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80화 (80/227)

80화 뱀파이어 토벌 (4)

[재능 - 대규모 조리]

저 문구를 본 순간.

나는 상태창을 열어 메시지 로그를 거슬러 올라갔다.

본 적이 있는 문구였으니까.

그리고 그게 언제인가 하면.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각성자에게서 고유 재능이 감지되었습니다.]

[재능 : 대규모 조리]

바로 처음 각성했을 때.

“그때 이후로는 뭔가에 영향을 줬다는 메시지도 없어서 아예 까먹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이제 와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메시지를 읽어 보면 아무래도 재능 자체는 내가 타고난 것이지만.

그걸 개화하기에는 조건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조건이라는 게.

[한 번의 식사에서, 100인 이상의 인원에게 최고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를 제공할 것 (1/1) (달성)]

“말이 되냐, 이게?”

군대 밥이 맛이 없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말한다.

재료가 별로라든가.

취사병들의 요리 실력이 별로라든가.

뭐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취사병들 입장에서 나오는 답은 보통 하나로 통일된다.

“2, 300인분의 요리를 3명에서 하는데. 제대로 만들 틈이 어디 있습니까?”

군대에서 식사는 결국 병사들의 영양 보충인바.

무슨 짓을 해도 저만한 양을 소수의 취사병들이 최고의 퀄리티로 만들지는 못하기에.

가장 후 순위로 밀리는 것이 보통 맛이 돼 버리는 것이다.

커다란 솥에다가 재료를 한 번에 때려 박고 볶아 버리는 게 일반적.

심지어 요리사로 각성한 지금도 평상시의 식사는 그런 식으로 만든다.

혼자서 150여 명의 식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안 그러면 답이 없잖냐.

내가 요리사로서 힘을 주고 요리할 때는 소수의 부대원을 위해 요리할 때 정도.

그 경우에는 나름 퀄리티에 자신도 있는 편이다만.

저 조건은 그 소수를 위해 만드는 고퀄리티의 요리.

그걸 한 식사에서 100인 이상에게 제공하라는 것.

취사병은 나 한 명인데.

고급 식당에서나 나올 법한 요리 100인분을 혼자 하라고?

‘미친. 원래라면 평생 가도 달성 못 할 조건이었잖아?’

최근에 새로 얻게 된 스킬.

[오병이어].

이 스킬을 우연히 얻은 게 아니었다면 절대 달성하지 못했겠지.

적은 요리로도 많은 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스킬.

뱀파이어와의 싸움에 대비해서 만든 힘을 팍 준 코스 요리.

그걸 143명에게 한 번에 먹이기 위해 이 스킬을 사용했다.

그게 ‘143명에게 최고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 제공’이라는 행위로 판정된 것이겠지.

다만.

조건이 달성하기 힘든 만큼.

그 조건을 달성하고 얻은 효과는 대단했다.

[개화한 재능 - 대규모 조리]

[각성자 ‘신영준’의 고유 재능입니다.]

[요리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집니다.]

[대규모 식사 요리 시, 품질 저하가 극단적으로 적게 일어납니다.]

[대규모 식사 요리 시, 소모되는 마력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듭니다.]

[대규모 식사 요리를 완성했을 시, 보너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 외에도 대규모 식사에 관련된 대부분의 행위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그 효과 문구 중 내가 특히 놀란 것은 한 단어.

‘시스템이 표현하는 문구 중에서. 극단적이라는 표현은 처음 보는군.’

소폭 상승, 그냥 상승, 대폭 상승, 아주 많이 상승 등.

그 정도까지는 그래도 본 적이 있다만.

극단적이라는 문구는 또 처음.

코스 요리 하나를 143배로 불렸음에도 마력 탈진을 겪지 않은 이유 역시 이 재능의 개화 덕분인 것 같다.

정말 마력 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여 준 거겠지.

무서운 점은…….

‘마력 탈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마력량이 한 번에 반 이상 줄어들었다.’

극단적으로 마력 소모를 줄여 줬음에도 이 정도.

……이거.

재능 개화가 없었으면, 마력 탈진이고 뭐고.

그냥 죽지 않았을까?

‘크흠. 너무 효율만 추구했나.’

하긴.

요리 하나로 143배의 효과를 보려고 했으니.

진짜 잘못하면 대가로 목숨까지 지불해야 할 뻔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게임의 룰을 따르는바.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효과가 뒤따른다.

“식사 맛있게 하십쇼!”

143인의 군단원들.

그들의 앞에 내 정성이 들어간 [코스 요리]가 차려졌다.

마늘과 성수를 위주로 만든 요리.

그 코스 요리가 보여 주는 효과라면 뻔하지.

[코스 요리 - 항마의 빛]

[섭취한 이들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마(魔)에 속하는 존재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큰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눈부셔.”

“이 엄청난 빛은, 대체……!”

병사들의 등에 새하얀 빛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의 후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인원.

거기에.

[군단의 기운]

[같은 기운을 지닌 이들이 일정 이상 모여 있을 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됩니다.]

던전 공략으로 얻은 길드 스킬로 인해 그 빛은 더 강해졌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던 동굴이 찬란한 백색 빛으로 둘러싸였다.

* * *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 빛까지.”

“맹인을 눈 뜨게 했다는 얘기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믿기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의심할 여지가 없군.”

“정수아 씨가 말했던 게 맞았어.”

* * *

찬란한 빛을 등진 군단의 병사들이 벙커 안으로 몰아친다.

“군단에 영광 있으라!!!”

“승리를 위하여!!!”

안쪽의 뱀파이어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전사들이 소리쳤다.

광일이 녀석을 비롯한 전사조의 함성에 벙커가 진동했다.

“크악…….”

“이 빛은 대체 무슨!?”

“당황하지 마라! 숫자는 우리가 우위다!”

어둠 속이라는 이점은 이미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

갑작스러운 빛에 직면한 뱀파이어들이 당황하며 우리 병사들을 맞이했다.

곧, 전투가 시작되었다.

저쪽의 지휘관 같은 남자가 말한 대로.

숫자는 저쪽이 두 배 이상 앞선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저쪽이 수비 측.

벙커의 지형을 잘 모르는 우리와 달리, 벙커 곳곳의 공간을 활용해 가며 우리를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몰아붙여라!”

“박쥐 새끼들. 다 죽여 버려!”

전황은.

압도적으로 우리 측의 우세.

전투 중에 벙커 곳곳의 벽면이 파괴되고.

각종 장치들이 박살 났다.

그리고.

“고오오오……!”

그렇게 박살 난 철과 돌, 각종 자재들이.

까망이의 몸 주위로 몰려들었다.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아진 모습.

항마의 빛을 두른 병사들과 달리, 까망이에게는 내 요리로 인한 버프도 없었지만.

“컥!”

“인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냐 이 괴물은……!”

“방금까지만 해도 평범한 철판이었는데. 뭐가 이렇게 단단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열 마리 이상의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압도하고 있는 녀석.

몰려든 녀석들이 까망이의 장갑을 두들겼지만 흠집조차 잘 나지 않았다.

어쩌다가 장갑 중 하나가 파괴되어도 주변에서 다른 철판을 끌어와 빈공간을 메꾸기까지 하니.

‘진짜 엄청 세네.’

도망치는 적을 굳이 쫓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녀석과 조우한 날이 우리 부대의 제삿날이었을지도.

어찌 됐든.

전황은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

이대로만 간다면 두 배 이상이라는 전력 차도 무색하게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이 박쥐 새끼들아! 인간님의 힘을 봐라!”

“그래? 어디 한번 보여 주거라.”

“억!?”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병사 한 명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크아아아악!”

“성철 아재!?”

병사의 몸이 허공에서 찢겨 나갔다.

그의 피가 뱀파이어들 사이에 뿌려졌다.

성철 아재는 약탈자들한테 포로로 잡혀 있다가 합류해 얼마 전에야 각성한 사내였다.

하지만 우리 길드의 장비와 버프를 모조리 받은 지금은 결코 약하지 않을 텐데.

“쯧. 피 맛이 역하구나.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죽은 병사의 피를 뒤집어쓴 채 걸어 나오는 여자.

금발에 적안.

우연히 이 근처에 있던 외국인…… 같은 건 아닐 테지.

포로로 잡았던 뱀파이어 녀석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의 지배자는 여왕님……. 인간 출신인 우리와는 태생부터가 다른 귀족이시지.]

“신 병장님. 저 녀석. 제가 봤을 땐…….”

“내 생각도 비슷할걸.”

저게 바로 뱀파이어들의 수장.

근처 일대의 생존자들을 집어삼키고 권속으로 삼은 몬스터.

‘……길드에 합류한 병사가 죽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부대에서부터 함께했던 병사는 아니지만.

앞으로 함께하게 된 사람이 죽었다.

부대의 첫 사망자.

가급적 사망자를 만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 게 얼마 전 같은데.

내가 손을 쓴 틈도 없이 죽어 버렸다.

이건 좀.

열받는데?

“광일아.”

“예. 상병 전광일.”

“보스몹 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지?”

“예.”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입에서.

‘그르륵’ 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라아아아악!!!”

쿵!!!

광기를 최대한으로 해방시킨 전광일의 주먹이 뱀파이어 여왕을 향했다.

괜히 보스가 아니란 걸까.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여왕이었지만.

“……역시 전사 계급이라는 건가. 봐 줄 만한 힘이긴 하구나.”

그 공격을 본 여왕이 식은땀을 흘리려 하는 것이 보였다.

직격했다면 분명 치명타였겠지.

“전광일 상병님에게 가세한다!”

“레벨 순으로 붙어!”

자기가 좀 강한 줄 아나 본데.

이미 전황은 우리 쪽에 압도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상황.

“큭……! 가증스러운 성기사들 같으니!”

고작 괴물 한 마리가 가세한다고 어떻게 될 정도가 아니거든.

각 부서에서도 높은 레벨을 자랑하는 정예병들이 전담 마크에 들어가자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녀석.

그렇게 위기에 몰렸을 때.

콱!

녀석의 손길이 부대원 중 한 명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또 한 명이 죽는 건가 했으나.

여왕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묘한 빛을 내며 병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복종하거라.”

“……예.”

“병민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

미친.

전차대대의 눈깔 괴물하고 비슷한 능력인 건가!?

병사를 붙잡은 여왕이 말했다.

“질문에 답하거라. 너희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누구냐?”

여왕의 질문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전광일 상병이었다.

‘광일이를 노리려는 건가!?’

실제로.

여왕을 상대로 엄청난 전투 능력을 보여 주며 치고 있던 녀석.

우리 부대의 최강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전광일 상병을 언급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듯.

“저, 저분이십니다…….”

여왕의 손에 붙잡힌 이병민 이병.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나 같은데?’

뭐야.

왜 나야.

“저 녀석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만……. 설마, 매료가 통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그렇게 보이긴 하겠죠. 하지만, 신 병장님의 힘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음? 더 말해 보거라.”

“신 병장님은 각성을 하기도 전에 식칼 한 자루만으로 괴물을 참살하셨습니다…….”

그건.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전차대대 탈환전 때 흰거미들의 여왕을 마무리한 것도, 약탈자들을 지배하던 살덩어리 괴물을 처리한 것도 신 병장님…….”

“흐음!”

“심지어는 단신으로 던전의 심부로 걸어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보스를 참살하고 돌아오시기도 하셨죠.”

“호오. 그건 대단하군.”

“강자로 소문난 전광일 상병님조차 자기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자주 말할 정도니, 부대의 누구도 이견이 없을 터…….”

“과연.”

저 녀석이 그 정도의 강자였을 줄은 몰랐다는 듯.

“겉보기로는 몰랐는데. 상당히 위대한 전사인 듯하구나.”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왕.

아니.

오해를 하게 된 이유도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면. 저자를 제거하면 너희의 전력은 크게 줄어든다고 봐도 되겠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부대의 전력은 신 병장님의 버프가 7할 이상. 신 병장님이 사라진다면. 우리 부대는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될 겁니다…….”

“하하하하! 과연 그러하구나!”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 주는 건.

그야 고맙긴 한데……!

“좋은 답변이었다.”

팍!

붙잡혔던 병사의 몸이 멀리 내던져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듯하지만.

“네놈만 없어지면, 나머지는 내 권속들만으로 충분히 정리 가능하다는 뜻이렷다.”

문제는 나.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왕.

그녀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그 손가락에 검은 그림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저 녀석이 오해하는-.”

“같이 가자꾸나.”

그녀의 몸 주위를 맴돌던 어두운 기운이 한곳에 뭉쳐,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제기랄!”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하고 몸을 피했으나.

유도성능이라도 있는 건지 뭔지.

나를 계속해서 쫓아 오는 그림자.

“신 병장님!”

“신 병장님을 지켜라!”

병사들이 호들갑을 떨며 나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지만.

아쉽게도 조금 늦었다.

톡.

검은 그림자가 내 몸 끝에 닿은 순간.

훅,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달려들던 병사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 * *

아니.

병사들이 사라진 게 아닌가.

‘사라진 쪽은…… 굳이 따지면 나겠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두운 벙커가 아니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피를 연상 시키는, 새빨간 하늘이 보였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

“죽은 건가.”

여왕의 공격이 몸에 닿자마자 도착한 장소다.

분명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내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하마. 인간아.”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난 한 형체.

여왕이 나를 반기며 말했다.

“영광으로 알거라. 이 공간에 남을 초대한 적은 네가 처음이니.”

아.

제기랄.

‘지옥이 아닌 건 다행이긴 한데.’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당히 귀찮은 상황에 처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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