 것이 이것.
[최상급 식재료 : 아룡의 심장]
요리 스킬이 부족하다 보니 다루지는 못하고.
그냥 짐가방에 넣고 가지고 다니기만 했다.
괜히 군장 무게만 늘어나게 하는 짐덩이 같은 존재였는데.
‘설마 능력치 물약에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였을 줄이야.’
내가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재료였기에 감별에도 성공한 거겠지.
아룡의 심장에 능력치 물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0%.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이 심장 같은 재료들을 모두 모으는 데 성공한다면.
‘능력치 물약을 요리할 수 있다……!’
* * *
얼추 물약을 통해 실험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실험한 뒤.
[6,000pt를 지불합니다.]
[잔여 포인트 - 182pt]
나는 나머지 포인트도 모두 물약으로 바꿔 버렸다.
스킬을 구매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최근에 새로운 스킬을 얻은 참이기도 하고.
그 스킬의 효과로 물약의 효율이 증가했는데 어떻게 참겠어.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달다.”
생각해 보면 참 타이밍도 좋았다 싶다.
우연히 퀘스트를 통해 얻은 스킬북.
그리고 그동안 아껴 왔던 포인트.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최고의 효율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니.
그렇게 8병의 물약을 모두 들이켠 결과.
[능력치]
[힘 : 19 → 29]
[민첩 : 30 → 45]
[마력 : 18 → 33]
[행운 : 24]
능력치가 도합 40이나 증가했다.
‘원래도 스탯으로는 꿀리지 않았는데…… 이건.’
가장 먼저 각성한 것도 있고, 요리를 통해 꾸준히 경험치를 수급해 왔다.
레벨로 따지면 부대원들 중에서도 최고.
20레벨을 목전에 둔 만큼 스탯 만큼은 전사들에게도 꿇리지 않았었다.
거기에 이 정도의 추가 능력치라니.
슬쩍 몸을 움직여 보았다.
‘음. 이전에 이상식욕자 녀석과 싸울 때만큼은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몸이 엄청나게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잘하면 광일이 녀석과도 비벼볼 만하지 않을까.
녀석은 광기라는 희대의 사기 특성을 가지고 있다만.
[절대 미각]의 효과로 요리를 통한 버프 효율 또한 증가했으니.
‘쓸모없는 스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엄청난 성장을 이뤄내 버렸다.
깡스탯을 올려 줄 뿐이라고 해도 드디어 제대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얻은 셈.
‘내심 전투력이 약한 걸로 부대원들한테 무시나 당하지 않을까 고민이었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무시는 안 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띠링.
[무당 : 영준이 너. 뭔가 한 거냐?]
[셰프 : ?]
[무당 : ……아닌가?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너라고 생각했는데.]
산맥의 무당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자.
[무당 : 점괘에 있던 불운이 걷혔다.]
[무당 : 이 정도면 도전해 봐도 괜찮겠어.]
주어가 없음에도 의미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던전 공략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 * *
부대원들이 모인 자리.
새롭게 합류한 정수아가 군사지도의 한 장소를 지목했다.
“여기예요.”
부대에 합류하자마자 우리에게 건네준 정보.
던전의 위치.
“그렇게 멀지 않네요.”
“운이 좋은 건가.”
그녀가 가리킨 장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네.”
“이런 곳에 동굴이라도 있는 건가?”
“네? 아무것도 없는 곳은 아니에요.”
“응?”
다시 지도를 봐도 그저 허허벌판.
정수아 역시 지도를 보고 살짝 갸우뚱하며 말했다.
“어…… 그러네요. 정령으로 봤을 때 아무것도 없는 곳은 아니었는데.”
“그게 무슨…….”
“아. 알겠어요!”
그녀의 말에 반응한 것은 이상아였다.
“여기, 역이 있는 장소에요.”
“역이라니?”
“아아…… 그렇군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나를 비롯한 병사들은 처음 듣는다는 태도.
반면 생존자 출신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깡촌에 역이 있다고?’
그랬다고 한다면 근처 부대에서 군생활을 한 우리들이 모를 리가 없다.
휴가를 나가거나 복귀할 때 전철을 이용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건 분명 없었다.
나만 해도 언제나 고속버스를 이용했는데-.
“군인분들은 모를 만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지고 있는 역이거든요.”
아.
공사 중인 지하철역이라는 건가.
던전이란 단어는 지하 감옥에서 비롯되었다던가.
“던전이 있을 만한 장소기는 하네.”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 * *
준비를 마친 뒤.
우리 길드는 병사들을 이끌고 이동을 개시했다.
그나마 우리가 안정화한 군부대 근처와 달리 조금만 멀리 나가도 괴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짧은 거리라고 한들 이동이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전투차량들이 완성되고 나서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가지 더 변화가 생겼다.
“왼쪽 회색 건물 3층 창문. 괴물 한 마리가 나오려고 하고 있어요.”
“수혁아.”
“충성.”
팍-
사수조장.
서수혁 상병의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공병들이 제작한 소음기를 착용한 덕에 그 소리는 작았으나.
-크락…….
창문을 기어 나와 부대의 머리를 덮치려던 괴물.
녀석의 머리통이 한 번에 터져 나갔다.
“두 블록 앞 사거리 오른쪽 코너. 좀비들이 뭉쳐 있네요. 숫자가 꽤 많아요.”
“한일아, 분대원들이랑 정리하고 와라.”
“다녀오겠습니다.”
진군 경로의 옆구리에 위치해 부대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던 좀비 무리.
녀석들은 본대에 접근하기도 전에 전사들에 의해 토벌되었다.
“저기 정면에…….”
“여기서는 우회하는 게…….”
“저쪽 길은 막혔…….”
계속해서 이어지는 브리핑.
남들과는 다른 시야를 통해 전장을 관찰하는 병사.
정수아.
정령과 시야를 공유하는 정령사였다.
‘안 그래도 강력한 특성이었지.’
투명하게 몸을 감추고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정령과 시야를 공유한다는 특성.
한계가 있다면 정령사인 정수아 본인의 능력이었으나.
길드 스킬로 제공되는 액세서리 아이템, 군번줄.
리자드의 가죽으로 만든 이상아의 군복.
박씨 할아버지와 공병들이 제작한 수제 무기.
거기에 내 요리까지.
평범한 각성자들은 우리 부대에 합류하는 순간 능력이 두 배는 뻥튀기 된다고 봐도 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
“굉장해요……. 이만큼 능력을 썼는데도 눈에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이전에는 내 요리를 통해 얻은 [예민한 청각]에 의존해야만 했던 정찰.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어디까지나 보조.
그녀의 정령이 정찰기가 되어 하늘에서 아군의 위협을 알려 주었다.
전투의 안정성은 이전과 비교도 안 되게 늘어난 셈.
덕분에.
“저기, 저 공사 현장이에요.”
우리의 목적지.
던전이 위치한 지하철역에, 별다른 피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줄이야…….”
“아아……. 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이에요.”
그녀의 능력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애초에 군부대와 역의 위치가 그렇게 멀지 않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운이 따라 줬네.”
“운이 전부는 아닐 거다.”
민재 형이 말했다.
“철로는 전통적으로 군대의 이동에 쓰였으니까 말이지.”
“호오.”
“기본적으로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역이 맞겠지만. 부지 선정에는 근처 군부대의 위치도 영향을 줬을 거다. 역과 부대가 멀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란 거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철로는 군대를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길.
특히 우리가 자리 잡은 탄약대대는 근처 일대의 탄약 보급을 책임지는 부대.
유사시에 빠른 보급을 가능하게 하는 역의 위치 선정에 영향을 준 것이겠지.
뭐.
우리 입장에선 덕분에 피해 없이 이동할 수 있었던 셈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역에 도착한 우리는 공사 현장 안쪽으로 진입했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던 중.
서수혁 상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뭐가?”
“공사 현장인 만큼 공사에 참가한 인부들의 좀비, 혹은 시체 같은 게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습니까. [예민한 청각]에 걸리는 좀비의 소리도 없고.”
“어…… 듣고 보니…….”
“멸망의 날은 주말이기도 했으니, 공사를 쉬었던 건가? 모르겠군요.”
음.
아무튼 이것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좀비의 습격이 없는 만큼 공사 현장에 진입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그렇게 그 중심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예요.”
이곳이 바로.
던전의 입구.
“계단이라.”
“역시 전투차량 같은 건 못 끌고 들어가겠네요.”
“어쩔 수 없지. 공병들은 밖에서 전투차량들 지키면서 대기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지상에 몇몇 병사들을 배치한 뒤.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지하철 계단으로 진입했다.
지상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조명탄.”
“조명탄 투척!”
병사들이 가져온 조명탄을 던져 어두운 지하 공간을 밝혔다.
붉은빛이 계단에 퍼져 나갔다.
그런데.
조명탄을 던졌음에도 밝아지지 않은 장소가 있었다.
“저곳인 것 같군요.”
계단의 끝.
본격적으로 지하철과 이어지는 경계.
그곳에 조명탄으로도 밝아지지 않는, 정체불명의 어두운 암막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곳에 시선을 집중하자.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계의 존재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습성을 지닙니다.]
[어떤 종족은 모든 환경에서 생존 가능한 적응력을 지니기도 하고, 어떤 종족은 운 좋게도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고향과 유사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어떤 종족은, 새로운 세상의 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법.]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침략 행위.]
[결코 용납하지 마십시오.]
눈앞에 나열되는 던전에 대한 정보.
쓸데없이 긴 내용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던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계의 존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시킨 공간.”
즉.
‘테라포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