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재활용 쓰레기 (2)
“저 여자를 부하로 삼는 게 정말 올바른 선택이었을지, 나는 조금 의문이 든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민재 형.
음.
솔직히.
이런 반응도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요리를 만들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이제 더 나아가서 인간을 잡아먹은 괴물을 부하로 쓴다고 하니.
반발이 없는 게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민재 형은 그런 것보단 실리를 추구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반응이 민재 형 쪽에서 나올 줄은 몰랐던 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뱀파이어들과의 교전에서, 우리는 부대는 산에서 내려온 뒤 첫 전사자가 발생했지.”
“음.”
“그때 많은 부대원이 슬퍼했다. 곧바로 장례가 치러졌고…….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거기서 가장 크게 슬퍼한 건 바로 너였지.”
민재 형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꽤 날카로웠다.
꽤 생소한 감각이었다.
“그 장례를 치르게 된 주범이 바로 저 괴물이고. 너, 설마 그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부대 시절부터 나를 가장 지지해 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민재 형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경계심.
‘민재 형이라면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실수했나.’
우리 부대의 간부 중.
실리를 가장 우선으로 추구하는 이를 꼽아 보라고 하면, 이민재 병장과 서수혁 상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저번에 겪어 봤던 대로, 서수혁 같은 경우에는 극단적으로 실리를 추구하지만,
민재 형은 조금 달랐다.
‘이득을 추구하면서도, 정에 약해.’
이득을 위한 비정한 선택과 손해를 보는 인간적인 선택.
그 갈림길에 섰을 때.
민재 형은 내게는 전자를 권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내가 후자를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부대에서 2번째로 각성한 인물.
머리도 좋은 양반이고.
나름 카리스마도 있다.
여차하면 자신이 부대의 대장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을 테지.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를 대장으로 만든 게, 바로 이 형이란 말이지.’
심지어 내 동의도 없이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 역시 저런 성향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머리로는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정을 추구하니.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꽤 머리 아픈 일.
그렇기에, 선택을 내려야 하는 자리는 믿을 만한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은 냉정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선택지만 제안해도 될 테니까.
‘지금 반발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
우리 부대원들을 살해한 괴물.
그런 괴물을 쓸 만하다는 이유만으로 부하로 두는 것이 옳은 일이냐.
보통이라면 내게 실리를 추구할 것을 권했을 테지.
하지만 정말로 내가 실리를 추구해 뱀파이어들을 수하로 들인 모습을 보자.
막상 거기에는 반발하는 것이다.
딱히, 비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그런 딜레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다만.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모를까.
‘우리 부대원들을 죽인 괴물이다.’가 이유의 전부라고 한다면.
“죽은 녀석들은 죽은 녀석들이야.”
내가 해 줄 답은 하나뿐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해. 다른 산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면 모를까. 죽은 녀석들을 신경 쓰다가 손해를 볼 수는 없지.”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저 녀석은 우리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실제로 경험해 보기도 했잖아?”
아직 부대원들 대부분은 그 ‘뱀파이어 여왕’이 내 권속이 되었다는 걸 모른다.
민재 형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민재 형은 지난번 전투에서 그녀와 그 권속들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알고 있었다.
“부대원들을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저만한 전력을 포기하자? 다른 부대원들의 생존은 고려하지 않은 제안 같은데.”
“강력한 괴물이었으니 능력이 쓸 만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녀석의 본질은 인간을 먹이로 보는 괴물이야. 아까도 봤잖냐? 그 남자를 벌레처럼 보는 거!”
민재 형은 자신이 흥분한 것을 눈치챈 듯.
잠시 얼굴을 쓸어내린 뒤 말을 이었다.
“병사들이 저 괴물들을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을리가 없다. 오히려 집단에 균열을 일으키는 씨앗이 될 수도 있겠지. 부대의 단합을 가장 중요시한 건 너였다, 영준아.”
“형. 저 녀석의 본질이 어떻다든가,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하나 뿐이다.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것.”
짧은 실랑이 후.
팔짱을 낀 민재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지. 다른 이유들은 사실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그럼?”
“네가 부대원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잊어버리는 것. 그게 난 두렵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했더니.
“저 괴물들이 조금 쓸 만하다는 이유만으로, 저지른 짓들을 가볍게 용서한다든가. 그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뭐? 용서?”
용서는 무슨.
어이없는 소리.
“아리엘라.”
다시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네. 주인이시여.”
남자를 데리고 멀리 사라졌었던 그녀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명령하신 대로 그 쓰레기는 저의 권속으로 재활용되었나이다. 또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엎드려뻗쳐.”
“네. ……네?”
순간 당황하는 그녀.
자신이 뭘 들은 건가 싶겠지.
시킨 일을 잘 해결하고 온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엎드려뻗치라고.”
“네!”
잘못 들은 게 아닌 것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리는 그녀.
“영준이 너. 뭘 하려는…….”
“푸시업 50개. 실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민재 형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추가적인 명령을 내렸다.
“오른쪽으로 굴러.”
“왼쪽으로 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군부대 전통의 얼차려 세트.
내 후임들한테도 시켜 본 적 없는 걸 전역 예정일 한참 지나서 시키게 될 줄이야.
그렇게 얼차려가 끝난 뒤.
“수고했다.”
“허억…… 허억……. 네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주인님……? 한 가지 질문드려도 될지?”
“해 봐.”
“방금 이 비생산적인 행위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시키니까 하긴 했지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당황스러워하는 그녀.
내가 해 줄 수 있는 답이라 봐야 하나였다.
얼차려의 의미?
“아무 의미도 없어.”
그딴 게 있겠냐.
“아, 아무 의미도 없다니. 그 말씀은 대체…….”
“아무튼 수고했고. 들어가 봐.”
“……네. 알겠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
“……허.”
민재 형은 그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봤지?”
“보긴 봤다만.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모르겠군.”
“저 녀석, 나한테 완전하게 종속된 상태야. 처음에는 연기로 굴복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시스템창이 내게 종속됐음을 인정했지.”
이 시스템창이 선인지 악인지,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
민재 형이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쓸 만한 부하를 얻었다는 걸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형. 남에게 완전히 종속된다는 건…… 사형도 가볍게 여겨질 정도의 형벌이라고 생각해.”
내가 부대원들을 살해한 적을 용서했다고?
미친 소리지.
“나름대로 요리를 통해 굴복시킨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 사람들도 이 정도로 완전히 종속되지는 않았어. 저 녀석은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신을 빼앗긴 상태고.”
“그 자체가 형벌이다, 그거냐.”
“그래. 원한은 제대로 갚고 있어.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그리고 저 녀석은.
보통 쓸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아.”
이쯤 되면 충분히 설득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대답이 영 석연치 않은데.”
“……그래도 난 잘 모르겠군.”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아 보이는 민재 형.
“다만. 이 일로 더 딴지를 걸지는 않으마.”
“?”
“네 말도 옳다고 생각하고…… 뭣보다, 우리 대장은 너니까.”
그럼에도.
결국은 내 결정을 존중해 주기로 한 것 같았다.
“괜한 소리를 해서 미안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네 선택을 존중해. 널 대장으로 추대한 것도 나니까.”
그렇게 사과를 하며, 다른 업무를 위해 복귀하는 민재 형.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민재 형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력이다.’
저 형한테는 그냥 전력으로 쓸 만하다고만 말했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쓸 구석이 많은 전력이거든.
‘지금은 권속이 돼 버렸을 아까 그 남자가 말했던 대로.’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게 된 지금.
빛이 있는 곳에는 꼭, 어두운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 남자는 그 어둠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고 했던 것 같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우리 부대도 어두운 부분에 관여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어쩌면, 때로는 더러운 일을 해야 할 때도 생기겠지.
‘부대원들에게 그런 일을 맡기고 싶진 않아.’
더러운 일을 맡기기에는 아리엘라와 그 권속들만 한 전력이 없다.
내게 완전히 귀속된 그녀는 일종의 친위대이다.
잡다한 업무나 호위는 물론.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암살이라든가.
뭐 그런 것.
민재 형이라면 반발할 만한 일들이지만.
그게 우리 부대의 이득이 된다면, 난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다.
반발을 무시하고 수행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해 두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했다.
“주인님.”
그때.
휴식을 취하고 있을 줄 알았던 아리엘라가, 그림자 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혹시 방금 그 일이 신경 쓰이는 거면 그냥 무시해라. 말했던 대로 별 의미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뇨. 주인님이 명령하신 일을 따른 것일 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정말?”
“……주인이 도구를 장난감으로 쓴다고 한들, 도구가 불만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되게 맘 상했나 보군.
“다만, 시키신 일에 대한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보고라니.”
“명령하신 정찰 임무를 나간 권속들이 드디어 복귀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말한 임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시킨 일이었으니까.
얼마 전.
우리는 인제군의 정복에 성공했다.
드디어 약간의 여유가 생긴 셈.
이 인제군 내의 몬스터들을 줄여 나가는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결국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해 나가야겠지.
그리고.
그 진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그렇다면.
‘고향…… 가족들이 있는 방향으로 진출한다면.’
그동안은 생존에 급급해 잊고 지내려 노력했지만.
나도, 부대원들도 사람이다.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번에 진입했던 던전의 보스 몬스터.
[검은 모래의 무리 어미].
녀석이 나를 자식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부모님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인제군의 정복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생각한 것도 역시 그쪽.
‘부대원들도 서울이나 경기도 쪽 출신이 가장 많으니, 호응을 이끌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아.’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아래로 진출해 내려간다면.
머지않아 부모님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아리엘라의 권속들을 출장 보냈었다.
그녀의 권속인 뱀파이어들은 내게는 기본적으로 소모품에 불과하다.
햇빛 아래에서 약해진다지만 그거야 밤에만 이동하면 될 일이고.
[안개화] 덕에 어지간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 정찰병들이 복귀했다는 것.
그런데.
“주인님.”
“어. 빨리, 결과 보고를-.”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주인님이 나름 마음에 드는 편입니다.”
?
갑자기 무슨 소리래.
“밤의 귀족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거든요. 주인님의 얼굴은…… 조금 취향을 탈 것 같긴 한데. 그럭저럭 제 취향에는 들어오는 편이에요. 권속이 되는 건 끔찍하게 싫었지만 뭐. 머릿속을 지배하던 상념이 사라진 걸 생각하면, 아까 같은 무의미한 짓도 참을 만하죠.”
“서론이 기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주인님이 슬퍼할 만한 소식을 전달하는 저도 가슴이 아프니. 괜히 저한테 화풀이하지만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 뭐 그런 얘기예요.”
“……?”
그림자 속에서 지도를 쥔 손이 튀어나왔다.
그 지도를 받아 펼쳐 본 결과.
“이 선은. 뭐지?”
지도에는 굵은 마카로 검은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강원도의 경계선을 따라 이동하는 검은색 선.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
“벽이에요.”
“뭐?”
“그 선을 따라서 벽이 세워져 있어요. 넘어갈 수 없는 높은 벽이.”
이게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