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83화 (83/227)

83화 요새 (2)

[식당]

[Lv. Max]

머릿속에 떠오르는 길 안내를 따라 이동하자.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거대한 식당이었다.

콰앙!

식당의 문을 발로 박차고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을 채우는 메시지.

[식당 Lv. Max가 활성화됩니다.]

[요리사의 숙련도에 보정이 가해집니다.]

[요리의 결과물에 보너스가 추가됩니다.]

이건 설마.

‘……버프라고?’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버프를 주는 건물이라니.

내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다만.

‘안쪽은…… 취사장하고 비슷한 구조.’

혹시라도 내가 전혀 모르는 구조의 식당이면 어쩌나 고민했으나.

다행히도, 평범한 군대의 취사장 같은 느낌이었다.

‘둘러볼 시간 따위는 없다.’

지금도 뱀파이어의 여왕은 나를 쫓아오고 있을 터.

[자율방어시스템]이라는 녀석이 언제까지 버텨 줄지 알 수 없는 일.

나는 곧바로.

요리의 재료를 내려다 놓았다.

[뱀파이어 준남작의 앞다리살]

“…….”

아까 내가 잘라 낸, 여왕.

이 아니라, 준남작의 팔.

그걸 집어든 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요리해도 되는 걸까.’

지금까지 내가 요리했던 괴물들과 달리.

저 뱀파이어는, 종족은 다를지언정 외모는 인간과 비슷했다.

‘다른 식재료 중에…… 저 녀석을 상대할 만한 물건은 없다.’

그 팔을 요리해 먹는다는 것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일.

하지만.

‘안 먹으면 뭐. 여기서 그냥 죽으려고?’

내 목표는 언제나 하나.

살아남는 것.

그러기 위해서라면.

조금 구역질이 나는 것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 이거겠지. 제기랄!”

그 팔을 향해.

식칼을 휘둘렀다.

[중급 요리 비결 - ‘뱀파이어 손질법의 깨달음’]

고유 재능의 각성.

중급 단도 숙련의 강화.

요리하는 내 칼질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손질이 끝난 재료를 팬 위에 얹은 뒤.

화구에 불을 붙이고 볶는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특별소스]를 뿌려 주면.

[지독한 목마름의 뱀파이어 준남작 전지 볶음]

[신선한 뱀파이어 준남작의 앞다리살로 만들어진 고기 볶음입니다.]

[식당 Lv. Max의 효과로,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해당 요리를 섭취한 이의 모든 특성 효과가 50% 증가합니다.]

나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 내며, 어떻게든 고기를 씹었다.

“우읍…….”

그러자.

곧, 발동하는 특성.

[스킬 - 절대 미각을 발동하시겠습니까?]

“발동, 한다.”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해 주세요.]

[안개화]

[어둠 친화]

[매료]

[초재생]

[신성력 약화]

눈앞에 나열되는 여러 가지 특성들.

하지만.

다른 특성들은 굳이 읽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특성은.

단 하나.

[특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새로운 특성을 획득합니다.]

[절대 미각의 패널티로 인해, ‘항마의 빛’을 포함한 모든 요리의 효과가 제거됩니다.]

요리 재료의 특성 하나를 얻게 해 주는 절대 미각.

대신, 그 효과를 사용하는 순간 다른 버프는 없어진다.

몸에 엄청난 활력을 안겨 주던 밝은 빛.

그 빛이 사그라들고.

[주의!]

[동력 저하로 인해, 자율방어시스템이 강제 종료됩니다.]

[성주의 위기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 바.]

[관련 인원들은 시급히-]

울려 퍼지는 기계음은.

나를 지켜 주던 요새의 공격이 끝났음을 알렸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네놈.”

고개를 돌리자.

식당의 문 앞에 서 있는 뱀파이어가 보였다.

“약해졌구나?”

[자율방어시스템]에 심하게 얻어맞은 건지.

꼴이 말이 아닌 여왕이었지만.

내 항마의 빛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일까.

여유롭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

“정말, 지긋지긋한 싸움이었다.”

버프를 잃은 지금.

나름대로 저항을 해 보았으나.

“자. 가족이 될 시간이다.”

“크윽……!”

콰직!

내 저항을 뚫고 아까처럼 품 안에 들어온 그녀는.

요사한 웃음을 지으며 내 목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츄릅-

몸 안의 피가, 그녀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커, 허.”

이대로 간다면.

나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모든 피를 빨리고 죽거나.

아니면, 그녀의 권속이 되어 평생을 노예로 살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긴 싫거든.’

그렇기에,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그녀가 내 목덜미를 물고 있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

콰직!

여왕의 목덜미에 입술을 박아 넣었다.

“……뭣!?”

아쉽게도, 내게는 송곳니따위는 없다.

이빨로 최대한 거칠게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자.

쇠맛이 나는 찐득한 액체가 혀에 닿았다.

[특성 - 흡혈이 발동합니다.]

이게 바로.

[절대 미각]을 통해서 획득한 특성.

[흡혈]

[뱀파이어들에게 있어서 피를 마시는 행위는 여러 의미를 가집니다.]

[힘을 키우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휴식이기도 하며.]

[또한, 생명 유지를 위한 식사이기도 합니다.]

[흡혈을 통해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흡혈을 통해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상처가 난 혈관에서 흘러나오는 핏물.

나는 그 피를, 최대한 힘차게 빨아들였다.

[굉장히 질이 좋은 피입니다.]

[흡혈의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무력해졌던 몸에.

약간의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내 피를 흡혈하기 위해 다가온 여왕.

그녀는 이제, 내게 흡혈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네, 네 놈, 정말로 미쳐 버린 게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성으로 자신을 흡혈하는 적.

그 존재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듯.

내 목덜미에서 입을 떼고 소리를 지르는 그녀.

‘멍청하긴!’

그녀가 입을 때고 소리를 지를 때.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더욱더 힘을 주어, 여왕의 피를 빨아들인다.

‘맛은 드럽게 없지만.’

[굉장히 질이 좋은 피를 대량으로 흡혈하였습니다!]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높은 나는 뱀파이어들 입장에서 질 좋은 식사로 보였겠지.

하지만 내 피가 아무리 내가 질 좋은 식사라고 한들.

‘뱀파이어들. 심지어 그 수장이라는 괴물의 피보다 질이 좋지는 않을걸.’

서로가 흡혈을 반복한다면.

더 질 좋은 피를 먹게 되는 건 나다.

“크윽!”

여왕이 내 머리를 밀어내려 했으나.

“노, 놓아라!”

“못 가.”

난 떨어지려는 녀석을 붙잡고 거칠게 끌어안았다.

잠깐 사이 흡혈한 피의 영향으로 꽤 능력치가 많이 올랐다.

반면, 그녀는 [자율방어시스템]에게 얻어맞느라 힘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

이 정도라면.

붙잡아 두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전투로 가면. 절대 못 이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아 주면 안 된다.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안개화.

그녀가 안개로 변해 내 품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었으나.

‘안개화에도 쿨타임은 있잖아?’

내 칼이 심장을 찌르는 걸 막기 위해 사용한 지 5분도 되지 않았으니.

도망갈 수단은 없다.

“젠장, 본녀가 어쩌다 이런 꼴이!”

그 사실을 깨달은 여왕은 다시금 내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그렇게.

승부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의도한 대로.

‘전투를 통한 승리는 가망이 없으니……. 종목을 바꾼다.’

조건은 양쪽에게 동일했다.

피를 빨릴수록 생명력이 떨어지고, 능력치를 빼앗긴다.

반대로 피를 빨아들일수록, 생명력이 회복되고, 능력치를 빼앗아 올 수 있다.

‘누가 더 빨리, 상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느냐의 승부……!’

츄릅……

꿀꺽, 꿀꺽.

어두운 공간.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제삼자가 본다면, 글쎄.

정열적인 연인이 서로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비는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가 죽는다.’

서로의 목숨을 건 치열한 사투.

저쪽은 본래부터가 흡혈귀.

그에 반해 나는 인간이 흡혈이라는 특성만을 빌려 왔다.

본래라면 승부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이겠지만.

‘나도. 노림수 몇 개는 있거든.’

[흡혈은, 생명 유지를 위한 식사이기도 합니다.]

‘흡혈’은 식사 행위.

여기서 피는 음식으로 여겨지는바.

[절대 미각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절대 미각’의 발동 조건이 충족됐다.

거기에 [식당 Lv.Max]의 보너스로 인해.

요리를 통해 얻은 내 특성의 효과는 50% 증가한다.

[음식을 통해 얻는 효과가 크게 상승합니다.]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그만.”

목구멍으로 계속해서 찐득한 피가 넘어갔다.

이미 위장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그만하거라.”

내가 요리에 적용한 감각은 [지독한 목마름].

고통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목이 말랐다.

“그,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서로의 피를 탐하기 시작하고.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 본녀가 잘못했노라. 그러니, 제발 그만.”

“…….”

“피는 밤의 귀족의 영혼이나 다름없단 말이다. 그걸 다 가져가면, 나는. 나는.”

거칠게 끌어안은 여왕의 몸에서.

점차 힘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아…… 사라져간다. 본녀의 피가. 본녀의 존재가……!”

“…….”

“이,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태양의 아래에서 죽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는……!”

서로가 흡혈을 주고받은 결과.

더 많은 힘을 취한 것은.

“사, 살려다오.”

[절대 미각]의 효과를 받는 내 쪽이었다.

“본녀가 잘못했다, 사과하겠노라! 그러니. 제발……!”

“…….”

“살려 다오, 제발. 아니.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힘이 빠진 탓일까.

아니면 공포에 질려서일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목숨만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가며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하는 여왕.

하지만.

‘목말라…….’

아쉽게도.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있을 만한 정신이 없었다.

[지독한 목마름의-]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오직 하나.

이 애타는 갈증을 해소하는 것.

[주의!]

[지나치게 많은 흡혈은 신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뭔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것도 같았지만.

갈증을 해소하느라 바쁜 와중에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더욱 더 힘을 줘서 피를 빨아들였다.

“시, 싫어어…… 엄마. 아빠……”

꿀꺽.

“살려 주세요, 흑…… 살려 주세요. 훌쩍.”

꿀꺽.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

.

.

이윽고.

살려 달라고 비는 목소리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자.

꿀꺽…….

어둠 속에서.

목 넘김 소리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 *

[그림자 장막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마력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그림자 장막이 취소됩니다.]

정신없이 갈증을 해소하고 있던 도중.

그런 메시지가 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곧.

팡!

강한 압력과 함께, 내 몸이 어딘가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몸.

그렇게.

[그림자 장막]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기 직전.

나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핏빛의 바다.

‘과연. 위에서 보면, 저렇게 생겼었나.’

그리고, 그 핏빛의 세계 위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요새.

아니.

요새라기보단.

‘요새 도시…….’

언젠가 세계가 멸망한다고 한들.

결코 무너지지 않은 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그래.

마치 방주와도 같은…….

[식재료 감별(강화)]

[기동요새 - 비마나]

나의 성채였다.

* * *

정신을 차리자.

“아, 아아……! 보십시오!”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광휘를 내뿜고 있는 군단의 병사들과, 투박한 벙커의 풍경.

‘아……. 밖으로 나온건가.’

한 손에는 내가 계속 빨아먹고 있던 여왕의 목덜미가 잡혀 있었다.

‘——!’

‘—? —! ————.”

주변의 병사들이 뭐라 뭐라 떠드는 게 들려왔다.

‘뭐라는 거야.’

하지만.

내용을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갈증을 채우기 위해 여왕의 피를 빨아들이는 데에만 집중했던바.

도통 정신이 없었다.

‘제기랄. 목말라 죽겠는데 시끄럽게.’

여전히 이 갈증은 채워지지 않은 상태.

이대로 가다간 무심코 병사들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버릴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그건 안 되지.’

나는 병사들을 무시혹 구석의 벽으로 몸을 옮긴 뒤..

벽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병사들을 보면 물어뜯고 싶어지니.

아예 병사들이 보이지도 않도록 고개를 푹 숙였다.

목은 여전히 마르고.

너무 많은 피를 빨아들인 탓에 입 안에서는 불쾌한 쇠 냄새가 난다.

정신적으로는 당장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군 생활…….”

정말이지.

어떻게든 살아남긴 한 듯하니 다행이다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개빡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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