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복수자들 (3)
괴물 사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이들.
태완이 이들을 꺼린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미친놈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던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복수에 사로잡힌 사람들.’
자신들의 일상을 빼앗아 간 괴물들에 대한 복수만을 목표로 하는 이들.
바깥에서도 괴물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는 이들은 종종 있었다.
이곳은 그런 이들만이 모인 그룹인 거고.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싸우던 것도 이해가 가네.’
삶의 목적이 복수인 이들에게 자기 몸의 안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겠지.
창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런 거요. 우리 사정은 대충 이해되셨나?”
“예. 대충은.”
“저 물고기 놈들하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소. 하지만 보다시피, 다들 괴물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거든. 생포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아. 그래서.”
“당신들이 사냥한 어인들 중에 살아 있는 놈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전투가 끝난 뒤에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흥분도 좀 줄어드는 편이니까. 덕분에 각성자가 3명이나 늘어나게 되겠군. 정말 잘된 일이야.”
-꺄하하하하!!!
이미 숨통이 끊긴 괴물의 시체에 계속해서 창을 쑤셔 박는 여자가 보였다.
이게 잘된 일이라고 해도 되는 광경인지.
나는 창수를 슬쩍 곁눈질하며 물었다.
“그러면. 당신도 비슷한 사정이 있는 겁니까?”
“나 말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한 사정은 아니오. 드디어 총각 딱지를 떼고 결혼하려나 싶었는데, 결혼 상대가 사라져 버린 정도지.”
“…….”
꽤 대단한 사정으로 들리는데.
“우리 얘기는 이 정도면 됐을 거고.”
굳이 이 이야기를 더 하기는 싫다는 듯.
창수는 대화 주제를 돌렸다.
“우리를 일부러 찾아왔다고?”
“예. 여기에 오기 전에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서 당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 다른 건물의 사람들은 우리를 썩 좋게 보진 않을 텐데.”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눈치도 없는 놈들로 보이나? 뭐. 그런 놈들을 왜 찾아왔는지, 얘기나 들어 보지.”
팔짱을 끼며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창수.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
이들 모두가 꽤 안타까운 사정을 지니고 있겠지만.
괴물에 대한 적대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물론.
오랜 전투로 평균 레벨까지 높은 이들.
‘최고의 동맹.’
* * *
“그러니까. 여기가 그 던전이란 장소고, 당신들은 이 던전의 보스를 잡으려고 한다……?”
“맞습니다.”
“으음.”
태완에게도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복잡한 이야기에 머리를 긁적이는 창수.
“일단 묻겠는데, 만약 그렇게 해서 던전이라는 게 닫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안에 있는 우리도 던전이 붕괴하면서 다 같이 죽는 건가?”
“설마요.”
던전은 이계의 존재들에 의한 테라포밍의 결과.
던전의 붕괴는 일그러진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그러진 환경이라는 건 해가 뜨지 않는 점이나, 도시를 덮은 저 물들.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이상한 문자의 비석들 같은 걸 말하는 거겠지.”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이상 현상이 더 있었나 본데.
아무튼 그런 게 사라진다는 거다.
그 얘기를 들은 갑자기 창수가 눈을 번뜩였다.
“아니 잠깐. 저 물바다가 사라진다고?”
“그렇게 될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인 놈들은 물 밖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전멸하게 되겠군.”
턱을 매만지며 스산한 웃음을 짓는 그.
“괴물 놈들을 쳐 죽이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씨를 마르게 한다……. 게다가 질식사라니.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중 하나 아닌가…….”
“예?”
“아. 혼잣말이니 신경쓰지 마시오. 당신의 제안. 아주 마음에 들어.”
그 반응을 들은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보통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지 않나?’
이들은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괴물들이 몰살된다는 점.
그 부분만이 마음에 든다는 듯 중얼거리는 남자.
하지만 뭐.
중요한 것은 우리 쪽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던전 공략에 도움만 된다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지.’
생각보다 쉽게 이들을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하지만 어렵겠어.”
“예?”
뭐야 이 사람.
방금까지 되게 마음에 든다는 듯 킥킥거리지 않았나.
“제안은 마음에 들어. 괴물 놈들을 다 쳐 죽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그럼 왜…….”
“당신들을 어떻게 믿나.”
창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아닙니다만.”
“백 보 양보해서 던전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사실이라고 치지. 하지만 당신들이 같이 싸워도 될 만한 이들인지는 모르는 일이지.”
“…….”
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애초에. 난 당신들이 이곳에 찾아온 것부터가 의아해.”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괴물들을 쳐 죽이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지. 복수요.”
그가 주변을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영자 아주머니는 온 가족이 괴물들에게 잡아 먹혔소. 저기 보이는 저 청년은 형제의 희생으로 목숨만 겨우 부지했지. 그게 전부가 아니오. 저기. 저 방이 보이나?”
“예.”
“이 건물에서도 가장 큰 방이오. 저 안에는 사람들이 누워 있지.”
누워 있다니.
침실 개념으로 쓰는 방인 건가 했는데.
“정신을 놓은 채, 허공만 바라보면서 말이야.”
“……?”
“저번 사태로 인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었지. 일부는 앞으로 살아갈 궁리를 하느라 바빴고, 일부는 또 우리처럼 복수심에 불탔지.”
말을 이어 가던 창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또 일부는, 끔찍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 버렸소. 우리 중에는 그렇게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의 가족, 친구도 많아. 가까운 사람을 그렇게 만든 존재에 대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우리 그룹에 들어온 거지. 하지만 당신들은?”
창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추궁했다.
“이곳이 위험한 공간이란 것을 알면서도 굳이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거든.”
과연.
믿을 수 없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겠지.
목적과 동기를 모르는 이들을 신용할 수는 없다는 거다.
창수의 얘기를 들은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던전에 들어온 이유.
하나는 구원 요청이 들어와서.
하나는 던전 공략을 성공시켜 보상을 얻고, 힘을 키우기 위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공략을 선택한 동기는 따로 있긴 했다.
“그거 아십니까?”
“?”
“이 던전. 조금씩 넓어지고 있거든요.”
“대충은 알고 있소. 우리도 바보는 아니니까.”
던전이란 이계의 존재들에 의한 테라포밍.
즉.
“저 녀석들은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한 걸로 모자라, 자신들의 영역을 점차 넓혀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뭐가…….”
“열받잖아요.”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면.
나는 지금쯤 전역하고 민간인이 돼서 여유롭게 요리 공부를 하고 있었겠지.
아니면 전역 기념 여행을 다니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 일상이 무너진 것만 해도 열받는데.
우리 영역을 침공하고 자기들의 땅으로 만든다니.
짜증나잖아.
“놈들이 원하는 대로 당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이 위험한 곳에 들어왔다고?”
“지금은 위험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겁니다.”
이 던전의 환경은 조금 특이하다.
괴물과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지 않더라도.
물이 없는 고층에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약간 더 수명이 늘어날 뿐.
“고층에서 버티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사냥당하기 마련이죠.”
“…….”
“저희는 놈들이 원하는 대로 당해 줄 생각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힘을 기를 거고요. 그러기 위해선…… 혹시 게임해 보셨습니까?”
뜬금 없는 질문일 수도 있겠으나.
창수는 내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공략에 성공하면 큰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지.”
“뭐, 그런 겁니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창수.
만약 던전 공략을 함께하게 된다고 한다면, 서로의 등을 믿고 맡겨야 할 테니.
믿어도 되는 건지 아닌지 신중하게 선택하려는 거겠지.
“이 얘기는 조금 길어질 것 같군.”
한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고민을 좀 해 봐야겠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동안은 여기서 머무르도록 하시오.”
“여기서 말입니까?”
“우리는 인원수가 적은 편이거든. 공간이야 남아돌아. 한 층을 통째로 내어 주도록 하지. 배가 고프군. 식사들은 했나?”
그러고 보니.
‘해가 뜨지 않는 공간이라서 몰랐는데, 아까 먹은 요리의 효과도 사라진 지 꽤 됐지.’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란 거다.
“보아하니 식량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대접해 드리지.”
“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내가 요리사인데.
굳이 남에게 요리를 시킬 이유가 있나.
하지만 창수는 내가 괜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보아하니 군장도 가볍고, 식량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건-.”
“굳이 거절하지 않아도 돼서 하는 말이오. 우리는 다른 그룹들하고 다르게 물속에 직접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남들보다 식량을 얻을 기회도 많다는 뜻이지. 다른 그룹에 비하면 식량 여유는 있는 편이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차량에 실려 있던 군용 전투식량들은 이전에 만난 생존자들에게 대부분 털려 버렸다.
언제 전투가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병사들의 군장도 가벼운 게 사실.
저들이 보기엔 우리가 식량이 많아 보이진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해도 거리낌이 없네.’
창수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남들보다 조금 더 사정이 나을 뿐.
식량이 넘쳐나는 건 아닐 테지.
그럼에도 굳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는 건.
“손님 대접은 해야지.”
“…….”
“당신네가 양보해 준 덕분에 각성자도 늘었으니 말이야. 한 끼 정도 제공하는 건 어렵지 않아.”
새삼스럽지만.
직전에 만났던 인간들과는 꽤 차이가 큰 반응이었다.
‘저쪽은 오히려 식량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는데 말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마운 배려다.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거절하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되겠지.
“알겠습니다.”
“어. 신 병장님……?”
내 식사를 못 먹게 된 부대원들이 약간 울상이 되었지만.
그렇게 본다고 뭐 방법이 있냐.
“저, 저희는 그냥 전투식량 먹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식사 대접해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냐.”
“그, 그래도.”
“한 끼 정도 맛없는 요리 먹는다고 안 죽어. 이것들아.”
“끄으응.”
병사들에게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일단은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달그락.
치이이익…….
횃불의 빛에 의지해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들.
요리라고 해도 별건 없었다.
구석에서 물고기를 손질하고, 굽고.
거기에 상점에서 파는 호밀빵을 챙겨 넣는 정도.
‘열악하다.’
취사병의 입장에서 보면 영양실조 같은 게 걸리진 않을까 걱정된다만.
생각해 보면 각성자들은 영양실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했지.
‘아니…….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기보단, 마력을 소모해서 망가진 몸을 억지로 유지하는 느낌.’
그다지 좋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이들에게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각성자들이라면 저런 식사만 한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완성된 요리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디 가는 겁니까?”
“아. 저건.”
별거 아닌 질문이었으나.
들려온 대답은 꽤 무거운 것이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먹여 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 있다고…….’
나는 슬쩍 몸을 일으키고 그들을 따라갔다.
요리를 챙겨 들고 건물의 한쪽 구석에 있는 방에 들어가는 이들.
방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
“바아…….”
정신이 나가 버린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람들이.
‘미쳐 버린 인간들.’
우리 부대에서도 저런 이들이 나올 뻔했었다.
갑작스러운 괴물의 습격.
첫날만 해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헛소리를 해 대던 녀석들이 많았지.
‘우리 부대는 요리로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아 놨지.’
그리고.
지상에 내려온 뒤로 그런 이들을 본 적은 없었다.
이유는 아마도 하나.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죽어 버린 거겠지.’
바깥과 달리.
이 던전은 물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 이상 살해당할 일은 없다.
그래서 저렇게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중에는 지인이 저런 꼴이 돼 버린 탓에 합류한 이들이 많아. 저들 모두가 그룹원 누군가의 지인이지.”
“습기도 높고, 위생도 썩 좋아 보이진 않는데요. 질병 문제 같은 건 없는 겁니까?”
“글쎄. 얕은 지식으로나마 조금씩 자세를 바꿔 주면서 간호를 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요. 이상하게도 질병에 걸리는 이들은 없더군.”
“이 안에서는 바이러스도 돌아다니지 못하는가 보군요?”
“우리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있기는 하지. 운이 좋다고 해도 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러다가도 아주 드물게 정신을 차리는 경우도 있기는 해. 말 그대로 드문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 각성을 거쳤던 중년 여성도 저런 느낌이었지.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정신 차린 예시 같은 건가.’
그나저나.
흠.
“잠시만요.”
“음?”
나는 누워 있는 사람에게 식사를 먹이려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누워 있는 이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가족이거나 지인이거나 한 거겠지.
그들이 내게 약간의 적의를 보내왔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그 적의 섞인 눈빛을 대충 흘려넘긴 뒤.
누워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건강 상태 같은 거야 당연히 좋을 수는 없겠지만.
[식재료 감별(강화)]
[신선도 - 중상]
‘나름대로 잘 보살펴 준 덕분인가. 다들 상태가 최악까지는 아니야.’
습기도 많고 위생적으로도 좋지는 않은 환경.
질병이라도 돌았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테지만, 던전이라는 특수성 덕분일까.
평범한 수준의 간호만으로도 그럭저럭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
‘이 정도라면…… 되겠는데?’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창수를 보며 말했다.
“아까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고 한 것 말입니다.”
“음?”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혹시 이들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한 거라면 그럴 필요 없소. 아까 말했듯이 한 끼 정도야-.”
“아니. 예의 차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몸을 일으키고 창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한 요리가 더 맛있을 것 같아서요.”
“…….”
창수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야 어이없을 만도 하지.
식사를 대접해 주겠다는 사람한테
‘네 요리보다 내 요리가 맛있을걸.’
하면서 거절하는 미친놈이 어딨겠냐.
하지만 뭐 어쩌겠어.
그게 사실인걸.
“……진심인가?”
“예.”
“……그러면 뭐. 마음대로 하시오. 그런데.”
창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리 부대원들의 짐을 살펴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보아하니 뭐 식량을 엄청 싣고 온 그런 느낌은 아닌데?”
“아. 재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덤으로.”
난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바닥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다른 분들 식사도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밥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좀 전해 주십쇼.”
“그게 무슨 소리…….”
그렇게 바닥에 앉은 뒤.
건물의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땅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줍는 듯한 어정쩡한 자세.
그 손이 바닥에 닿은 순간.
쑤욱.
“뭐, 뭐야!?”
사람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게.
내 손이 바닥을 뚫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당황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나는 바닥을 뚫고 들어간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터억.
누군가가 내 손에 무언가를 건네는 게 느껴졌다.
난 그 물건을 잡아들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양배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턱.
터억.
쿵…….
“배추, 당근, 오이…….”
“저건 뭐야. 달걀이랑 고기까지 있는데?”
“……프라이팬이 왜 저기서 나와?”
바닥……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닥에 생겨난 내 그림자 속에 손을 넣었다 뺄 때마다 쌓여 가는 요리 재료들.
그렇게 꺼낸 재료들이 엄청나게 쌓였을 때쯤.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혹시라도 부족하면 말만 해.
얼마든지 더 꺼내 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