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권속 (1)
“힘을 잃은 밤의 귀족에게, 피로 만든 요리를 줘!?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의 피를 써서 만든 요리를!”
나를 가리키며 말하는 그녀.
“음? 내 피인건 어떻게 알았대.”
“한번 맛본 피의 정체를 내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지 않느냐.”
그녀의 말대로.
그녀에게 제공한 선지를 이용해 만든 수많은 요리들.
거기 쓰인 피는 모두.
‘내 피지.’
몬스터의 고기는 대부분이 냉동상태.
신선한 피를 뽑을 수가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병사들한테 헌혈을 받기도 뭐하잖아.
사용된 피가 상당했던 만큼 의무병에게 꽤 도움을 받긴 했다.
중간부터는 빈혈에 좋다는 요리를 만들어서 직접 먹기까지 했지.
“안 그래도 네놈의 피는 질이 좋았지. 거기에 본녀의 피를 다 빨아 갔으니.”
“맛있었냐?”
“엄청나게 맛있었다. 단순히 피의 질이 좋다는 거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의 극상의 맛…….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행복해지는 그 맛이란…….”
아무리 내가 요리사라지만.
눈앞에서 이렇게까지 극찬을 늘어놓으면 좀 부끄러운데.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팍!
여왕의 몸을 묶고 있던 굵은 사슬이 가볍게 끊어졌다.
안 그래도 질이 좋다는 내 피를 정성껏 요리까지 해서 먹었으니.
힘이 회복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본녀에게 피를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큼 힘을 회복한 이상. 네놈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을 게다.”
“그래?”
“어떻게 뱀파이어의 권능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본녀가 패배한 것은 서로의 피를 탐하는 대결에서였지. 평범한 전투라면 네놈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 본녀의 피를 빨지 못하도록 이빨을 모조리 박살 내 주마. 네놈은 권속이 아닌 노예로……”
“그러길 바란다면, 뭐…….”
힘을 회복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은 건지.
위풍당당하게 외치는 여왕.
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뒤.
“먹든가.”
목덜미를 들어내고.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다.
깨물기 아주 좋은 위치에.
“……무슨 속셈이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하는 여왕.
“속셈은 무슨. 날 권속으로 만들 거라며. 내 피는 맛있다고도 했고. 그러니까 한 입 크게 하시라고.”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본녀가 위축되리라 생각했다면-!”
“아. 근데 이거 하난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그녀의 이빨이 내 목의 혈관을 찢고 들어가기 직전.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기로 했다.
“날 권속으로 만들면, 내 요리 다신 못 먹을걸.”
“……?”
그건 대체 무슨 소리냐, 하는 듯한 눈빛.
조금 자세히 설명해 줘야겠네.
“네가 부하로 삼은 권속들.”
“네놈들이 모조리 죽여 버린 그 아이들 말이더냐.”
“어. 그 녀석들을 좀 살펴봤는데 말이지. 직업이 하나로 통일돼 있더라.”
“……그건.”
뱀파이어라고 묶어서 부르긴 했지만.
개중에는 마법을 쓰는 녀석, 칼을 쓰는 녀석, 활, 창, 도끼를 다루는 녀석 등.
다양한 전사들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직업은 하나.
“전부 뱀파이어 나이트였지.”
기사는 본래 활도 쏘고 창도 쓰고 칼도 쓰는, 종합 전투인 같은 느낌이니.
“아마 너의 권속이 되면 나도 뱀파이어 나이트가 되는 거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내 말이 맞을걸.”
내 요리의 맛은 내가 ‘중급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
요리사의 특성과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요리다.
뱀파이어 나이트로 바뀐다면 전투 능력은 올라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만들어 준 저 요리들은 아마 다시는 맛보지 못할걸.”
“인간들이 겪는 각성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듣긴 했다만…….”
“뭐. 내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고.”
다시 목을 들이밀며 말했다.
“츄라이 츄라이.”
“…….”
“내 요리를 못 먹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날 권속으로 만들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그러나.
“……크윽!”
내 목에 닿아 있는 이빨은.
그 이상 내 피부를 파고들지 않았다.
“왜 안 물어?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을 텐데.”
“네 놈……!”
“내 몸의 피를 전부 다 빨아들이고, 거기에 네 피를 집어넣으면 권속이 된다며? 자. 어서.”
“시, 싫다.”
오히려.
목을 들이미는 나를 살짝 밀치는 그녀.
“이, 이렇게 하자꾸나.”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는 듯.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그녀.
“널 권속으로 만들지 않겠다. 거기에 더해 너희를 적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마.”
방향성은 대충 맞았는데.
“그 대가로, 네가 만든 요리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거라. 어떠냐? 너에게도 나쁘지 않은 얘기 아니더냐.”
“에이. 그건 아니지.”
좀 더 가 주셔야겠다.
“내가 너한테 요리를 해 줄 필요가 어딨다고. 적대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죽었지.”
“……본녀를 놀리려는 것이냐!”
요리를 해 달라?
내가 요리하는 걸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대신, 조건이 있어야지.”
“조건?”
나는 손가락을 뻗어 바닥을 가리킨 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복종할 것.”
“……!”
이 녀석은 귀족급 뱀파이어.
평범한 인간도 권속으로 만들어, 각성자를 엄청난 속도로 늘릴 수 있는 존재.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뱀파이어들은 꽤 강력하다.
마땅한 장비가 없음에도 온갖 버프와 장비를 떡칠한 우리 부대 병사들과 맞먹을 정도.
‘이번에는 [항마의 빛] 버프로 카운터를 치는 데 성공해서 그렇지. 일반적인 수준의 버프 요리였다면 우리 쪽이 졌을 거야.’
말도 안 되게 강한 거다.
거기에 우리 길드의 장비와 요리가 더해진다면 더욱더 강해질 터.
‘그런 뱀파이어들을 양산하는 게 가능한 존재를 죽인다?’
너무 아깝잖냐.
동맹을 구하는 데 실패했으니.
이 녀석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어.
“내게 복종을 맹세해라.”
“무, 무슨.”
“그러면 네 식사는 내가 책임져 주지. 매 끼니 감동할 수밖에 없는 요리를 제공해 주마.”
“큿…….”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확신한다.
김 중위에, 다른 범죄자들, 약탈자들까지.
이미 많은 이들이 거절하지 못한 제안.
아무리 대단하신 귀족이라고 한들.
이미 며칠이나 내 요리를 맛본 그녀다.
그 맛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번에도 분명-.
“아, 안 된다.”
……어?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안 된다고?”
이거 설마.
“……내 요리가 그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건가?”
자존심이 팍 상했다.
감히.
감히 내가 만든 요리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거부해?
“아무래도 일반적인 요리만 대접했더니 아직 맛이 부족하다 느꼈나 본데……!”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전력을 다해 만든 코스 요리를 먹여주마.
맛있어서 기절할 정도의 맛을 보여주면 생각이 조금은 바뀌겠-.
“그, 그런게 아니다!”
“?”
“본녀의 종족. 밤의 귀족은 마족에게서 비롯된 종족이니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 요리의 맛이 부족한 탓은 아니었나 보다.
“마족의 언어에는 힘이 깃들어있지. 하급 귀족이라고는 하나, 귀족인 본녀 역시 그 특성을 이어받았노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
“본녀가 하는 말에는 강제력이 생긴다는 게다.”
즉.
“복종을 입에 담는 순간…… 본녀는 절대 너를 배신할 수 없게 되겠지.”
한번 복종을 맹세하면 절대 배신할 수 없다라.
그건.
“오히려 좋은데?”
“이, 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느냐! 본녀의 존재 자체가 네놈에게 귀속된다는 뜻이란 말이다! 그깟 요리 때문에 자기 존재를 남에게 바치라니. 그런 짓을……!”
“아. 그러니까.”
다시 목을 내밀고.
“그게 싫으면. 내 피를 드시라고.”
“크읏.”
“너도 알겠지만, 나는 이 길드에서 완전 핵심 인사야. 나 하나만 권속으로 만들면 나머지를 권속화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나한테 복종하는 게 싫다면 그렇게 하면 되잖아.”
“…….”
“선택하시죠. 여왕님.”
내 목을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여왕.
진짜로 여기서 나를 권속 삼는다면 큰일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감의 근거는 하나뿐이었다.
‘누가 만든 요린데.’
남들이 들으면 터무니없이 빈약한 근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한 근거.
그리고, 내 생각대로.
“본녀가 복종을 맹세했다고 치자. 그때 가서 요리를 제공한다는 약속을 어기진 않겠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맹세하거라!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겠노라고!”
“아, 맹세한다고요.”
부대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취사병인 내 책임.
부하로 들어오게 된다면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거 하나만큼은 제대로 챙겨 줄 생각이다.
“그렇다면…… 후우.”
그녀는 수치심에 몸을 떨며 무릎을 꿇은 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위대한 시조 벨라트릭스의 먼 후예이자, 카르슈타인 혈족의 준남작. 아리엘라 카르슈타인의 이름으로 맹세하노니.”
그녀가 맹세를 입에 담은 순간.
술렁-
주변의 공기가 크게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력의 진동.
그녀의 맹세에 호응한 마력이 크게 일렁이며 나와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 현상의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족의 언어에는 힘이 깃들어 있지.]
이게 그녀가 말한 그 힘.
이제부터 그녀가 입에 담는 맹세는 강제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나이다.”
“받아들이지.”
무릎을 꿇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대답한 순간.
띠링.
[이계의 존재가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권속을 획득합니다.]
[소유중인 권속 (1)]
[뱀파이어 준남작 - 아리엘라 카르슈타인]
[카르슈타인 혈족의 수장, 이자벨라 대공의 선택을 받은 밤의 귀족입니다.]
[혈족으로서의 서열은 말석에 불과하지만,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지닌 권속입니다.]
[권속을 소중하게 대하고, 키워 보세요!]
[당신의 보조에 따라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의!]
[권속이 모종의 사유로 힘을 크게 상실한 상태입니다.]
[권속은 당신의 신체 일부와 같습니다!]
[권속의 상태를 세심하게 신경 써 주세요!]
그녀가 나에게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시스템이 인정했다.
‘게임에서 펫한테나 뜨는 문구 같네.’
그리고.
[업적 : 헤어날 수 없는 맛 (2)]
[요리를 통해 이계의 귀족을 완전히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요리사로서 이룰 수 있는 업적 중에서도 상상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경지입니다.]
[경험치를 대량으로 획득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최상급 식재료 : 잊혀진 성자의 성혈]이 지급됩니다.]
‘업적까지?’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메시지를 읽던 도중.
내 눈앞에 미약한 빛을 내뿜는 새하얀 액체가 담긴 병이 나타났다.
얼마 전에 경험한 [항마의 빛]과 비슷한 느낌의 빛.
그 병을 품 안에 챙겨 넣으며 업적 메시지를 확인했다.
업적의 이름은 헤어날 수 없는 맛.
……(2)
(2)라는 건.
(1)의 업적도 있었다는 건데.
그걸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달성했구나.”
이거, 그거다.
과거.
김 중위를 요리를 통해 굴복시켰을 때 달성한 업적.
[헤어날 수 없는 맛.]
당시의 업적 달성 조건은 ‘요리를 통해 한 사람을 지배하에 둘 것.’
(2)로 넘어오면서 ‘이계의 귀족을 지배하에 둘 것.’으로 조건이 바뀌었나.
조금 더 난도가 올라간 셈이다.
‘잠깐.’
그때 얻었던 보상이 분명.
[최상급 식재료 : 아룡의 심장]이었지.
‘그리고 그건, 능력치 물약의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였을 터.’
그렇다는 건 설마.
[1,000pt를 지불합니다.]
나는 급하게 포인트 상점을 열어 능력치 상승의 물약 하나를 구매했다.
그리고 식재료 감별을 사용하자.
[정체불명의 재료 - ??%]
[아룡의 심장 - 10%]
[정체불명의 재료 - ??%]
.
.
.
[잊혀진 성자의 성혈 - 10%]
‘역시!’
이번 보상 역시 능력치 물약에 들어가는 최상급 재료였다.
아룡의 심장을 포함하면 벌써 재료의 20%가 모인 셈이다.
이 재료들을 모두 모으는 순간.
능력치 물약을 내가 직접 요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 부대의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겠지.
“아…….”
그런 생각에 흥분하고 있자니.
내 앞에 무릎 꿇은 뱀파이어.
아리엘라가 묘한 탄성을 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맹세 따윈 거짓이고 여기서 바로 반란을 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머릿속에서 울리던 상념이…….”
상념?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
"사라졌노라."
그렇게 말하는 뱀파이어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