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3화 (103/227)

103화 신벌 (2)

콰르릉……

콰릉-

상공에 자리 잡은 먹구름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번개가 내리쳤다.

멀리 있는 여기서도 위압감이 전해질 정도의 번개.

그 번개가 지상에 꽂히자.

둥둥…….

엄청난 숫자의 물고기.

아니.

어인들의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다른 건물들에 가려져 중심부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숫자라는 것이 보일 정도.

그리고.

[당신의 요리를 대접받은 이들이 전투에서 경악스러울 정도의 활약을 남겼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크윽.’

내 몸 안에 거대한 기운이 몰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순간에 몰려 들어오는 기운에 약간의 고통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간접적으로 경험치를 나눠 받는 내가 이 정도라고?’

그렇다면.

저 마법에 참가한 마법사들.

그리고 마법을 발현한 민재 형은 얼마나 많은 경험치를 얻고 있다는 걸까.

‘대박이다.’

중심부로 갈수록 괴물들의 밀도가 늘어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나 보다.

반대로 저 괴물들을 그냥 뚫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얼마나 고생해야 했을지.

기대 이상의 결과에 기분이 좋아지려던 찰나.

고오오오오오오오-

“!?”

“이 소리는.”

번개가 내려치는 도시의 중심부.

그 안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무언가.

비명이 이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것을 보면 평범한 녀석은 아니겠지.

‘보스 몬스터.’

이 도시를 던전화시킨 장본인.

바로 그 녀석이겠지.

방금 저 번개는 현시점에서 우리 길드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이었다.

그게 저 안에 숨어 있을 보스 녀석에게도 영향을 줬다는 거겠지.

그 여파는 곧바로 나타났다.

“어어. 저기 좀 봐.”

“수위가 낮아지고 있어……!”

던전이라는 이름의 테라포밍.

그걸 진행하는 것은 보스 몬스터다.

중앙부로 갈수록 높아지는 수위.

도시 중앙부는 어지간한 고층 건물 수준으로 물이 차올라 있었으나.

‘그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도시 중앙부만이 아니였다.

던전 전체의 수위가 조금씩 낮아지는 듯.

원래도 가슴께까지 차올랐던 이 근방 역시.

이제는 허벅지에 겨우 닿을 정도로 낮아졌다.

‘이런 거까진 기대 안 했는데.’

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뒤를 돌아봤다.

“미, 미친.”

“저 물이 낮아지고 있는거. 우연은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저 군인들이 뭔가를 한거겠지.”

방금 일어난 현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괴물이 많아지고, 수위가 높아지는 게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이딴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늘에서 번개를 불러내는 기적 따윈 일상에 불과하다는 태도로.

“그래서, 괴물을 줄이고 수위를 낮춰 봤습니다.”

“…….”

“맙소사.”

꿀꺽.

식은땀을 흘리며 지상을 내려 보는 사람들.

그곳에는, 둥둥 떠오른 채 돌아다니는 어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이, 이 정도면.”

“공략이란 거.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 * *

“정말 가능한 거겠지?”

“하하. 저희만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창수가 데려온 사람들은 김 중위에게 맡겼다.

호방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김 중위.

“꼼짝없이 저 건물에서 말라 죽을 운명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무서운 말씀을. 아무리 위험한 순간이라도 다 살아날 구멍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이 도시에 굳이 입장한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짓이거든요.”

“역시……!”

“괜히 군인들이 아니야. 믿음직스럽구먼!”

안 그래도 저 번개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던전 공략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이다.

거기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김 중위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은 점점 더 던전 공략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

김 중위와 사람들을 지켜보던 내게 의무병이 다가와 말했다.

“신 병장님.”

“어.”

“방금 공격에 가담했던 마법사들, 전부 기절했습니다.”

“……조용히 얘기하자.”

다른 각성자들에게 들리지 않는 곳까지 이동한 뒤.

의무병의 보고를 들었다.

“상태는 어떤데?”

“마력 폭주와 마력 탈진을 동시에 겪은 셈이니까요.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할 것 같더군요.”

“…….”

“정신을 차리더라도 저 정도의 마법을 다시 사용하기는 힘들 겁니다.”

저만한 공격 마법을 발동하는데 대가가 없을 리가 없다.

할 일이 없는 마법사들을 싸그리 모은 뒤.

충격으로 기절해 버릴 만큼 강력한 버프가 담긴 음식을 꾸역꾸역 먹이고.

그렇게 미친 듯이 증폭된 마력을, 부대 최고의 마법사.

이민재 병장에게 몰아넣었기에 가능한 결과.

‘다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마법의 발현에 참가한 마법사들은 모두 탈진해 버렸다.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만.

“잘 좀 간호해 줘. 습기가 많고 하니 병이 돌기 좋은 환경이니까. 아직까지 전염병 같은 게 돈 적은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지. 다른 사람들이 운이 좋았던 걸지도.”

“예. 맡겨만 주십쇼.”

어차피 이 던전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마법사들이다.

그들을 이용해 다른 각성자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겠지.

실제로.

“애초에 우리가 필요할지도 의문이군.”

“그러게. 방금 같은 번개 몇 방만 더 쏘면 괴물 놈들도 전멸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방금 마법을 보고 합류한 이들.

그들은 이제는 던전 공략이 가능하다고 아예 확신을 가진 채 떠들고 있었다.

물론 저들이 말하는 그 번개를 다시 쏘는 건 어렵다.

아마 최소한으로 잡아도 한 달은 더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만.

‘……굳이 밝히진 않아도 되겠지 뭐!’

불편한 진실은 묻어두기로 한다.

창수가 데려온 그룹들의 각성자들을 모두 포함하면 그 숫자는 우리 부대의 2~3배.

멸망의 날 이후로 이만한 인원수의 인간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우리 부대 수준으로 레벨이 높은 그룹은 창수의 그룹 정도인가.’

그 창수의 그룹 역시 레벨만 높을 뿐.

얻게 된 포인트는 대부분 식량에 투자한 것은 물론.

우리 길드 같은 단체 스킬이나 생산 계열 각성자들이 만든 아이템의 효과를 받지는 못했다.

“숫자는 엄청 늘어났지만, 전력으로만 따지면 우리 부대만 있을 때와 비교해서 1.5배에서 2배 정도겠군요.”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서수혁 상병은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눈빛이었다.

뭐 어쩌겠냐.

다른 이들이 우리 부대원들 정도로 정예화되어 있길 바라는 게 사치지.

‘이 병력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었다.

“수위가 줄어든 덕에 대충이지만 정찰이 될 것 같아요.”

정수아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직업은 정령사.

아무래도 전투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 편이다보니.

언제나 드론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만.

그녀가 계약한 정령은 다름 아닌 물의 정령이다.

‘물을 매개로 이동할 수 있는 정령……. 이 던전이라면 어디든 시야에 들어온다는 뜻이지.’

아마 전투 면에서도 밖에서보다 기대할 수 있겠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상성이 좋은 던전인 셈.

“중심부는 수위가 너무 높아서 밖에서는 안쪽이 보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방해가 들어와서 정찰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이제는 아니란 거군.”

“네. 시야를 방해하던 존재가 치명상을 입은 거겠죠. 이제는 대충이나마 중심부의 풍경도 정찰할 수 있겠어요.”

정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건 의미가 크다.

도시의 생존자들은 외곽의 고층 건물에 퍼져서 활동하고 있다.

중심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이들은 없었으니까.

적 어인이 어디에 더 많이 분포되어있는지만 파악할 수 있어도 큰 이득.

그런데.

“어? 이건 좀 예상외네요.”

“응? 뭐가 있길래 그래?”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던 도시의 중심부.

도시를 뒤덮은 물은 맑은 편이라고 하나.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 불빛 한 점 제대로 드는 곳이 드물다.

“건물이 생겼어요.”

아무리 고층 빌딩에 주거하는 생존자들이라고 한들.

그 안쪽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양식의 건물들이.”

“흐음.”

그렇게 사람들의 눈이 가려진 사이.

안쪽에는 건물을 짓고 있었다는 거다.

“도시 중심부면 원래도 건물들이 많았을 텐데. 그 건물들은?”

“물에 잠겨 있던 건물들은 전부 사라졌어요.”

“설마. 건물들을 철거해 버렸다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물에 잠기기 전의 풍경을 상상하면 안 될 것 같네요.”

정체불명의 새하얀 자재들로 만들어진 건축물들.

“뭐. 던전이 테라포밍이라는 가정이 맞다면, 결국 자기들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거니까. 자기들 양식의 건물을 짓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건물을 지을 정도로 문화가 발달한 종족이란 게 놀랍습니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방문했던 지역은 도시의 외곽.

이쪽은 말이 던전이지.

물에 잠겨 있다는 특별한 환경을 제외하면 바깥과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좀비가 없고, 괴물은 물속에만 돌아다닌다는 점에서는 바깥보다도 안전할 지경.

‘중앙부는 다르단 건가.’

괴물들의 핵심 전력과 보스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을 장소.

그곳에 있던 인간들의 건물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저들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들.

그래.

정말 던전이라 불러야 할 만한 장소가 돼 버렸다는 거다.

* * *

풍덩…….

수백 명의 인간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체온을 낮추고, 옷을 비롯한 장비들을 무겁게 만든다.

“쯧.”

“이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군.”

물 속 자체가 애초에 인간을 위한 환경이 아니니까.

물론, 그 정도면 그냥 거슬리고 말 일이겠지만.

진짜 문제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파바바바바바.

물 안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검은색 형체들.

“저, 저기!”

“옵니다!”

본래.

이 도시의 인간들 대부분은 어인과의 전투를 꺼렸다.

그나마 전투를 벌이는 이들 역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투를 펼쳐야만 했다던가.

환경적으로도, 숫자로도 크게 밀리는 상황이니.

당연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걸 무시하고 어인과 자주 격돌한 이들이 창수의 그룹이었지만.

그렇게 싸움을 거듭하며 오래 살아남은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으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인이 보이기만 해도 긴장감에 손을 떨던 남자.

“하하! 홈런이다, 자식아!”

그가 휘두른 거대한 망치가 튀어 오른 어인을 후려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너무 가볍잖아!”

“핫하! 죽어라! 피라미 새끼들!”

“끼요오오옷!!!”

어인들에게 먹잇감에 불과했던 인간들.

불과 얼마 전에 우리 부대의 동맹이 된 이들이 용맹하게 괴물을 베어 넘겼다.

“대단한 버프로군.”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하나.

김 중위의 함성과, 내 요리 등.

우리 부대가 자랑하는 광역 버프의 효과였다.

“우리 중에서도 버퍼 계열의 각성자가 있기는 했지만……. 수준이 달라. 특히 이 환경 적응이라는 버프가.”

콰직!

덤벼드는 어인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순식간에 마무리 하는 창수.

그가 자신의 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군인 양반. 혹시 내가 왜 창을 쓰게 된 건지 아시오?”

“예? 각성한 특성 때문 아닙니까?”

“그것도 있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조금 달라. 물속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거든.”

물속에서는 대부분의 행동이 제한된다.

특히 부피가 큰 것일수록 물의 저항을 더 크게 받아 힘을 잃기 마련.

“그나마 점으로 찌르는 창이나, 아니면 애초에 면적이 적은 단검 정도. 그게 물속에서 전투가 가능한 마지노선이었지.”

“과연.”

“우리 그룹의 대부분은 그 둘 중 하나를 무기로 사용하오. 저 괴물 놈들과 가장 많은 전투를 거쳐 온 우리만의 노하우 중 하나랄까. 하지만…….”

창수의 그룹과 달리.

다른 각성자들은, 어인과의 전투를 자주 겪지는 못했다.

새로운 일원을 각성시킬 때나 조금씩 전투를 벌여 본 정도.

“물속에서 망치를 휘두르다니. 본래라면 맨손보다 못한 무기였을 텐데…….”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는 각자가 각성하면서 부여받은 특성에 따라 달랐다.

당장 처음 괴물을 쳐 낸 각성자가 휘두른 것은 망치였기도 하고.

“그런 무기들이. 제힘을 다하고 있어.”

내 요리를 통한 버프는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부분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가장 큰 것은 일시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특성이다.

[환경 적응 - 수]

[특정 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지닙니다. 물속에서 활동할 시, 환경으로 인한 행동 제약이 80%까지 완화됩니다.]

“말도 안 되는 효과로군.”

“뭐. 효과가 조금 좋긴 하죠.”

“조금이라?”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창수.

“저번에 다른 병사들한테도 물어봤지만. 바깥의 각성자들은 모두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닙니다.”

“다행이군. 자신감이 크게 상할 뻔했어.”

저런 버프를 뿌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부대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강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른 그룹의 인간들이 합류한다고 해도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소. 환경의 제약이 있으니 기껏해야 괴물 놈들을 몸으로 막아주는 역할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했지.”

“이제는 아닙니다.”

그 말대로.

능력치 상승은 물론.

이전과는 달리 물속에서도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각성자들.

그렇게 되자.

포식자였던 어인들이 오히려 밀리기 시작했다.

창수가 낮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놈들을 모두 쳐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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