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뱀파이어 토벌 (3)
[식재료 감별]
[이형종 - 강철을 먹는 ‘맥’]
[신선도 - 최상]
[우호도 - 상]
[특성 – 광물 지배]
[모든 종류의 광물은 맥에게 있어서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모든 종류의 광물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광물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광물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강철을 먹는 맥.
이 녀석과 조우한 것은 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한 창고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곳에 자리 잡고 철물들을 먹으며 살고 있었지.
부대에 최근에야 합류한 이들이나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
무려 우리 부대가 ‘전투’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괴물이다.
‘지상에 내려오고 만난 괴물들 중 아마 독보적으로 강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강적이라고 할 만한 존재들이 있기는 했다.
탄약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흰거미의 여왕.
약탈자들의 수장이자 식인을 통해 힘을 길렀던 이상식욕자.
하지만 이들은 결국 싸워서 쓰러트릴 수 있었던 반면.
이 녀석은 너무 강한 나머지 전투를 통한 공략은 일찌감치 포기해야만 했지.
‘요리를 먹여서 겨우겨우 무력화시켰지.’
평범한 요리는 애초에 음식물로 보지를 않는 녀석.
덕분에 철판을 기름에 튀겨서 요리한다는 이상한 시도를 하게 됐다.
결과는 여러모로 이득이었지만.
그렇게 생포하게 된 몬스터.
자신의 마력으로 철물을 강화해서 몸을 보호하는 식으로 싸우던 괴물.
적당히 철물의 공급을 제한하면 엄청나게 약해진다는 것을 파악한 공병들이 자재의 강화에 쓰기 위해 적당히 사육하고 있었다만.
‘좀 신경 쓰이더라고.’
맛없는 식사.
그것을 굶어 죽지만 않을 정도의 적은 양으로 제공받는다.
그러면서 생명만 겨우겨우 유지한 채 우리 길드의 자재들을 강화해야만 했던 녀석.
우리 부대를 위한 일이긴 했지만
‘X간의 혐성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단 말이지.’
그래서 생각했다.
어차피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이를 주긴 줘야 하니까.
이왕 주는 거.
맛있게 요리해서 주면 어떨까? 하고.
‘어차피 요리를 완성하면 경험치를 주기도 하니까. 철을 요리해서 주기 시작했지.’
별생각 없이 시작했던 일.
하지만 그 짓을 며칠 정도 반복하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끼잉…….
늘 하던 대로 녀석에게 밥을 주기 위해 문을 연 순간.
털뭉치 같이 생긴 녀석이 내 발에 제 머리를 비비기 시작한 것.
마치 검은색 새끼 고양이 처럼 생긴 외형.
그 모습을 보자, 갓 부대로 전입 왔던 시절 친해졌던 짬타이거 녀석이 생각났다.
그 후로는 맥과 조금씩 친해져 종종 놀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일까.
녀석의 정보를 [식재료 감별(강화)]로 들여다볼 때.
[우호도 - 상]
이런 문구가 같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이것.
“고오오오…….”
두꺼운 철문을 와삭와삭 갉아 먹더니.
기어코 사람 한두 명은 지나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뚫어 버린 녀석.
철을 집어 먹을수록 크기가 커지는가 싶더니.
새끼 고양이 같던 모습에서, 여우 같은 모습으로.
여우 같던 모습에서, 늑대 같은 모습으로 변하더니.
‘호랑이.’
지금은 검은색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귀엽던 목소리도 상당히 두꺼워진 결과.
묘한 위엄이 느껴질 정도.
철물 창고에 있던 시절에는 거대한 곰처럼 생겼었지.
그때 정도의 덩치는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몬스터로서 꽤 강력할 터.
본래라면 주의해야 할 테지만.
“잘했어, 까망아! 형이 집 가면 또 맛있는 거 해 줄게!”
“고오!”
내가 쓰다듬어 주자 기쁜 듯 더 머리를 비벼 오는 착한 녀석.
덩치가 커져도 친한 건 그대로였다.
소화가 다 되면 또 작아지는데, 나름 둘 다 매력이 있더라고.
“까망이라니.”
“안 어울리게 귀여운 이름은 또 뭐랍니까?”
“……예전에 우리 부대 근처에서 활동하던 짬타이거 이름이군.”
“이민재 병장님?”
아연해하는 병사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하는 이민재 병장.
“아, 너희는 모르나? 나하고 영준이가 일병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식당에 자주 놀러 오던 고양이가 있었거든. 언제부턴가 영역을 옮긴 건지. 모습을 보이지 않더군. 그때는 영준이 녀석이 꽤 서운해했지.”
“크흠. 굳이 민망한 얘기를 하나.”
아무튼.
나는 까망이 녀석이 뚫어 준 구멍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꽤 넓은 공간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넓긴 하지만. 전차를 끌고 들어가기엔 무리겠는데.”
이번 전투에서 전차는 포격에만 쓰였지만.
사실 전차의 진정한 효용성은 그 압도적인 물리력에 있다.
방해되는 적들을 죄다 무한궤도로 짓밟아 버리며 적들에게 포격을 날리는 그 단단함.
하지만 이 안으로 전차가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결국 각성자 병사들만으로 안쪽에서 전투를 치러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거슬리는 게 한 가지.
나와 같이 안쪽을 바라보던 민재 형 역시 그 점을 지적했다.
“어둡군.”
“그러네.”
멸망의 날 이후로 한 달도 안 돼서 전기는 모두 끊겼다.
우리 부대 역시 밤이 되면 일찌감치 불 끄고 잠자리에 든다.
그나마 있는 기름으로는 괴물의 습격에 대비한 불침번들의 조명 정도.
이만한 벙커라면 자체적인 전력 생산 수단도 있을 법하긴 하다만.
“뱀파이어들이니.”
“불을 켤 필요도 없다는 거지.”
태양의 아래가 인간의 영역이라면 어둠 속은 저들의 영역.
이대로 들어가는 건 좀 화려한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
그러니.
“밥 먹고 합시다.”
잠시 동굴을 벗어난 우리는 한 차량 근처에 모였다.
기동형 취사 장비…….
즉.
밥차에.
‘평범한 버프 정도로는 답도 없겠지.’
능력치를 조금 올리는 수준으로 해결될 환경도 숫자도 아니니까.
토벌에 필요한 최적의 요리를 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때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재료들도 있거든.
뱀파이어 퇴치라고 하면 뭐.
당연히 왕도를 따라 줘야 하지 않겠냐.
[하급 농부의 정성이 담긴 통마늘]
[미약한 마력이 담겨 있다.]
최근에 부대 근처에 정착한 [농부] 각성자.
그에게 부탁해서 확보한 질 좋은 마늘.
‘크으윽! 그만둬라!’
포로로 잡았던 뱀파이어 녀석에게 들이밀어 봤더니 아주 질색을 하더라고.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떻게든 만들어 봤습니다만.”
내 부탁을 받은 병사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부대의 두 힐러 중 한 명.
군종병이자 [하급 사제] 각성자, 신중수 일병.
그가 내게 물병 하나를 건넸다.
[하급 성수]
[하급 사제의 축복이 밀집된 성수.]
[섭취 시 미세한 체력 회복과 신체 능력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의 존재들이 끔찍하게 싫어할 것입니다.]
성수.
이걸 만들기 위해 신중수 일병은 며칠을 고생해야 했다던가.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한 병 정도 분량이 한계더군요. 제 능력이 모자란 탓에……. 죄송합니다.”
“미안하긴 뭘. 한 병이 어디냐.”
“하지만…….”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하는 신중수 일병.
“저도 부대 생활 꽤 했으니 이제 감이 옵니다. 이걸 그냥 적들한테 부어 버릴 일은 없을 테니. 요리에 쓰려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물 한 병 정도로는 아무리 아껴 봐야 10인분 정도가 한계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성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마늘도. 최대한 빠르게 질 좋은 놈으로 부탁한 덕에 양은 많지 않아.’
이 재료만으로 모든 병사에게 강력한 버프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아. 알겠다. 신영준 병장님이나 전광일 상병님 같은 강자들한테만 버프를 몰아 주시려는 생각이군요.”
“아니. 그걸로는 모자라지.”
“예?”
이왕 먹는 거.
메뉴는 통일하는 게 편하지 않겠냐.
의아해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나는 밥차의 가스 불을 켜고 냄비에 성수를 부었다.
성수가 끓는 동안 스테인리스 팬을 불에 달구고 그 위에 [혼재된 마력의 기름]을 부었다.
‘마늘이 메인이 되는 요리.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나름 취사병끼리 요리해 먹으면서 후임들에게 알음알음 배운 메뉴들이 많다.
나머지는 뭐.
[중급 요리 숙련]을 믿고 대충 이러면 맛있겠다 싶은 조합으로 때려 박으면 되겠지.
그렇게.
한 차례 요리를 거치자.
[코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1. 성스러운 기운의 어니언 갈릭 수프.]
[2. 성스러운 기운의 갈릭버터 검은모래 구리.]
[3. 성스러운 기운의 알리오 올리오.]
[4. …….]
그나마 아는 레시피를 쥐어 짜내서 만든 마늘 요리들.
한국인은 또 마늘을 사랑하는 민족 아니겠는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있는 마늘을 다 때려 박았다.
성수 역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용한 결과.
“메뉴가 많긴 한데.”
“전부 일곱 개군요.”
총 7종의 요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네 요리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일곱 종류 정도로 괜찮겠냐? 나는 당연히 대량 급식을 할 줄 알았다만.”
민재 형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만든 요리들은 모두 자신이 있는 편이긴 하다만.
그래도 나름 급이 존재한다.
1. 특정인을 위해 만든 코스 요리.
2. 코스 요리.
3. 특정인을 위해 만든 요리.
4. 대량 급식.
5. 전투식량.
뭐 이 정도 순서겠지.
하지만 가장 강한 효과를 보여 주는 ‘특정인을 위해 만든 코스 요리’라고 한들.
대량 급식으로 수백 명에게 먹인 요리만큼의 버프 효율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얼마 전의 서수혁의 저격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고서야.
대규모 전투를 앞둔 지금은 대량 급식 쪽이 효율이 좋았겠지.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게 있거든.”
최근에 레벨이 올라 [중급 요리사]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얻게 된 스킬이 하나 있다.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두 마리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인 기적의 일화를 아십니까?]
[이제부터. 당신에게는 기적이 아닌 현실입니다.]
[적은 숫자의 요리로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게 됩니다.]
[요리를 공유하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마력 소모량이 증가합니다.]
적은 요리를 많은 이들에게 먹일 수 있게 된다라.
어떤 형태로 발동하는 스킬인 것일지 감도 안 잡히지만.
효과 자체는 심플하다.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오병이어’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요리 종류 - 코스]
[식수 인원 - 143명]
그러자.
경고음과 함께 추가로 나타나는 메시지.
[주의]
[대상 요리의 질이 너무 높습니다.]
[식수 인원이 너무 많습니다.]
[엄청난 양의 마력 소모가 예상됩니다.]
[스킬을 취소하시겠습니까? Y/N]
엄청난 양의 마력 소모라.
“뭐, 어쩌겠어.”
어차피 나는 전투 인원으로서는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
내가 마력 탈진으로 인해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강력한 버프를 부대원들에게 돌리는 게 낫지.
결심을 내린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이 발동됩니다.]
[질이 높은 코스 요리입니다. 마력 소모가 극대화됩니다.]
[식수 인원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마력 소모가 극대화됩니다.]
‘흡!’
메시지들을 본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맥에서 내려올 때, ‘요리사의 특별소스’를 남발한 결과 마력 탈진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지.
이번에는 그보다도 더한 고통이 예상되는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
뭔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뜨자.
눈앞에 몇 개의 메시지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한 번의 식사에서, 100인 이상의 인원에게 최고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를 제공할 것 (1/1) (달성)]
[조건을 달성함에 따라, 사용자가 지니고 있던 고유 재능이 개화합니다.]
[재능 : 대규모 조리]
어?
* * *
“제기랄…….”
“열등종 따위에게 밀려서 도망치게 되다니.”
벙커의 깊숙한 곳.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뱀파이어들은 분하다는 듯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진정해.”
“맞아.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의 시간이 온다.”
어둠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찾는 이들.
벙커 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체력을 회복하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는 순간 치러질 사냥에 대비하기 위해서.
“강자의 피는 더 많은 힘을 준다고 했으니…….”
“저만한 인간들을 한 번에 사냥한다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질 수 있을 테지.”
“오히려 기대되는군.”
그때였다.
벙커의 저 멀리에서부터.
쿵 쿵 쿵 쿵 쿵.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족의 것은 아니었다.
“설마.”
“그 군인들이 쳐들어온 건가?”
“말도 안 돼.”
핵폭발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벙커.
아무리 전차까지 끌고 왔다고 한들.
그런 벙커의 입구를 부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파괴에 성공했다고 한들.
그런 엄청난 화력에는 그만한 소음이 동반되어야 정상.
“뭘 부수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었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까 저 녀석들. 무슨 특수부대라고 했잖아.”
“……벙커의 문을 밖에서 여는 방법 같은 걸 알고 있던 건가?”
추측이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저 두꺼운 문을 뚫고 적들이 쳐들어왔다는 것.
당황한 뱀파이어들이 술렁거렸으나.
“진정하라. 형제들이여. 오히려 잘된 일이니.”
한 남자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그들 사이에 나타났다.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
뒤에는 그의 보좌를 받는 금발의 여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첫 번째 권속이시여.”
“여왕이시여…….”
그 둘의 존재를 눈치챈 뱀파이어들이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무릎 꿇은 뱀파이어 중 한 명이 첫 번째 권속이라 불린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거라. 우리가 밤을 기다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주변을 보라는 듯.
양팔을 넓게 펼치며 웅변하는 남자.
“어둠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벙커의 어둠은 바깥보다도 깊다. 설마 이곳으로 직접 기어들어 와 줄 줄이야. 어지간히 자신이 넘치는 듯한데…… 그런 걸 보통 오만이라고 부르지.”
남자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열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만한 침략자들을 그냥 둬서 되겠는가! 이 어둠 속에서는 총도, 전차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저 녀석들에게 보여 주자꾸나!”
“오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뱀파이어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직전의 혼란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사기.
그 모습을 보며.
여왕은 생각했다.
‘그나마 이 녀석이 쓸 만해서 다행이로구나.’
벙커의 관리를 담당하던 남자.
국가의 요원인가 뭔가 하는 이들 중에서도 요직에 있었던 이.
그를 통해 여왕은 이 세상의 지식을 익혔다.
지금의 세력을 갖추게 된 전략도 대부분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
[강원도 생존자 연합]이라는 길드의 장을 맡고 있는 것 역시 이 남자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첫 번째 권속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성기사도 공상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했으니. 어둠 속에서 나와 권속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꽤 소란스러웠지만.
이제 금방 정리되겠어.
그리 생각한 여왕은 첫 번째 권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에는 내가 있을 필요도 없겠지?”
“예. 저희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나는 방으로 돌아가야겠구나. 평소였으면 자고 있을 시간인데, 너무 오래 깨어 있었어……. 이곳은 너에게 맡기도록 하마.”
“물론입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남자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하품과 함께 방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멈칫.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인이시여.”
“네놈.”
발걸음을 멈춘 여왕이 뒤를 돌아보자.
의아한 듯 묻는 첫 번째 권속.
그리고.
파악!
여왕의 손이.
그의 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커, 커억…….”
“너. 나에게 거짓말을 했구나.”
여왕의 말에 첫 번째 권속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컥. 무, 무슨 소리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전 언제나 여왕님에게 충성을…….”
“그래? 그렇다면. 저것은 뭐냐.”
그녀의 손이 벙커의 복도 끝을 가리켰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긴 복도.
그 끝에서는.
쿵 쿵 쿵.
군화의 발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성기사도, 항마승병도, 혈귀 사냥꾼도 없다고 한 네놈이. 어디 직접 설명해 보란 말이다!”
“쿨럭…… 그러니까. 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기서 풍기는 저 역겨운 기운!”
복도 끝에서 울려 퍼지는 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복도 끝의 코너에서.
“저 ‘항마의 기운’은…… 성기사들의 그것이 아니더냐!”
“예?”
찬란한 빛이 어둠을 헤치며 벙커를 밝혔다.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게 만드는.
신성한 광휘.
그 속에서.
커다란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군단에 영광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