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94화 (94/227)

94화 침식 이계 (2)

[침식 이계 - 다스무르]

춘천시의 중심가를 둘러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장막.

우리는 그곳에 진입하기보다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강이랑 댐 쪽의 물이 눈에 띄게 줄어 있어요.”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정수아가 말했다.

정령을 통한 정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저 안에 들어찬 물.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 아닌가 봐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던전은 몬스터들이 테라포밍을 진행한 공간.

이전에 마주했던 지하철의 던전은 비교적 좁은 공간을 자신들의 생활 환경에 맞춰 바꾼 것이었다.

하지만 저건.

‘저 대도시의 중심가를 아예 둘러싸 버리다니.’

멀쩡한 도시를 가둬 버린 투명한 벽.

그 안은 아예 다른 세계가 돼 버렸다.

지하철 내부를 바꾼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닫힌 공간 내부를 꾸미는 것과, 열린 공간을 비틀어 버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다.

“저딴 짓을 저지른 괴물이, 저 안에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녀석을 이긴다는 게 가능하긴 합니까?”

“글쎄다.”

아연해진 병사들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물은 다른 곳에서 끌어온 것 같다고 하니. 진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적인 존재는 아니란 거야.”

“어……. 꽤 긍정적이시군요?”

“벌써부터 쫄아서 좋을 게 뭐 있겠냐.”

나도 저 광경을 보면 조금 압도되긴 한다.

인제역 지하의 던전에서 지하철이 모래로 뒤덮인 것도 대단하긴 했다만.

그건 돌바닥을 부술 힘만 있다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도 드니까.

저건 범위도, 보이는 위압감도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돼도 안 되지.’

중요한 것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

뭐 그렇게 봐도 위험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전차를 부대에 두고 온 게 후회되는데.’

먼 거리를 이동하기에는 기름 소모가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는데.

전차를 끌고 와도 될지 어떨지 모르겠는 비주얼이잖아.

‘역시. 일단은 후퇴가 답인가.’

던전 공략이나 안쪽에서 온 구조 요청도 중요하긴 하지만.

공략에 자신이 없다면 미루는 게 답.

부대원들에게 일단 후퇴를 지시하려던 순간이었다.

“이상하군요.”

서수혁 상병이 말했다.

“이상하다니?”

“제가 병장님 요리를 먹은 뒤로 감각이 좀 예민해진 거. 아시잖습니까?”

서수혁의 저격을 돕기 위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요리를 먹인 뒤.

그 뒤에도 전차의 포격 등에 동원하기 위해 비슷한 요리를 몇 번 더 먹었다.

그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평소에도 이전보다 많이 예민해진 녀석.

“저만 눈치챈 건 아마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만. 이 벽, 조금씩 넓어지고 있습니다.”

“……?”

넓어진다니?

“아.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대검을 장착한 총기를 들고 검은 벽으로 접근하는 서수혁 상병.

그가 벽 근처에서 2cm 정도 떨어진 바닥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보십쇼.”

“……정말이군.”

바닥에 그어졌던 선이 벽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벽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

던전이란 괴물들에 의한 테라포밍.

즉.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건가.”

“이 벽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만 해도 이미 상당합니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그 넓은 원이 이 짧은 시간 만에 2cm 이상 넓어졌다는 건…….”

2cm라고 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원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엄청난 속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역은 넓어지기만 할 터.

그리고.

저 영역이 넓혀져 가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지금 후퇴한다고 한들, 이 속도면 금방 우리 부대까지 닿겠네.”

“아마도 그렇겠죠.”

“그렇다면 뭐.”

뱀파이어 토벌 때와 비슷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하게 힘을 키워서 공략할 여유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저 영역이 더 넓어지기 전에 진입해야겠네.”

“가능하겠습니까?”

“안 되면 되게 해야지. 그리고…….”

사실.

그렇게 답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

‘물. 그리고 어둠.’

태준이 녀석이 알려 준 키워드는 정확했다.

그러니.

“댐하고 강 쪽에 물이 많이 줄었다고 했지?”

“예. 그렇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가서 낚시 좀 해 와라.”

“예?”

* * *

[침식 이계 –다스무르에 진입합니다.]

[달빛만이 은은하게 빛나는 물에 잠긴 세계입니다.]

[다스무르의 주민들은 한때 신의 보호 아래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나, 신을 잃은 지금.]

[그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의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이는 명백한 침략 행위.]

[결코 용납하지 마십시오.]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환경입니다. (환경 적응도 - 74%)]

[종족 페널티 - 모든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던전에 진입하자.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이 군복을 적시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난번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문구 하나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결코 용납하지 마십시오…… 라.’

저 말은 시스템의 의지인 걸까.

아니면 우리의 전의를 불태우기 위한 퀘스트 문구에 지나지 않는 걸까.

‘전자라면 시스템은 인간들의 아군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

“진입, 진입!”

“후읍……!”

“처음에는 숨쉬기가 좀 힘들 거다! 차분히 적응해!”

내 뒤를 따라 길드원들이 점차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

하지만 던전 공략이 처음도 아니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다들 약간의 고통이 있을 것이란 말을 들은 뒤였던지라, 그럭저럭 당황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었다.

“전투 차량도 진입했습니다!”

“상태 안 좋은 애들부터 올려.”

이윽고,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끌고 온 차량들도 던전에 모두 진입을 완료했다.

물속에서의 전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모조리 방수 처리를 끝낸 차량들.

차량들은 높이가 꽤 있는 편이니까.

위쪽으로 올라타면 그럭저럭 물을 피할 수 있을 정도는 되겠지.

나는 차량에 올라타기 전.

우리가 들어온 던전의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밖에서는 안쪽이 잘 보이는 편이었는데.’

안쪽으로 들어오자.

외부와의 경계 지점에는 엄청나게 강력한 물살이 내리치고 있었다.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군용 대검을 슬쩍 그 물살에 가져다 대자.

파사사삭…….

대검의 끝부분이 그라인더에 가져다 댄 것처럼 갈려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

[한번 입장한 던전은 공략이 완료될 때까지 탈출할 수 없습니다.]

진입할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 거겠지.

나름대로 강화한 전투차량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날 것 같은 엄청난 수압이었다.

‘뭐……. 중도 이탈이 불가능하단 건 알고 있었으니까.’

이전의 던전도 그랬거든.

일단 안으로 발을 들인 이상.

던전 공략을 클리어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거다.

도시 하나를 뒤덮은 상당한 규모의 던전.

‘장기전이 되겠지.’

나 역시 근처의 차량 위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차 안의 공병이 소리치며 차량들이 전진을 시작했다.

목표는 가까운 고층 건물.

일단 높은 곳에 올라간 뒤에 근처를 둘러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거든.

전진하는 차량 위에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처럼 아래를 본 병사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물이 맑군요.”

“그러게.”

홍수가 난 도시의 풍경 같은 걸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하수도의 더러운 물과 도시의 모래, 먼지가 섞여 빈말로도 깨끗해 보인다고는 하기 힘든 모습이 대부분이었지.

‘일반적인 홍수는 아니란 거겠지.’

지금 도시를 잠식한 물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물 안에 떠다니는 낡은 전단지까지 보일 정도로.

그 순간.

슈슉…….

‘어?’

멀리서.

무언가 물속을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으나.

‘착각이 아니야.’

물속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

그 그림자는 한두 개가 아니었고.

엄청난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온다!”

“전투태세!!!”

김 중위의 외침과 함께 버프가 퍼져 나갔다.

이윽고.

파악!!

물속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몸을 날려 오는 괴물.

움직임이 워낙 빨라 정확한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대충이나마 파악한 실루엣으로 보니…….

‘어인?’

비늘과 아가미가 달린 인간형의 괴물.

지구의 물고기와 같은 종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성질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대놓고 수중전 특화냐.’

적들은 물속에서 덤벼들었다.

반면 우리는 땅을 밟고 살던 인간들.

그 땅은 지금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로 인해 뒤덮인 상태였다.

전투차량들이 있다고 하나, 그 위에서 자유롭게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무리 날고 기는 전사라고 한들.

물속에서는 제 실력의 반의반도 내기 힘들기 마련이다.

본래라면 엄청나게 불리한 환경…….

‘이었겠지.’

뭐.

지금은 별 상관없는 얘기다.

“카하하하하하!!!”

괴성을 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전사들.

그 행동에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이유야 뻔하지.

[요리의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코스 요리 - 심해]

밥을 든든하게 먹은 덕분.

[붕어 매운탕]

[미역 초절임]

[모듬회]

[피시소스를 곁들인 나이트호크 구이]

밤부엉이는 정수아의 눈을 치료할 때 사용했던 몬스터 중 하나.

녀석이 가지고 있던 특성은 [어둠 시야].

이름 그대로, 어둠 속에서도 시각을 잃지 않게 해 주는 특성.

그리고 그 외의 요리는 모두 수산물로 구성했다.

심플할 정도로 콘셉트를 알기 쉬운 구성.

그 콘셉트대로의 효과가 구현되었다.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섭취 시, 수속성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섭취 시, 일시적으로 특성 [환경 적응 - 수(水)]를 획득합니다.]

[섭취 시, 일시적으로 특성 [어둠 시야]를 획득합니다.]

물속에 들어간 전사들이 무기를 휘두른다.

물의 저항력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휘둘러질 리가 없는 공격이었지만.

쿠웅!!!

-카아아아악!

공격에 얻어맞은 괴물이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차량에 탑승한 것은 어디까지나 편하게 이동하기 위함.

저 요리를 [오병이어]를 통해 모든 부대원에게 먹인 지금.

“카하하! 덤벼라, 물고기 새끼들아!”

“전 맥주병이라, 물속에서 싸울 거라고 했을 땐 솔직히 무서웠습니다만.”

“땅에서 싸우는 거보다 편하구만!”

물에 잠긴 도시라는 환경은 우리에게 전혀 마이너스가 아니었다.

‘요리에 쓰인 재료가 대부분 평범한 수산물인 게 아쉽긴 하다만.’

마력을 품고 있는 몬스터의 재료와 평범한 물고기나 해초류의 성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물과 관련된 특성을 가진 괴물을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요리는 코스 요리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능력치 증가량은 미미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부대원들 역시 강해진 덕일까.

-케에에에엑……!

환경에만 적응시켜 줬을 뿐임에도 전투는 우리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나 역시 차량에서 내려와 칼을 꺼내든 뒤.

덤벼드는 어인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중급 요리 비결 - 다스무리안 유체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심해의 다스무리안 유체]

[깊은 물의 세계, 다스무르의 수호종족인 다스무리안의 유체입니다.]

[다스무르의 생명체들에게는 그들 세계를 수호하는 어인, 다스무리안의 살점을 먹는 자는 불로불사를 이룰 수 있다는 민간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귀하게 평가받는 식재료입니다.]

[높은 잠재력을 지닌 종족이지만, 잠재력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손질을 하기 위해선 우선 아가미 부위에-.]

어인이라.

“약점은 가슴 부위의 아가미다! 뭐든 찔러 넣어!”

머릿속에 스며 들어오는 손질법을 병사들에게 알리며.

손에 쥔 칼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독고구식].

박씨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칼.

내 주 무장인 이 녀석은 긴 사시미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워낙 잘 드는 칼이다 보니 다용도 칼처럼 쓰고 있었다만.’

본래의 용도는…… 생선을 손질하는 것.

씨익.

‘베는 맛이 있겠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