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90화 (90/227)

90화 재활용 쓰레기 (1)

인제군의 점령을 완료했으나.

우리 부대의 일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산맥도 그렇지만. 점령했다고 해서 그 지역의 괴물들이 전멸한 것도 아니니까.”

점령이란 가장 큰 영향력을 의미할 뿐.

인제군 내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괴물이나 적들이 남아 있었다.

애초에 군내도 완벽하게 청소하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니다.

군청까지 이어지는 가장 빠른 길을 뚫고 들어갔을 뿐.

우리가 처리한 부분은 전체의 3분의 1도 채 안 되겠지.

‘거기에. 군부대들도 있으니까.’

일반적인 괴물들보다도 강력한 녀석들만 출몰한다는 군부대.

그리고 인제군은 대한민국의 군부대 대부분이 몰려 있는 강원도.

그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해 있다.

군부대가 그야말로 ‘깔려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다는 뜻.

그중에는 우리 부대에 충분히 위협적인 괴물들도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그 괴물들은 어지간하면 영역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려나.’

바로 그 괴물 중의 하나였던 아리엘라의 말에 의하면.

군부대를 점령한 괴물들은 사실상 어떤 상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태라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점거하고 있는 ‘인간종의 무력 시설’을 지키는 데 전념할 뿐.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바깥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니,

군부대들은 천천히 탈환해 나가야겠지.

어쨌든.

여전히 괴물들이 넘쳐 나는 도시인 건 변함이 없다 보니.

부대원들은 계속해서 주변을 정찰하며 괴물을 사냥했다.

정찰에 포함되지 않은 비번 때는 각자 알아서 능력을 단련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전사조 같은 경우는 부대의 체육관에서 서로 스파링을 하며 전투 감각을 단련한다던가?

내 경우에는 요리 연구이다.

요리를 끝내고 시간이 남을 때면 부대원들이 구해 온 레시피 북을 펼친 뒤.

새 레시피를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지금은.

대대장실에 앉은 채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최근에 [대규모 조리]라는 재능을 각성한 결과.

부대원들의 식사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역시 잘라야 하려나?”

덕분에 여유 시간이 너무 남아 버렸거든.

가끔은 이렇게 딴생각을 할 여유도 생긴 것.

“씁. 너무 길긴 하네.”

지금 하는 딴생각은 머리카락에 관련된 것.

‘멸망의 날’은 내가 전역하기 며칠 전이었다.

우리 부대는 그다지 빡센 부대도 아니었던지라.

전역을 며칠 앞둔 내가 은근슬쩍 머리를 기르는 것 정도는 용인해 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인이 보기엔 영락없는 빡빡이 군바리 수준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좀 심하다.

‘몇 개월을 전투와 요리만으로 보냈으니, 어쩔 수 없지.’

머리를 자를 여유 따윈 없었단 말이지.

그러다 보니 거의 어깨까지 오게 된 머리.

나 말고 다른 병사들도 비슷한 고민이 있던 것 같다만.

특이하게도 전사조의 경우는 전부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저희는 아무래도 근접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많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그렇게 가까이에서 싸우다 보면, 적한테 머리카락을 붙잡힐 때도 많거든요.

-아.

-짧게 치는 편이 어울린다든가 뭐 그런 건 아니고요. 지극히 실전 지향적인 이유인 거죠. 스포츠 컷 정도야 저희끼리 칼 들고 잘라도 되는 거니 관리도 편하고. 뭐 나쁘지 않습니다. 신 병장님도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잘라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면서 자신의 칼을 들어 올리던 병사.

그 손에 들려 있던 것은,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대검이었다.

-아, 아니. 마음만 받으마.

-아쉽군요. 제가 이걸로 머리 참 잘 자르는데.

-……머리카락 얘기 맞지?

-예? 그거 말고 자를 게 있습니까?

그때는 기겁하며 거절하긴 했다만.

생각해 보면 꽤 기특한 이유란 말이지.

나도 전투 시에는 근접전으로 싸울 때가 많았다.

게다가 요리사들도 대부분 머리는 짧게 자르지 않던가.

나 역시 다시 빡빡이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음! 대충 정돈만 하자!”

전역까지 이틀 남았던 나다.

다시 빡빡이로 돌아가라는 건 너무 잔인한 얘기잖냐.

‘그러고 보니. 이상아 부대장이 머리를 잘 자른다고 했지.’

‘재봉사’로 각성한 그녀는 [가위 숙련]을 지니고 있다.

좀비의 머리를 싹둑 해 버린다는 의미로도 잘 자르긴 하지만.

이발 쪽으로도 꽤 조예가 있다고 들었다.

재봉사로서 부여받은 특성.

본래라면 머리를 손질하는 쪽과는 거리가 있어야 할 것 같다만.

‘나도 요리사로서 받은 단도 숙련으로 괴물들 좍좍 베고 그러는데 뭐.’

그녀가 이발에 조예가 생겼다 해도 이상할 건 없지.

나중에 그녀한테 머리 손질을 부탁해 보든가 해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신 병장님?”

병사 한 명이 대대장실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이민재 병장님이 잠깐 마을 쪽으로 와 달라고 하십니다만.”

“민재 형이?”

어차피 지금은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고 하니.

난 병사를 따라 밖으로 이동했다.

부대의 정문을 나와 밖으로 이동하자.

그곳에는 작은 마을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온통 논밭뿐이던 군부대.

그나마 가까운 건물이라고 해 봐야 멀리 떨어진 농막이나 창고 정도였으나.

‘이 정도면 그래도 살 만해 보이네.’

지금 부대 근처에 만들어져 있는 것은 잿빛 건물들이었다.

근처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대가를 받아 만들어 준 집들이다.

철로 만들어진 건물들.

본래라면 주거용으로는 썩 훌륭하지 않은 소재였겠지만.

[식재료 감별(강화)]

[‘맥’의 마력을 머금은 강철]

까망이의 마력으로 강화된 자재들.

거기에 공병들의 손까지 더해지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차량도 맨손으로 뜯어 버리는 괴물들을 상대로도 안전할 정도로 튼튼한 것은 물론.

어떤 작용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온, 방한 효과도 있다고 한다.

그 근처를 걸어가자.

“오. 취사병 총각 왔는가.”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해 왔다.

“충성 충성. 잘들 지내셨습니까.”

“우리야 자네들 덕에 잘 지내고 있지.”

처음 생존자들이 주변에 정착하게 된 후로 꽤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에 소문을 듣고 모여든 이들이 꽤 많았다.

‘이제는 주변 마을의 인구가 군단 인원수랑 비슷할 정도니까.’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 길드의 보호를 받기로 한 이들.

참고로 그 대가는 대부분 ‘농부’ 각성자인 철욱의 일을 도우며 받은 식량들이다.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야.”

농사일도 쉽지는 않을 테니, 여유로운 삶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죽을 걱정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우리 부대에 대한 호감도는 대부분 매우 높은 상태이다.

“김 중위님에게도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고 좀 전해 주게.”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대가만으로 우리를 지켜 주기로 하셨으니. 그분이야말로 위인이시지.”

다만.

이들은 여전히 김 중위가 우리의 보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하. 굳이 제가 전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 마음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얼마 전.

이 부분에 대해서 김 중위가 말을 하기도 했다.

-영준아. 솔직히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안 되겠니.

-예? 뭐가요.

-네가 나한테 명목상의 대대장 자리를 맡긴다고 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다른 군부대와 마주하거나 할 때 내 직위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을 테니까. 나름대로 말빨에도 자신은 있는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슬쩍 한숨을 내쉬는 김 중위.

-차라리 고생을 하면 고생을 하지. 저 사람들을 보호하기로 결정한 건 영준이 너인데, 내가 감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잖아. 이건 너무 부담이 커.

그 말에.

나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나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다 칭찬만 하고 있던데 부담스러울 건 뭡니까.

-차라리 욕을 하면 참고 말지……!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 중위도 할 말이 명확한 듯.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칭찬이니까 더 부담스러운 거다.

-흐음.

-다른 군대들도 전멸한 게 확실한 상황이니 내 직위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슬슬 네가 대외적으로 나서도 되지 않을까? 뭣하면, 네 군인으로써의 직위를 하사로 올리고…….

음.

크게 틀린 말은 아니긴 했지만.

-귀찮은데요.

-그, 그러냐.

지금이야 약간은 여유가 생겼다지만.

애초에 김 중위에게 저런 역할을 맡긴 이유는 대외적인 지위 문제뿐만이 아니였다.

‘내 일을 좀 덜려는 속셈도 컸지.’

안 그래도 바쁜데.

대외적인 대장 역할까지 하라니, 너무 귀찮잖냐.

-저도 영준이가 대장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무책임한가? 싶었으나.

민재 형이 내 말을 거들었다.

-위험한 세상이니까요.

-그거랑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

-만약 우리를 적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대장을 노릴 겁니다. 저번 뱀파이어 토벌 때도, 최근에 만난 고블린도 그랬죠. 그런 위험한 역할에 진짜 대장을 올려놓을 필요는 없다 봅니다.

민재 형의 말인즉.

-김 중위님이 내 그림자 무사가 되어 줘야 한다는 건가?

-……민재야. 그 말은. 나는 죽어도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죽어도 된다는 거까진 아닙니다. 김 중위님도 중요한 인력이니까요. 하지만, 이왕 죽을 거면 영준이보다는 김 중위님이 죽는 게 낫긴 합니다.

-…….

-어차피 길드원들은 영준이가 진짜 보스라고 다 알고 있잖습니까. 길드의 상태창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길드원들 사이에서 혼동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외부인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김 중위님에게 간다고 해서 딱히 나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김 중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해도.

그런 이가 만약 길드원이 된다면 ‘사실은 그게 신영준이 한 일이었구나.’ 하고 알게 될 테니.

외부의 평가가 긍정적이기만 한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김 중위님이 할 일은 군단의 대외적인 지휘관으로서 이미지 관리를 잘하는 겁니다.

-후우. 알겠다. 그나마 자신 있는 게 정치질이나 이미지 관리니까.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뭐 그렇게 돼서.

여전히 외부에는 김 중위가 대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 중위는 종종 마을을 순찰하며 소통까지 한다고.

내가 할 일이었으면 끔찍하게 귀찮았을 일.

‘김 중위에게 떠넘겨서 천만다행이지.’

어쨌든.

우리 부대 근처에 인간 사회를 재건한다는 계획.

그 계획은 꽤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이런 일에는 언제나 부작용도 있는 법.

“크, 크윽……!”

“움직이지 마, 인마.”

나를 부른 민재 형이 있다는 곳으로 이동하자.

한 남자가 병사에게 제압당한 채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래.”

“오. 영준이 왔냐.”

“구, 군인분들! 정말 오해입니다!”

오해고 뭐고.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민재 형을 바라보자.

“이 남자. 약탈자였다는 의심이 있다.”

“뭐?”

“최근에 합류한 생존자 중 누군가가 은밀히 와서 말해 주더군. 이 남자가 자기들을 공격했던 약탈자랑 똑같이 생겼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전 억울하다고……!”

“그래서 제대로 알아보려고 접근했더니, 우리 병사들을 공격하고 도망치려고 했지? 그것도 억울한가?”

“그, 그건. 갑자기 주변에 모여드니 당황해서 실수를…….”

흠.

대충 상황은 알겠다.

“너희들은 일단 업무로 복귀해.”

“예?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 이 녀석은 나랑 민재 형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음……. 신 병장님이라면 위험한 상황이 나올 것 같지도 않으니. 알겠습니다.”

일단 민재 형을 제외한 병사들을 해산시켰다.

“아저씨는 저희 좀 따라옵시다.”

“어,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진짜 결백하시다면 별문제 없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남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주변에는 민재 형과 나뿐.

이 남자가 약탈자 출신이라는 근거가 있고.

하지만 본인은 결백을 주장 중이다?

그러면 뭐.

쉽게 알아볼 방법이 있지.

“자. 아~ 하세요.”

“그으읍.”

남자의 입을 강제로 벌린 뒤.

언제나 들고 다니는 사탕 한 알을 먹었다.

[중급 요리사의 솔직한 감정의 알사탕]

“자. 솔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우리 부대를 찾아오신 이유부터.”

“최, 최근에 안 좋은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효과는 직빵이었다.

곧바로 누구보다 솔직한 성격으로 변해 버린 남자.

그런데.

안 좋은 소문이라니?

“무슨 소문이요?”

“그게 아무래도, 약탈자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 같다고…….”

약탈자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이들.

……음.

뭔가 짐작이 좀 가는데.

‘그게 벌써 소문이 돌 정도가 됐나.’

밖을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소문은 참 빨리도 돈다 싶었다.

“그 사냥꾼들은 너무나도 강력한 존재들이라. 꽤 세력을 구축한 그룹도 속절없이 사라져 나가는 것 같더군…….”

“큼. 그래서요?”

“난 안 그래도 그룹 내에서의 권력 싸움에도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가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지. 그 소문의 사냥꾼들한테 사냥당해 죽거나, 아니면 그룹의 권력 싸움에서 내쫓겨서 길거리에서 말라 죽거나. 둘 중 하나……. 그 와중에 이곳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자기가 약탈자였다는 건 너무 자연스럽게 넘어가네.

“어떤 호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무상에 가까운 대가만으로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허어. 그럼 이 마을에 온 다음에는? 마음 다잡고 착하게 살려고 하셨습니까?”

혹시 그런 거였다면.

한 번은 봐줄 용의도 있었다만.

“내가 미쳤나? 마음을 다잡기는 무슨.”

아쉽게도.

개과천선한 악인은 아닌 모양.

거기에 다음으로 내뱉는 말이 가관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야. 빛이 커져 나갈수록 어두운 면도 커지는 법이지……. 이곳의 사회가 아직 초창기인 만큼. 빠르게 이곳에 섞여 드는 데 성공한다면 그 어두운 면을 선점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지.”

“……아. 그런 생각을 하셨구나?”

“흐흐. 군인 놈들의 시선만 잘 피한다면 몰래몰래 세력을 키우는 건 어렵지 않아.”

“뭐. 그렇게 힘을 키웠다 치고. 그다음은?”

“우선은 나를 내쫓으려 한 녀석들에게 복수를 해 줘야겠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사회가 무너지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멸망한 사회의 잿더미 위에 새로운 사회가 생겨나고 있어. 나는 그 사회의 어두운 면…… 암흑가의 제왕이 될 거다.”

꿈이 꽤 거창하시구먼.

뭐.

이 정도면 들을 건 다 들은 거 같네.

“그렇다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군.”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썹 사이를 매만지며 얼굴을 찡그리는 민재 형.

혹시나 싶어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식재료 감별(강화)]

[최하급 건달 Lv. 9]

확인해 본 결과.

이래 보여도 일단은 각성자였다.

레벨도 9 정도로 나름 준수한 편이다만.

쓸 만한 스킬이나 특성을 가진 건 없어 보였다.

“주변에 사회를 만든다는 건 좋지만, 이런 녀석들이 얼마나 더 들어올지……. 골치 아프군.”

“뭐. 어느 정도 부작용은 예상했던 부분 아니겠어.”

“일단 이 녀석의 처분은…….”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움찔.

그 말을 들은 민재 형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생각하는 그 처분이냐.”

“음. 아마도.”

“……후우. 그래. 그게 이득이겠지.”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 형.

“일하자. 나와.”

내가 바닥을 탁탁 두들기며 말하자.

“네. 나의 주인이시여.”

거기에 답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뭐, 뭐냐 저건!”

자칭 미래의 암흑가의 제왕님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암흑가를 먹겠다는 사람치고는 담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닌 것 같네.

“사랑하는 나의 주인님. 또 은총을 내려 주시기 위해 불러 주셨는지?”

“밥 시간 아직 멀었다.”

“아, 넵.”

귀족급의 뱀파이어들만이 가진다는 능력 중의 하나.

[그림자의 장막].

그림자 안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다.

얼마 전에 나를 끌고 들어갔던 어둠뿐인 공간이 바로 그것.

원래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 속에 만든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딱히 본인의 그림자에만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니라고 하길래.

지금은 내 그림자 속으로 옮겨 간 상태였다.

밤에는 약탈자들을 사냥하고.

활동하기 힘든 낮에는 내 그림자에 복귀하여 호위 겸 휴식을 취하도록 명령해 놓은 상태이다.

그녀의 권속들도 부대에 정식으로 합류한 것은 아닌지라.

기본적으로 낮에는 저기서 자고 있다.

“애초에. 무슨 얘기하는지도 듣고 있었을 거 아냐? 이 남자다.”

“아. 네. 웬 벌레 한 마리가 있긴 하군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

정말로 벌레를 보는 것 같은, 경멸이 섞인 표정이었다.

“너무 하찮은 존재라 눈치채지 못했네요.”

이 녀석을 굴복시키고 난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에 내게 종속된 상태가 익숙해진 걸까.

원래의 성격이 조금씩 보일 때가 있다.

오만하고.

강압적이고.

인간을 벌레쯤으로 여기는 녀석.

그러나.

“말 이쁘게 하랬지.”

“힉. 죄송합니다!”

시스템이 인정한 [권속].

원래 성격이 어떻든 간에 명령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이 녀석. 레벨은 그럭저럭인데, 인간으로서는 쓰레기야.”

“흠. 재활용하기에는 적당하겠네요.”

“데려가라.”

“명령에 따르겠나이다.”

최근의 전투에서 권속을 꽤 잃었으니까.

그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제격이겠지.

“……주인님의 동료분이 보시기에는 좋지 않을 광경일 듯하니, 이 남자는 따로 데려가도록 하지요.”

그 와중에 민재 형은 그녀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곧 자신의 권속이 될 남자와 달리, 민재 형은 주인인 내 동료.

그녀도 눈치가 보이는 듯, 남자를 권속으로 만들기 위해 남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영준아.”

그 모습을 보고 민재 형이 말했다.

조금은 꺼림칙한 태도로.

“일단. 난 네 선택을 존중한다. 내가 겪어 온 바로는, 너는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해 왔으니까.”

“갑자기 칭찬하니까 뒷말이 무서운데.”

“하지만.”

작게 한숨을 내쉬는 민재 형.

“저 여자를 부하로 삼는 게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을지, 나는 조금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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