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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96화 (96/227)

96화 복수자들 (1)

“법정에서, 제대로 진술해야 할 일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 같다.

“저도 하나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뒤에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여기는 좀비 같은 건 없는 겁니까?”

“좀비?”

“무슨 비유 같은 건가?”

“사람들 몰골이 좀비 같긴 한데…….”

심지어 좀비도 없다는 것 같았다.

약간 우리 부대의 사정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우리 부대에도 어째서인지 좀비가 출현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리자드들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할 수 있었지.

그런 환경이었기에 부대원들을 각성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들 역시.

[식재료 감별]

[Lv. 3 창술사]

[Lv. 6 화염 마법사]

각성자의 비율이 상당했다.

이 공간에서 적은 물속을 돌아다니는 괴물들뿐이니.

각성법에 대한 정보도 꽤 빨리 퍼져나갔겠지.

“뭐…… 아무튼 그렇게 된 거요. 그 후로는 어떻게든 위로 옮긴 식량들하고, 낚시를 통해 낚은 물고기들. 그리고 모종의 방법으로 얻게 된 빵이 있는데. 그걸로 버티고 있지.”

“낚시?”

“아. 저 물속에 물고기들이 꽤 많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수아가 봤다던 댐이나 호수가 떠올랐다.

거기 있는 물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고 했지.

‘그 물들이 이 공간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물고기도 딸려 들어온 건가.

“그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신들뿐인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오. 적긴 하지만 교류를 하는 이들도 있지.”

“교류라니.”

이 빌딩에서 다른 곳하고 교류?

저 물속의 괴물들을 뚫고 다른 건물로 가는 건가? 했으나.

“이건 직접 보여 줘야 이해가 갈 것 같군. 따라오시오.”

우리는 태완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곳은 빌딩의 중간층쯤.

하지만 지금 향하는 곳은.

‘옥상?’

옥상의 문을 열고 올라가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꽤 놀라운 것이었다.

건물의 벽을 폭포처럼 흐르는 물이나, 대낮일 시간대임에도 떠 있는 달.

그리고.

“대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이상은 없고?”

“옙.”

옥상에 경비를 서고 있는 이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구름다리?”

“맞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고 있는 구름다리들이었다.

“꽤 조잡하긴 하지만, 이 다리들을 통해 다른 건물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물물 거래를 하는 식이지.”

구름다리라니.

나는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다리들을 보며 옥상의 외곽으로 몸을 옮겼다.

그곳에서 바닥을 내려다보자.

건물 외벽을 흐르는 폭포와 그 아래에 돌아다니는 검은 형체들이 보였다.

‘지상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하늘로 도주한 건가.’

저 구름다리는 이 도시의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궁리한 결과겠지만.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

본래 지상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은 지상을 빼앗기고 고층 건물로 몰려났다.

그리고 지금.

지상을 빼앗은 괴물들은 저 물속에서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구름다리.

그곳을 지나다 떨어질 인간들을 받아먹기 위해.

* * *

“아. 이 구름다리들을 만든 방법도 궁금할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조금 특별한 힘을 얻게 된 사람들이 있소. 그 사람들이 반대쪽 건물에 줄을 매달아 던진 다음…….”

“……각성 얘기라면, 저희도 압니다.”

“어? 안다고?”

내 대답에 놀랐던 태완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우리 쪽 사정만 얘기했던 것 같군. 바깥의 사정에 대해서도 슬슬 듣고 싶은데. 알려 줘도 되지 않겠소?”

우리가 들어온 것을 보고 희망을 품은 이들.

그 희망을 부수는 것은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저희를 보고 바깥세상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만.”

“응?”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와 부대원들은 바깥의 사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군부대가 자신들은 구해 주러 왔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인간들이었으나.

“……맙소사.”

얼굴을 가리며 침음성을 흘리는 이들.

이전까지의 희망에 찬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저 어인들도 아니고,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돌아다닌다고?”

“좀비? 좀비는 또 뭐야. 영화도 아니고.”

“제기랄. 차라리 다른 사람들은 전부 수몰되었다고 생각하던 때가 낫지. 좀비가 됐다니……. 그냥 죽었다는 것보다도 안 좋은 소식이잖아.”

신나서 떠들던 태완 역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를 도우러 온 것도 정말 당신들이 전부인 건가.”

“예.”

“지원군은 없을 거고?”

“맞습니다.”

우리를 보고 희망에 찼던 이들.

차라리 아무런 희망도 없던 상황이었으면 모를까.

“……X발.”

작은 희망에 불타올랐던 이들이, 그 희망을 놓치자.

“하하……. 그러면 결국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는 거로군.”

찾아온 절망감은 엄청났다.

덤덤하게 얼굴을 가리고 말하는 태완의 눈가에 약간 물기가 고이는 것이 보였다.

“우린 여기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고.”

“아니. 그건 아닙니다.”

“뭐?”

눈을 크게 뜨며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던전 어딘가에, 던전을 만든 주범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저 괴물들의 수장 격일 녀석…… 그 녀석을 죽이면 됩니다.”

“……쳇. 뭐야.”

“그냥 헛소리였군.”

던전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준 셈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저 괴물들이 몇 마리나 되는지는 아시오? 저 괴물하고 싸우려면 저놈들의 전장인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

“한두 마리 정도야 어떻게든 사냥할 수 있겠지. 우리도 그렇게 각성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들의 우두머리를 사냥한다? 그딴 건 불가능해.”

시작도 전부터 헛소리로 취급하는 태도에 약간 짜증이 났다.

“해 보기 전엔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해 보기 전에 아는 것도 있는 법이지. 안타깝지만 인정하시오. 당신들도 이 안에 들어온 이상, 우리와 함께 죽어 나갈 운명이야.”

어지간히 상심이 컸는지.

큭큭 하며 헛웃음을 내뱉는 태완.

“얘기는 끝난 것 같군. 이제 꺼지시오.”

“예?”

“아까 말하지 않았나? 이 건물은 우리 영역이니까, 꺼지시라고.”

갑작스러운 선언.

“우리도 여유는 없어. 비축해 놓은 식량은 다 떨어져 가는 참이고. 낚시로 얻은 물고기나 포인트로 사는 호밀빵 정도밖에 없지. 호밀빵은 맛대가리도 없는 게 뭐 그리 비싼지……. 당신들한테 줄 식량 같은 건 없고.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나눌 생각도 없소. 그러니까 가시오.”

그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러면 더더욱 우리를 내쫓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때.

한 남자가 태완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대장님. 다시 생각해 보시죠.”

“뭐 임마.”

“저 사람들. 그래도 군인이잖습니까. 숫자도 꽤 많고. 심지어 여기로 제 발로 들어온 녀석들이니.”

그나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나름 전투식량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흠.”

“그냥 보내기엔 좀 아깝죠.”

그 얘기를 들은 태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당신들!”

“…….”

“우리한테 들은 정보가 꽤 많지? 정보료는 좀 내주셔야겠소.”

정보료?

“정보료가 좀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행료나, 아니면 여기 얹혀살아도 괜찮아. 그때는 숙박료를 받아야겠지.”

“…….”

“여기 들어왔으면, 가지고 있는 식량이 꽤 될 것 아냐? 같은 사람들끼리 좀 나누자고.”

뻔뻔하기까지 한 모습.

‘이 남자가 특별히 악인인 건 아닐 테지만.’

안 그래도 어려웠던 상황에.

그나마 희망을 품고 있던 바깥세상까지 멸망해 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이다.

절망한 끝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배려해 줄 필요는 없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보고 말했다.

“광일아.”

“예.”

“밑에 있는 전투차량 중에, 군용 전투식량 남은 거 있을 거다. 그거 3분의 1만 가져와.”

“예?”

내 말을 들은 서수혁 병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 병장님. 굳이…….”

“괜찮아.”

저들의 말대로.

정보를 얻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전투식량 정도야.

“내가 만든 요리가 아니라, 탄약대대랑 전차대대에 쌓여 있던 전투식량이니까.”

“아. 그런 거라면. 이해했습니다.”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시군.”

“말씀하신 대로, 정보를 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여기서 머물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흐흐. 그건 고맙게 됐소.”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

주고받을 분량은 확실히 해야지.

“식량은 나눠드릴 테니 정보를 더 듣고 싶습니다만.”

“그거야 뭐. 편한 대로 물어보시오.”

“이 건물이 당신들의 영역이고, 다른 건물하고도 가끔 교류한다고 하셨습니다만. 다른 세력들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태완의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건 좀 복잡한 얘기가 될 텐데.”

“싫으시면 뭐. 식량은 없던 걸로 하죠.”

“뭐?”

몸을 일으키려는 태완을 향해.

나는 슬쩍 품을 열어, 가슴팍에 착용한 권총을 내보였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힘으로 뺏는다고 순순히 뺏겨 줄 생각은 없습니다.”

“…….”

“당신들도 각성자 숫자가 꽤 돼 보이긴 하는데. 우리라고 만만할 거라고 생각하진 마십쇼.”

“쯧. 그래 뭐. 정보 알려 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복잡한 정보라고 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별건 없었다.

“저 건물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규모가 좀 작은 편인데…….”

어느 건물에 어떤 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서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통해 가끔 교류하는 정도.

그리고.

“가끔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지.”

“전투?”

“지금은 그나마 안정된 편이지만, 중간에는 큰 싸움도 한 번 있었소.”

식량은 고갈되어 갈 수밖에 없는 환경.

식량을 탐해 다른 건물을 공격해 들어간 약탈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약탈자들은 중간에 사건이 있어서 전부 죽었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는 1층부터 접근하는 건 적대 행위라는 게 불문율이 됐지.”

공중다리로 오는 적은 다리를 끊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물속의 괴물들을 피해 1층부터 올라오는 적들은, 아무리 계단을 막아 놔도 결국은 뚫릴 수 있으니.

그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녀석들. 선택을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했네.’

그렇게 필요한 정보는 모두 들었다고 생각될 때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요. 이제 가 보겠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때.

“자, 잠시만요.”

“?”

“대장님. 잠시 귀 좀 주십쇼.”

뒤에 있던 이들 중 누군가가 태완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대장님. 생각해보십쇼. 저 사람들을…….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의 얘기를 들은 태완의 눈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큼큼. 굳이 떠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예?”

“식량을 저렇게 많이 줬으니. 우리가 제공한 정보가 오히려 좀 부족한 것 같아. 잠자리도 제공해 줄 테니 우리와 함께 지내는 건 어떻소.”

“마, 맞아요.”

“아까는 우리 대장님이 흥분해서 말실수를 좀 했습니다만. 같은 사람들끼리 실수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해하고, 같이 지내 봅시다!”

갑자기 살가워진 모습.

그 태도의 원인은 알 만했다.

‘이제야 눈치챈 거냐?’

비축된 식량은 다 떨어져 가고 있고.

햇빛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으니, 식량을 얻을 구석은 포인트와 낚시 정도.

포인트로 사는 호밀빵은 최악의 효율을 자랑하니 실질적으로는 낚시가 끝이다.

하지만 여기가 어지간히 낚시가 잘되는 명소가 아니고서야.

이 건물 근처에 낚싯줄 내려놓고 낚시한다고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즉.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면.

‘머지않아, 각 건물을 차지한 이들끼리 자리싸움이 일어날 거다.’

얼마 전에는 다른 이들의 식량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고 했던가.

앞으로 벌어질 싸움은 아마 다른 것이겠지.

‘낚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그 싸움은 아마 낚시만으로 먹고살기 충분한 인원만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겠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의 확보가 필수.

몇 달 동안 여기서 생존해 온 이들.

이미 서로의 전력이 고만고만하단 것을 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던전에 진입한 거다.

‘우리는 총을 가진 군인인 건 물론, 각성자들이 섞여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즉.

우리는 이 인간들 간의 세력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전력.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어떻게든 꼬드기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이들이란 거다.

저들은 그런 우리더러 ‘꺼지라’는 태도를 보였고.

“괜찮습니다. 잘 곳이야 뭐. 찾으면 나오겠죠.”

“그, 그러지 마시고!”

떠나려는 우리를 이제 와서 붙잡는 사람들.

지금 이들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가진 세력인지.

“아까 내가 실수한 건 사과하겠소. 그러니 제발. 얘기라도 좀 들어 보시오!”

제대로 이해했었다면 꺼지라느니 식량을 내놓으라느니 하는 말은 없었겠지.

그리고.

“이 손 놓으시지요.”

저들이 오판한 것을 우리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소매를 붙잡으려는 태완의 팔을 뿌리친 채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전해 주신 정보는 감사합니다. 대가로 드리기로 한 전투식량은 두고 갈 테니. 맛있게 드시죠.”

“가, 갑자기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요! 얘기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시 우리 대장님이 막말한 게 신경 쓰이는 거라면, 저희가 대신 사과할 테니……!”

“그런 건 신경 안 씁니다.”

우리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고 매달리는 이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굳이 저희를 붙잡아 두고 싶으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무,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오?”

“대가를 주시는 겁니다.”

“……뭐?”

저들이 먼저 우리 관계를 거래로 규정했으니.

내가 저들에게서 식량으로 정보를 산 것처럼.

저들도 우리의 힘을 사야 하겠지.

물론.

“그럴 만한 대가를 지불하실 수 있을 경우에. 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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