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침식 이계 (1)
“음. 아무래도 깨어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요.”
“그 정도야?”
갑자기 회의 중인 우리를 찾아오더니 기절해 버린 남자.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무병이 말했다.
“애초에 영양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상태에서도 꽤 무리를 한 것 같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의료술로도 힘들다고?”
의무병, 사의준 일병.
내가 우리 부대의 요리를 혼자 만들며 경험치를 쌓았다면.
우리 부대의 단 둘 뿐인 의무병과 군종병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나온 부상자들을 둘이서 책임지고 치료하며 경험치를 쌓았다.
두 힐러 모두 상당한 고레벨을 달성한바.
어지간한 중상도 죽지만 않으면 살려낼 정도였는데.
“애초에 부상이 문제가 아니고, 에너지의 문제 같은 겁니다.”
“뭐가 다른 거야?”
“영양실조 같은 거면 영양제라도 맞추겠습니다만, 이 사람은 아무래도 각성자인 것 같거든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뒤늦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신선도 - 중하]
[각성자: 김영관]
[직업: 하급 전령 Lv. 11]
[상태: 마력 고갈]
“몇 달간 지켜보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각성자들은 어지간해서는 영양실조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몸 안의 마력이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어 주죠.”
“그렇다면 이 남자는…….”
“그 마력마저 모조리 고갈될 정도로 몸을 혹사시킨 상태란 겁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일주일…… 길면 한 달 정도는 이 상태일 것 같군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것은 사의준 일병의 말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식재료 감별을 통해 알아본 결과.
‘신선도가 중하라…….’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신선도는 대부분 최상.
못해도 상 정도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죽은 재료라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상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많았고.
그런데도 중하라.
목숨만 붙어 있을 뿐.
몸 상태는 시체 수준이란 거지.
“……요리라도 먹여 볼까?”
이래 봬도 실명한 사람의 눈도 뜨게 해 본 경력이 있다.
먹일 수만 있다면 마력 고갈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절해 있는 사람한테요? 관두십쇼.”
“역시 안 되나?”
“신 병장님 요리라면 효과야 확실하겠지만, 잘못하면 기도로 넘어가서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큰일 날 겁니다.”
“큼.”
“애초에 급하게 치료할 만한 환자도 아니고요. 살려 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인 거죠.”
“그렇담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이 남자가 말한 도와달라는 말.
그 사정을 전혀 모르겠다는 거지.
내가 아는 키워드는 하나.
‘던전.’
사실.
이 키워드만 아니었어도 느긋하게 치료되길 기다렸을 텐데 말이지.
나는 슬쩍 옆을 보았다.
거기 서 있는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병민아.”
“예. 이병 이병민.”
“넌 뭐 들은 거 없냐?”
“그게…….”
이병민.
이번에 저 남자를 데리고 회의실까지 온 당사자다.
“저도 자세하게 들은 건 없습니다. 그냥,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저기 춘천 쪽에서 왔다고만…….”
“춘천이라.”
“죽어 가는 몰골을 한 사람이 자꾸 도와 달라고 하길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싶어서 바로 회의실로 안내한 거라서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침착하게 좀 더 여러 가지 물어봐야 했는데.”
“아냐, 잘했어.”
어차피 그 시점에서 한계에 도달했을 남자.
우리에게 한 말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겠지.
‘던전이라.’
처음 듣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하철에 생겨난 던전을 점령함으로써 꽤 큰 성장을 이룩했다.
부대원들의 폭발적인 레벨업은 물론.
길드 스킬까지 얻었으니까.
공략에 참가한 모든 길드원이 그 정도로 성장한 경우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미친 보상.
하지만 그 후로는 던전을 공략한 적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
‘공략하고 싶긴 해도, 어디 있는지 알아야 말이지.’
던전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정령안을 통해 인제군 일대를 샅샅이 살펴보고 있는 정수아조차, 그때 우리가 공략한 던전 외에는 발견한 게 없는 수준이니까.
위험하긴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놓는 최고의 파밍처.
도움을 요청해 온 이 남자의 입에서 그 귀한 던전에 대한 언급이 나오다니.
‘도움 요청도 도움 요청이지만, 던전 공략의 기회기도 하다.’
당장은 강원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훗날에 대비해 부대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놓칠 수 없는 일.
‘그래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나서긴 힘드니까.’
나는 길드 메시지창을 열었다.
그리고.
[셰프: 무당 선생.]
우리 길드의 무당…….
아니.
[천문관] 각성자, 박태준 병장을 불렀다.
그런데.
[셰프: 저기요?]
[셰프: 주무십니까.]
꽤 한참 동안 답이 없는 녀석.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될 때쯤.
[무당: 아. 영준이냐.]
한참이 지나서야 답변이 돌아왔다.
[셰프: 뭐야. 혹시 바쁜 건가? ……혹시 그쪽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라면.]
[무당: 아니. 당장 큰 문제는 없다.]
[셰프: 정말?]
[무당: 잠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답변이 늦었을 뿐이야. 무슨 일이지?]
약간 의아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이라면 무슨 일이 생기기도 전에 ‘거기는 가도 된다, 안 된다’ 하며 경고해 주던 녀석.
그런 경고가 끊긴 지도 꽤 된 것 같다.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
내가 아는 태준이 녀석이라면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조금 신경 쓰이긴 하네.
‘뭐……. 도움이 필요하다면 본인이 먼저 말하겠지.’
굳이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도 하고.
[셰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무당: 흠. 조금 살펴봐야겠는데.]
일단은 원래의 목적대로.
녀석에게 춘천에서 온 남자에 관한 얘기를 전달했다.
그러자.
[무당: 보이는 게 있긴 한데. 음.]
[셰프: 오. 뭔데 그래?]
[무당: 너무 추상적인 풍경이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추상적이라.
이 녀석의 능력은 이게 단점이란 말이지.
[셰프: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알려 줘.]
[무당: 뭐, 나야 본 것만 말해 주면 판단은 그쪽에서 잘해 줄 테니. 알겠다.]
그렇게.
태준이 녀석이 말해 준 풍경은 대충 이랬다.
[반쯤 물에 잠긴 도시.]
[건물들의 옥상에서부터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린다.]
[대낮에도 햇빛이 침범하지 못해 도시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고.]
[그 안을 아가미 달린 인간들이 돌아다닌다.]
……추상적이긴 하네.
도무지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풍경.
태준이 녀석의 직업.
[천문관]이란 게 원래 그렇다.
점쟁이에 가까운 능력.
미래의 일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지만, 직접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 드물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경우가 대부분.
‘실제로 춘천이 그렇다기보단, 몇몇 특징을 극대화해서 표현한 거라고 봐야겠지.’
확실히 유용한 능력이지만.
이런 점은 아쉽기는 하다.
태준이 녀석도 조금은 답답해하는 것 같고.
‘아니……. 이편이 나을 수도 있어.’
이왕이면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게 더 좋겠지만.
어떤 편으로는 이쪽이 나을 수도 있다.
‘준비해야 할 특징이 확실하게 나타나니까.’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추상적으로 보여 준다.
반대로 말하면.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모조리 치운 뒤.
핵심적인 특징만 보여 준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주의해야 할 특징들은.
“물하고, 어둠 정도인가?”
그 키워드에 맞춰서 준비하면 되겠지.
이런 말을 직접 하긴 뭐하지만.
대비해야 할 키워드만 알고 있다면.
‘내 요리로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거든.’
* * *
“원정 준비. 완료됐습니다.”
“갑작스러운 준비였을 텐데. 꽤 빨리 됐네.”
던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감하던 점이다.
군단 본부가 어쩌니 하던 회의가 무색하게.
결국 우리 부대의 다음 진출지는 춘천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자.
원정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이번 던전행은 기본적으로 저 기절해 있는 남자의 구원 요청에 의한 것.
‘이 녀석들. 부대원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 매정한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이렇게까지 이타적일 수 있다니.
국민을 보호하는 군인의 의무에 충실한 모습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저 녀석들. 던전 공략이라고 하니까 흥분했나 보군.”
그 모습을 본 민재 형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저번 던전 공략. 기억 안 나? 공략에 참여했던 부대원들 대부분이 엄청나게 성장했잖아.”
그렇긴 했지.
던전 공략으로 인한 경험치 대부분은 내가 독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한 덕에 다른 부대원들도 최소한 레벨이 하나씩은 오를 정도의 성장을 겪었었다.
“그때 빠진 녀석들이 엄청 서운해할 정도였지.”
“그럼 저 녀석들이 저렇게 서두른 건…….”
“힘이 강할수록 유리한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이 세상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만, 그만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던전이라고 하니 흥분할 수밖에.”
“…….”
이타심이니 뭐니 하는 거랑은 결론이 먼 이유였다.
‘누굴 탓하겠냐. 이렇게 돼 버린 것도 내 요리 영향일 텐데.’
부대원들이 향상심이 강하단 점에 만족해야겠지.
직선 경로인 철로를 이용한다고 해도.
춘천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닌 만큼, 병력을 나눌 필요가 생겼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저번에 말 안 했나? 저 양복점에서 일할 때 매니저 역할도 했거든요.”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단 거죠.”
원정하는 동안.
부대의 관리는 부대장 중 유일한 생산직인 이상아가 맡기로 했다.
양복점 매니저 경력 같은 건 농담이라 쳐도, 그녀는 생존자 그룹의 리더였던 경력자.
길드 메시지를 통한 소통도 가능한 간부이기도 하니.
믿고 맡길 만했다.
부대에는 생산직 각성자를 제외하면 몇 명 남지 않게 되겠지만.
생산직 각성자들도 전투 능력이 그렇게 나쁘진 않으니까.
사실 나만 해도 생산직이고.
“부대 근처에는 공병들이 만든 장벽도 있고. 전차는 기름을 너무 많이 먹으니 두고 가신다면서요? 그 방어 시설까지 고려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나마 다행이군.”
“굳이 문제가 있다면.”
작게 한숨을 내쉬는 이상아.
뭐가 문제인 건가 싶었는데.
“군단장님 요리를 못 먹게 된 병사들이 불만이 많다는 것 정도?”
“아.”
이건.
내가 뭘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는 문제인데.
“그래도 만들어 놓고 가는 전투식량이 꽤 많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요. 직접 만들어 주신 요리랑은 다르니까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그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원정에 참여하는 게 더 고된 일일 텐데, 남기로 한 병사들이 더 불만이 많을 정도니. 복지에서 먹을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요즘 와서 엄청 체감하네요.”
뭐 어쩔 수 있나.
나 말고도 다른 [요리사] 각성자가 합류하기 전에는 참아 주는 수밖에.
나머지 부대원들은 최대한의 자재와 식량을 챙기고 이동을 개시했다.
이동 루트는 이전에 확보해 둔 지하철의 철로.
사고 차량으로 꽉꽉 틀어막힌 도로들과 달리, 직선으로 뻥 뚫린 길이였다.
애초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드문 장소였다.
중간에 쓰러져 있던 열차에서 좀비들이 기어 나온 한 번을 제외하면.
큰 위기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역시…… 지하철은 꽤 안전하군요.”
“지상의 철로가 문제긴 하겠지만. 그쪽의 벽만 어떻게든 강화한다면, 꽤 안전한 보급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정에 동참한 공병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이동을 계속했다.
역 하나를 거친 뒤.
그다음 역인 춘천역을 향해 이동하려 했으나.
“정지, 정지!”
가장 앞에서 선도하던 이들이 정지 신호를 보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사들이 정지 신호를 보낸 곳은.
지하철을 벗어나 지상으로 연결되는 구간이었다.
지상의 풍경이 보이는 곳으로 나오자.
저 멀리.
커다란 벽이 하나 보였다.
“……?”
본래라면 춘천시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해야 할 타이밍.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선을 그어 놓은 뒤.
선을 기준으로 양쪽에 다른 그림을 그린 것처럼.
전혀 다른 두 개의 풍경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있었다.
“……저건, 대체.”
한쪽은 평범한 풍경이었으나.
이질적인 것은 다른 한쪽.
본래라면 춘천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어야 할 공간.
그곳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밤처럼 어두웠다.
‘검은색 커튼이라도 친 것처럼.’
그 검은 커튼은 투명한 듯.
안쪽이 조금 비쳐 보였다.
사람의 가슴까지 올 것 같은 물이 출렁이고 있었으나.
그 공간 밖으로는, 물이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빌딩들의 벽면에서 물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폭포수처럼.
이 풍경.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추상적은 무슨.”
태준이 녀석이 봤다는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완전 구체적이었구만…….”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침식 이계 - 다스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