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인제군 공략 (2)
“명을 마치고 복귀하였나이다.”
무릎을 꿇는 금발의 여인.
그리고, 그 앞에는.
“나의 주인이시여.”
전차에 걸터앉은 채.
무심하게 채소들을 손질하고 있는 군인이 있었다.
아니, 둘만이 아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건물의 그림자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존재들.
그들은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냉병기를 든 채, 군인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인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수십의 형체들은 분명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분위기는 여타 군인들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최하급 뱀파이어 나이트]
기묘할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이들.
그들을 향해.
“잘했어.”
한참 재료를 손질하던 내가 말했다.
얼마 전에 토벌에 성공해, 권속으로 들인 뱀파이어.
그녀와 그녀가 만든 권속들은 내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냥 명령만 따르는 게 아니지.’
아리엘라가 가지고 있던 권능 중의 하나.
[그림자 장막]
그림자 속에 그녀만의 심상 세계를 구현시키는 강력한 능력이다만.
알고 보니, 딱히 그 능력을 본인의 그림자에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은 즉시.
‘바로 내 그림자로 옮겨 버렸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세계.
[그림자 장막]은, 지금은 내 그림자 속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그 후로.
아리엘라와 그녀의 권속들은 특별한 명령이 없는 한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지낸다.
나를 그 무엇보다 가까이서 호위하는 친위대가 생긴 셈.
‘조금 아쉬운 점은. 아리엘라가 약화되면서 공간도 작아진 점이려나.’
내가 처음 그녀의 공격을 받아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림자 장막]은 상당한 넓이를 자랑했다.
무려.
‘요새가 자리 잡을 수 있었을 정도로.’
[기동요새 비마나]
내게 소환권만 주어졌다고 생각했던 그 요새는, 내 심상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인 듯.
그림자 장막 속에 끌려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부분도 대단했지만.
내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그 안에 만들어져 있던 한 시설.
[식당]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요리에 버프가 부여되는 시설.’
그녀를 지배하에 둔 뒤.
나는 곧바로 그 식당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었다.
요리할 때마다 그곳을 방문한다면.
내 요리의 효과도 엄청나게 증가할 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또 너무 커서 못 쓴다니. 어이가 없어서.’
[기동요새]는 지나치게 거대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그림자의 장막]을 거의 가득 채웠을 정도니까.
아리엘라의 힘이 약화되어, [그림자의 장막] 역시 축소된 지금.
그 안에 요새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현실에서 소환을 시도할 때와 마찬가지.
공간이 부족한 탓에, 구현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지.
‘조금 아쉽긴 하지만. 뭐.’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을 간편하게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니, 그쯤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주인님?”
“음?”
“어째서 제게 그곳의 정리를 맡긴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간단해. 그 시장은 정리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지만, 병사들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싶은 곳이었거든.”
시장의 천장은 빗물을 막 아주는 큰 차양막으로 막혀 있는바.
햇빛이 들지 않는 장소다.
이들이 활약하기에는 최고의 환경.
“그래서. 피해는?”
“권속 중에서 둘이 피로 돌아갔나이다.”
“둘이나?”
“군락을 형성하고 있던 모체가 꽤 강력하더군요. 제 권속들은 아직 충분히 강해지지 못한 터라.”
흠.
둘이라.
눈앞의 여자.
아리엘라가 이끄는 흡혈귀들은 분명 강했다.
햇빛 아래에서 힘을 크게 잃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늘어나는 속도와 능력을 감안하면, 그런 건 단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둘이나 죽었다는 건.
‘정찰로 알아본 것보다 더 위험한 장소였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뭐.
“그 정도는 금방 채울 수 있겠지?”
“네. 재활용할 쓰레기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딱히.
타격이 크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녀에게는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약탈자들을 사냥해 권속으로 만들라고 명령해 놓은바.
지금 우리가 군내를 정벌하는 이 시점에서도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을 약탈자들이 많았다.
‘평범한 병사들이 죽었다면. 많이 가슴 아팠겠지만.’
이들은 애초에 반쯤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전력.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은 이 아파트로 향해라. 포격을 하기도 애매한데, 전체가 괴물들로 들어찬 곳이야.”
“흐음…… 규모가 상당한 것 같네요.”
“힘든 싸움이 되겠지. 그래서 너희를 보내는 거고.”
잃은 병력은 금방 충당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꽤 험한 취급이었으나.
“혹시 불만이냐?”
“설마요. 오히려 기쁩니다.”
권속이 된 여인.
아리엘라는 군말 없이 명에 복종했다.
“그 마수들의 피를 섭취한다면. 제 힘도 조금은 더 강해질 수 있겠죠. 후후…….”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옅은 웃음을 흘리며 모습을 감추는 아리엘라.
그녀의 뒤를 따라, 건물의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하는 뱀파이어들.
나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벙커에 숨어 지내고 있던 녀석이라 몰랐는데. 생각보다 호전적이야.’
뱀파이어 준남작.
아리엘라.
그녀는 내 권속이 되었고.
내 명령이라면 어떤 사소한 것 하나 거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인격이 말소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뿐.
복종하면서도, 험한 취급에 불만을 표출할 수는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위험한 전장만 골라서 내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격한 전장일수록 기뻐한다.’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다.
강한 적을 상대로는, 질 좋은 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본인과 권속들의 힘을 키울 수 있고.
그녀 스스로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몬스터 답지 않게…… 향상심이 강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녀가 벙커에 틀어박혀 있었던 이유는.
인간종의 무력 시설을 점거하라는 [상념]이, 벙커를 떠나는 걸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던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어.”
저 정도로 호전적이고, 향상심이 강한 괴물.
그녀가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키웠다면.
‘재앙.’
막을 수 없는 대재앙이 되어, 우리를 덮쳤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지금은 큰 의미 없는 가정이지.’
그도 그럴 것이.
그 재앙은 이제. 내 발아래 들어왔으니까.
* * *
그렇게 군내의 정벌이 진행되는 중.
나는 저 멀리 한 건물 앞에 서 있는 병사를 발견했다.
“이상아 조장?”
멍하니 선 채, 건물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이상아 조장이었다.
‘마침 재료 손질도 대충 끝난 참이고.’
나는 전차에서 내려,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뭘 발견했길래 저렇게 멍하니 있나, 싶었던 것인데.
“여기서 뭘…… 아.”
건물 앞에 서자.
그녀가 왜 이곳에 서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월계관 양복점]
양복점.
이상아의 각성자로서의 직업은 [재봉사]
각성하기 전의 직업은, 양복점의 의상 디자이너라고 했던가.
즉, 이곳은.
“제 전 직장이에요.”
멍하니 그 간판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전 직장이라.”
“네. 설마 다시 올 수 있을 줄은 몰랐지만요.”
“우리 부대를 찾아오기 전에는 군내에서 활동했다고 하지 않았나? 몇 번이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 이 근처는 너무 괴물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특히 저기. 저 시장 쪽이요.”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무슨 일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 방금 전에 아리엘라가 토벌한 몬스터 군락 근처로군.’
강력한 몬스터 집단.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을 투입했음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몬스터 군락이 자리 잡았던 장소.
평범한 생존자 그룹을 이끌던 그녀다.
그 그룹에는 각성자의 숫자도 적었던바.
그녀로서는, 이곳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지.
-끼이익.
“들어가 보려고?”
“네. 뭐 안될 건 없잖아요?”
이미 유리문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지만.
그녀는 굳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나 역시 궁금증에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일찍이 저 괴물들이 자리 잡은 탓일까.
안쪽은 생각보다도 더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글쎄.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좀비의 시체 정도일까.
“제가 죽인 좀비네요.”
“……확실히. 목덜미에 가위가 박혀 있군.”
“이 좀비를 죽이고 각성했었죠. 죽일 때는 좀비인 줄도 몰랐지만.”
안쪽을 둘러보던 이상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저한텐 나름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는데. 이렇게 돼 버렸네요.”
“고향 같은 곳이라니?”
“저는 가족들하고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요.”
화목하지 못한 가정.
그녀는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빨리 독립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독립한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그런 그녀를 많이 도와준 것이 바로.
“여기 사장님하고 사모님이셨죠. 저한테 참 정을 많이 주셨는데…….”
“지금은……?”
“초기에는 같이 활동했었어요. 하지만, 중간에 사고로 떨어지고 만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두 분 다 나이도 많고, 몸도 편찮으신 편이었으니…… 아마도.”
“…….”
“그래도 뭐. 이런 세상에서 저라도 살아남았으니. 그거에 만족해야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처 씻어 내지 못한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슬쩍 안쪽을 둘러보자.
밖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에는, 작은 탕비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지금은 썩어 버린 요리들이 보였다.
“저건?”
“아. 사모님이 매일 싸다 주시던 도시락이네요. 직원들한테도 나눠 주셔서, 양이 좀 많죠?”
“다 썩어 버렸네.”
“그러게요. 사모님이 요리 실력이 뛰어나신 편이라. 되게 맛있게 먹었는데……. 아쉽게도.”
슬쩍 그 요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썩어 버린 요리들.
하지만.
나도 이제는 꽤 짬이 찬 요리사다.
원래 어떤 메뉴였는지 알아보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쉽게도, 라.’
이 정도 메뉴라면.
흠.
“정 그렇게 아쉬우면. 내가 새로 해 줄까?”
“……네?”
내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뒤돌아보는 정수아.
“재료까지 완전히 같게 하기는 요즘 상황에선 좀 어렵겠지만. 몬스터 고기 중에 잘만 찾으면 비슷하게…… 아니. 훨씬 더 맛있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여기가 고향 같은 곳이었다며?”
“그건, 그렇죠?”
“다행히 과거형이네.”
과거에는 여기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우리 부대를 제3의 고향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네?”
“하필이면 군대라는 점이 좀 흠이긴 한데…… 나 집밥도 잘하거든. 군대 요리란 게 한식 위주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정수아를 향해.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해준 집밥을 먹다 보면, 여기야말로 진짜 고향이다 싶어질걸.”
“……푸흡!”
나름 진심으로 한 말이었으나.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
“나름 진심이었는데. 너무 웃겼나?”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치고는.
힘겹게 웃음을 참으면서 말하는 그녀.
“너무 요리 위주로 생각하시는 게. 천상 취사병이시구나, 싶어서요.”
“…….”
제기랄.
나도 모르게 모든 관심사가 요리 쪽으로 치우쳐져 버렸나.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푸흐흐….”
그래도 뭐.
울적하던 부대원의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 걸 보면.
그걸로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네요. 고향이라.”
웃음을 멈춘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원래 이 양복점도 진짜 고향은 아니었으니까. 부대를 고향처럼 여겨도 문제는 없겠네요.”
“사실 고향이란 게 그렇게 갈아 끼워지는 건가, 싶기는 한데.”
“에이, 뭔 상관이래요.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거지 뭘.”
뭔가 홀가분해진 것인지.
가볍게 말하는 그녀.
“신경 써 주셔서 고맙네요. 군단장님.”
“그냥 해 본 말인데, 신경은 무슨.”
“멋쩍어 하시는 거 봐.”
잠깐 둘러보기만 할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홀가분해진 발걸음으로 양복점을 나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고향이라…….’
그녀에게는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내게도 고향이란 꽤 중요한 키워드기는 하다.
‘나뿐만이 아니지.’
대부분의 부대원은 타지인이니까.
자신들의 고향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족들은 살아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진실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게 될 경우가 많겠지.
지금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보다는 스러져 간 이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
그럴 때.
군단이 그들의 제2의 고향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 한 것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양복점을 나서자.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운 전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콰앙…….
-뚫렸다! 진입, 진입!
-여기, 화력 지원 바랍니다!
마법사들의 마법과 포탄의 궤적이 도시 곳곳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적이 괴물로 바뀌었을 뿐.
들려오는 소리는 전쟁 영화에서나 보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시야의 끝에서는, 이 지역의 중심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리적인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군청.’
낡고, 오래됐지만.
그 무엇보다 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
우리의 목적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