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지하철 (2)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계의 존재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습성을 지닙니다.]
[어떤 종족은 모든 환경에서 생존 가능한 적응력을 지니기도 하고, 어떤 종족은 운 좋게도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들의 고향과 유사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어떤 종족은, 새로운 세상의 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법.]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침략 행위.]
[결코 용납하지 마십시오.]
‘이계의 존재’
시스템창은 괴물들을 그렇게 칭했다.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괴물들은 기존의 짐승들이 이상한 실험으로 변하거나 한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서 온 녀석들이라는 것.
‘저것만 해도 꽤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다음에 나오는 문구.
‘환경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테라포밍.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뜯어고쳐, 생존에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
우리가 지금껏 만난 괴물들.
녀석들은 강함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지구의 짐승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분명 지구의 생명체가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구의 환경에 적응해 인간을 사냥하는 괴물들.
그런 게 일반적인 괴물들이라고 생각했다만.
“그렇지 못한 괴물도 있다는 거군요.”
“어쩌면 우리가 본 괴물들이 소수일지도 모르지. 대다수의 괴물은 이쪽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어 나갔을 수도 있어.”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괴물들.
그중에는 적응하지 못한 채 죽어 나간 녀석들도 있겠지만, 지구의 환경을 뜯어고침으로써 생존하려는 녀석들도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개조된 장소가 바로 던전.
‘이 지하철역 전체가 그렇게 개조되었다는 건가.’
세금으로 세워진 지하철역.
완공되었다면 근처 부대의 군인이었던 우리도 이용할 수 있었겠지.
나야 그때는 전역했겠지만.
그런 시설물을 냅다 점거하고.
자기들 입맛대로 개조해서 쓰고 있다니…….
“건방지네.”
지구에 적응하지 못한 괴물들이 개조한 공간.
그 뜻은, 지구의 환경에 적응한 우리에게는 불리한 공간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런 세상에선 리스크가 두렵다고 위축돼선 안 된다.
멸망의 날.
식당에 괴물이 쳐들어왔을 때.
괴물들이 두려워서 도망쳤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과감하게 힘을 키워 나간 자들만이 살아남을 자격을 얻는다.
이 던전 공략 역시 마찬가지.
모든 게임의 던전이 그렇듯, 리스크가 큰 만큼 우리를 성장시켜 줄 장소일 것이라 확신한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부대원들을 뒤로한 채.
나는 누구보다 앞에 서서, 검은 장벽 안으로 발을 옮겼다.
이 괴물 녀석들에게 자신들이 불법 점거한 장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 주기 위해.
스르륵-
검은 암막은 단순한 그림자에 불과한 듯했다.
무언가에 닿았다는 느낌조차 없이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던전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던전에 진입하였습니다!]
[일반 던전 – 검은 모래 유충의 산란지]
[특유의 식성과 습성으로 인해 해충으로 유명한 검은 모래 유충의 산란지입니다.]
[전 우주에 퍼져있는 개체 수와 달리, 검은 모래 벌레의 산란에는 복잡한 환경적 요인이 갖춰져야만 합니다.]
[이들의 어미는 자식들의 산란을 위해 영역을 자신의 고향처럼 꾸미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간종에게 친화적이지 못한 환경입니다.]
[모든 스탯이 소폭 감소합니다.]
“커허.”
급격하게 변화한 환경.
중력이나 기압의 차이 때문일까.
약간의 고통과 함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 또한 지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인지.
숨쉬기가 조금 버거워졌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건조한 열기까지.
몸이 적응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한 충격을 이겨 낸 뒤.
힘겹게 감았던 눈을 뜨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사막, 인가?”
본래라면 공사 중인 지하철 플랫폼이 있어야 할 장소.
그곳을 메우고 있는 것은.
어두운 공동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어두운 모래사막이었다.
* * *
가장 앞장서 진입한 나를 시작으로.
내 뒤를 따라오던 길드원들 역시 던전으로 진입했다.
“커헉.”
“뭐, 뭐야. 숨이.”
“몸이 무거워…….”
“다들 앉아서 몸이 적응되길 기다려. 조금만 참으면 익숙해질 거다.”
급격한 환경 변화는 각성자들의 몸에도 부담을 가했다.
그래도 다들 인간을 초월한 단계라서일까.
조금만 기다리면 몸이 적응해 꽤 버틸 만해진다.
슬쩍 팔을 흔들어보았다.
살짝 삐걱거리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음. 적응이 돼도 움직이기 어려운 건 변함없네.’
우리가 살던 지구와는 환경 자체가 조금 다르단 거겠지.
[인간종에게 친화적이지 못한 환경입니다.]
[모든 스탯이 소폭 감소합니다.]
저 문구에 의하면 이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디버프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버프라.
적들의 피어 계열 공격으로 인해 받아 본 적은 있다만.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디버프가 걸린 경험은 처음.
역시 태준이 녀석이 공략을 만류했던 이유가 있을 만한 곳이다.
부대원들의 진입을 기다리며 주변 공간을 관찰했다.
‘천장은 그냥 지하철하고 비슷하네.’
붉게 타오르는 조명탄의 빛에만 의지해야 하는 탓에 시야가 좋지는 않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공사 중인 지하철의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다.
문제는 천장이 아닌 땅.
우리 부대원들이 밟고 있는 약간의 땅만이 지하철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너머의 바닥에 슬쩍 손을 집어넣었다.
스르륵…….
쥐었을 때의 감촉도 그렇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는 이것은 일종의 모래 같아 보였다.
우리가 아는 그것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겠지만.
“후우. 신 병장님. 전원 입장 완료했습니다.”
“일단 의준이랑 중수…… 치료사랑 사제한테 부대원들 컨디션 복구부터 서둘러 달라고 하자. 공략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그다음-.”
그 순간.
저 멀리 모래사막 안쪽.
‘무언가 움직였다.’
최근에 스탯이 오른 덕인가.
묘하게 전보다도 예민해진 감각.
그 감각이 경고를 보내 왔다.
“다들.”
“으어어. 예?”
“전투 준비.”
“……!”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병사들도 많았지만.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무기를 들고 몸을 일으키는 녀석들.
슈슈슈슈슉.
무언가.
모래사막을 헤치고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아마도 한두 마리 정도가 아닌 그 이상.
그리고.
-캬야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모래 속에서 거대한 벌레가 튀어 올랐다.
“사격 개시!”
타앙!
서수혁 상병의 함성과 함께 사수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모래 안에서 튀어 올라 아군을 향해 날아들려 하던 괴물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첫 번째 괴물은 시작에 불과했다.
“몰려옵니다!”
“전사조는 후위를 지킨다! 마법사, 사수들은 계속 쏴!”
두꺼운 외골격을 지닌 검은색 벌레 같은 모습의 괴물들.
그런 녀석들이 계속해서 모래 안에서 튀어 나왔다.
그에 대항해 우리 쪽의 원거리 계열 각성자들의 화망이 펼쳐졌다.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총성과 폭발음.
‘미친, 몇 마리나 있는 거야.’
먹잇감을 발견한 메뚜기떼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시야를 가득 메우며 덤벼드는 괴물들은 파도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막을 수 있다.’
디펜스 게임의 후반부를 연상시키는 모습.
몰려드는 적의 숫자는 엄청나지만, 그걸 정리하는 이쪽의 화력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샤아아아악……!
그런 식의 소모전이 어느 정도 지속되자.
괴물들도 우리의 화망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몰려오지 않게 되었다.
“후욱.”
“뭐야 끝인가?”
“좀 더 와도 되는데.”
숫자는 많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강한 괴물은 아닌 듯.
마법사들과 사수들은 오히려 경험치 이벤트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뒤를 돌아 던전 깊은 곳으로 도망가기 시작하는 괴물들.
“놓칠 수 없지. 쫓아가겠습니다!”
“뭐?”
괴물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광일이 녀석이 외쳤다.
얌전히 보내주기보단 추격해서 정리하겠다는 듯.
광기를 어느 정도 해방시킨 전광일 상병이 괴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어, 어엇?”
바닥을 박차고 뛰쳐나가 모래 위에 선 녀석.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기세 좋게 괴물을 사냥하러 달려 나가기는커녕.
묘하게 몸을 허우적거리는 모습.
“크으윽. 날 막지 마라……!”
자기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몸을 휘적거리는 녀석.
그리고.
녀석의 몸이 조금씩 모래의 안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날뛸수록 점점 더 가라앉는 속도가 빨라졌으나.
광기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린 녀석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몸을 흔들어 댔다.
“전광일! 움직이지 마!”
“시, 신 병장님. 윽.”
그 와중에 내 목소리에는 반응하는 것인지 움직임을 멈춘 녀석.
하지만 이미 몸이 반쯤은 바닥에 처박힌 상태였다.
“끄, 끄으윽.”
모래에 파묻힌 전광일 상병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신체 능력은 부대에서도 최고 수준.
그런 녀석이 고통에 신음을 내뱉을 정도라니.
“밧줄 가져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병사 한 명이 가져온 밧줄을 급하게 광일이 녀석에게 던졌다.
밧줄을 붙잡은 녀석을 부대원 전원이 힘을 합쳐 끌어 올렸다.
“허, 허억.”
“전광일, 괜찮냐.”
“괘,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된 녀석이 말했다.
“늪 같은 곳에 빠지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줘 봐도, 붙잡을 곳도 밟을 곳도 없으니 도저히 빠져나올 방법이…….”
“고통을 느끼던데.”
“움직일수록 모래 속으로 더 파묻히고, 파묻힐수록 모래가 몸을 압박해 오더군요. 마치 살아 있는 괴물처럼……. 솔직히 버티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으음.”
광일이 녀석의 신체 능력은 가히 인간 전차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한들.
붙잡을 곳 없이 무너지는 모래 속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슬쩍 고개를 돌려 모래를 바라봤다.
이 현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유사로군.”
사막의 개미지옥.
이 사막이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보통 유사는 저렇게 깊지 않잖아요? 게다가 바로 앞에 멀쩡한 땅이 있는데.”
“보통 유사가 아니란 거겠지.”
던전이란 건 괴물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환경으로 테라포밍한 공간.
저 사막 전체가 유사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묘한 마력 같은 게 느껴지는군.”
마법사들의 조장.
이민재 병장이 사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모래 전체에 미세한 마력이 퍼져있다. 저것들이 모래를 유사로 만들고 있는 거겠지.”
저 안에서 뛰쳐나오는 괴물들은 상대할 만하다.
이쪽이 화망을 전개하면 접근하기도 전에 갈아 버릴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이래서야.”
“우리도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겠는데요.”
혹시나 해서 던전 입구를 통해 탈출해 보려 했으나.
[한번 입장한 던전은 공략이 완료될 때까지 탈출할 수 없습니다.]
들어올 때는 그림자에 불과했던 암막에 물리력이 생겨 있었다.
중도 이탈은 불가능이란 건가.
괴물들이 묘하게 약하다 싶을 때 눈치채야 했다.
태준이 녀석의 점괘는 이 던전의 난도가 꽤 높다는 듯 말했지.
그에 반해 약해 빠진 괴물들.
던전의 난도를 높인 건 괴물이 아니었던 거다.
이곳의 환경.
그 자체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방법을 떠올려 보자.”
조장들을 중심으로 부대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밖에 있는 공병들한테 부탁해서 사막을 건널 만한 장비를 가져와 달라고 하는 건 어때요?”
“얼마나 깊을지 모르는데, 그만한 자재들이 있을까요?”
“이상아 조장도 공방에서 활동하니, 자재들의 양 같은 건 알지 않나? 어때?”
“그야…… 그 정도는 없죠.”
이상아의 의견.
기각.
“마법사들을 이용해 물을 뿌리고, 그 위에 빙결 마법을 건다면 길을 만들 수는 있을 거다.”
“현실성은 있지만, 중간에 마법사들의 마력이 고갈되기라도 한다면.”
“다 같이 죽겠지.”
이민재의 의견도 안타깝게 기각.
그 외에도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이거다 싶은 내용은 없는 것 같았다.
잠깐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슬쩍 몸을 일으켜 구석으로 이동했다.
뭐라 뭐라 떠들며 의견을 나누는 조장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모래 안쪽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찾았다.’
내가 원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방금 광일이 녀석을 구할 때 썼던 밧줄을 주운 뒤.
거기에 식칼을 묶었다.
그리고.
파악!
사막 안쪽에 있는 그것을 향해 식칼을 던졌다.
식칼이 꽂히는 소리.
나는 그 밧줄을 끌어당겼다.
갑각을 뒤집어쓴 곤충 같은 생김새.
물고기와 바퀴벌레를 반반 섞어 놓은 듯한 외견에 입 안에는 톱날 같은 살벌한 이빨이 달려 있었다.
[식재료 감별]
[검은 모래 벌레 유충]
도저히 맛있을 수가 없어 보이는 외형이긴 하다만.
……뭐.
어떻게 요리하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