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인제군 공략 (3)
군청 주변에 모인 병력들.
군내 정벌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100% 토벌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일.
화려하게 병력을 밀어붙이며 뚫고 들어오긴 했다만.
‘실제로는 3분의 1도 정리하지 못했겠지. 아마.’
우리 부대에서 가장 빠르게 군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탔을 뿐이다.
우리 목적은 점령지를 늘리는 것
그 기준이 뭘까 고민했다.
그 결과 나온 결론은 하나.
‘상징성.’
산맥의 부대는 그렇게 크지도 않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를 제외하면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리자드들을 박멸했다.
그로써 시스템으로부터 우리의 점령지임을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진 장소를 점령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인제군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라고 한다면.
‘군청밖에 없지.’
내 경험상.
시스템은 인간의 사회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여길 점령함으로써 뭔가 달라질 것이다.
“영준아.”
“어.”
“우리 쪽 피해 상황을 보고하마.”
그럼에도 피해가 상당했다
일단 전투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상자가 3할이 넘었다.
‘대비한다고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병사들의 피해만을 보고하는 것이라 그나마 적은 거지.
험하게 굴린 뱀파이어들은 열 명 넘게 죽어 나갔다.
기름 먹는 괴물인 전차들은 그동안 모은 기름을 전부 쏟아부었음에도 불구.
이제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고.
만약 군청을 공략해도 점령에 실패한다면.
그때는 정말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가면서 공략해야 할 것이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안쪽은 방울이가 보지 못하더라구요.”
“흠.”
아쉬운 점은 정수아의 정찰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
군내에서 몇 군데 그런 곳이 있었다.
정령의 접근을 차단할 만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지역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며 왔지만
군청 공략은 피할 수 없는 일.
“앗, 신 병장님.”
“조심하십시오.”
나는 가장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머리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칵칵칵! 바보 같은 인간!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들어왔다!”
“병신! 맛있게 먹어 주겠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두 개의 형상.
‘수, 숨어 있던 거라고?’
저 괴물들의 말대로.
난 녀석들이 숨어 있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소리를 숨길 생각도 안 하고 있던 괴물들이다 보니.
그냥 원래 거기 있는 놈들인가 했지.
“아니. 숨어 있다고 할 정도면 숨소리 정도는 죽였어야지.”
“케엑?”
서걱-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휘두른 칼날에 고기가 손질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거슬리는 감각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강한 괴물은 아닌 건가.’
바닥에 떨어진 괴물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녹색 피부의 난쟁이 두 마리.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작은 뿌리 고블린]
[숲속에서 주로 활동하는 고블린의 아종입니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높지 않은 대신 숲속의 지형을 이용한 집단전에 도가 튼 부족으로서, 아쉽게도 사냥 난이도에 비해 살점이 많지는 않아 썩 선호되는 재료는 아닙니다. 손질을 위해서는 우선 등의 척추뼈를 중심으로-.]
과연.
본래 숲속에서 활동하는 괴물들.
어쩌다 이 콘크리트 도시에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래의 집단전 능력은 없다는 거다.
“진입, 진입!”
“군내 진입에 너무 시간이 걸렸어. 빠르게 정리한다!”
내 뒤를 이어 진입한 병사들도 꽤 쉽게 괴물들을 제압해 나갔다.
긴장했던 군내 정벌의 최심부치고는 꽤 싱겁긴 하지만.
토벌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 녀석들도 말을 하는군.’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어서인지 병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하고 있는 건지.
애초에 저 녀석들이 진짜로 한국어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꽤 중요했다.
슬쩍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
그 안에서 내 시선을 느끼고 움직이는 존재가 느껴진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조우한 ‘대화가 가능한 괴물.’
그리고 그 녀석은 내 [권속]이 되었고.
그 결과.
꽤 쓸 만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녀석들도 너 같이 권속으로 삼을 수 있을까?”
-저런 하등한 종족과 같은 취급을 하시는 건 조금 서운한데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멸망의 날’ 때 이미 인류의 대부분은 절멸했다.
남아 있는 생존자는 이전의 절반도 되지 않겠지.
‘생존자들이 합류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생존자들만으로 세력을 구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 칭기즈 칸이 정복 전쟁을 벌일 당시.
부족한 병력은 몽골인이 아닌 정복 지역의 노예들로 채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경멸스러운 몬스터라고 한들.
쓸 만하다면, 노예병으로 기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토벌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군청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카악! 이 인간들! 졸래 세다!”
“미친! 개짜증!”
어눌한 말투로 경박한 소리를 지껄이는 괴물들.
그 중심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복색을 한 고블린 한 마리가 있었다.
“카악!!! 제대로 못 하냐! 쓸모없는 놈들!”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른 고블린들을 독촉하는 녀석.
[식재료 감별]
[중급 고블린 주술사]
아마도 저 녀석이 이곳 고블린들의 수장.
정령을 쫓아낸 것도 녀석이겠지.
물론.
그래 봤자 고블린.
“케, 케에에엑……!”
병사들에게 제압되어 바닥에 얼굴이 처박히는 녀석.
화려한 장신구들도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거, 거기 인간!”
그때.
녀석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사, 살려 줘라!”
“……?”
“나! 눈치 좋다! 너! 이 인간들 대장이다! 케륵!”
“허.”
“너 말 한마디면 다 듣는다! 맞다!?”
군청 내에서의 전투에서 딱히 전투 지휘를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대충 눈치로 내가 대장이라는 걸 때려 맞췄다는 것.
‘괜히 주술사가 아니란 건가?’
우리 부대의 무당하고 비슷한 선견지명 같은 게 있나 보지.
점점 더 흥미가 생기는데.
“케륵. 나 살려 주면 좋은 거 많다!”
“좋은 거?”
얌전히 굴복한다면 쓸 만한 병력을 얻을 수도 있는 일.
녀석이 말하는 얘기를 듣기 위해 가까이 발을 옮긴 순간.
-주인님, 조심……!
눈앞에.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케케케! 이걸 속냐! 병신!”
병사들에게 제압당한 상태였음에도 마법은 발동할 수 있었나 보지.
아마도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파이어볼과 비슷한 마법.
“케켁! 적 대장 뒈졌다!”
“역시 주술사!”
“크켁. 믿고 있었다!”
“반격의 서막……!”
신나서 떠들기 시작하는 고블린 녀석들.
그 모습을 보니.
“……하아.”
“케륵?”
내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기껏 쓸 만한 병사들을 얻을 수 있나 싶었는데 말이지.”
[특성 - 중급 화염 친화]
[개조를 거친 하급 재봉사의 강철 가죽 지휘 전투복]
요리사는 불과 친하다.
요리를 통해 능력치도 뻥튀기가 된 지금.
이 정도 불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지.
“케, 케륵. 미안하다.”
“넌 안 되겠다.”
“항복! 굴종! 충성충서어엉!!!”
이제 와서 바닥에 몸을 숙이는 녀석.
하지만.
주인을 무는 개는 필요 없다.
서걱-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아쉽게도 종의 지도자급은 아닌 건지, 업적 달성 등의 메시지는 없었다.
“신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멀쩡해.”
“예. 그럼 이 괴물 녀석들은.”
“다 처리해.”
“예! 얘들아! 남기지 않고 처리하란다!”
“케륵!!! 살려 줘라!”
남은 고블린들이 병사들의 손에 처리되어 갔다.
난 구석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봤다.
-주인님.
‘응?’
그림자 속에 있던 뱀파이어 준남작이 말을 걸어왔다.
-이미 권속이 되어 버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뭔데.’
-마물들을 휘하에 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마물…….
몬스터들을 말하는 거겠지.
-마력을 타고난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강합니다. 힘에 굴종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죠.
‘노예병…… 같은 건 없다는 건가?’
-네. 제 맹세처럼 강력한 속박이 가능한 게 아니면, 힘으로 억눌러 봐야 결국 배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일걸요?
흠.
몬스터 노예 병단이라는 원대한 꿈이 무너지는 느낌인데.
‘내 요리로 꼬드겨도 안 되려나?’
-으음. 주인님이 내려 주시는 은총은 지고의 행복을 가져다주긴 하지만요…….
내 요리의 맛을 아는 인물이다 보니.
간단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
-제 생각에는 마물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 같네요.
‘성향이라니?’
-호전적이지 않은 마물이라면 은총을 통해 호감을 얻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저런 마물들은 대체로 호전적이거든요.
하긴.
부대에 쳐들어왔던 리자드들은 죽기 직전까지 우리 병사들을 물어뜯으려고 난리였지.
개인 생활을 하며 영역을 지키기만 할 뿐이었던 ‘강철을 먹는 맥’.
까망이 같은 경우가 호전적이지 않은 사례겠지.
-이번에는 애초에 거래부터가 틀어졌지만. 만약 거래를 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저 녀석들이 주인님의 은총을 맛보게 된다면, 협력해서 그 요리를 받아 내기보단, 어떻게든 배신해서 주인님을 은총 공장으로 만들 계획을 궁리하겠죠.
‘은총 공장…….’
꽤 참신한 단어 조합인데.
아무튼.
지나가는 몬스터를 붙잡고 요리를 먹여서 냅다 권속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띠링.
[ROK.17 지역의 영토 ‘소도시 (3)’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영토의 지배권이 유지되는 동안, 추가적인 ‘점령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길드의 점령지가 확장되었습니다!]
[선정 가능한 간부의 인원이 ‘1’ 늘어납니다.]
‘역시!’
눈앞에.
기대했던 문구가 나타났다.
“어, 지배권?”
“이게 무슨 소립니까?”
몇몇 병사들은 그 메시지를 보고 의아하다는 태도였다.
대부분이 최근에 합류한 이들.
반면.
“이거 오랜만에 보는 문구군요.”
“캬. 그게 언제 적 일이야.”
대대부터 함께해 온 병사들.
그중 몇 명은 그립다는 듯 말했다.
‘정말 오래 걸렸다.’
처음 이 문구를 본 것은.
군세를 이끌고 온 치프틴의 병력을 무찔렀을 때.
[산맥]의 지배권을 얻었던 날이었다.
당시 부대의 각성자는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
이 문구를 본 적이 있는 각성자가 적을 만도 하지.
여전히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병사들을 향해.
이민재 병장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
“우리 전력이 인제군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라고 판단된 거지.”
리자드들을 제외하면 잡다한 몬스터밖에 없던 [산맥]과는 달랐다.
다양한 생존자 그룹이나 약탈자들.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해 몰려든 몬스터와 괴물.
그들에게 죽어 도시를 배회하는 좀비들.
강원도에 넘쳐 나는 군부대들을 점거하고 있을 괴물들까지.
그 녀석들을 모두 제치고.
이 근방의 ‘지배 세력’으로 인정받은 셈.
“하하…… 그래도 마지막엔 꽤 쉬웠던 것 같은데요.”
“그러게?”
“군내 공략도. 뭐 100% 완료한 건 아니지만. 엄청 고생할 줄 알았는데 성공했잖아.”
“처음 부대를 내려와서 군내를 볼 때만 해도 저기는 절대 공략하지 못하겠다 싶었는데…… 운이 좋았네.”
운이 좋았다니.
난 고개를 저으며 병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운이 좋았던 게 아니야.”
산맥을 내려올 때.
우리 부대가 생존할 수 있었던 점에는 운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내 각성은 그렇다 쳐도, 어째서인지 좀비도 나타나지 않는 환경이었으니.
하지만 지상에서는 다르다.
운은 무슨.
“우리가 그만큼 노력했고, 강해진 거다.”
“아…….”
“그렇군요. 신 병장님 말이 맞슴다.”
당장 이 군청만 해도.
처음 부대를 내려왔을 때의 우리였으면 엄청나게 고생한 끝에 공략할 수 있었을까 말까 한 수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나타난 것뿐.
[강철 군단]
[ROK.17 지역의 지배 영토]
[산맥 - 3%]
[소도시 (3) - 3%]
소도시 (3)의 비중은 3%.
넓이로는 산맥이 훨씬 더 넓을 테지만 그럼에도 이 수치라는 건.
역시 기존의 문명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거겠지.
‘드디어 다음 단계로 넘어왔다.’
인제군을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했다는 것.
즉.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차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차는 물론. 전차가 이동할 수 있는 지하철도 확보했다.’
이렇게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언젠가.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으로 도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