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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87화 (87/227)

87화 인제군 공략 (1)

길드, [강철 군단]이 자리 잡은 지역.

인제군은 작은 도시다.

군부대가 몰려 있는 강원도.

그중에서도 인제군은 최전방으로써 가장 많은 군부대가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 많은 부대의 위수 지역이기도 했던 탓에.

시골임에도 중심부에는 꽤 많은 건물과 자원이 몰려 있었다.

가장 많은 자원과 사람들이 있는 곳.

즉.

괴물들 입장에서 가장 많은 사냥감이 모여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군내.

지금은 마경이나 다름없어진 장소지만.

저곳이 바로 이 지역의 중심부다.

그리고.

“1번부터 3번대까지. 전원 전투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공병들의 전차와 전투차량도. 모두 배치 완료됐어요.”

그 군내의 주변을.

백 명이 넘는 군인들과 전차, 개조 차량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모여든 병사들의 면면은 꽤 다양했다.

남녀는 물론.

노소조차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인물들.

무기조차 가지각색인 그들이, 검은색 군복을 입고 하나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후우!”

“뭐야. 긴장되냐?”

그런 병사 중 몇몇이 작게 소곤거렸다.

“당연히 긴장되지.”

“몬스터하고 전투가 한두 번도 아니면서. 왜?”

“그건 그렇지만. 시가전은 보병들의 지옥이라는 말도 있잖냐.”

시가전.

건물 하나하나가 적을 숨겨 주는 은신처이자 바리케이드가 되어 주는 환경.

언제 어느 건물에서 적이 튀어나와 아군을 덮치게 될지 모른다.

보병들의 지옥이라 불리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큭큭. 그렇긴 한데. 그것도 평범한 군대일 때 얘기지.”

“뭐?”

“저기 좀 봐.”

긴장 따윈 안 했다는 듯 가볍게 웃는 병사.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쪽 구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뭐가 있길래…… 아!”

“봤냐?”

그곳에는, 배치를 마치고 대기 중인 전차가 한 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남자.

한 손에 긴 사시미칼을 든,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분위기만 보면 그 식칼로 사람 몇 명 담가 봤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칼을 쥔 반대쪽 손에 들린 것은, 신선한 채소들.

“신 병장님이, 요리하고 계신다.”

“……그러네.”

그 말을 듣자.

병사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줄어들었다.

‘신영준 병장.’

솔직히 말해.

423대대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다.

소규모 부대였다 보니 중대와 상관없이 친하게 지내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취사병.

업무적으로 접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까운 기수가 아니라면 엮일 일 자체가 없었던 것.

하지만.

멸망의 날 이후로는 달랐다.

‘비각성자 시절에. 이미 식칼 한 자루만으로 리자드의 목을 베어 넘겼던 사내.’

본인한테 그런 얘기를 하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라고 하지만.

또 부정은 하지 않았다.

각성 후에도 리자드와의 전투에서 고전하는 병사들이 많았거늘.

그걸 각성 전에 해낸 괴물.

그가 근접해서 리자드를 처리해 준 덕분에.

각성법을 깨닫고 빠르게 부대원들을 각성시킬 수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괴물을 가까이에서 죽여야 한다는 발상 자체에 도달하지 못하고, 총알만 허비하다가 전멸하고 말았겠지.

전멸해 버린 다른 많은 군부대와 마찬가지로.

그 후에도 신영준 병장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리자드가 세력을 모아 쳐들어왔을 때는, 부대원들에게 버프 요리를 먹여 격퇴했고.

산맥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몰려드는 괴물한테는 오히려 디버프 요리를 먹여 무찔렀다.

사실.

이때만 해도 요리사로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약탈자 토벌.

모든 정예 각성자가 덤벼도 고전하던 약탈자들의 대장을 식칼 한 자루로 베어 버렸다.

던전 공략.

모든 길드원이 발이 묶인 사이 던전의 심부에 홀로 걸어 들어가더니.

뒤늦게 진입한 병사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

엄청나게 강력해 보이는 보스 몬스터.

그 보스 몬스터가 일격에 목을 베여 만들어진 시체뿐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뱀파이어들의 보스마저 홀로 격퇴하지 않았던가.

신영준 병장의 직업은 요리사.

분명 비전투 계열의 직업이지만.

그럼에도 전투능력마저 격이 다른 수준이라는 게 밝혀진 셈.

‘……솔직히, 같은 인간이 저럴 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안 그래도 전광일 상병 같은 이들은 그를 열렬하게 따랐다.

유약했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 은인이라던가.

거기에 최근에 적대 세력의 노예나 포로로 잡혀 있던 이들.

그들은 군단의 병사들에 의해 구출된 뒤.

아예 신영준 병장을 신봉하는 세력이 되어 버렸다.

그 정도가 꽤 심해서 다른 병사들은 그들을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그마저도 ‘신영준 병장님이 보여 준 능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상황이다.

생존자들이 합류하며 다양한 인간들이 길드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군단의 일인자.

그게 바로.

저 20대 초반의 청년인 것이다.

‘그런 신 병장님이 식칼을 쥐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병사들 사이에 돌던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메운 것은 자신감.

“시가전이 보병들에게 지옥이라고?”

“큭큭. 그러면 오늘 저녁은 지옥에서 먹게 되겠군.”

“저녁에는 또 무슨 요리를 해 주실지 기대되는데.”

그런 그들의 앞에.

[아군 중급 요리사의 스킬이 발동됩니다.]

[오병이어]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대 시가전 특화 코스 요리’가 전 군단원들에게 제공됩니다.]

갑작스럽게 요리가 나타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지만.

이제 이런 일에도 익숙해진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그릇을 받아 들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쇼!!!”””

“오냐.”

그리고.

식사를 마친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을 때.

쿵…….

동시의 내디딘 군홧발의 진동이 지면을 울렸다.

* * *

군단의 본격적인 군내 공략이 시작되었다.

많은 괴물이 자리 잡은 도시.

거기에 대응하는 군단의 전략은 간단했다.

‘총력전.’

한 분대의 병사들이 군내로 진입을 개시했다.

사방에 깔린 것은 아스팔트 건물들.

하나하나가 괴물들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장소였다.

일반적인 시가전이라면 여기서 건물들을 클리어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지.

공략에 걸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병사들의 피로 역시 엄청나게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보자. 여기 2층에 괴물들이 모여 있을 거라고 하는군요.”

“전에 잡아 봤던 놈들이네. 이 근처 건물에서는 거기뿐인 것 같슴다.”

“좋아. 빠르게 정리하고 넘어간다!”

한 장의 지도를 들고 거침없이 진입해 들어가는 병사들.

괴물들의 위치는 이미 완벽에 가깝게 파악된 상태였다.

“정령안이라.”

“신 병장님을 신봉하는 그 여자의 능력이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습니다만.”

지난 몇 주간.

정령안을 지닌 정령사, 정수아가 정령으로 정찰한 결과였다.

과거의 그녀로서는 군내 전체를 정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신영준 병장의 요리를 먹어 가며 눈을 혹사한 그녀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 지역에 정착하는 괴물들에 한해서나 유효하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좀비들만 수천에 가까운 도시.

배회하는 괴물들의 갑작스러운 습격도 대비해야겠지만.

[예민한 청력(열화)]

두두두…….

“3시 방향에서 짐승의 발소리!”

“이쪽으로 오는군. 다들 요격 태세.”

주변을 배회하던 괴물들이 분대를 덮쳤으나.

이미 몇백 미터 밖에서부터 접근을 눈치챈 분대는 적습에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신영준 병장이 병사들에게 먹인 요리의 이름.

[대 시가전 특화 코스]

코스 요리 하나하나가 시가전에 특화된 능력을 제공했다.

능력치뿐만 아니라, 불의의 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이런 특성까지.

그리고.

공략에 투입된 것은 병사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저 건물이다. 통째로 괴물들의 부화장이 된 상태라더군.”

“진입해서 공략하는 건 어렵다. 피해가 클 거야.”

“그럼 뭐.”

두두두두…….

방해되는 물건들을 가차 없이 짓밟으며 전진하는 무한궤도의 소리가 들려 온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육중해 보이는 기갑들.

움직이는 바리케이드로 병사들의 임시 거점이 되어 준 그 기갑들이자, 동시에.

“터트려 버리죠 뭐.”

움직이는 포대이기도 했다.

“발사!”

콰아아아아앙…….

공병들의 개조를 거친 전차의 포격.

마법사들의 전력을 다한 화력 투사.

몬스터들이 완전히 잠식했다는 작은 건물이 박살 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군내 곳곳에서는 포탄과 마법의 궤적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소음을 듣고 적이 몰려올 수 있다는 이유로 억제해 놓은 화력.

하지만 이번에 선택한 것은 총력전.

소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최대한의 화력이 곳곳에서 퍼부어졌다.

그때.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고, 여기 보면 시장이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한 분대가 군내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군단 병력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분대.

“아. 여기가 그 군락이 형성되었다는 그곳이군요.”

“까다롭겠는데요.”

“이쪽은 피하는 게…….”

분대원들이 우려를 표했으나.

분대장을 맡은 병사는 그들을 독려하며 말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건 우리 분대인 것 같거든.”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시장. 넓이도 넓이지만 군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통로도 많아. 여기만 뚫으면 다른 분대들의 진입이 훨씬 편해질 거다.”

“음…….”

“다른 부대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한다.”

그 말에.

병사들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죠.”

“끽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각오를 다진 그들이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아. 김 상병님!”

“어?”

저 멀리서부터.

다른 분대의 병사가 다가오며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는 병사.

문제는.

“너…… 어떻게 그쪽에서 온 거냐?”

그 병사가 나온 곳이.

그들이 목숨을 걸 각오로 공략하려던 바로 그 시장이었다는 것.

김 상병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설마. 너희 분대가 저 시장을 정리한 거냐?”

시장에서 나왔다는 것은 시장의 괴물을 토벌했다는 것.

당연한 생각이었으나.

“예? 아닌데요.”

그의 대답은 반대였다.

“저희 분대가 김 상병님 분대만큼 강한 것도 아니고. 절대 무리죠.”

“그럼 어떻게 저기서 온 거야? 지도에 적힌 정보대로라면 괴물들의 대규모 군락이 있었을 텐데.”

그 말을 들은 병사는 오히려 자기가 궁금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희 분대도 꽤 긴장한 상태로 진입했습니다만. 안쪽에는 괴물 한 마리 없었슴다.”

“뭐?”

“괴물들이 있었던 흔적은 있더군요. 한바탕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 흔적도……. 그래서 저희는 당연히 김 상병님네 분대가 정리해 주신 건 줄 알았습니다. 이 근처까지 진입한 분대 중에서는 김 상병님네 정도밖에 없었으니……. 근데 그게 아니란 겁니까?”

“우린 아니야. 이제 막 어떻게 공략하면 좋을지 얘기하던 중이었다.”

“그럼. 그 괴물들은 대체 누가…….”

“내 말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하는 병사들.

그들이 그렇게 의아해하는 동안.

“명을 마치고 복귀하였나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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