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복수자들 (2)
“대가라니. 우리는 딱히 지불할 만한 게…… 아! 아까 당신들이 준 전투식량들은 어떤가!”
그 말에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하하…… 장난하세요?”
“그 그러면 사람은 어떤가. 우리 쪽 사람들이 다들 인물이 괜찮아. 여자든 남자든, 필요하다면…….”
쯧.
더 할 말은 없을 것 같네.
“자, 잠깐! 그러지 말고 대화를……!”
“아, 됐습니다.”
우리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나와 부대원들은 건물을 내려가 지상으로 향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왜 굳이 내려가는 겁니까?”
건물의 사람 중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다.
“저희가 설치한 구름다리가 있으니, 그거라도 쓰시죠.”
“마, 맞아요. 굳이 위험하게 지상으로 가실 이유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우리를 붙잡는 건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이미지라도 좋게 헤어지고 싶은 모양.
하지만.
“배려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아까 통행료가 어쩌구 했던 얘기가 걸리는 거라면, 그건 잊으시고.”
“아니.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거든요.”
1층으로 내려오자.
물속에 잠겨 있는 전투차량들이 보였다.
“저 차들까지 구름다리로 옮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해 보이는데.”
“뭣보다. 저희는 던전에 진입한 이유가 따로 있어서요.”
구름다리를 통해 이동하면 편하긴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던전에 진입한 이유는 둘.
하나는 구원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당신의 식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계속 요격하면서 이동한다!”
“““예!!!”””
성장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기껏 먹인 요리.
효과가 끝나기 전에 뽕을 뽑아야 하지 않겠어.
다만.
“크흠.”
“쩝…….”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마법사들.
그중에서도 화염과 전격을 다루는 이들.
‘저번 던전에서는 화염 계열 마법사들이 꿀 좀 빨았지.’
지하철의 던전은 공기의 성질이 다른 것일까, 화염 계열 마법사들의 화력이 상승했었다.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광역공격이라는 점도 있어서, 던전 공략의 2등 공신이 화염계열 마법사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병사로 나올 정도였지.
반면 이번엔.
“원래 수온이 높아지면 물고기도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물고기가 아니니까 그렇지.”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전투.
내 요리로 [환경 적응] 특성이 생겼다고 한들.
물속에 있는 괴물들에게 쏘는 화염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반대로 전격의 경우.
“너무 세져서 문제라니. 뭐 이런.”
전투차량 위에 앉은 민재 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괴물들.
괜히 물고기처럼 생긴 게 아니다.
물속을 엄청난 속도로 수영해서 접근해 온단 말이지.
우리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근접전을 벌이게 되는 상황.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프렌들리 파이어.’
아군의 공격에 아군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말한다.
마법사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게임은 대부분의 경우 광역 공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아군에게는 광역 공격이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설정해 밸런스를 조정한다.
하지만.
“현실성을 중시하는 몇몇 게임들은…… 의도적으로 프렌들리 파이어가 가능하도록 설정하기도 하지. 그것만으로 현실성도 늘어나고 전략도 복잡해지니까.”
“현실성을 넘어서 현실이 게임이 돼서 그런가. 더럽게 현실적이군.”
이민재 병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들의 세상은 빌어먹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마법사들의 광역 공격이 아군에게도 피해를 주니까.
‘이전까지는 마법사들이 알아서 화력을 조절하는 식으로 아군을 피해서 공격했지.’
하지만 지금은 전장이 물속이라는 게 문제다.
물과 전기는 상극.
마법사들의 전격은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만.
물속에서 덤벼드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거기에 전격을 날린다?
아군 병사들까지 전기에 구워지겠지.
‘우리 쪽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민재 형이고. 그 민재 형이 전기 마법사야.’
민재 형의 마법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꽤 치명적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근처의 괴물들은 그렇게까지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것.
두 속성의 마법사들을 제외하고 그 외의 병사들은 몰려드는 괴물들을 처치하며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았다.
물론.
끝없이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로 계속 전투를 진행할 수는 없는 법.
어디까지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전투를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저기. 목적지가 보입니다!”
곧 우리가 목표로 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 잠깐만요.”
“저기도 뭔가 이상한데.”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병사들이 무언가를 보고 말했다.
“……전투. 전투 중입니다!”
“전방에서, 인간들과 어인들이 격돌 중입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잘 찾아왔네.”
* * *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건물을 나온 직후.
밖으로 나가기 전.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병사들이 내게 질문해 왔었다.
나는 지도를 펼치며 대답했다.
-여기로 간다.
-예?
-평범한 건물로 보이는데.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이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예?
던전 안에 살아 있는 인간들이 다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한 번쯤은 만나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제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라니.
-……굳이요?
부대원들의 반응은 묘하게 석연치 않았었다.
이게 우리 부대의 장점이자 단점이란 말이지.
‘내부적인 단결력은 엄청 좋은데, 외부인들을 좀 꺼린단 말이야.’
멸망의 날 초기.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특별소스]가 담긴 요리를 먹였다.
효과는 상당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미쳐 가던 병사들도 지금은 훌륭한 전력으로 거듭났지.
하지만.
그때 먹인 요리의 효과가 대체로 ‘우리 부대원들을 믿고 함께 살아남자!’ 같은 내용으로 귀결되어서 그런 것일까.
‘반대로 부대 외의 인물들에게 너무 매정해져 버렸어.’
그냥 매정한 정도면 몰라.
쉽게 믿지 않는 것은 물론, 어지간해서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거의 인간 불신 수준.
외부 세력에게 장난질을 당할 일이 없으니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도 그럴 필요는 없잖냐.
-너희도 아까 대충 느꼈지? 이 던전 안에 있는 사람들. 이상할 정도로 각성자 비율이 높아.
-예. 신기하긴 하더군요.
그때.
민재 형이 내 말을 거들며 말했었다.
-아까 얘기를 들어 보니. 여기는 좀비가 없는 것 같더군. 괴물은 저 물속을 돌아다니는 녀석들뿐이고. 각성하기 쉬운 환경이란 점만 따지면 우리 부대 때와 비슷해.
-즉. 가용 전력들이 많다는 거지.
난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말했다.
-쓸 수 있는 전력이 있다면. 써 보려고 시도는 해 봐야지 않겠냐.
-던전 안의 인간들과 협력하겠다는 거군.
-그러면 차라리 이 건물의 사람들하고 협력하는 게 나은 거 아닙니까?
-저 사람들은 안 돼.
던전에 진입해서 가장 처음 만난 인간들.
그들과 협력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겠지.
그럼에도 그들을 뿌리치면서 나온 이유는 하나.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생각…… 괴물들을 토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으니까.
괴물들을 처치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전했을 때.
저들은 내 말을 완전한 헛소리로 치부했다.
‘뒤늦게 우리를 회유하려 한 것도, 다른 인간들 간의 세력다툼에서 필요하기 때문이었지.’
그런 녀석들은 도움이 안 된다.
어쩌다 협력을 한다고 해도, 위급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반면.
-아까 얘기를 들었던 그룹 중에 적당한 곳이 있었잖냐.
-아……!
저들에게 전투식량을 넘겨 가면서 들은 정보.
그중에는 도시에 살아있는 인간 세력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저 건물은. 음. 좀 특이한 녀석들이 차지하고 있소.
-특이하다니?
-우리도 필요한 상황이라면 물속의 어인과 교전을 치를 때가 있지.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선 어인을 사냥해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높은 만큼 대부분은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로 내려가지 않아.
-그 얘기는.
-저 건물의 인간들은 우리와는 좀 달라. 생존이 아니라, 어인 사냥을 목표로 하는 놈들이오.
꺼림직하다는 듯 말하던 태완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물속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놈들이다 보니 쓸 만한 물건도 많아서 가끔 교류하긴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놈들은 아니야. ……미친놈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우리가 오기도 전부터 어인 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이들.
‘만나 볼 가치는 있다.’
그렇게 판단한 결과.
전투를 감행해 가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는데…….
“죽여라!”
“개같은 송사리 새끼들!”
“뒤져!!!”
괴성을 지르며 어인들과 싸우고 있는 인간들.
전투 중에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정도야 우리 부대에도 흔하다지만.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정도가 좀 심한데.”
태완이 꺼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전투의 흥분이라는 말로는 커버가 안 될 정도의 광기.
저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 부대에서도 한 명 정도밖에 없다.
“쯧. 다들 눈이 돌아가 있군요.”
“어? 어어.”
그 한 명이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던지라.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전광일 상병.
“괴물들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건지 뭔지. 저렇게 제 몸도 안 아끼고 저렇게 덤벼들어서야. 오래 살기는 힘들 겁니다.”
“…….”
“싸움에서는 어느 정도 저런 독기도 필요한 건 이해합니다만, 저 사람들은 좀 과하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 병장님.”
맞는 말이다.
맞기는 한데…….
“그게 니가 할 말은-.”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아니다.”
뭐,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것은 하나.
‘괴물과 적극적으로 싸우려는 이들이라는 얘기는 사실이었군.’
그렇다면 더 망설일 게 있나.
“가세한다!”
“예!”
나와 병사들이 전투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하하하!!! 피라미 새끼들! 순서대로 저승으로 보내 주마!”
광일이 녀석의 괴성은 묻어 두기로 했다.
* * *
원래도 어인들과의 전투에서 크게 밀리지 않던 인간들.
거기에 우리 부대의 전력이 가세하자.
“마지막 한 마리!”
콰직.
[당신의 요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안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숫자가 상당한바.
금방 다음 적이 몰려올 테니, 지금 여유도 오래가지는 않겠지.
“뭐 하는 놈들이오, 당신들.”
저들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일까.
전투가 끝나자마자, 인간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신선도 - 상]
[각성자: 곽창수]
[직업: 하급 광전사 Lv. 18]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보자.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레벨이 18?’
우리 부대의 분대장급들보다도 조금 높은 레벨.
최근에야 부대장을 맡은 광일이 같은 녀석들이 겨우 20레벨을 돌파해 ‘중급’ 각성자가 된 참이다.
10레벨 후반대는 우리 부대를 기준으로 해도 엄청난 고레벨.
적어도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이만한 고레벨을 본 적은 없었다.
‘정말 매일같이 괴물들하고 싸워야 가능한 수준…….’
놀라운 건 놀라운 거고.
나는 남자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병장, 신영준이라고 합니다.”
“병장?”
내민 손이 민망하게도.
악수는커녕, 인상을 찌푸리며 내 모습을 관찰하는 남자.
“이 안에 살아 있는 군인들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외곽에 숨어 있었나?”
“안쪽에는 없는 게 맞을 겁니다. 저희는 바깥에서 왔거든요.”
“바깥에서?”
살짝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진 남자였으나.
“바깥은 멸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뭐 상관없나.”
그게 전부였다.
밖에서 온, 그것도 군인이라고 하면 흥미를 가질 만도 한데.
당연히 질문 세례가 쏟아질 거란 예상이 무색하게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안녕하냐고 물었나? 딱히 안녕하지는 않소.”
“예?”
“당신네가 우리의 사냥감을 차지해 버렸잖소. 솔직히,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저희는 도움을 드리려고-.”
“알고 있소.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에 그친 것도 그래서고.”
나름 도와주려고 한 일이었는데.
이제 보니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나 보다.
“선의는 고맙지만, 필요 없었다는 것만 알아 두셨으면 좋겠소. 다음에는 이런 일 없기를 바라지. 그럼 이만.”
“잠시만요!”
“뭐요? 더 할 말이 있나? 오래 있으면 어인 놈들이 몰려올 거요. 부하들도 지쳤으니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데.”
“죄송합니다만, 당신들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우리랑? 왜?”
“……긴히 할 말이 좀 있어서.”
“흠.”
창을 든 남자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 얘기 정도야 못 할 건 없지.”
“그럼-.”
“다만. 조건이 있소.”
“조건?”
설마 저번의 인간들처럼 식량을 내놓으란 건가, 했으나.
남자는 창으로 물 위를 가리켰다.
“저놈. 저놈. 그리고 저놈까지.”
“아.”
“살아 있는 어인들이 있는 것 같군.”
그가 가리킨 곳에 있는 건 기절한 채 물에 떠다니고 있는 어인들.
전투는 끝났지만.
아직 확인 사살을 거치지 않은 괴물들이 있었던 거다.
“그놈들 시체를 넘겨주시오. 애초에 우리 사냥감이었으니까. 그 정도 권리는 양보해 줘야 대화할 마음이 들 것 같군.”
“……그 정도야. 마음대로 하시죠.”
“들었지? 다들 챙겨!”
“예!”
남자의 고함에 부하로 보이는 인간들이 괴물을 들쳐 맸다.
남자도 그중 한 마리를 어깨에 들쳐 매고는 말했다.
“따라오시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나와 부대원들은 창을 든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신 병장님. 살아있는 괴물들을 넘겨받았다는 건.”
“각성용으로 쓰려는 생각이겠지.”
물을 헤집고 걸어가며 이들을 관찰한 결과.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집단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던전에 입장한 우리 부대원들이 150명가량의 대인원이라면.
저들은 그 반의반도 안 되는 숫자.
‘평균 레벨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전력을 늘리고 싶겠지.’
각성에 필요한 무력화된 괴물이 필요하다는 점.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여기요.”
그렇게 어느 정도 걸어가자.
이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상가 건물이 보였다.
얌전히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곧 2층으로 올라가, 물이 차오르지 않은 장소에 도착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거 급하시군. 조금만 기다리시오.”
창을 든 남자가 바닥에 괴물 시체를 내려놓은 것을 보고 말을 걸었는데.
남자는 나를 제치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초라한 행색의 중년 여성.
“아주머니. 아주머니.”
“……어?”
남자가 어깨를 흔들며 몇 번을 부르자.
뒤늦게 고개를 드는 중년의 여성.
하지만 여전히 멍한 표정에, 눈에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접니다. 창수예요.”
“아아…… 창수 왔구나. 무슨 일이니……?”
“차례가 됐습니다.”
창수라는 남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아…… 드디어!”
힘차게 몸을 일으키는 중년 여성.
창수는 그녀의 손에 자신의 창을 쥐여 준 뒤.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부드럽게 안내했다.
그가 향한 곳에는.
아까 창수가 내려놓은 괴물이 그새 사슬에 묶인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케, 케륵.
‘지상에서는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건가.’
호흡을 못 하는 탓인지 괴로워하는 괴물.
호흡이 어려운데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해야 하려나.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각성.’
우리 부대도 안전하게 각성하기 위해 리자드를 결박하곤 했지.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각성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 자체는 적중했으나…….
“죽어죽어죽어죽어!!!!”
푸욱푸욱푸욱푸욱!!!
‘아 씨,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괴성을 지르는 여인.
조금 전까지의 영혼 없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카하하하하하!!!”
오히려 희열에 찬 듯.
이상한 웃음 소리를 내지르며 괴물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모습.
우리 부대의 각성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우리가 리자드의 겨드랑이 부위를 찔러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숨통을 끊었다면.
‘최대한 늦게 죽도록, 급소를 피해서 찌르고 있다.’
저들은.
각성보다도 어인에게 고통을 주는 게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영자 아주머니는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었소.”
그 모습에 조금 아연해 있자니.
내 옆에 선 창수라는 남자가 말했다.
“그녀에게 남은 건 두 딸뿐이었지.”
“저 아주머니 얘기군요.”
“여자 혼자 몸으로 두 딸을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들었소. 육아에 드는 돈이나 노력도 노력이지만,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딸들이 상처를 받을 게 두려웠다고 하더군. 그래서 다른 가정들보다 더욱더 애지중지해 주고 사랑해 줬다고. 그 노력이 빛을 본 건지, 두 아이 모두 엄마 속 썩인 적 한번 없는 훌륭한 아이들로 자랐소. 첫째는 꽤 유명한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할 게 확정된 상태였다지.”
“축하할 일이군요.”
“그런가? 두 딸 모두 어인들에게 씹어 먹혀 죽기 전까진 그랬겠지.”
“…….”
“저놈들의 이빨이 얼마나 단단한지, 뼈까지 씹어 먹어 버려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더군.”
그제서야.
저 모습이 이해가 갔다.
“물에 빠져 죽거나, 괴물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고 들었습니다만.”
“뭐야. 밖에서 왔다더니만. 이쪽 사정에도 꽤 자세하시군?”
“여기 오기 전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이쪽이랑은 분위기가 꽤 달랐습니다만.”
“그랬겠지. 뭐. 그렇게 죽은 사람이 적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적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니까.”
미친 듯이 웃으며 계속해서 괴물을 찌르는 여인.
결국 그 괴물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면, 우리 숫자도 지금보다 많았을 테지. 난 우리 그룹의 숫자가 적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오.”
그 말을 통해.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굉장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복수에 사로잡힌 사람들.’
괴물들에 의해 파괴된 일상.
그 분노를 그대로 괴물들에게 돌리는 이들이다.
아마도 모두가 안타까운 사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최고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