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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70화 (70/227)

70화 대규모 생존자 그룹

북쪽에 모이고 있다는 대규모 생존자 그룹.

그들과 접촉해 보자는 의사를 밝혔을 때.

부대원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농부 각성자도 근처에 자리 잡았겠다, 저희만으로 자급자족도 가능할 텐데. 굳이……?”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최소 조건만이 충족된 것뿐.

저 군내같이 괴물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근처에 있는 시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거점도 언제 괴물이 침공해 와 파괴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애초에 군대라는 건 한 부대만으로는 그렇게까지 강력하지 못한 법이니.’

현대 군의 강함은 군부대 하나의 힘에서 나오던 것이 아니다.

여러 부대가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협력해 가면서 구축한 강함.

다른 군부대가 전멸한 지금.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인간 동맹을 만들 수가 있다면.

나쁠 건 없잖냐.

“솔직히 처음 그쪽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너무 조건이 좋은 것 같아서 의심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존자들을 받아들이는 조건도 이런 세상에서는 꽤 파격적이잖아? 결국 직접 만나 봐야겠다 싶더라고.”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력은 충분히 데리고 가셔야 해요?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부대의 관리는 민재 형과 이상아 조장에게 맡기기로 한 뒤.

나와 함께 이동할 병사들을 구성하기로 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신 병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전사조장 전광일 상병.

사수조장 서수혁 상병.

그 외에도 전투조별로 레벨 순으로 뽑아서 3인.

“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죠.”

거기에 시야 확보용 드론 정수아까지.

우리 부대의 최고 정예들.

다 합쳐서 1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지만.

게임에서는 레벨이 깡패라고.

‘부대 전력의 3분의 1 정도가 여기 있다고 봐도 되겠네.’

어지간히 강한 괴물이 아니고서야.

좀비들 정도는 가볍게 정리하며 지나갈 수 있을 전력이었다.

“대규모 생존자 그룹의 위치요?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어요.”

“그쪽으로 안내를 맡겨도 되려나?”

“물론이죠. 꽤 유명한 소문이기도 하고.”

길 안내는 정령안을 가진 정수아가 맡기로 했다.

공병들이 개조한 전투차량에 탑승한 우리는 곧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소음을 최소한 차량이라곤 하나.

그건 멀리서 소리를 듣고 접근하는 괴물들을 줄여 줄 뿐.

기본적으로 교전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측으로.”

“예? 그러면 오히려 돌아가는 길 아닙니까?”

“가끔은 돌아가는 게 더 빠른 길이 되기도 하거든요. 우측으로.”

하지만.

정령안을 통해 교전을 최소화하며 이동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녀가 지시한 길로 이동하자.

저 멀리서 원래의 직선 경로상에 위치한 거대한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암만 봐도 사기적인 능력이란 말이야.’

최근에 확보한 지하철에 저 능력까지.

잘만 활용하면 좀 더 먼 도시로 진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뭐, 그것도 이곳의 점령전이 끝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게 북쪽으로 어느 정도 이동하자.

“소문으로는 이 근처 어딘가일 텐데요…….”

정수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슬슬 도착한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좀비나 괴물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

우리가 탄약대대 인근을 주기적으로 정찰하며 괴물들을 줄여 온 것처럼.

이들도 주변의 치안을 정리하고 있다는 거다.

“소문 자체가 헛소문일 경우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음?”

그때.

저 멀리에 한 인간들 무리가 보였다.

“저 사람들은…….”

“네? 아. 평범한 생존자들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문이 많이 돈 곳이다 보니, 근처에 저런 그룹이 몇 군데 있긴 하더라구요.”

“잠깐 정지.”

정수아는 굳이 보고할 일도 아닌 것 같아 말하지 않은 것 같다만.

저 그룹.

나한텐 꽤 익숙한 모습이란 말이지.

차량을 정지시킨 나는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접근했다.

생존자 그룹은 접근하는 나를 보고 경계하는 듯했으나.

“그 군복. 당신들은…….”

내가 어느 정도 다가가자.

내 얼굴을 보고는 크게 놀라며 다가오는 한 남자.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군요.”

“그때 그 군인들이로군!”

과거.

부대의 생존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주변의 괴물들을 있는 대로 사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생존자 그룹 하나와 조우했던 적이 있었다.

괴물한테 습격받고 있는 걸 도와줬더니 탈영병 약탈자로 오해해서 꽤 곤란했지.

‘나중에 어떻게든 오해는 풀렸지만. 대규모 생존자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이동한다고 했지.’

생각해 보면.

북쪽의 대규모 그룹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은 것도 이들을 통해서였다.

그나저나.

그때부터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대규모 그룹에 합류하러 간다고 한지 꽤 됐는데. 이제야 도착하신 겁니까?”

“설마. 이미 그들하고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 봤소.”

“그러면 이미 그 그룹에 소속되신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남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도착한 지는 꽤 됐는데. 그쪽도 무작정 오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 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아.”

“믿을 만한 이들인지 확인을 거친 뒤에야 합류를 받아 준다고 해서 말이지. 그때까지 잠시 주변에서 대기 중인 거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그룹이 몇 곳이 더 있지.”

하긴.

이상아 조장이 우리 그룹에 찾아왔을 때.

우리도 그 안에 범죄자가 섞여 있었을 줄은 몰랐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무작정 문을 열었다간 누가 섞여 들어올지 모르는 일.

나름대로 이들도 확인 작업을 거치고 있단 거겠지.

“아무래도 그 작업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소.”

“그러면 이 주위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건데…… 손해 아닙니까?”

기껏 소문을 따라 찾아왔음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주변에서 늘어지고 있는 셈.

그 시간 동안 소모되는 식량만 해도 상당할 텐데.

“손해라니? 설마!”

오히려 호쾌하게 웃는 남자.

“이 주변은 저들이 정리를 어느 정도 해 놓아서 괴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거든. 원래 무기도 충분하다고 했고. 생존자들을 받아들이면서 각성자도 많아졌을 테니. 그 힘으로 청소해 둔 거지.”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식량 같은 건 어떻게 합니까.”

“그게 대단하다는 거지. 잠깐 기다려 보시오.”

그는 그룹의 안쪽으로 이동하는가 싶더니.

가방 하나를 가지고 와 내게 그 내용물을 보여 줬다.

“이건.”

“저들이 우리에게 제공해 준 식량이오. 합류 의사를 밝힌 그룹들에는 모두 제공해 주는 것 같더군.”

맙소사.

길드에 이미 가입한 이들이라며 모를까.

최종적으로 합류를 하게 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이들한테도 식량을 나눠 준다니.

‘……우리라도 그건 좀 많이 아까울 것 같은데?’

정부의 벙커를 털었다는 소문이 사실인 걸까.

어지간히 여유가 넘치는 게 아니고서야 상상하기 힘든 일.

“나도 믿기진 않았지만, 그게 사실이라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도 버틸 만했지.”

자신도 그랬다며 웃는 남자.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협력할 수 있는 인간 동맹을 찾기 위해 온 곳이다.

동맹 세력의 내실이 튼튼하다면야 우리야 좋지.

“뭐 그것도 오늘까지지만.”

“예? 오늘까지라는 건…….”

“아까 기다리고 있는 그룹들이 꽤 있다고 하지 않았소. 사실. 우리 그룹의 차례가 바로 코 앞이거든. 바로 오늘 밤에 합류하게 될 예정이지.”

“오…….”

“그러고 보니 그때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아직 못 갚았구려.”

“은혜요?”

“까먹으셨나? 그때 분명히 말했잖소. 목숨을 살려 준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다고!”

그러고 보니.

이 그룹과 처음 만난 것은 이들이 괴물에게 습격당했을 때였다.

어차피 각성자들을 늘리기 위해 주변의 괴물을 사냥하고 있던 때라.

별생각 없이 도움을 줬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떠날 때, ‘이 은혜는 확실히 갚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때는 저희도 사정이 있어서. 괴물을 처치해야 했거든요.”

“에이, 그래도 한두 명도 아니고 우리 그룹 전체를 살려 준 셈인데. 그냥 넘어갈 수야 있나. 어디 보자.”

사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 어떻소.”

“뭘 말입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 그룹은 오늘 저쪽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될 예정이란 말이지. 괜찮다면 그때 당신들에 대한 얘기를 전해 주겠소.”

우리 얘기를?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그쪽도 여기 그룹과 합류하려는 것 아니오?”

“아. 뭐 비슷합니다.”

정확히는 합류가 아니라 동맹 권유지만.

“그럴 것 같았지! 근데 말했다시피 근처의 생존자들이 이쪽으로 많이 모이고 있어서 말이지. 저 대규모 그룹의 인간을 만나려고만 하는데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오. 우리를 보면 알겠지만 가입하는 데는 더 시간이 걸려. 다만. 모든 그룹이 똑같은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거든.”

“무슨 의미입니까?”

“뭐. 무기를 가지고 있다거나. 그룹 내에 각성자가 많다거나…… 아무튼 저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은 조금 더 빨리 만나준다는 것 같소. 이런 세상이니까. 저들도 인재는 고프다는 거지.”

“아.”

“아쉽게도 우리 그룹은 그다지 능력이 없어서 대기가 좀 길어졌지만 말이오.”

능력이 없다라.

나는 눈앞의 사내를 보고 특성을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신선도 - 최상]

[각성자 : 박철곤]

[직업 : 하급 검방 전사 Lv. 12]

‘오?’

레벨이 무려 12.

특성이나 스탯도 꽤 고르게 성장한 상태로 보였다.

‘우리 부대면 몰라도.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레벨 10 이상을 본 적이 드문데.’

레벨이 10을 넘어 최하급에서 하급 전사로 전직까지 마친 남자.

레벨로만 따지면 우리 부대에서도 최소 중~상위권.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확실히 고레벨에 속할 것이다.

이만한 인간이 능력이 없다고 미뤄질 정도라니.

“저쪽 그룹은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음? 무슨 소리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자세한 직업이나 레벨을 묻는 것이 금기라고 했지.

나야 별생각 없이 [식재료 감별]로 남의 정보를 엿보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남들한테는 꽤 실례로 여겨질 일인 셈이다.

서로의 레벨을 알 수 없으니.

그냥 각성자가 1명뿐인 그룹으로 취급돼 버린 건가.

“큼.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됐지만, 당신들은 군인이잖소? 군복을 보니 특수부대 출신인 것 같고.”

리자드 가죽으로 만든 군복은 평범한 군복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검은색과 회색 패턴에 묘한 질감이 도는 군복.

모르는 사람이 보면 특수부대로 생각할 만한 디자인이긴 하지.

“특수부대 출신들이라면 각성자가 아니어도 대단한 인재들이지. 게다가 당신들 중에는 각성자도 꽤 있지 않소. 당장 당신도, 그때 그 괴물을 찌른 모습을 보니 검사 계열인 것 같은데…… 아니오?”

“비슷한 쪽이긴 합니다.”

“역시. 내가 그 소식을 전하면 당장 오늘내일 중으로 만날 수도 있을 거요. 그만한 능력자를 내칠 만한 이들은 없을 테니까. 거기에 우리 그룹의 목숨을 구해 줬다는 점까지 전하면 인성 문제 같은 것도 합격일 거야. 어쩌면 바로 합류를 받아 줄지도 모르는 일이지.”

물론 우리 목적은 저들 길드에 가입하는 게 아닌 동맹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 대화를 위해 저들과 접촉하는데에도 꽤 시간이 걸린다는 듯하니.

이 남자가 도와주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는 셈.

나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 맡겨 두시오. 물론 이걸로 은혜를 다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군.”

그렇게 말한 사내는 우리에게 약도 하나를 그려 주고 말했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시오. 우리가 원래 지내던 건물인데. 이 주변은 저 대규모 그룹이 치안정리를 해놓은 덕에 괴물도 없고. 여긴 우리가 어느 정도 청소를 해 놔서 며칠 지내는 데에는 불만이 없을 거요.”

“거처까지 정해 주시다니. 고맙네요.”

“감사는 우리가 하는 게 맞지.”

허허 웃으며 말하는 남자.

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 가 보겠소.”

“잘되시길 빌겠습니다.”

“하하. 나중에 보도록 하지.”

사내와 그의 그룹원들은 대규모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떠나갔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는데요?”

“좋은 일은 베풀고 볼 일이란 거지.”

솔직히.

저 대형 그룹을 믿어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만.

‘만약 약탈자 같은 놈들이라면. 대기 중인 사람들한테도 식량을 보급할 이유는 없겠지.’

한 번만 믿어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무상으로 식량을 제공해 준 이들.

……애초에 식량이 중요하지 않은 이들이 아니고서야.

나름대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란 뜻일 테니.

* * *

“박철곤 씨?”

“내가 박철곤이오.”

북쪽의 대형 그룹.

아니.

[강원도 생존자 연합]이라는 길드.

그 길드와의 접선 장소에 도착한 철곤을 누군가가 불렀다.

창백한 얼굴에 키가 큰 사내였다.

“확인 절차가 끝났습니다. 철곤 씨도 과거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구성원들도 평범한 이들인 것 같더군요.”

“그 말은……?”

“합격입니다. 저희 길드에 합류하시게 된 걸 환영합니다.”

“오오……!”

철곤은 내심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자기야 그룹원들을 믿고 있지만, 그들 중에 문제가 되는 이가 있으면 길드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철곤이었다.

“저를 따라오시죠.”

“어디로 가게 되는 거요?”

“저희 대표님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길드의 사내가 철곤에게 말했다.

철곤은 기쁜 마음에 그를 따라 이동하던 중.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담당관 씨? 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신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이제는 가족이 될 사이 아닙니까.”

“허허. 그런가? 아무튼.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알던 사람을 만났는데 말이오.”

멈칫.

철곤을 데리고 이동하던 담당관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알던 사람이라니요?”

“아,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고. 멸망의 날 이후에 알게 된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오늘 저희하고 합류할 예정이라는 건 전했습니까?”

“어어? 일단은 그렇소.”

“하아…….”

담당관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매만졌다.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한 태도.

그 기색을 눈치챈 철곤은 영문을 몰라 조금 당황했지만.

이왕 말을 꺼낸 것.

용건까지 전달하기로 했다.

“실은. 그 사람들한테 부탁받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오.”

“뭡니까.”

“그 사람들도 이쪽에 합류를 원하는 것 같소. 위치는 내가 알고 있으니, 한번 만나봐 줄 수는 없겠소?”

“……아, 뭐야. 그런 거였습니까.”

살짝 화난 것처럼 보이던 담당관의 표정이 풀렸다.

“죄송합니다만, 철곤 씨도 아시다시피 순서가 많이 밀려서요.”

“일단 들어보쇼. 그 사람들, 무려 특수부대원들이라오.”

“예?”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

“……특수부대라니. 전직이 아니라 현직 말입니까?”

“진짜 군인들이란 말이지. 총도 가지고 있고. 오늘은 군용 차량을 타고 온 것을 마주쳤소.”

“호오.”

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철곤의 말을 듣기 시작하자.

철곤은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담당관님도 말했다시피, 기다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한 번 얘기만 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리잖소. 그 시간 걸리는 게 아까워서 돌아간 생존자들도 꽤 있단 말이지.”

“그건 그렇지요.”

“이 사람들은 인성도 좋고. 능력도 확실하오. 내가 보증하지. 그러니 내 소개를 받았다 하고, 어떻게 순서를 좀 앞당겨 줄 수는 없을는지…….”

“좋습니다.”

“오오, 고맙소!”

“뭘요.”

창백한 얼굴의 담당관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저희가 고마운걸요. 얼마나 많이 베풀어 주시는 건지.”

“응?”

“아닙니다. 저희와 함께하길 원하신다고 하셨죠?”

“그, 그렇지.”

“그렇다면. 이 안으로.”

대화에 집중하던 철곤은 그제서야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눈앞에 있는 방문.

이 안에.

이들이 말한 길드.

[강원도 생존자 연합]의 대표가 있다는 뜻일 터.

박철곤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저기, 여기 불이 꺼져 있소만.”

문 안에 있는 것은 어둠뿐.

담당관에게 말을 걸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새 어딜 가 버린 건가?’

어쩌면 대표라는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일 수도 있다.

앉아서 기다릴까 싶어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찾으려던 순간.

반짝.

‘……?’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무언가.

정체 모를 아름다운 형체가 그를 향해 덮쳐 왔다.

“무슨!”

갑작스러운 습격이었으나.

철곤은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레벨이 10이 넘는 전사 계열의 각성자.

그 반응 속도는, 어지간한 괴물의 기습 정도는 가볍게 뿌리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콰직.

철곤의 검이 휘둘러지는 것보다.

그 형체가 그의 목에 이빨을 꽂아 넣는 것이 더 빨랐다.

“커…… 커어어억…….”

철곤의 얼굴에서 점차 혈색이 사라져 가고.

투욱.

결국.

바닥에 쓰러지는 철곤.

“흠? 이 남자. 꽤 쓸 만하구나.”

그를 덮쳤던 형체가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한 것은 모습을 감췄던 담당관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전사직 각성자라고 했니? 지금까지 봤던 녀석들 중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이야. 너하고 비슷하거나 약간 못한 정도가 아닐까 싶구나.”

“그렇군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 뭐든 겉으로만 봐서는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그때.

누군가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입맛에 맞으셨다면 다행이군요.”

목에 뚫린 이빨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남자.

“넌 좋은 권속이 될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박철곤이었다.

“여왕님. 한 가지 전달드릴 게 있습니다.”

“응? 무슨 일이지? 하던 대로 권속이 될 만한 녀석들은 데려오고, 쓸모없는 노인이나 아이는 너희가 적당히 먹어 버리면…….”

“그게 아니오라…… 이 남자가 가족이 되기 전에 한 말이 있습니다.”

감독관은 철곤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여왕’이 말했다.

“이 세계에서 전사 계급이었던 이들이라. 흥미롭구나.”

“그러면.”

“그런 녀석들이라면 어중이떠중이들보다 훌륭한 권속이 될 테니……. 다른 생존자들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되겠지. 가급적 빠르게 데리고 오도록 하렴.”

“알겠습니다.”

잠시 고개를 조아린 감독관이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박철곤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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