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뱀파이어 여왕
“신 병장님!”
전광일 상병의 손이 공격을 피해 도망가고 있는 신영준 병장을 향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신 병장의 발끝에 닿은 순간.
슈욱.
“……맙소사.”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다는 듯.
신영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병장님이…….”
“신 병장님이 사라지셨다!”
“저 개자식들이……!”
신영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군단의 병사들 사이에 혼란이 퍼져 나갔다.
길드, [강철 군단]의 군단장.
단순히 길드장 역할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 그들이 수적으로 우위인 뱀파이어들을 압도하게 만들어 준 이 빛.
그것부터가 신영준 병장이 만들어 낸 게 아니던가.
‘군단 전력의 7할’이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었다.
군단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신들린 임기응변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낸 인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군단원이 그에게서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여왕님께서 적들의 수괴를 데리고 가신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 수괴가 저들 전력의 대부분이었다는 것 같은데.”
그렇게 당황한 군단원들과 달리.
뱀파이어들은 오히려 기세가 오르기 시작했다.
“큭큭. 수괴를 잃은 저 녀석들의 전력은 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거군.”
“잘도 형제들을 죽여 줬구나.”
“열등종들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무기를 쥐고 다가오는 뱀파이어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이 새끼들이…….”
신영준 병장이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버프는 요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한번 먹은 요리는 요리사인 신영준이 사라지든 말든 유지된다.
그리고.
신영준 병장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던 이들.
그들의 분노가 향할 곳은.
지금 같은 경우에는 단 하나.
“감히 신 병장님을…….”
“쉽게 죽지는 못할 거다.”
안 그래도 군단 측이 우위였던 전황.
그나마 많은 정예병을 혼자 상대한 여왕은 신영준과 마찬가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즉.
“크아아악……!”
“뭐, 뭐냐. 이 자식들!”
“전력의 7할이 사라질 거라더니. 전혀 아니잖아!”
분노한 군단원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죽여라!”
“신 병장님의 원수를 척살하라!!!”
“쉽게 죽여선 안 된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분노로 인한 광기에 휩싸인 병사들.
뱀파이어들과의 전투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 커허…….”
“네놈이 마지막이군.”
전광일의 피 묻은 글러브가 마지막 뱀파이어의 머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사, 살려…….”
콰직.
그의 한쪽 손이 뱀파이어의 심장을 뽑아내 터트려 버렸다.
전투는 승리로 끝났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 병장님…….”
“제기랄.”
산맥에서 내려온 뒤로 겪은 가장 큰 규모의 전투.
전황 자체는 군단이 우위였으나.
사망자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처음으로 생긴 사망자.
“……하필 그중에 신 병장님이 포함되다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사들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병력을 수습하고 복귀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조장 중 누군가가 길드장을 이어받는다면, 길드 자체도 유지는 되겠지.
하지만 신영준이란 인간.
그리고 그가 만든 요리는 군단 전력의 핵심이었다.
그가 사라진 이상.
뱀파이어들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못한 세력이라도 조우하는 순간.
군단은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되겠지.
“크흡.”
“X발…….”
대부분의 병사가 그 사실에 절망하고.
신영준이 사라졌다는 것 자체에 슬퍼하고 있을 때.
“다들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쓰시는군요.”
누군가가 그 분위기에 초를 치는 말을 꺼냈다.
최근에 합류하게 된 생존자 출신의 병사.
정수아.
“……그게 무슨 소립니까.”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적의를 보냈다.
이상아 조장이 그녀를 째려보며 말했다.
“당신. 평생 맹인으로 살게 될 뻔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그걸 신영준 씨…… 군단장님이 구해 줬다고 했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은혜란 걸 조금이라도 안다면……!”
당당한 태도에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하려던 순간.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정수아는 오히려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인께서 이런 일로 죽으실 리가 없잖습니까.”
“……뭐?”
“맹인이었던 제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에요.”
무언가 벅차오르는 게 있는 듯.
두 팔을 넓게 펼치는 정수아.
“단 일곱 그릇의 요리로 수백 명의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 그 은혜 아래에 싸우는 병사들은 마를 척결하는 신성한 빛을 둘렀죠. 그야말로 기적. 이게 무슨 의미인지, 진정 모르겠나요?”
“……?”
“그분이야말로, 혼란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그제서야.
“쯧.”
그녀가 하려는 말을 파악한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 저런 사람 꼭 있었지.”
“멸망의 날 이후로 이상한 종교관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 부대에 합류하고는 못 봤는데. 숨어 있었던 것뿐인가 보군.”
하루아침에 문명이 부서지고, 사람들은 많은 소중한 것을 잃어야만 했다.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
그 치유법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구원자니 뭐니…….”
“그런 얘기를 하는 사이비가 어디 한둘이었나.”
지상에서 생존 투쟁을 벌여 온 이들은 이미 사이비들에게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군단장님은 죽었소. 우리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수아 양도 가슴이 아프겠지만…… 받아들여야 하오.”
“여유롭게 추모할 틈도 없는데. 헛소리나 하고 있어. 짜증 나게…….”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옳은지 여러분들이 옳은지는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되겠죠.”
“자꾸 뭔 개소리야.”
“제가 예언 하나 할까요?”
좋지 않은 분위기 따위는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 정수아.
“그분께서는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아오실 거예요. 죽은 지 사흘 만에 돌아온 예수처럼. 죽음 따위 극복하고 돌아오실 터.”
“야, 야. 누가 저 사람 입 좀 닫게 해라.”
“여러분들은 그때 가서야 제 말이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될…….”
병사 중 한 명의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다가가던.
그 순간이었다.
지지지직—
허공에 검은색 선이 생기는가 싶더니.
그 선이 구멍으로 변하고, 곧.
두 개의 형체를 뱉어 냈다.
그 모습을 본 정수아가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아. 보십시오.”
“어, 어어?”
“제 말이 옳았습니다. 아니. 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두 개의 형체.
그중 하나는 방금까지 죽었다고 생각했던 신영준 병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영준 병장의 손에 붙잡힌 채 기절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을 극복하시는 걸로 모자라, 마의 수장마저 굴복시키고 돌아오실 줄이야……!”
뱀파이어들의 여왕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 생활…….”
죽음에서 생환한 신영준 병장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구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개빡세네.”
죽음을 극복하고 돌아온 사람이 한 것치고는.
꽤 생생한 말이었다.
* * *
“내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하마. 인간아.”
여왕이 쏘아 낸 검은 그림자 같은 것에 직격당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있었다.
‘지옥은 아니란 건가.’
처음엔 지옥에 도착한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저기 선 여왕이 나를 반기고 있었으니까.
“영광으로 알 거라. 이 공간에 남을 초대한 것은 네가 처음이니.”
“아. 제기랄.”
“후후. 말투가 제법 거칠구나.”
슬쩍 하늘을 바라보며 [식재료 감별]을 사용했다.
말이 식재료 감별이지.
모든 것을 감별할 수 있는 특성으로 변한 바.
[그림자의 장막]
[신선도 - 최상]
[밤의 귀족들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개인공간입니다.]
[현실과는 괴리된, 심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뚜렷한 실체가 없는 공간으로써, 구성원들의 심상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 공간의 정체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심상 속의 세계라.’
결계나, 아공간.
뭐 그런 거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은, 정체불명의 거대한 회색빛 성채였다.
‘이건 설마. 뱀파이어의 성체라는건가.’
아무리 심상 속의 세계라고는 하나.
지나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성채였다.
‘솔직히 조금 주눅드는데.’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에 짓눌려질 정도.
아무리 심상 속의 세계라고 해도 그렇지.
이만한 성채를 보고도 멀쩡하게 굴기는 조금 힘들었다.
‘아까 그 그림자는…… 단순한 공격용은 아니였다는거군.’
그보다는.
나를 이 장소로 끌어들이기 위한 스킬 같은 것일 확률이 높다.
이 공간으로 날 끌어들인 이유는…….
뭐, 뻔한가?
‘가장 중요한 전력을 1:1로 제거해 버리겠다. 뭐 그런 거겠지.’
대충 상황 파악은 이 정도면 끝난 것 같고.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온 결론은 하나.
‘X됐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제대로 X됐다.’
뱀파이어의 여왕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 내가 사로잡았던 그 전사의 말에 의하면. 네놈만 없으면 성기사들의 전력은 급감한다지.”
“…….”
“네놈을 떼어 내는 데 성공했으니. 바깥은 지금쯤 내 권속들에 의한 사냥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게다.”
붙잡힌 병사.
이병민 이병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 부대원들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들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겸손 떨 일도 아니고.
‘내 힘이 맞긴 해.’
하지만.
‘요리는 이미 먹여 놓은 상태니까. 내가 없어진다고 버프가 끊기진 않을 텐데?’
아무래도 이 여왕.
뭔가를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나를 제거하면 당장 군단원들의 전력이 급감하게 될 것이라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그래도 다행이다.’
아무래도 바깥의 병사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걱정 해야 하는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뱀파이어들의 보스.
저 녀석하고 일대일로 싸우라고?
여긴 요리 재료도 없는데?
‘못 이기잖아. 이거.’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에 인상을 찌푸리자.
여왕이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바깥의 인간들이 걱정되는 게냐? 후후. 이해는 한다만, 네 걱정을 먼저 해야 할 게다.”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바깥 걱정은 없네요.
내 걱정은 절찬리에 하는 중이고.
‘……바깥의 전투는 우리 길드가 이길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다 보면, 바깥의 병사들이 나를 구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
각오를 다진 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질 때 지더라도 쉽게 질 생각은 없다.
이래 봬도 스탯은 높은 편이니.
방어에 집중해서 시간을 끈다면 충분히-.
“무서운 표정을 하기는.”
그러나.
당연히 날 제거하려 들 것이라 생각했던 여왕은 오히려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얼굴 좀 풀 거라. 굳이 날 선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으니.”
“……뭐?”
“잠깐 앉아서 얘기나 좀 하지.”
그녀가 손을 한 번 허공에 휘두르자.
이 공간의 어둠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검은색 의자 하나가 만들어졌다.
뭐야 이건.
“무슨 생각이지?”
“말 그대로니라. 싸우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잠깐 얘기 정도는 나눠도 되지 않겠느냐?”
자신의 의자를 만든 그녀 역시 그 위에 앉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금발 여인이 같이 얘기나 하자고 권유해 주는 상황.
뭐 기뻐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말이지.
‘예쁜 여자가 말을 걸면 십중팔구는 종교 권유…… 나머지 한둘은 다단계 제안인 인생이었거든.’
이럴 때 나는 의심부터 하고 보는 스타일이거든.
그녀를 바라보며 특성을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뱀파이어)]
[신선도 - 최상]
다른 건 필요 없고.
중요한 것은 스킬과 특성.
그중에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특성 - 매료]
“나도 그 매료라는 걸로 조종할 셈인가?”
“음? 내 능력을 알고 있나 보구나. 하긴. 성기사들의 수장이라면 당연한가…….”
성기사는 또 뭐야.
“걱정하지 말거라. 어차피 너 같은 강자마저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은 아니니.”
“…….”
“어차피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너나 나나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진 떠나지 못한다. 그러니 잠깐만 얘기를 나누자는 것인데, 그리 믿기 힘든 게냐?”
시간 끌기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바깥의 병사들이 뱀파이어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일 가능성이 커. 시간을 끄는 건 오히려 내게도 이득이다.’
한숨을 내쉰 나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만난, 의사소통이 가능한 몬스터.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긴 했거든.
“너희들은. 대체 뭐지?”
“무슨 의미지? 내 종족에 대해 궁금한 것이냐?”
“지구에서 나고 자란 존재는 아닐 텐데. 왜 우리 세계를 침공해 왔냐는 거다.”
“아아, 그런 의미였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모른다.”
산뜻하기까지 한 가벼운 대답.
이 자식이.
“대화를 나누자고 한 건 그쪽이다만.”
“진심으로 한 대답이다. 나 역시,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거든.”
“……?”
아무래도 거짓이 아닌 듯.
꽤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 그녀.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나는 관 속에 봉인당한 상태였다.”
“봉인……?”
“영원한 시간을 관 안에서 지내야만 하는, 가증스러운 성기사들의 비술이지. 해제 따위 불가능한, 죽음이나 다름없는 형벌. 자신들의 적에게는 죽음조차 자비라고 여기는 광신도들의 수법이다.”
말하던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봉인은 온데간데없더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동굴 안에, 봉인의 힘이 사라진 관과 함께 이동되어 있었지. 머릿속에는 정체 모를 명령 같은 게 심어져 있질 않나.”
“의도를 가지고 침략한 게 아니라는 건가?”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는데, 침공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말이지.”
괴물들이 이계에서 온 존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의도를 가지고 침략한 게 아니면 대체.
“그럼. 왜 인간을 공격하는 거지?”
“왜냐니……. 이상한 것을 묻는군.”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어이없어하며 대답하는 그녀.
“살아남기 위함이다.”
“……?”
“갑작스레 전혀 모르는 세상에 떨어진 게다. 내 몸을 지킬 만한 수단을 하나도 가지지 못한 채로 말이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머릿속에는 이상한 명령까지 심어져 있으니…… 저항해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
살아남기 위함이라니.
우리랑 똑같잖아.
“나는 밤의 귀족이니라. 많은 피를 섭취할수록. 더 많은 권속을 휘하에 둘수록 내 힘을 키울 수 있지.”
“…….”
“그렇게 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사냥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힘을 얻을 수 있을 터.”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여왕.
“이 짜증 나는 상념 역시. 언젠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에 당황하는 사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정도면 충분했을 듯하니. 이번엔 내 차례인가?”
“아니, 그 상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어허. 이번엔 내 차례니라.”
묻고 싶은 게 더 많았으나.
이번엔 그녀가 내게 질문을 해 왔다.
“내 권속이 될 생각은 없느냐?”
정확히는.
질문이 아닌 권유.
“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게다. 실제로 내 부하들을 보아라. 다른 괴물들한테 사냥당했을 운명의 약자들. 하지만 내 권속이 됨으로써, 그들은 오히려 사냥하는 쪽이 되었지.”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닐 텐데.”
“의사를 확인한 건 네가 처음이긴 하구나.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권속이 되지 않았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쯤 시체가 되었을 거라는 점이겠지.”
자신은 떳떳하다는 듯.
팔짱까지 끼며 말하는 그녀.
“저들의 목숨을 살린 것은 나라는 얘기다. 네놈들의 입장에서 말하면,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셈이지.”
“…….”
“넌 전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라고 했지. 내 권속으로 들어온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지금까지 가장 총애하던 권속이 따로 있었지만. 그 녀석은 내 신임을 잃었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여왕.
“너 정도면 얼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실력도 출중하니, 그 자리를 네게 주마.”
자신과 손을 잡자는 듯.
여왕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 땅에 밤의 귀족들만의 왕국을 만들자꾸나. 여왕은 내가 되겠지만, 너는 그 왕국의 대공이 될 것이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밤의 귀족들이 왕국이라.’
그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 요새는 너희 종족의 왕성 같은 건가?”
“……음?”
“이만한 요새를 가지고도 봉인 당하다니. 그쪽 성기사라는 양반들도 대단했나 보군.”
별거 아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아까부터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는 요새.
그 요새의 정체가 궁금해서, 가볍게 물어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요새?”
그런데.
“요새라니…… 무슨 소리를……?”
시종일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듣던 여왕.
그녀의 표정이.
내 질문 한 마디에 일그러졌다.
‘……응?’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무, 무엇이냐. 이것은. 대체 언제부터?”
그녀의 눈에 크게 떠졌다.
“이 규모는 대체. 시조님의 성채보다도 압도적인 규모라니. 이런 게 어째서 여기에……!”
믿기 힘들다는 듯한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는 뱀파이어의 여왕.
“네, 네놈, 어서 설명하지 못하겠느냐!”
“설명하라니. 대체 뭘…….”
“시치미 떼지 말 거라!”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그녀의 눈빛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요새는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