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신벌 (1)
‘후우.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군.’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는 수몰된 도시에서 작은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나름대로 능력도 있어서 그룹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었으나.
‘도시의 식량이 다 떨어져 가고 있으니. 곧 싸움이 있을 거야.’
낚시를 통해 얻는 식량이나, 포인트를 통해 얻는 빵 정도로는 도시의 인간들을 모두 먹일 수 없다.
과거에도 한 차례 식량을 두고 큰 싸움이 있었다.
곧 다시 인간들끼리 칼을 들 일이 생길 거라 생각했던 남자는 그룹원들을 데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레벨을 올리고, 포인트를 얻어 더 많은 식량을 얻기 위해.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왔다.
-여길 탈출할 방법을 알아냈소.
미쳐 버린 전투광들로만 구성된 그룹, 복수자들.
그 그룹의 리더인 창수였다.
듣자 하니, 외부에서 온 군인들과 합류했고.
그들과 함께 여길 탈출할 작전을 짜고 있다고 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은 남자는 생각했다.
‘복수에 미친 놈들. 또 헛소리로군.’
괴물 놈들에 대한 적대심이야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저들은 그 정도가 많이 과했다.
도시에 살아남은 대부분의 인간이 그들을 꺼릴 정도로.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젠 그놈의 복수에 우리까지 끌어들일 셈인가.’
외부에서 온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태완의 그룹이 그들을 맞이했다가 안 좋게 헤어졌다던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도 모자랄 이들을 내쫓았다는 얘기에 참 멍청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 군인들이 같이 괴물을 사냥하자느니 소리를 내뱉는다면 나라도 거절했을 거야.’
미안한 얘기지만.
남자는 그런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벽에 갇혀 건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고는 하나.
그런 상황이라도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게 그의 심경이었으니.
괴물들을 사냥하는 걸로 모자라, 중심부에 들어가 그 우두머리를 잡는다?
자살 방법치고는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목숨이 조금이라도 아까운 이들은 결코 동참하지 않겠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하려는 그였으나.
-믿기 힘든 것도 이해해. 하지만 잠깐 우리 건물을 찾아와 얘기를 듣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우리가 그래야 할 이유가 어디…….
-3일 치의 식량을 제공하지.
-……3일 치나?
말이 3일 치지.
하루 먹을 식량조차 소중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 조건에 눈이 돌아가 버려서 얼떨결에 와 버렸지만, 잘한 선택이었을는지.’
주변에는 그처럼 조건에 넘어가서 찾아온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다.
나름대로 강자가 득실거리는 창수의 그룹과 친해져서 나쁠 게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창수가 말한 방법은 현실성이 없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저 괴물 놈들을 사냥하는 것도 목숨을 걸고 하는 짓거리인데. 그놈들의 우두머리를 사냥한다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그래도 뭐.
자신이 약간의 시간을 낭비하는 대가로 그룹원들의 3일 치 식량을 받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이득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건물의 옥상에 올라간 남자.
그가 보게 된 것은.
“……어?”
콰르르르르르릉…….
쿠릉…….
도시의 중심부.
그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번개 구름이었다.
* * *
던전에 진입한 뒤.
번개 계열의 마법사들은 사실상 쓸모없는 직군으로 변해 버렸다.
이유는 간단.
‘너무 강해져서 문제지.’
이 던전.
지상을 뒤덮은 물은 물론이고, 공기 중에도 습기가 넘쳐난다.
그나마 건물 안쪽은 덜한 편이나, 역시나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이런 환경인데 아직까지 질병 같은 게 돌지 않은 건 던전이라는 특이성 때문이겠지.’
아무튼.
최고의 전도력을 자랑하는 물이 사방에 퍼져 있는 상황.
번개 계열의 마법사들.
그들의 마법은 너무 강해져 버렸다.
‘최대한 먼 곳에 번개를 던져도 그 번개가 아군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
건물 안에 있을 때도 건물 외벽을 흘러내리고 있는 저 폭포 탓에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이 간다.
이 도시에서도 번개 계열의 각성자가 나오긴 했지만.
그들 모두가 전력 외로 취급되었다.
‘저레벨의 마법사는 안 그래도 마법의 사정거리가 그렇게 길지 못하니까.’
괜히 가까운 곳에 마법을 사용했다가 아군과 자신만 피해를 입게 되는 것.
반면.
[식재료 감별(강화)]
[이민재]
[Lv. 21 중급 번개 마법사]
[황선욱]
[Lv. 16 하급 번개 마법사]
우리 쪽 마법사들은 꽤 고레벨이란 말이지.
“정말 위력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최대 사정거리에만 쏘는 식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는 활약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희가 사수들처럼 장거리 공격에 특화된 것도 아니고. 위력을 줄이고 멀리 쏜다고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 부탁으로 모인 마법사들은 영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위력을 억제하면 안 되지.”
“예?”
“그러면 결국 아군한테도 영향이 갈 겁니다. 이 던전의 환경 자체가……….”
“맞는 말이긴 한데. 발상을 좀 바꿔 보자고.”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위력을 줄인다는 건.
너무 소극적인 발상이잖냐.
“반대로 가야지.”
“……?”
“위력도 늘리고, 사정거리도 늘린다.”
안 그래도 강해진 마법.
그걸 더 강화하고.
“그럼에도 아군에게는 피해가 오지 않을 정도의 사정거리가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아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습…….”
“안 될 것 같냐?”
“……?”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되게 할 능력도 있고.’
전차대대를 탈환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전력을 다해서 만든 요리를 먹고 쓰러지듯 기절한 서수혁 상병.
녀석이 기절하기 직전에 한 말.
-이만큼 강력한 버프는, 가급적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야 어떻게든 버텨내긴 했습니다만, 정신력이 조금이라도 약한 녀석이었다면 진작에 기절했을 겁니다.
그 얘기를 들은 후.
요리의 효과를 조금씩 조절해 왔다만.
‘조절하는 걸 포기한다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진단 말이지.’
씨익.
나는 그림자 속에 손을 집어넣은 뒤.
안에 있는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 들었다.
“정말로 안 될 것 같아?”
“……어.”
내 표정을 본 마법사들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되는 겁니까, 이거?”
* * *
그 결과가 바로.
지금 하늘에 생긴 저것.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하늘에 생긴 거대한 먹구름.
먹구름의 주위로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스파크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창수는 그 구름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곳에 갇히고 난 뒤에는…… 해도 뜨지 않고, 비도 오지 않게 됐지. 바람도 불지 않았고. 일반적인 기상 현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어.”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태완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태양이 뜨지 않고, 구름 자체가 사라졌다고 했던가.
“저건…… 평범한 기상 현상은 당연히 아니겠지.”
그야 뭐.
구름 한 점 없던 공간에 갑자기 먹구름이 낄 리는 없으니까.
기상 현상인 먹구름은 일종의 자연재해.
번개를 머금고 비를 쏟아 내는, 인간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영역의 일이다.
‘저건 그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다들 식은땀을 흘리면서 쳐다보고 있었으나.
사실 진짜 번개 구름하고 비교하면 꽤 차이가 있을 거다.
사방이 막히고 구름 한 점 없는 던전 내부.
심지어 위치한 고도도 좀 낮은 편이다 보니 쓸데없이 커 보이는 거지.
사실 번개를 품은 먹구름의 크기 자체는 그렇게까지 큰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충분할 정도의 크기지만.’
실제 자연 현상의 규모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라고 하나.
그래도 굉장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만큼.
대가가 없지는 않았다.
“커허…….”
“……끄르륵.”
번개 계열의 마법사들.
그리고 마법의 위력이 줄어 들어 할 일이 없어진 화염 계열의 마법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일부는 입에서 게거품을 물기까지.
저들이 저렇게 고통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나.
‘내가 전력을 다한 요리를 먹었으니, 죽을 맛이겠지.’
맛도 맛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얻은 버프가 핵심.
‘지나치게 강한 힘은 사용자에게도 무리를 주는 법.’
내가 직접 하기엔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다 보니, 능력치와 레벨이 다른 부대원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상승해 버린 나.
그런 내가 전력을 다해 만드는 요리는, 부대원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버프를 제공한다.
덕분에 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
하지만 버프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마력 전이.’
마법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든가.
내 요리를 먹고 마력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마법사들.
그들은.
그렇게 증폭된 마력을 한곳으로 전이시키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부대 최강의 마법사.
이민재 병장.
그가 시전하는 마법을 향해.
“죽겠군…….”
이민재 병장 역시 내가 ‘전력을 다해’ 만든 요리를 먹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마법사들의 마력을 모조리 받아 내기까지 하고 있으니.
‘아마 이 자리에서 가장 큰 고통을 느끼고 있겠지.’
어쩌면.
서수혁 상병이 겪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하지만.
이래 봬도 부대에서 내 바로 다음으로 각성한 양반이란 말이지.
“던전에서 쓸모없어질 것 같다고 하자마자, 이딴 개고생이라니…….”
“그래서 말했잖아. 고생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고.”
부대 최고참인 나도 일하고 있는 참인데.
어딜 혼자 꿀을 빨려고 그러나.
그리고…….
“맛있는 밥 먹여 줬으니. 일해야지.”
“큭큭……. 개자식.”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잃지는 않은 채, 손을 드는 이민재 병장.
그가 즐겨 사용하는 마법인 번개의 창이 그 손에 쥐어지고.
파악!
상공의 먹구름으로 던져졌다.
‘민재 형의 마법.’
나보다는 꽤 늦었지만, 최근 20레벨을 넘어 중급 마법사가 된 민재 형이다.
당연히 처음 각성했을 때와는 다룰 수 있는 마법의 가짓수가 달랐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것.
효과는 간단하다.
먹구름 안에 마법을 응축해서 한 번에 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지속 시간이 짧은 편이고, 원래라면 그렇게 멀리 이동시킬 수도 없어서 효용성은 크지 않았지만.’
버프를 몸에 두른 지금은 다르다.
번개를 계속해서 집어삼킨 먹구름은 저 멀리,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아마도 이 던전의 괴물과 보스가 집결해 있을 그 장소의 바로 위쪽.
우리가 있는 건물과는 상당한 거리다.
아무리 강력한 번개라고 한들.
우리에게 피해가 오지는 않을 정도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 구름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창수가 데려온 다른 그룹의 인간들.
그들은 모두 상공에 생겨난 먹구름을 보며 경악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짓을 하려고 한 건 저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도 있었으니까.
확신이 없다면 던전 공략에 참가하지 않을 사람들.
그렇다면.
‘확신이 들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면 되는 거지.’
이 정도면 시선은 충분히 끈 것 같고.
조금은 더 위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끄르륵…….”
아무래도 더 시간을 끌면 슬슬 기절하는 사람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나는 민재 형의 등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사격 개시.”
“……개시!”
내 명령에 복명복창하는 이민재 병장.
그 모습을 보며 동시에 생각했다.
‘분명…… 바다에서 전기로 낚시를 하는 건 불법이었지?’
너무 강한 위력에 낚시꾼들도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던가.
그럼에도 꾸준히 바닷속에 배터리를 꽂아 넣는 낚시꾼들이 뉴스에 나오곤 했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이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너무 효과적이니까.’
그 순간.
수몰된 도시의 중심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콰르릉……!
신벌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번개의 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