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68화 (68/227)

68화 마을 (2)

부대로 복귀한 뒤.

나와 조장들은 탄약대대의 한 건물에 앉아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부대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도.

“뭐 하는 사람들이야?”

“그게. 던전 공략을 위해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공격인가 했는데, 그러진 않더군요. 대신 저희 부대 주변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더니, 저렇게 정착해 버린 겁니다.”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병사.

처음에는 무슨 문제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부대원을 늘려야 하는 우리다.

생존자들이 찾아온다면 좋은 일 아닐까.

“그게 그렇지가 않더군요.”

“무슨 일인데 그래?”

“부대 근처에 정착은 했습니다만…… 저희 부대에 합류는 거절하고 있습니다.”

같이 보고를 듣고 있던 민재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꿀만 빨고 싶다는 거로군.”

부대 근처에 정착했으나 합류는 거절하는 이들.

그들의 의도야 뻔하다.

지금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전이다.

그리고 이 근처는 우리 병사들이 순찰을 돌며 괴물이나 좀비들의 씨를 말려놓았다.

정착하기에는 최고의 땅.

“하지만 우리 부대에 합류하는 건 또 위험하니, 주위에 정착해서 그 안전만 누리고 싶다는 거다.”

다만.

그 결정도 내게는 조금 의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만난 생존자들은 모두 공포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근처에서 패악질을 부리던 탈영병 녀석들과 우리를 착각한 결과.

그런데.

지금 저렇게 우리 근처에 정착을 시도한다는 건.

“우리가 정상적인 부대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나 보군.”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수아는 그녀가 교류하던 그룹에 우리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그 그룹들을 중심으로 우리 부대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거겠지.

약탈자로 변하지 않은 정상적인 군부대가 남아 있다는 소문이.

“쫓아냅시다.”

그때.

얘기를 듣고 있던 서수혁 상병이 단호하게 말했다.

“쫒아내자니?”

“부대원들을 늘리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저런 인간들을 가만히 방치하면 부대에 합류하지 않고도 안전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존자가 늘어날 겁니다.”

“흠.”

“우리 입장에선 그들을 마냥 무시하기도 힘드니…….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 줘야 할 테고요. 짐만 늘어나는 셈입니다. 합류하려는 이들만 두고 나머지는 저희 영역에서 쫓아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조금 매정하긴 하다만.

수혁의 녀석의 말이 크게 틀린 건 아니지.

하지만, 글쎄.

“흠.”

“망설이실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재촉하는 수혁이 녀석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뭐. 쫓아낼 것까지 있나?”

“무슨 말씀을……!”

“오히려, 나쁘지 않아.”

우리 근처에 정착하려는 생존자들을 내쫓는다고?

미쳤냐.

그런 아까운 짓을 왜 해?

* * *

그로부터 며칠 뒤.

주변에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존자들.

“철욱이라고 하오.”

“김정숙이에요.”

그들을 부대로 초청했다.

근처에 살게 된 이웃인데.

일단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하지 않겠어.

“안녕하십니까. 423대대의 대대장 대리를 맡은 김현석 중위라고 합니다.”

물론 그들을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나지만.

우리 측에서 대화의 대표로 나선 것은 김 중위였다.

허우대도 멀쩡하고.

말빨도 괜찮고.

본격적으로 그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군인의 표본쯤으로 여긴다.

그야말로 첫인상 깡패.

정작 부대에서는 업무는 못 하고 욕심만 많다고 욕이란 욕은 다 들었지만.

‘바지사장으로 이만한 인재가 없거든.’

그냥 내가 나설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부여한 것을 제외하면 내 공식 지위는 취사병 병장.

영 믿음이 가지 않는 지위다.

“전시로 취급하면 나는 하사로 진급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전시에는, 능력을 인정받은 병사들이 특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유일한 간부인 김 중위도 살아 있고 하니.

공식적으로, 내 직위가 하사가 돼도 이상할 건 없겠지.

하지만 뭐랄까.

평범한 병사에서, 부사관으로 진급을 해 버리는 순간.

‘안 그래도 무너진 일상에서. 더욱더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차피 중요한 건 병장이냐 하사냐 아니라, 길드의 군단장이라는 직위니까.

하사로의 진급은 거절하고 넘어갔다.

거기에 최근에 느낀 바로는.

내 첫인상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 같기도 해서.

‘대외적인 대대장은 김 중위가 맡아 줘야겠어.’

사실 다른 이유는 부가적인 거고.

그래야 내 귀찮은 일이 하나라도 줄어들 것 같거든.

아무튼.

김 중위는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예민한 청각(열화)]이 활성화된 상태.

기본적인 대화는 김 중위가 진행하되.

그 방향은 내가 주도할 예정이었다.

“김현석 중위…….”

“편하게 김 중위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럼 김 중위님.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자신의 이름을 철욱이라 밝힌 남자였다.

꽤 덩치가 있는 중년 남성.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군인들은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소. 살아남은 군인들이라 봐야 부대를 버리고 도망친 탈영병들이 몇 명 있는 정도라고 말이지.”

“생존자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 군부대의 이름은 423대대 같은 게 아니었거든. 당신들 진짜 군인 맞소?”

그렇게 묻는 남자의 얼굴에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 근처에서 살던 사람인가?

부대명이 다르단 걸 눈치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런 의심을 품고 용케도 부대 근처에 자리를 잡으셨군요.”

“이런 세상이잖소. 선택지가 많지 않았지.”

“질문에는 확실히 답변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상위 부대와의 연락도 끊기고. 대대장님도 사망하긴 했습니다만…… 저희는 저희를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그 말에 어느 정도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으나.

질문을 꺼냈던 철욱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부대에 원래 있던 군인들은 아니지 않소? 이 부대 병사들이 입던 군복은 그런 검은색이 아니었는데.”

“맞습니다. 저희 부대의 막사는 다른 곳에 있죠.”

“그럼…… 이 부대에 있던 군인들은 어떻게 된 거요?”

“저희가 여기에 도착했을 땐 괴물들에게 부대 전체가 점거된 상태였습니다. 군인들도 이미…….”

“……그런가. 그렇게 됐나 보군.”

김 중위의 대답을 듣고 깊은 침음성을 흘리는 철욱.

이 근처에서 살았다고 하더니.

탄약대대에 아는 사람이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저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에는 김정숙이라는 이름의 여자

나이가 꽤 있어 보이고, 성격은 드세 보였다.

“여러분들이 정말 스스로를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진작에 민간인 보호에 나섰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몇 달이 지났는데 왜 이제 와서…….”

“저희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정이라니,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군대가 나서지 못할 사정이란 게 뭔데요?”

군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셈이니.

생존자들의 입장에서는 탓하고 싶어질 만도 하다만.

“다른 군부대가 전멸한 것과 같은 사정입니다. 괴물들이 저희 막사를 습격해 왔죠.”

“…….”

“평범한 괴물보다 훨씬 강한 녀석들이었습니다. 그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부대원의 절반 이상이 사망. 지금은 제가 대대장 대리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 말고 다른 간부들은?”

“저를 제외한 간부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한 번은 괴물들에 의해, 다음은…….”

말 끝을 흐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김 중위.

“저희 손으로였죠.”

“당신들 손으로라니……. 하극상이라도 일으켰다는 건가요?”

“정숙 아줌마, 그 얘기가 아닌 것 같소.”

“네?”

철욱은 조금 진중한 표정으로 김 중위를 바라보았다.

“좀비가 된 걸 말하는 거로군.”

“예.”

“아. 아아. 그건…… 죄송해요.”

그제야, 죽은 간부들이 좀비로 일어난 사실을 얘기한 것임을 깨달은 듯.

조금 미안해하는 정숙.

“말하기 싫은 기억이었을 텐데. 끄집어낸 점은 미안하게 됐소.”

“아닙니다. 이미 지난 일인걸요.”

대화의 분위기가 조금 숙연하게 변했다.

적들의 공격에 맞서 치열하게 농성하는 부대.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대대장마저 사망.

좀비가 되어 부활한 대대장을 직접 죽여야 했던 부대원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상당히 극적인 이야기다.

‘뭐, 그런 스토리란 거지.’

반 정도는 사실이지만.

나머지 반은 교묘하게 부풀려져 있었다.

대대장님이나 간부분들이 돌아가신 건 맞지만.

부대가 아닌 관사에서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가 겪은 전투는 ‘최고 지휘관조차 목숨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된다.

김 중위가 이런 식으로 말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겪어야 했던 군인들을 향해

‘시민들은 안 구하고 뭐 했냐?’고 따지기는 어려우니까.

거짓말은 안 하면서도 교묘하게 본인에게 유리하게 부풀려진 이야기.

김 중위가 병사들에게 욕먹은 이유기도 했다만.

지금은 꽤 유용했다.

“최근에야 막사를 떠나 이 근처에 도착한 뒤, 괴물들에게 점거당한 군부대를 탈환했죠.”

“다른 부대의 군인들이 여기 자리 잡은 건 그런 사정이었나…….”

“저희 사정은 이 정도면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만.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자기소개는 이제 끝났고.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최근에 저희 부대 근처에 자리 잡으셨던데.”

“그, 그게 뭐가 어때서요.”

“……우리가 어디에 자리를 잡든, 그건 자유 아니오? 군인들이 남의 거처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않나.”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것치곤 꽤 찔린 듯한 태도의 두 사람.

“차라리 부대에 합류하신다면 저희로서는 환영입니다만.”

“그 얘기는 저번에 다른 병사들에게도 들었어요.”

“말이 합류지, 병사로 징용되는 게 아닌가.”

김정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혼자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았겠죠.”

“그렇다면…….”

“하지만. 저희 그룹에게는 무리예요.”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녀의 그룹원들.

어린아이나 노인의 비중이 높았다.

“우리 그룹에는 절 제외하면 싸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없는걸요. 병사가 돼서 싸운다니…… 우리 그룹원들한테는 무리예요.”

인원만 보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남았나 싶은 그룹이긴 하다.

하지만 글쎄.

‘각성자의 능력에는 나이도 성별도 관계없어.’

박씨 할아버지가 대표적인 예시다.

장성한 손녀딸들이 있을 정도의 나이.

하지만 박씨 할아버지는 각성을 거친 뒤 먼저 각성한 공병들에게 ‘노야’ 소리를 듣는 부대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인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각성.

그 과정만 거친다면 그녀의 그룹원들도 훌륭한 병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각성자들을 말 그대로 양산하고 있단 것도 알 수 없을 테고.

자신의 보호하에 있는 이들을 군인으로 만든다는 선택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거겠지.

“그쪽도 사정이 좋지는 않겠죠. 우리를 보호해 달라든가, 식량을 나눠 달라든가, 그런 거까진 바라지 않을게요. 하지만 주변에 정착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피해는 끼치지 않도록 할게요.”

“우리 그룹도 마찬가지요.”

글쎄.

나도 지상에 내려온 뒤 나름대로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지상의 자원은 한정된 것.

생존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에 근처에 다른 그룹이 돌아다니는 것을 꺼린다던가.

나름 자원이 풍족한 우리한테는 별 상관없는 얘기긴 하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만든 안전구역에 숟가락만 얹는 건 안 되지.

나는 김 중위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김 중위가 내 말을 그대로 받아 말했다.

“부대 근처에 정착하시는 건 문제 없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고맙…….”

“대신, 약간의 거래를 하죠.”

방긋 웃으며 대답하던 생존자 둘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거래라니.”

“어떤 거래를 말하는 거죠?”

“뭐든 좋습니다. 포인트, 식량, 기름 같은 것도 좋죠. 약간의 대가만 제공해 주신다면, 저희는 여러분들을 보호할 겁니다.”

“……말이 좋아서 거래지. 세금, 아니, 보호세 걷겠다는 말 아닌가.”

“군인들이 아니라 깡패였군요!”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모르셨습니까? 군대라는 거, 원래 세금으로 돌아가는 단체입니다.”

“윽.”

두 사람의 표정이 급격하게 찡그려졌다.

정상적인 군대가 남아 있다는 말에 도박하는 심정으로 찾아온 이들.

그 군대가 보호세를 요구하고 있으니.

배신당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

너무 압박한 것 같기도 하니.

이쯤에서 좀 풀어 주도록 할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무슨 의미죠?”

“사실, 여러분들이 이 거래를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여러분들을 지켜 드리긴 하겠죠.”

“……?”

“저희 입장에서도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걸로 족하십니까?”

이 녀석이 무슨 얘기를 하냐는 표정의 두 사람.

나는 그들에게 내가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를 알려 주기로 했다.

“저희를 제외한 부대는 대부분 전멸한 듯하니. 저희 부대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부대의 세력을 키워 나갈겁니다. 언젠가 저희 부대만으로도 대규모 군사 작전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죠. 그리고 그렇게 세력을 키워 나가다 보면. 두 분 외에도 저희 근처에 정착하고자 하는 생존자들이 늘어날 겁니다.”

“그야 그렇겠죠?”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한 이들이 점차 한 장소에 모이다 보면, 뭐가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거 답답하군. 하고자 하는 말이 뭐요.”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

서수혁 상병이 낸 ‘저들을 내쫓자’라는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들을 수용하려고 한 이유이다.

“저희끼리 살아남아 봐야, 결국 망가진 세상 속에 홀로 남은 군부대가 돼 버리겠죠.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군요.”

“그 말뜻은.”

“저희는, 인간들의 사회를 재건할 생각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 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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