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뱀파이어 (2)
제73 탄약대대.
그 한구석에 있는 작은 건물 안에서.
“날 생포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거다.”
의자에 묶인 뱀파이어 녀석이 말했다.
안개화를 해도 밖에서 밀폐된 건물을 탈출할 수는 없다는 걸 확인한바.
작은 건물 하나를 포로실로 바꾼 뒤 녀석을 가둬 놓은 것.
굳이 시간을 끌 일도 아니고 하니.
난 곧바로 놈의 심문에 들어가기로 했다.
“네 녀석들이 뭘 원하든. 내게서 얻어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줏대 없는 네놈들 하등종과 달리 우리들의 여왕님을 향한 충성은 결코 굽혀지지 않거든.”
“그러시구나.”
물론.
야만스럽게 폭력을 구사할 생각은 없다.
그런 건 좀 무섭잖아.
[중급 요리사의 핏기가 남은 솔직한 감정의 리자드 스테이크]
“또, 또 나한테 뭘 먹일 셈이냐!”
“맛있다니까. 한번 잡숴 봐.”
“그으으윽……!”
정말 겉만 살짝 익혀 핏기가 그대로 남은 리자드 고기 스테이크.
그걸 몇 조각 썰어 녀석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그 맛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 걸까.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보도록…….”
금세 ‘솔직해’져 버린 녀석.
나는 녀석에게 궁금한 것들을 모조리 물어보기로 했다.
“너희들. 직업이나 종족명이 뱀파이어라고 되어 있던데. 내가 아는 그 흡혈귀를 칭하는 뱀파이어가 맞나?”
“이야기 속의 뱀파이어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흡혈귀라는 의미에서는 그러하다…….”
“너희는 북쪽의 대규모 생존자 그룹에 섞여들어 간 건가? 그게 아니면…….”
“그 그룹 자체가, 우리 뱀파이어들이 만든 것이다.”
혹시 북쪽 그룹 자체는 정상적이고.
소수의 뱀파이어들이 섞여들어 간 게 아닌가 싶었지만.
역시 그건 아닌가 보네.
“생존자들 사이에 도는 소문도 너희가 낸 거겠지.”
“맞다. 인간을 초월한 우리에게 기존의 식량은 의미가 없어졌으니. 쓸데없는 식량들로 인간들을 유인해 우리의 양식을 수급하고, 동료를 늘려나가는 계획이었지.”
동료를 늘린다라.
“그건 역시. 너희들한테 피를 빨리면 뱀파이어가 된다거나 그런 건가? 박철곤 씨도 너희한테 물린 거고?”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다.”
“뭐?”
“우리의 지배자는 여왕님……. 인간 출신인 우리와는 태생부터가 다른 귀족이시지. 다른 이를 뱀파이어로 만들 수 있는 건 권속을 둘 수 있는 귀족들만의 특권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그분의 권속이고.”
인간 출신이 아닌 귀족.
즉.
‘몬스터군.’
인간을 각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몬스터.
“너희는 그 권속이 된 것에 불만은 없나?”
“불만이라고? 설마!”
내 질문에 유독 큰 반응을 보이는 녀석.
열의에 찬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했다.
“언제 괴물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하며 살던 내게 힘이 주어졌다!”
“……인간임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힘 말이지? 게다가 얘기를 들어 보면 자의로 뱀파이어가 된 것도 아닌 것 같던데.”
“내가 느끼는 것은 여왕님의 은혜에 대한 무한한 감사뿐이다. 나뿐만이 아닌 모든 권속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특별소스]를 사용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권속이란 게 되면 아무래도 정신이 어느 정도 개조되는 모양.
‘인간으로 되돌리는 건…… 힘들 것 같네.’
그 후로도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생존자들을 바로 수용하지 않는 이유? 여왕님이 하루에 권속을 늘릴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 중 권속으로 쓸 만한 이들은 권속화하고, 나머지는 권속들에게 먹이로 줘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래 싸움에 재능이 있던 녀석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너희는 특수부대라고 하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금방 강력한 권속으로 거듭났겠지.”
궁금한 점은 대충 다 알아냈다 생각한 나는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너희의 규모. 약점. 네가 생각했을 때 너희들을 토벌할 때 필요한 정보. 전부 알려 줬으면 하는데.”
“……흡혈을 통해 힘을 키울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흡혈을 하지 못하면 오히려 힘이 줄어든다. 태양 아래에 서는 순간 능력치가 대폭 저하된다. 우리는 힘이 크게 약해지는 수준이지만, 여왕님께서는 큰 고통을 느끼신다는 것 같다.”
약점 부분은 어느 정도 예상하던 내용들.
굳이 밤에 우리를 찾아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본거지는, 북쪽의 거대한 동굴형 벙커다.”
“……벙커라고?”
“그래. 광산을 개조한 것처럼 보이더군. 누가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무기와 식량도 비축되어 있었다. 생존자들 사이에도 소문을 퍼트려 놨을 텐데?”
벙커를 털어서 많은 식량과 무기를 확보했다는 소문.
듣기야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지금 시대의 인간들은 생각보다 의심이 많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남을 속이고 위험에 빠트리는 일 정도는 예사니까. 미끼부터가 거짓이어서야 속는 인간들은 없었을 거다. 실제로 벙커의 내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를 의심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지.”
이 녀석들이 뱀파이어인 시점에서 소문 자체가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하필 그 부분은 진짜였냐.
더 충격적인 것은 그다음 이야기였다.
“규모는…… 뱀파이어로 각성한 자들이 약 300.”
“뭐?”
“여왕님은 하루에 다섯 명의 권속을 늘릴 수 있다. 근처의 생존자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을 때까지 숫자는 계속 늘어나겠지. 벙커 역시 이미 요새화가 완료되었다. ……우리를 공략할 방법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글쎄. 전차라도 끌고 온다면 또 모르겠군.”
“…….”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라고 있자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입을 여는 녀석.
“너희가 죽인 완태 형님은 여왕님이 아끼던 권속 중 하나다. 여왕님이 많이 분노하셨겠지. 권속을 충분히 늘렸다고 판단되는 대로 너희를 토벌하러 올 것이다.”
“흠.”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는다. 지금이라도 굴복하면 혹시 모르지. 여왕님이 너희 역시 권속으로 받아 주실지도.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다면…… 권속에 될 기회조차 없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대충 궁금한 건 다 들은 거 같네. 친절하게 알려 줘서 고맙다.”
심문을 끝낸 건물을 나오며 생각했다.
‘우리 길드 각성자가. 지금 150명이 좀 넘나.’
저쪽은 뱀파이어가 300.
하루에 5명씩 늘어나고.
벙커였던 근거지는 요새화가 완료됐다, 라.
음…….
그건.
못 이기지 않나?
* * *
“뱀파이어라니…….”
“죽은 사람이 좀비가 돼서 일어나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데. 더한 놈들도 있군요.”
나는 심문을 통해 얻은 정보를 부대원들과 공유했다.
“그보다 충격적인 건.”
“그 규모겠군요.”
300의 각성자에, 하루에 다섯씩 추가된다니.
그 얘기를 들은 모두가 아연해졌다.
“이제야 좀 살 만한가 싶었는데. 도저히 여유를 주지 않는군요.”
“신 병장님이 그쪽을 찾아가 보기로 해서 다행인 거지. 부대에서 마냥 천천히 성장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저쪽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긴 힘드니까. 언젠가 충돌했을 테고.”
아마.
지는 쪽은 우리였겠지.
이상아 조장이 광일이 녀석에게 물었다.
“직접 싸워 본 입장에서 어땠어요? 그 뱀파이어들. 숫자가 저렇게 많다는 건 평범한 각성자보단 약한 편이겠죠?”
“으음. 싸울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한 편이라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잠깐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던 광일이가 말했다.
“생존자들 사이에서 만난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녀석들이 더 강할 겁니다.”
“네?”
“우리야 뭐. 길드 스킬에, 장비 아이템 효과까지 전부 받고 있습니다만. 신 병장님 말대로라면 저 녀석들도 흡혈로 능력치를 키우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비슷한 레벨이라고 치면 저희 쪽 병사랑 저쪽 한 명이 동급 정도 아닐까요.”
“……저쪽 숫자가 우리 두 배인데. 그럼 못 이기는 거 아니에요?”
“어. 그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단순히 숫자만 두 배라면 답이 없지는 않다.
내 요리를 어떻게든 활용한다면 전력 차를 메꿀 수도 있겠지.
“문제는 저쪽은 요새화한 벙커에 틀어박혀 있다는 거야. 태양에 약하다고 했다만. 동굴 안에서 농성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심문한 녀석 말로는 전차라도 끌고 가지 않고서야 자기네 방어를 뚫는 건 불가능할 거라더라.”
“전차라니…….”
그때.
광일이 녀석이 순진하게 말했다.
“그거. 반대로 말하면, 전차를 끌고 가면 뚫을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네?”
“저희가 전차를 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른 병사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으나.
“……아니.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이민재 병장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게 무슨.”
“잊었냐.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군부대가 몰려 있는 강원도라는 거.”
“……설마.”
“전차. 구하면 되는 거 아냐?”
* * *
우리는 부대에서 보관하고 있던 군사지도를 펼쳤다.
인제군이야 워낙 넘치는 게 군부대들이라지만.
이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세 곳.
12군단 직할 423 방공대대.
우리 병사들이 근무하던 부대다.
12군수 지원단 제73 탄약대대.
지금 우리가 자리잡은 거점.
그리고.
[12군단 제8 기갑여단 22전차대대]
“우리 길드 이름도 강철 군단이니까. 전차 정도는 있어 줘도 되지 않을까.”
병력은 대대급밖에 안 되지만 말이지.
“군부대 탈환이라니…….”
“우리는 얼마 전까지 좀비한테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최근에야 합류한 생존자 출신 병사들이 아연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탄약대대를 탈환한 전적이 있다.
탄약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괴물들은 부상당한 상태기는 했지만.
우리 병사들도 그때보다 더 강해졌거든.
‘특히. 던전 공략에 성공한 게 크지.’
공략에 모든 부대원들이 폭발적인 레벨 업과 [문을 닫는 자]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칭호의 효과만 해도 모든 스탯의 10% 상승.
새롭게 획득한 집단 스킬 ‘군단의 기운’의 효과로 인해, 더 많은 숫자가 모일수록 더 강해지기까지 한다.
군부대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들은 대체로 평범한 괴물들보다도 강력하다지만.
질 생각은 없다.
“으음. 역시. 안 보이네요.”
“정령안으로 안을 볼 수 없다고?”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정수아의 정령안을 통한 정찰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
“뭔가가 방울이의 접근을 막고 있어요.”
“뭔가라니…….”
“사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에요. 방울이도 만능은 아니거든요. 이능에 특화된 몬스터들은 방울이의 존재를 감지하고, 밀어낼 때가 있었거든요.”
이능에 특화된 존재라.
사실 저 방울이…… 정령만 해도 그렇다.
내가 특성을 통해 관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두려움에 떨던 존재.
‘우리 부대원으로 따지면. 천문관으로 각성한 태준이 녀석도 비슷한 짓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존재가 괴물 중에도 있다는 거겠지.
조금 꺼림칙하긴 하다만.
“심문한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여왕도 우리 부대를 인식하고 있을 거야.”
“으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나 저쪽이나 세력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충돌해야겠지.”
하루에 각성자가 5명씩 늘어나는 저쪽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즉.
빠르게 승부를 걸수록 우리한테 이득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빠르게 전차를 확보해야 한다.’
강철군단의 다음 목적지는 전차대대다.
* * *
정령안은 전차대대 내부를 보지 못했을 뿐.
전차대대로 향하는 길에서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저 건물을 지나면 산 같은 게 있어요.”
“거기가 전차대대가 있는 곳이 맞을 겁니다.”
전차대대 근처에 도착하자.
근처의 병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차대대라.”
“여기도 군부대니까. 꽤 강한 괴물이 자리 잡고 있겠지.”
“그래도 뭐. 지금 우리 전력이면 어지간한 괴물한테는 안 지지 않을까? 저 뱀파이어들처럼 숫자가 엄청 많은 게 아니고서야.”
그 말에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부대원들도 많은 실전을 거치면서 괴물과의 전투에는 슬슬 이골이 나기 시작했으니.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그렇게 시야를 가리고 있던 건물을 지나.
저 멀리, 큰 산이 하나 보였다.
‘저기에 전차대대가 있다는 건가.’
차량에서 내린 우리는 본격적인 공략을 위해 진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은 충분했다.
어떤 괴물이 나올지 몰라도.
우리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며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반짝.
‘……?’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게 뭔지 눈치채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포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폭격이었다.
콰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