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피로 만든 요리
전투가 끝난 뒤.
군단의 병력들은 벙커의 수색에 들어갔다.
혹시 숨어 있는 잔당이 있을 수도 있으니 확인차 조사해 본 것인데.
“사, 살려…….”
한 구획에서 살아 있는 인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뱀파이어의 잔당 같은 게 아닌가 싶었으나.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정말로 멀쩡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여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쪽에도…….”
그 숫자가 생각보다 꽤 많았다.
“훌쩍…….”
“이젠 안전하니. 진정하십쇼.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모,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지낼 곳을 안내해 준다고 하더니 우리를 이쪽으로 안내했소. 다른 쪽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그건 대충 알 것 같았다.
‘뱀파이어가 됐거나, 아니면 뱀파이어의 먹이가 됐거나.’
우리가 의아한 것은 하나.
뱀파이어도, 뱀파이어의 먹이가 되지도 않은 이 사람들은 대체 뭔가 하는 것이였는데.
“그 괴물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무슨 얘기를?”
“제가 제대로 들은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간 목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허.”
“거기에 쓰기 위해 따로 빼놓은 이들이니 죽지 않게 잘 관리하라고 하더군요.”
인간 목장이라.
인간을 먹이로 보는 녀석들이라고 하나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 사람들은 저희가 데려갈게요.”
“아. 맡겨도 되나?”
“네. 저도 생존자 출신이기도 하고.”
생존자들을 향해 다가가며 말하는 정수아.
“자신들이 어떻게 될 뻔했고, 누구에게 구원받은 건지. 잘 설명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 뭐. 잘 부탁해.”
“네!”
구출한 생존자들은 우리 부대에 합류하거나.
혹은 부대 근처에 자리잡은 생존자들에게 소개시켜 주면 되겠지.
그러던 중.
“히, 히익. 살려……”
“이것도 생존자입니까?”
“아니. 이번엔 뱀파이어 맞네.”
기절해 있다가 최근에야 정신을 차린건지.
구석에 숨어 있던 뱀파이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끼엑.”
녀석을 처치한 순간.
[길드, ‘강원도 생존자 연합’을 전멸시켰습니다.]
[인간종 최초로 길드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오?”
시스템이 그 사실을 인지했다.
[앞서가는 이들을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전 길드원에게 [성장의 비약]X10이 주어집니다.]
[성장의 비약]
[일정 시간 동안 경험치 습득률이 500%가 됩니다.]
‘성장의 비약.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극 초창기에도 보상으로 받았던 적이 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부대원들은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사용했던 걸로 알고 있다.
효과는 꽤 알차다는 듯.
나야 레벨업이 급한 상황은 아니니 일단 가지고 있도록 하자.
이것도 [식재료 감별]을 통해 재료를 알아낸다면, 언젠가 양산해 낼 수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맙소사. 성장의 비약까지.”
“보상이 나쁘지 않군요.”
“그러게. 뭣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벙커를 얻은 게 가장 중요한 성과가 되겠지.”
“예?”
“왜, 뱀파이어 녀석들이 흘린 소문 있잖아.”
이곳 근처에 많은 무기와 식량을 가진 그룹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을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있다.
우리가 낸 소문은 아니다만.
많은 무기와 식량을 가지고 있고, 믿을 만한 동료를 찾고 있는 그룹.
“그거. 우리도 얼추 해당되지 않아?”
“아!”
일대의 생존자들은 슬슬 숨어 지내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대형 그룹에 합류하고자 하고 있다고 했지.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다.
군단에 대한 소문.
그리고 벙커에 대한 소문.
그런데 여기서 그 두 선택지를 모두 우리가 먹어 버렸단 말이지.
일대의 생존자들을 모두 우리를 찾아오게 될 터.
투배럭을 돌릴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소문 흘리느라 꽤 고생들 했을 텐데. 그 덕은 우리가 보는 거지.”
“큭큭. 나쁘지 않군요.”
“우리가 파괴한 초소들의 위치는 다시 생각해 봐도 나쁘지 않았어. 공병들을 파견해서 그 위치에 초소를 복구하고. 병사들 일부를 이쪽으로 옮긴다.”
“예.”
“한동안은 부대와 벙커를 오가는 길을 청소하는 데 집중해야 할 거다.”
인간의 피를 식량으로 삼는 뱀파이어.
녀석들이 세력을 더 넓히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는 생각에 강행한 침공이였다.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한 일이었을 뿐인데.
비약에, 벙커까지.
이 정도로 보상이 쏠쏠할 줄이야.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국, 동맹 세력을 얻기는 실패한 셈이네요.”
이상아 조장이 말한 대로.
애초에 내가 이들을 방문한 이유는 ‘군내 정벌을 위한 동맹 세력 탐색’이었다.
군내를 정벌하기 위한 전력을 키우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치려는 거였다만.
‘300명 이상의 각성자……. 이 녀석들이 뱀파이어만 아니었다면.’
전차까지 손에 넣은 우리다.
어떻게든 군내 정벌에 성공했을 터.
하지만 녀석들이 뱀파이어.
인간의 적이었던 이상 아쉬워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
군내 정벌은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고 각성자들을 늘려 가며 전력을 키운 뒤에 시도해야겠지.
“……음.”
하지만.
그건 좀 아쉽단 말이지?
* * *
“그들은 훌륭한 아들이자…….”
뱀파이어들과의 전쟁.
그 후처리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뒤.
탄약대대의 뒷산에서 작은 장례식이 치뤄졌다.
‘첫 사망자들.’
산속의 부대에 있을 때부터 지상으로 내려와 정착하기까지.
온갖 전투를 겪었으나 지금까지는 기적적으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기도 했지.
하지만 이번 전투는 조금 달랐다.
우리보다 수적으로 우위인 적들.
그렇다고 전투를 피하기에는 저들의 세력이 커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으니.
위험한 전투가 될 것을 알면서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탓.
“신 병장님의 요리로 전력 차이는 대부분 메꿔졌지만, 그래도 병사 한 명이 뱀파이어 둘 이상을 상대해야 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쇼.”
“나중에 합류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사망자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일인걸요.”
장례식을 바라보는 내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남들은 저렇게 말해 주긴 했다만.
‘내 요리가 좀 더 강력했다면…… 아니. 진작에 뱀파이어들보다 더 많은 부대원들을 확보했더라도 많이 달라졌겠지.’
가정을 붙인다면 끝도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에 부대 주변에 자리 잡기 시작한 생존자들 사이에 목사 출신이 한 명 있었다는 것.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장례 절차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컸다.
군종병에게 맡겼던 지난번과 달리.
약식이긴 해도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겠죠?”
“그렇겠지.”
423대대부터 함께한 부대원들은 꽤 상심한 반면.
“……또 사람들이 죽었군.”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쉽게 됐어.”
부대 출신이 아닌 나중에 합류한 생존자 출신의 길드원들은 비교적 덤덤한 태도였다.
그들이 남보다 무신경해서가 아니다.
‘익숙해진 거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죽어 나가는 시대.
운 좋게 승승장구해 온 우리와 달리.
그들은 진작부터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해 왔을 터.
그렇기에 경험으로 알고 있는 거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잃는 일이 생길 것이고.
그 죽음에 매몰되어서는 자신이 바로 그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
‘내가 죽으면, 먼저 죽은 녀석들을 기억해 줄 사람이 사라진다는 뜻이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그게 먼저 죽은 녀석들을 위한 일이 되겠지.
* * *
그리고.
그 살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으로써.
나는 식당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부대원들의 식사는 얼추 끝난 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특식’이다.
“아, 따가워.”
그것도.
조금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특식.
재료 준비에만 며칠이 걸렸다.
제대로 써보는 것은 처음인 재료.
조금 긴장되긴 한다만.
“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결과물은 의외로 준수하게 나왔다.
완성된 요리를 든 나는 탄약대대 구석의 한 건물을 향했다.
건물의 입구를 지키며 서 있던 병사가 나를 보고 인사해 왔다.
“어서 오십쇼, 신 병장님.”
“오냐. 안쪽은 이상 없고?”
“예. 근데 신 병장님? 그 손은 무슨 일입니까?”
“아. 이거?”
병사가 가리킨 것은 내 왼쪽 팔.
손목 부근에 붕대가 말아져 있었다.
“조금 일이 있어서.”
“뭐. 신 병장님 하시는 일이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내가 뭐 대단하다고. 아무튼. 문 좀 열어 주라.”
“옙.”
이곳의 용도는 일종의 ‘포로 수용소.’
이전에 사로잡은 뱀파이어 녀석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둬 둔 장소다.
그때 그 녀석은 이미 처리된 지 오래.
“안녕하십니까.”
지금 그 자리에는 다른 포로가 앉아 있었다.
“준남작…… 각하?”
“……힉!”
“아니, 경인가? 공?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얼마 전까지 300의 뱀파이어 무리를 이끌던 수장.
자칭 ‘여왕’님이었다.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는데.’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두 빨아들일 생각이었다만.
어느 정도 피를 빨아들이자.
이 녀석의 마력은 [그림자 장막]을 유지하지 못할 지경까지 가 버렸다.
거기서 튕겨 나오며 정신을 차린 덕에.
이 여왕님은 죽기 직전에 목숨을 건지게 된 것.
다만.
이전과 달리 그녀의 몸에서 두려운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윤기가 흐르던 금발은 푸석푸석해지고, 피부도 묘하게 갈라져 있었다.
‘밤의 귀족들은 피를 먹고 권속을 늘릴수록 강해진다고 했지?’
그 피는 내가 다 빨아먹었고.
권속들도 나와 병사들이 전부 제거했으니.
약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보, 본녀에게 무슨 볼일이더냐.”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좀.”
“어차피 본녀를 조롱하려는 속셈 아닌가!”
눈치가 빠르긴 하네.
그녀가 바닥을 보며 흐느끼듯이 말했다.
“본녀의 존재를 그만큼 앗아 갔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
“…….”
“제발. 더는 본녀를 괴롭히지 말아다오…….”
존재를 앗아갔다, 라.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능력치]
[힘 32 → 37]
[민첩 : 49 → 53]
[마력 : 39 → 49]
[행운 : 30 → 35]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스탯.
전부 이 괴물을 흡혈한 덕에 얻은 성과였다.
‘흡혈로 인한 능력치 상승은 일시적인 줄 알았는데.’
권속이라던 녀석들이 사용하던 [하급 흡혈]의 경우.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야만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이 가능하다던가..
하지만 여왕이 지니고 있던 특성, [흡혈]은 조금 다른 건지.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귀족의 피를 죽기 직전까지 빨아들인 덕에.
능력치가 급격하게 성장한 것.
말 그대로 그녀의 존재를 앗아 간 셈이다.
하지만.
“팍 씨. 이게 어디서 불쌍한 척이야.”
“그, 그럴 생각은 아니었느니라.”
무려 인간 목장까지 만들려고 한 녀석.
동정심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 녀석은 인간들을 사냥한 이유를 살아남기 위함이라고 했다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살아남기 위해 이 녀석의 존재를 빨아들인 셈이니까.
“그래도 뭐. 덕분에 능력치가 많이 오른 건 사실이지.”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게냐.”
“그러니. 보답을 좀 해 주려고.”
“……?”
의아해하는 그녀의 앞에.
내가 가져온 ‘특식’을 내려놓았다.
“이건. 무어냐?”
“아. 모르나?”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들어간 극상의 행복의 선짓국]
“선짓국이라고 하는 건데.”
“무언가의 요리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나는 뱀파이어다.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먹는 음식이 다르다.”
“아. 선지가 뭔지부터 설명해야겠네.”
피를 받아서 가만히 두면, 아래쪽에 굳은 덩어리와 위쪽의 투명한 액체로 나뉜다.
위쪽이 혈청, 아래쪽이 혈병…….
즉, 피떡인데.
이 피떡을 요리에 쓰면 그게 바로 선지가 된다.
새삼 생각해 보면 꽤 기괴한 재료긴 한데.
한국에서는 꽤 일반적인 요리 재료이기도 하다.
“잘은 모르겠다만. 이걸 먹으라는 게냐.”
“잘 아네.”
“알겠다. 네 말을 따를 테니, 제발 더 이상의 고통은 그만…….”
고통이라니, 아쉬운 말을 하는구만.
내가 네게 줄 것은 고통 따위가 아니다.
“……이 맛은, 대체!”
극상의 행복.
“맛있다, 맛있어……!”
“그 정도로 맛있냐?”
뱀파이어는 피를 주식으로 삼는 만큼.
혹시 선지를 요리해 주면 잘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떻게 통한 모양.
“천상의 맛이다. 오래된 피는 비릿해서 맛이 없는 게 일반적이거늘. 이 맛은 대체……!”
그야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히 엄청 맛있겠지.
‘아. 그게 전부가 아니구만.’
그야.
누가 재료가 되어 준 요리인데.
당연히 엄청 맛있어야지.
“하아아…….”
[극상의 행복]에 취한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풀렸다.
이 표정.
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김 중위.’
김 중위.
그리고 우리 부대를 찾아왔던 범죄자들.
내가 여왕에게 먹인 요리는 선짓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블랙 푸딩]
[해기스]
[피순대]
[미쉐까오]
[슈바르츠 자우어]
등등.
며칠에 걸쳐.
요리책을 뒤져 가며 선지가 들어가는 요리란 요리는 모두 찾아서 대접했다.
“……하아아아.”
그때마다.
극상의 행복 속에서 몸부림치는 ‘여왕.’
그렇게 며칠 정도 요리를 제공했을까.
어느 날.
다음 요리를 먹이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하하…… 하하하하!!!”
건물 안에 있던 여왕이 미친 듯이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하하하……! 멍청하긴!”
“갑자기 뭔 소리래.”
“힘을 잃은 밤의 귀족에게, 피로 만든 요리를 줘!? 그것도 하필이면……!”
팍! 하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그녀.
“자신의 피를 써서 만든 요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