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65화 (65/227)

65화 지하철 (3)

[하급 요리 비법 - ‘검은 모래 유충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검은 모래 유충 손질법]

[온갖 물체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섭취, 분해하는 해충. 검은 모래의 유충.]

검은 모래는 생활 환경을 사막화하는 습성 탓에 많은 세계에서 해충으로 분류되지만, 의외로 뛰어난 맛으로 인해 선호하는 마니아들도 존재한다.]

[손질을 위해서는 우선 목 부근을 찔러 숨통을 끊고 피를 빼낸 뒤 갑각을 분리하고-.]

[완벽히 퇴화되어 시각기관으로써의 기능을 잃은 눈알은 오로지 요리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식재료로써, 손질할 때는 가장 주의를 기울여 상처 없이 분리해야-.]

[요리사의 눈]을 발동.

머릿속에 들어온 손질법에 따라 [검은 모래 벌레 유충]을 손질했다.

‘처음엔 가볍게.’

아예 자리를 깔고 앉은 뒤.

프라이팬에 손질한 살점을 올리고 살짝 굽는다.

가장 간단한 조리법.

[하급 요리사의 건성으로 만든 검은 모래 유충 구이]

[체력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외골격(열화)’를 획득합니다.]

간단하게 만든 만큼 완성물이 썩 대단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 부분이야 의도한 거니까 상관없고.

중요한 것은 이걸로 발동되는 효과.

그게 던전 공략에 도움이 되냐, 아니냐인데.

“외골격이라.”

바퀴벌레 같은 외형인 만큼.

이 녀석으로 요리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특성은 그 외골격이라는 뜻.

“꽝이네.”

뭐 상황 따라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겠지.

당장 우리가 전투력이 모자란 건 아니니까.

파악을 마친 나는 완성된 구이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다지 유의미하지는 않은 수준의 버프가 몸 안에 도는 것이 느껴졌다.

‘음?’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털어 넣은 요리였다

몸 안에 도는 버프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나.

입 안에 담긴 고기.

거기서 느껴지는 것이 하나.

‘이거. 새우 맛이 나는데?’

구운 살에서 나는 맛.

영락없는, 새우의 그것이었다.

……바퀴벌레랑 새우가 같은 조상을 지닌다고 했나?

자체적으로 소금 간이 된 듯한 묘한 짠맛을 제외하면 매우 유사한 맛이 났다.

특히 탱글거리는 식감 쪽이.

‘음. 그렇다면.’

나는 본격적인 요리 준비에 들어가기로 했다.

얌전히 앉아서 회의를 듣던 이들 중 화염 마법사 한 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홍수야. 여기 불 좀 피워 주라.”

“아. 요리하시려는 겁니까?”

“어. 가스버너 화력으로는 좀 모자랄 것 같네.”

화염 마법사에게 부탁해 바닥에 불을 피운 뒤.

그 주위에 적당한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렸다.

그리고 가방을 연 뒤.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비장의 재료 하나를 그 안에 부었다.

[혼재된 마력의 동물성 기름]

몬스터들의 지방으로 만든 기름.

여러 몬스터를 섞은 탓인지 이 자체로 발동하는 효과는 없지만, 이걸 통해 만든 요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름이다.

식어서 고체화돼 있던 기름이 열기에 녹아 식용유로 변해 갔다.

그 뒤에는 곧바로 재료의 준비에 착수했다.

‘검은 모래 벌레 유충’의 살점.

그리고 가장 맛있는 부위라는 눈알.

그 둘을 섞어서 비벼 줬다.

눈알이 터져 나오며 소스가 되어 살점과 비벼졌다.

‘좀 징그럽기 한데.’

뭐.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거든.

조물조물.

재료를 잘 섞어 준 뒤.

박씨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중식도, [검정 중식]을 꺼내 든다.

그리고.

다다다다다다다…….

섞어준 재료를 다져 줬다.

잘게 다져진 재료들을 적당한 양으로 나누어 소분한 뒤.

부대에서 가져온 보급품을 쌓아 놓은 장소로 간 나는 필요한 물건을 찾았다.

‘분명 챙겨 왔을 텐데…… 아!’

그 안에서 꺼내든 물건은.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식빵]

마트에서 얻은 밀가루 등을 이용.

부대원들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 짬짬이 요리책을 보며 만들어 둔 식빵이다.

부대원들의 전투식량이 육포이다 보니 그냥 먹기 심심할까 봐 샌드위치로라도 제공해 줄 생각에 가져온 물건.

이 자체로도 음식으로써 쓸 만하지만.

이번엔 또 다른 식재료로 활약해 줄 예정이다.

식빵을 사 등분 한 뒤.

미리 소분해 놓은 재료들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제 기름만 확인하면 끝인가.

“홍수야, 기름 온도 어느 정도인 것 같냐?”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음?”

불을 피워 주고 있던 화염 마법사에게 물었다.

그 직업대로 화염에 관련된 일에 특화된 녀석들이라 온도에 관한 것도 본래라면 자세하게 알 수 있을 텐데.

“기압의 차이 때문인지…… 화력이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아서요. 의식한 것보다 불이 좀 강하게 나오네요.”

“아아. 그럴 수 있겠네.”

산소 농도도 중력도 바깥과는 다른 공간.

화력 조절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니.

화염 마법사임에도 기름 온도를 가늠하기 힘든 모양.

그렇다면.

“직접 알아보지 뭐.”

“예?”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기름 솥.

그 안에 검지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쏙.

“오. 이 정도면 적당하네.”

“우, 우아악!?”

그때.

내가 요리하는 걸 지켜보던 몇몇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깜짝이야……. 무슨 일이야?”

“아니, 신 병장님이야말로 뭐 하시는 겁니까!?”

“응?”

뭐 하는 거냐니.

“요리를 해야 하는데 온도계가 없으니까, 손가락으로 온도 체크를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일입니까?”

“아. 뭘 걱정하는진 알겠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변명했다.

“손은 깨끗하게 씻었거든. 이래 봬도 취사병이야. 위생은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지.”

“그런 걱정이 아닙니다만…….”

그러면서 내 검지손가락을 바라보는 병사들.

아.

위생이 아니라 내 손을 걱정한 건가.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요리사로 각성하며 얻은 특성 [화염 친화].

거기에 최근에 능력치도 많이 오르다 보니.

어지간한 열기는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

요리하기 전에 온도 체크를 몸으로 때운 지도 꽤 됐고.

나야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 거지만.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남들이 보면 놀랄 만한 광경이었나 보네, 이거.

“휴우, 아무렇지 않다니 다행입니다만.”

“놀랄 만한 일은 자제해 주십쇼. 길드장이시니까…… 몸조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큼. 미안하게 됐네.”

어쨌든.

온도는 이 정도면 적당한 듯하니.

준비한 재료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잡아 든 뒤.

기름 솥 안에 투입해 주었다.

보글보글.

기름 속에서 튀겨지는 재료들.

재료들이 조금씩 갈색으로 변했다 싶을 때.

한 번 전체적으로 꺼내 준 뒤.

온도를 조금 식힌 후, 다시 한번 기름 속에 넣어 줬다.

총 두 번의 튀김 과정을 거치고 나자.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검은 모래 멘보샤.]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섭취 시, 대지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섭취 시, 물리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요리가 완성되었다.

“오. 멘보샤입니까.”

“그래. 맛있겠지?”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를 넣고 튀겨서 만드는 요리.

괴물의 고기에서 새우 맛이 난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요리다.

마침 재료도 있겠다 한번 시도해 본 건데.

으음.

생각보다 때깔이 괜찮네.

“저 괴물을 재료로 썼다고 하면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맛있어 보이지 않냐.”

“전 상관 없이 잘 먹을 자신 있습니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완성된 요리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바퀴벌레를 닮은 괴물로 만든 요리.

저걸 먹느냐 마냐로 의견이 오가는 것 같은데.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습.

난 어이가 없어져서 말했다.

“이거. 내가 먹으려고 만든 건데.”

“……예?”

물론 이유는 있다.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펼친 부대원들의 화망.

그 화력이 워낙 대단했다 보니.

“괴물들 사체 대부분이 정상적인 형태가 아니더라고. 멀쩡한 건 이거 하나 정도?”

병사들 줄 양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걸 자기들이 먹네 마네로 싸우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그거 오늘 식사 아니었습니까?”

“맞긴 한데, 내 식사지. 너희들은 전투식량 있잖냐. 그거 먹어.”

“아니, 무슨 음식 고문도 아니고…….”

“누가 보면 굶긴 줄 알겠다.”

내 새로운 요리를 어지간히 기대한 것일까.

병사들의 절망감 섞인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전투식량도 최대한 열과 성의를 다해서 맛있게 만든 건데.

계속해서 시선이 느껴지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최대한 그 시선을 무시한 채.

완성된 요리를 입 안에 옮겨 넣었다.

파사삭.

바삭하게 튀긴 빵을 씹자마자 기름 섞인 육즙이 튀어나왔다.

그 안쪽에는 탱글탱글한 고기가 씹혔다.

겉바속촉.

환상적인 식감.

씹으면 씹을수록 기름과 육즙이 뒤섞여 더 깊은 맛을 냈다.

“오. 내가 만든 거지만, 이거 진짜 맛있네.”

“아, 악랄한……!”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라고 이 인원들 사이에서 혼자 요리해 먹는 걸 즐길 정도로 인성이 바닥인 건 아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식사거든.

[음식을 섭취하였습니다.]

[‘절대 미각’의 효과를 발동하시겠습니까?]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본 나는 망설임 없이 중얼거렸다.

‘발동한다.’

[스킬 - ‘절대 미각’이 발동합니다.]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미각.]

[요리에 숨어있는 맛을 느끼는 것은 물론 특정한 맛에 집중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최근에 얻은 스킬.

[절대 미각].

남에게 버프를 주는 것이나, 요리 재료를 파악하는 것 등이 중점인 다른 요리 스킬들과 달리.

이건 나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스킬이다.

이 스킬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효과 1 (패시브) - 자신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긍정적으로 크게 상승합니다.]

나 자신에 한해, 내가 먹는 요리의 성능을 극대화해주는 능력.

쉽게 말해 버프 효율 증가다.

능력치 물약에도 효과가 적용된 덕분에 쏠쏠한 성장을 이뤘지.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저런 첫 번째 효과도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강력한 능력.

두 번째 효과는 바로 이것.

[효과 2 (액티브) - 본인에 한해, 요리에 담긴 작은 [특징]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 발동한 효과는 이 두 번째 효과다.

스킬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자, 곧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창.

[주의!]

[해당 효과를 사용할 시, ‘절대 미각’ 스킬로 인한 효과를 제외한 모든 버프 효과가 제거됩니다.]

[요리가 가진 기존의 효과가 모두 취소됩니다.]

[새로운 효과가 적용됩니다.]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하세요.]

[하급 치악력 상승]

[하급 전투력 상승]

[외골격]

[흑사의 방어 갑각]

[검은 모래의 기운]

.

.

.

눈앞에 나열되는 특성들.

그 설명을 하나하나 읽은 뒤.

‘찾았다.’

내가 원하던 특성의 이름을 선택했다.

[요리의 효과가 선택한 특성으로 대체됩니다.]

나는 내가 만든 멘보샤의 효과를 다시금 떠올렸다.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검은 모래 멘보샤.]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섭취 시, 대지 속성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섭취 시, 물리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이랬던 요리의 효과.

준수하긴 하다만.

지금 필요한 능력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단 말이지.

그렇기에.

내게 적용된 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적용중인 버프]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검은 모래 멘보샤.]

[특성 - ‘검은 모래의 기운’을 획득합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킨 뒤.

병사들을 지나 발걸음을 옮겼다.

“에휴, 우리도 전투식량이나 먹어야지.”

“‘전투식량이나’라고 하기엔, 이것도 엄청 맛있지 않냐.”

“그렇긴 해.”

“어? 신 병장님? 어디 가십니까?”

전투식량을 꺼내 식사를 준비하던 병사들이, 몸을 일으킨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어?”

“신영준 병장님?”

“군단장님! 멈추십쇼!”

몇몇 병사들이 나를 부르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계속해서 걸어가는 나를 병사들이 만류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전광일 상병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던 저 사막의 유사.

그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니까.

“이런 미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병사들이 소리치며 일어났다.

“저, 정신 계열 공격인가?”

“신 병장님이 미치셨다! 잡아!”

“이상한 걸 혼자 드시더라니!”

나를 붙잡기 위해 몸을 날리는 병사들.

하지만 늦었다.

내 발이 모래사막 위에 올라갔다.

광일이 녀석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압사시키려 들었던 기괴한 사막.

그러나.

“신 병장니…… 어?”

“……뭐야?”

“안 빠지시는데?”

유사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라는 병사들의 예상과 달리.

내 몸은.

사막 위에 더없이 편하게 서 있는 상태였다.

[검은 모래의 기운]

[활동 영역 일대를 유사로 만드는 종족 검은 모래 벌레들만이 가지는 특별한 특성입니다.]

[몸에서 특수한 기운이 방출됩니다.]

[이 기운을 품은 개체는 검은 모래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슬쩍 사막 위로 발을 굴려보았다.

사르륵 흩어지는 모래의 느낌.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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