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1화 (101/227)

101화 환자식 (3)

구석으로 돌아와 나도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자니.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 : 치료의 요리사]

‘오.’

업적 달성 메시지가 나왔다.

아무래도 누워 있던 환자들이 모두 식사를 마친 것 같았다.

‘업적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요리를 통해 많은 환자의 상태 이상 및 정신 이상을 치료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요리의 영역이 단순한 미식이 아닌, 그 너머까지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업적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경험치를 대량으로 획득합니다.]

[‘랜덤 스킬 강화권’이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이 상당했다.

그리고 다른 보상은…….

‘랜덤 스킬 강화?’

원하는 특성을 강화해 주던 특성 강화권과 달리.

랜덤 스킬을 강화해 주는 보상이었다.

‘선택권이 없는 건 아쉽지만…… 강화해 주는 게 어디야.’

난 곧바로 스킬 강화권을 사용했다.

[랜덤한 스킬이 강화됩니다.]

[랜덤 스킬 선정 중…….]

눈앞에 작은 룰렛 같은 게 나타났다.

룰렛의 각 영역에는 내가 가진 스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룰렛이 돌아가고…….

띠링!

[‘절대 미각’ 스킬이 강화되었습니다!]

[‘절대 미각’ → ‘절대 미각(강화)’]

‘오.’

강화된 스킬은 절대 미각.

어떻게 강화된 것인지, 그 효과를 읽으려던 찰나.

“굉장한 짓을 해 주셨군.”

창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

“무슨 짓이요?”

“당신 덕에 사람들이 정신을 되찾은 것 말이오. 그 사람들을 보살피던 그룹원들이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 나보다 당신을 더 따르려고 할 지경이야.”

아.

정신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딱해서 가볍게 한 요리였는데.

이 남자의 입장에서는 부하들을 꾀려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

“당신네 그룹원들을 어떻게 하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미안하게 됐군요.”

“미안하다니?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창수는 내 사과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소.”

“예?”

아무래도 내 생각은 오해였는 듯.

“저 친구들은 소중한 사람들이 정신을 놓아 버린 충격에 복수를 결심한 이들이야. 그들이 정신을 되찾았으니, 이제 복수를 포기하겠지. 잘된 일이야.”

“잘됐다니. 당신 입장에서는 안 좋은 일 아닙니까?”

이 사람들을 이끄는 장본인.

본인 역시 누구보다 괴물들을 혐오하고 있을 터.

그 괴물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인원이 줄어든다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솔직히, 우리 쪽 사람들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잖소?”

어.

그건 그렇긴 하지.

“나 역시 그중의 한 명이긴 하지만, 이딴 길은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

“나는 운이 더럽게 없어서 영원히 이 길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벗어나려는 걸 막고 싶지도 않아.”

솔직히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지라.

조금 신기했다.

‘그냥 미친 사람들은 아니란 건가.’

괴물 사냥에 미쳐 있는 이들.

던전 공략에 쓸 만하겠다, 정도의 감상이었지만.

괜히 이 사람들의 리더 역할이 아니란 거겠지.

“그리고 뭐. 몇 명이 그룹을 나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

“예?”

“어차피 당신들도 던전 공략이 목표 아니오.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사실상 같은 집단이나 다름없을 테지.”

어.

그 얘기는 설마.

“던전 공략이란 거. 한번 도전해 봐야겠어.”

“……!”

실제로 떠오른 메시지 같은 것은 없었으나.

[동맹을 획득하였습니다.]

눈앞에.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창수의 그룹과의 동맹이 성사된 뒤.

본격적인 공략 회의가 시작됐다.

“그러니까. 여기가 던전이라고 친다면 어딘가에 보스가 있다는 건데……. 사실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해.”

창수는 우리를 데리고 옥상으로 향한 뒤.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시의 중심부지.”

“근거는 뭡니까?”

“잘 보시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듯.

팔짱을 끼고 물러나는 창수.

그의 말을 따라 그 주변을 조금 보니.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수위가 높군요.”

“맞아. 그나마 외곽 쪽인 여기는 그나마 건물의 2층, 못해도 3층까지만 올라가면 괴물들에게서 안전해지지. 하지만.”

“저긴 어지간한 3층 건물은 다 잠겨 있는 것 같은데요.”

“바로 그거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창수.

“그뿐만이 아니야.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저 괴물 놈들의 출현 빈도도 높아지고, 수준도 올라가거든.”

“허어.”

“수위가 높아지는 것만 해도 싸우기 힘든 환경이 된다는 뜻인데. 숫자도 늘어나고 힘도 강해지니, 우리 그룹도 일정 이상은 진입하지 못하고 외곽만 돌고 있던 형편이지. 노골적으로 수상하잖나. 저 안에 무언가 있기는 할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지.”

“접근이 어렵다는 건, 그 안에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니……. 일리가 있네요.”

“뭐. 이 도시의 인간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야. 문제는 그만큼 접근이 어렵고 괴물들도 많다는 건데.”

창수는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암만 밖에서 온 군인들이라고 해도, 저기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

“뭐……. 그건 한번 해 봐야죠.”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대답은 아니긴 한데. 으음. 뭐, 그건 넘어가도록 하지.”

그렇게 공략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어느 정도 경계심도 없어진 것 같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을 묻기로 했다.

“이 도시에서 탈출하는 방법에 대해 아시는 건 없습니까?”

“응? 당신들이 말한 것 아니오. 그 보스라는 놈을 잡으라고.”

“그거 말고도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 한 명 정도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다들 탈출했겠지.”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한테 구원 요청을 해 온 그 남자는. 대체 뭐야?’

춘천에서 왔다던 남자.

자기가 온 곳을 잘못 말한 게 아니고서야.

이 던전에서 탈출한 것이 거의 확실한데.

대체 어떻게 이 던전을 탈출해서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했단 말인가.

‘기절해 있는 양반이니, 깨워서 물을 수도 없고.’

“사실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한데…….”

“?”

“질문인데, 여기서 못 나가는 이유가 뭐일 것 같은가?”

“글쎄요.”

“저 벽 보이지?”

폭포처럼 흐르는 벽

“수압이 엄청나. 아직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탈출해 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차량을 타고 나가려고 해도 차량째로 갈려 버리더군.”

“저 폭포가 문제라는 거죠?”

“……? 그렇지.”

역시.

‘던전은 한번 입장하면 클리어 전에는 나갈 수 없어.’

하지만.

‘이 던전은 멸망의 날 첫날에 발생했고…… 이 사람들은 여기가 던전인 줄도 몰랐다.’

던전에 입장하면 입장 관련 문구가 나온다.

던전에 입장한다는 과정을 거쳤다면, 여기가 던전이란 걸 모를 수가 없다는 것.

즉.

‘이 사람들은, 던전에 입장한 적이 없는 거야.’

우연히 원래 살던 곳이 던전이 되었을 뿐.

시스템적으로 ‘던전에 입장’한 적은 없다는 거다.

‘입장한 적이 없으니, 나가려고 한다면 나갈 수 있어야 정상인 거다.’

지하철의 던전의 경우.

입장하면 나갈 수 없다는 문구와 함께 검은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았지.

이들은 조금 다르다.

외부와 던전의 경계에 내리치고 있는 엄청난 수압의 폭포.

그 폭포를 뚫을 수만 있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어려워. 차량조차 갈려 나갈 정도였다니까.”

“저희는 실제로 탈출한 사람을 만났습니다만.”

“으음. 그렇게 말해도. ……아.”

무언가 떠올린 듯.

짧은소리를 내는 창수.

“그런 게 가능할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있기는 한데.”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 겁니까?”

“아니, 아마 정답은 아닐 거요.”

그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능력은 되지만, 그럴 이유는 없는 녀석이니까.”

“가능한 존재가 있기는 하단 거군요.”

“그다지 도움 되는 정보는 아닐 테지만. 그래도 뭐. 비밀은 아니니까.”

짐작 가는 존재가 뭐길래.

“아까. 당신이 어인으로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걸 내가 막았던 것. 기억나시오?”

뜬금없는 말을 꺼내는 창수.

아.

그러고 보니 왜 막았나 했었지.

“이유는 간단해. 괴물이고 인간이고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던 사례가 있었거든.”

“……?”

“그리고…….”

창수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

아.

짧은 얘기였지만.

어떤 얘기가 나올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이 이상할 정도로 비대해지고, 강한 힘을 얻었지.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어.”

“…….”

“나중에 가서는 인간까지 산 채로 씹어 먹으려고 들더군.”

역시나.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는 괴물을 잡아먹는 건 금기가 되었지. 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금기 중의 하나야.”

“그렇군요.”

“가끔 복수를 위한 힘을 얻겠다고 괴물을 씹어 먹으려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뜯어말리고 있소. 잠깐 강한 힘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지능을 잃어 버리고 배회하는 짐승이 될 뿐일 테니.”

나는 비슷한 존재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이상 식욕자.’

우리가 토벌했던 대규모 약탈자 그룹.

그 그룹의 대장으로 군림하던 인간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형태를 많이 벗어나 있었다.

우리 부대의 정예들이 단체로 덤벼들어도 우위를 점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은 덤.

“그 괴물은 여전히 살아서 이 도시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지. 녀석이라면 저 수압도 버텨 낼 수 있을지 몰라.”

내가 만난 이상 식욕자.

난 그 모습이 동족을 잡아먹은 결과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인간까지 잡아먹은 건 좀 나중 일이오. 그전에는 어인만 먹은 걸로 알고 있어.”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궁금하군. 당신은 무슨 짓을 했길래, 괴물을 먹은 사람들이 멀쩡할 수 있던 거요?”

창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렇게 물어도 말이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뭐? 크하하하! 그것참 대단하군!”

그나마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중급 요리사 Lv. 22]

요리사라는 직업.

이게 뭔가 효과를 일으킨 게 아닐까.

* * *

대충 대화가 끝난 뒤.

옥상에 선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도시 하나를 뒤덮은 던전.

우리가 공략했던 지하철의 던전과는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르단 말이지.

우리 부대의 전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네.’

창수의 그룹을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문제들은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해결한다고 쳐도.

‘절대적인 전력이 너무 모자라.’

으음.

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창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음?”

“던전 공략에 참가할 만한 사람. 더 없습니까?”

솔직히 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창수의 그룹이 특별할 뿐.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굳이 위험한 전투에 발을 들이밀 사람은 없을 테니.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있기는 하지.”

“어?”

그런데.

창수의 대답은 반대였다.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괴물과의 교전을 피하지 않는 그룹이 몇 곳 있기는 하거든.”

“정말입니까?”

“어인 놈들을 쳐 죽이는 걸 삶의 낙으로 삼고 있는 우리하곤 좀 달라. 괴물을 사냥하면 레벨을 올릴 수도 있고. 포인트도 얻을 수 있으니……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 안전한 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이들이 있거든. 그들에게 던전 공략에 대해 말을 꺼내 볼 수는 있을 거요.”

뭐야.

그러면 당연히 꼬드겨 봐야지.

“다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

창수는 우려된다는 듯 말했다.

“말했듯이. 그들이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건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일이야. 사냥 자체가 목적인 우리와는 다르지. 즉.”

“목숨을 바쳐야 할 만한 싸움이 된다면 발을 뺄 가능성이 크단 거군요.”

“뭐. 그런 셈이오.”

당연한 일이다.

던전 공략이고 뭐고, 자신의 생존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뭣보다 그 위험한 전투 끝에 공략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도 없고.

그러니.

“당신네가 말하는 던전 공략…… 거기에 꼬드기려면, 저 괴물 놈들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어.”

“과연.”

“아마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발을 빼 버리겠지. 그렇다고 그런 확신을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 사실상 없는 전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할 거요.”

흠.

창수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응? 상관없다니. 뭐가.”

“설득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하신 거요.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들 여기 불러주십쇼.”

“뭐?”

창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뭔가 자신이 있는 거요? 당신 마법은 확실히 대단해 보이지만……. 그거랑 저 괴물들을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가랑은 별개일 텐데.”

“저 어인들을 누구보다 많이 사냥하던 사람들이 할 말입니까?”

“그 와중에 죽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나?”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나마 외곽에 있는 괴물들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으니 가능했던 일이야. 깊숙이 들어갈수록 적들은 덩치도 커지고, 이빨이나 골격도 점차 단단해지지. 수위가 올라갈수록 싸우기 힘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흠.”

“이 도시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요. 괴물 놈들을 처치하고 던전을 공략한다? 솔직히 가능 불가능을 따지면 나도 불가능 쪽에 손을 들 일이야.”

던전 입장 전에도 생각했던 일이다.

도시 하나를 덮는 던전을 만들어 버린 괴물.

약할 리가 없겠지.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단 말이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나.”

꽤 힘든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안 되면 뭐. 되게 해 봐야죠.”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난 말 없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뭔가 생각이 있나 보군.”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오래 걸려도 이틀이면 충분할 거요. 숫자가 많은 건 아니니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창수는 영 석연치 않은 듯했지만.

그럼에도 내 말을 믿고 부하 몇 명을 데리고 이동했다.

건물 옥상에 연결된 구름다리를 타고 이동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름 생각해 놓은 구석이 있긴 하거든.’

여차하면 우리 부대만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했을 수도 있으니까.

위험한 던전에 굳이 입장한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였거든.

그 ‘생각해 놓은 구석’에게 다가갔다.

“표정이 왜 그래?”

“음? 아……. 영준이 왔냐.”

건물 구석.

약간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던 민재 형이 말했다.

“으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니 뭐가.”

“……아무래도 나는 이 던전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물로 뒤덮인 도시.

심지어 무슨 조화인지, 건물의 외벽에서도 폭포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건물 안쪽은 그나마 덜한 편이라고 하나, 습기 때문인지 바닥에도 조금씩 물기가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내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테니까.”

민재 형의 전공은 번개 계열의 마법.

던전의 환경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위력이 강화되었다든가.

저격까지 가능한 사수들과 달리.

마법사들의 마법은 사정거리가 그렇게 길지는 않으니.

‘좋든 싫든 간에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아군에게도 영향이 올 거란 말이지.’

덕분에 던전 진입 후 벌어진 전투 내내 민재 형과 번개 마법사들은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때 꽤 자존감이 깎여 나간 모양.

“차라리 내가 탄약대대를 맡고 이상아가 여길 오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가위 같은 날카로운 무기는 물속에서도 꽤 효과가 있을 테니까……. 아까 그 아공간. 그때 그 뱀파이어의 능력이지?”

“아. 눈치챘어?”

“그 녀석을 쳐 내자고 해 놓고서, 정작 쓸모없는 건 내 쪽이로군.”

아군을 죽인 뱀파이어를 굳이 써야 하냐는 의문을 던졌던 민재 형.

그때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었나 보다.

“……내가 너무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놨나?”

이제야 아차, 싶은 듯.

“크흠. 미안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민재 형은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대충 얘기는 듣고 있었다. 작전은 알겠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문제라고?”

“어. 우리끼리 공략할 수 있겠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최대한 그 사람들을 설득해 봐야지.”

“던전 공략이 가능하다고 확신을 줘야 한다는 건데……. 그런 게 가능한가? 적어도 난 방법이 잘 안 떠오른다만.”

“방법이 있긴 해.”

“뭐?”

놀라는 민재 형에게.

난 반대로 뭘 묻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 놓은.

잘 먹힐 거라는 확신이 있는 방법.

“정확히는. 여기 있지.”

내가 가리킨 것은.

이민재 병장, 본인이었다.

“형이 고생 좀 해 줘야겠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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