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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76화 (76/227)

76화 전차대대 (4)

“후욱…… 후욱.”

녀석의 감각을 증가시키는 건 내가 노린 것이긴 하다만.

문제는 효과가 너무 좋았다는 거다.

‘[예민한 청각(열화)] 때와 비슷한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해진 감각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라는 것.

이유도 짐작이 간다.

‘내 요리의 효과가 너무 강해졌어.’

정수아에게 코스 요리를 해 줬을 때와 비교해도 그렇다.

[절대 미각] 특성을 얻기 전이라 스탯도 지금보다 낮았고.

레벨도 10레벨대로 요리 숙련 특성 역시 [하급 요리 숙련]에 머물러 있었지.

하지만 스탯 뻥튀기와 중급 요리 숙련에 도달한 지금.

내 요리의 효과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졌다는 거다.

부대의 각성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레벨의 강자인 서수혁 상병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후욱…….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심호흡으로 달래던 녀석이 겨우 눈을 뜨고 말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되는군요.”

“할 수 있겠냐? 정 힘들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할 수 있겠냐고 물으신 겁니까, 지금?”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이만한 요리를 먹어 놓고, 못 할 리가 없잖습니까.”

* * *

눈깔 괴물은, 전차대대의 중심부 근처에 있다.

하지만 거리가 먼 이곳에서는 아무리 높은 건물에 올라간다 한들, 전차대대 내부를 보기는 힘들다.

그러니.

녀석을 저격 포인트까지 끌어낼 필요가 있겠지.

[셰프 : 작전 개시.]

“전원-! 진군하라-!!!”

[지휘의 함성 - ‘진군 명령’이 울려 퍼집니다.]

작전 개시 명령에 따라, 김 중위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쿠웅……

군단의 군홧발이 대지를 흔들었다.

* * *

나는 저격 포인트에 앉아있는 서수혁에게 말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때?”

“우리 군단. 꽤 위용이 있군요.”

그 말대로.

건물의 아래에서는.

200여 명에 달하는 부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전쟁을 위해 개조된 전투차량들까지.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군단의 기운]이, 부대원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모습.

매번 저 사이에 껴 있어서 몰랐지.

우리 부대는 꽤 믿음직스럽게 성장한 상태였다.

눈깔 괴물 녀석을 저격 가능한 지점까지 끌어내기 위한 작전은 간단하다.

‘눈깔 괴물이 내뿜는 주변을 조종하는 기운. 그걸 넓게 퍼트리기 위해 녀석은 하늘로 올라가야 해.’

각성자인 나조차 신체 일부의 지배권을 한순간 빼앗겼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하지만 약점도 없진 않다는 거지.

‘우리가 병력을 진군시켜서 전차대대까지 접근한다면, 녀석도 분명 그 기운을 퍼트리려고 하겠지.’

사실.

내가 녀석과 싸울 때는 그다지 유효한 약점은 아니었다.

내 전투법은 [중급 단도 숙련]을 적극 활용한 근접전.

권총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은 어디까지나 보조에 그치는 수준으로, 하늘로 떠오른 녀석을 제거하기는 힘들었으니.

“후욱.”

하지만.

예민해진 감각을 다스리느라 고생 중인 이 녀석.

서수혁 상병에게는 다르다.

‘그동안 사수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거든.’

탄약대대를 점거한 뒤.

탄약대대에서 노획한 총기들은 공병들에 의해 개조를 거쳐 사수들에게 지급되었다.

소음기를 장착한 총기들이 대표적.

그리고 지금 서수혁 상병이 들고 있는 총 역시 마찬가지였다.

‘K-14.’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

본래도 준수한 성능의 총이었다만.

공병들이 개조한 지금은 엄연한 ‘무기 아이템’.

이번에는 화력을 최대한 온존하기 위해 소음기조차 달지 않았다.

‘평범한 총기들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지.’

그리고 사수들이 쏘는 탄환의 위력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부대 제일 사수인 서수혁.

녀석에게 내 요리로 인한 버프와 공병들이 제작한 장비까지 갖춰진 지금.

상공에 가만히 부유 중인 목표물 따위.

사격 훈련용 표지판이나 다름없겠지.

쿵. 쿵. 쿵.

발을 맞춰 걷기 시작한 병사들의 하나 된 군홧발 소리가 옥상인 이곳까지 들려왔다.

그것을 전차대대에서도 눈치챘다.

퍼버버벙-

“포격, 시작됐습니다!”

거친 포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붉게 빛나는 형체들이 군단 병사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접근 중인 군단을 감지한 전차대대가 요격을 시도한 것.

“지난번에는 저 포격에 얻어맞고 무력하게 후퇴해야 했지.’

물론.

이번엔 아니다.

“마법사, 사수들은 요격 태세로!”

[지휘의 함성 - ‘요격 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김 중위의 명령이 울려퍼지자.

붉은빛의 포탄들에 맞서, 형형색색의 빛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뇌전, 화염, 얼음, 나무, 물…… 다양한 속성의 마법은 물론 무형의 마력 덩어리까지.

군단의 마법사들이 온갖 종류의 마법을 발하기 시작한 것.

콰아앙…….

두 빛이 격돌하자.

“요격 성공입니다!”

대부분의 붉은 빛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진군하며 드물게 요격에 실패한 포탄들도 있었지만.

“전사들은 방어 태세로 아군을 보호하라!”

“충성!”

[지휘의 함성 - ‘방어 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흐읍!”

거대한 방패를 든 전사들이 몸을 날려, 포탄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엄청난 열기와 대인 살상용 파편들은 마력이 담긴 방패를 뚫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대단하군.’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

이것이 적의 공격을 예상한 각성자 부대의 힘.

충분한 준비를 한 우리는 군부대의 포격조차 뚫어 버릴 수 있다는 거다.

그때.

저격을 위해 자세를 잡고 있던 서수혁 상병이 입을 열었다.

“보입니다.”

눈깔 괴물.

녀석들이 군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부유시키기 시작한 것.

“아직 최고점이 아닐 거다.”

“하지만.”

“군단은 문제없이 버티고 있어. 조금만 더 참아.”

“……예.”

예민해진 감각의 영향으로 눈을 뜨고 스코프를 바라보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녀석.

저격수의 자질은 사격 실력뿐만이 아닌 인내심과 체력에 있다고 했던가.

미안하지만 조금 더 버텨 줘야 할 때다.

그렇게 군단원들이 포격을 뚫고 진군하기를 수 분.

“신 병장님. 대대 정문이 열렸습니다.”

전차대대의 정문이 열렸다.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쪽의 눈깔 괴물이 포격만으로는 우리를 저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전차와 보병들을 내보내 우리를 요격하겠다는 거겠지.’

그리고.

보병들을 모조리 내보내기 위해선 곳곳의 초소에 퍼져 대대를 수비 중이던 병사들에게 그 안개와도 같은 기운을 뿌려야 할 터.

즉.

지금이 허공에 떠오른 눈깔 괴물의 위치가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라는 것.

“사격 준비.”

“사격 준비.”

내 명령에 복명복창하며 총을 견착하는 서수혁 상병.

요리의 효과로 인해 예민해진 감각이 주변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았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목표물과의 거리.

서수혁 상병의 [하급 사격 숙련]은 모인 정보를 바탕으로 총알의 낙차를 계산하며 총구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그리고.

“사격 개시!”

“사격 개시!”

타아아아아앙-!

커다란 총성이 울려 퍼지고.

.308 HPBT 탄환이 공기를 가르며 전진했다.

그리고.

수 킬로미터 너머.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탄약대대에서.

[——!!! ———!!!!]

끔찍한 절규 소리가 퍼져 나갔다.

동시에 거대한 마력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뒤.

[당신의 식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그와 함께 병사들을 향해 쏟아지던 포격 소리 또한 잠잠해졌다.

“성공한 겁니까?”

“그래.”

“……하하.”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던 녀석은 총을 대충 내던지고 옥상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말했다.

“신 병장님.”

“어. 하고 싶은 말 있냐?”

“괜한 훈수 안 두기로 해 놓고 미안합니다만, 한 가지만 조언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괜한 훈수 같은 거 언제나 환영이다. 뭔데.”

녀석은 식은땀을 흘리고 거친 호흡을 내쉬는 녀석.

“이만한 버프는, 가급적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온갖 정성은 물론.

최근에 농부가 합류하면서 수급된 각종 식재료.

여러 요리들을 만들어서 내놓는 코스 요리에.

특정인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기에 생긴 효과 증가까지.

현시점의 내가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버프 요리.

“저야 어떻게든 버텨 내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정신력이 조금이라도 약한 녀석이었다면 진작에 기절했을 겁니다.”

그 효과는 확실히 압도적이긴 하다만.

지나치게 강력한 탓에 각성자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반동을 동반하는 것.

‘이만한 반동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나처럼 20레벨 대에는 진입해야 할 확률이 높겠네.’

서수혁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앞으로는 좀 대충 요리하도록 노력해 보마.”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싶긴 합니다만. 예. 뭐, 신 병장님이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녀석은 툭-하고 고개를 떨궜다.

“기절하신 것 같습니다.”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아예 기절해 버린 모양.

“제가 잘 살펴볼 테니, 걱정 마십쇼.”

“부탁한다.”

기절한 녀석을 의무병에게 맡긴 뒤.

나는 우리가 공략하려던 거점.

전차대대를 향해 몸을 옮겼다.

* * *

“신 병장님! 오셨습니까!”

“어. 문제는 없지?”

“예. 신 병장님과 서 상병님이 괴물을 처치해 주신 덕분이죠. 진군할 때가 빡셌지, 안쪽에서는 교전 한 번 없었습니다.”

전차대대 근처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있던 부대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다행히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는 듯.

“전차나 기갑병기들은?”

나는 우리가 전차대대를 공격하고자 한 이유.

우리가 노리던 전차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게. 깊게 찾으러 들어갈 필요도 없더군요.”

“음?”

“따라와 보시면 알 겁니다.”

녀석의 말대로였다.

병사들을 따라 전차대대의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찾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차대대 정문의 위병소 근처.

그곳에 스무 대가 넘는 전차들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이것들이 왜 여기 있냐?”

“저희를 요격하기 위해 나서려던 중이었겠죠.”

아.

딱히 우리 부대 편하라고 여기에 위치한 건 아닐 테니.

“전차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직전에 서수혁 상병님의 저격이 성공한 모양입니다.”

“과연.”

군단 병력을 요격하기 위해 움직이던 전차들.

그 전차들이 눈깔 괴물이 죽자마자 멈춰 선 것이 하필이면 정문 바로 앞이었다는 것.

그런데.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예. 군복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차들의 근처에 군복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차에 걸쳐지다시피 올려져 있는 군복들.

그곳에 다가가 슬쩍 군복 상의를 들추자.

“<군인들이었던 것>이라고 해야겠죠.”

“…….”

그 군복 속에는.

인간의 뼈가 들어 있었다.

“내가 잠입할 때만 해도 인간의 형태였는데.”

“원래 죽은 이들을 그 눈깔 괴물의 마력이 강제로 유지시킨 거겠죠.”

그래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군인들을 봤을 때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있었다만.

저 눈깔 괴물 입장에서 군인들을 조종하는 데 살아 있는 상태일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눈깔 괴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이 남겨지고, 나머지 부위는 천천히 죽어 간 것이겠지.

그 괴물이 제거되자, 녀석이 유지하던 최소한의 기능조차 사라진 유골만이 남은 것이다.

“군번줄은 잘 챙겨 둬라. 옆 부대 아저씨들이지만, 같은 군인들끼리 장례는 치러 줘야지.”

“부대 근처에 정착한 생존자 중에 목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이 가능한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인 전리품 확인이 시작됐다.

“하나, 둘-.”

“셋!”

전차에 달라붙은 공병들이 구령을 외치더니.

팡!

“됐습니다!”

입구의 뚜껑을 따 버렸다.

“솔직히 저희가 건드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으아. 다 좋은데 기름이 거의 오링이네요 이거.”

딱히 전차병 출신은 아니다만.

직업이 [공병]이라서일까.

녀석들이 각성하며 얻은 지식 중에는 전차의 사용법에 관한 것도 있었던 모양.

“이 부분은 이렇게 개조하면…….”

“장갑은 맥의 마력으로 강화하면 된다 치고. 화력을 키우려면 일단…….”

공병들이 각각의 전차에 들어가 전차를 점검하며 개조 방안을 논의했다.

스무 대가 넘는 전차들의 소유권이 ‘군단’에 넘어오게 된 순간이었다.

전차대대를 찾아온 목표는 달성했지만.

전리품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전리품은.

전차대대 중앙 근처.

도로 위에 뜬금없이 흩뿌려져 있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형종 - 게이저]

[신선도 - 중]

군인들을 조종하던 눈알 괴물.

‘게이저’의 사체였다.

죽기 직전에 어지간히 큰 고통을 느낀 것일까.

극한까지 축소된 동공.

그 중심은 서수혁의 총알에 관통되어 있었다.

“눈알처럼 생겼지만, 진짜 눈알은 아니란 건가.”

눈알이 터진 징그러운 장면을 예상했다만.

총알에 뚫린 부분을 제외하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져보니 각막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육류의 식감이 느껴졌다.

이건 좀 신기한걸.

이 녀석은 본체의 전투력은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병사들을 조종해서 접근해 오는 적들을 방어하려 한 것이겠지.

하지만 본체의 전투력과 별개로.

이 녀석이 발휘한 이능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능력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던 바.

이 사체는 분명 쓸모가 있겠지.

그렇게 눈알 괴물 녀석의 사체를 주섬주섬 주워 옮기려 하고 있을 때.

“영준아.”

이민재 상병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목표였던 전차를 손에 넣었군.”

“목표라고 하니까 애매하네. 알잖아? 전차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거.”

“그렇지.”

전차를 노획하고자 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력을 키우기 위함.

전력을 키우고자 한 이유는 하나.

북부에 자리잡은 거대한 적.

‘뱀파이어들을 토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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