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다스무르 공략전 (1)
“이놈이 마지막이다!”
“끼요오오옷!!!”
괴성을 내지르며 괴물의 숨통을 끊는 남자.
그 말대로 마지막 놈을 처치하며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나는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피해 보고.”
“예!”
곧 병사 중 한 명이 다가와 전투의 결과를 보고했다.
“조력자로 온 도시의 사람 중에 부상자가 세 명. 부대원 중에 경상자가 한 명. 그 외에는 이상 없습니다.”
“나쁘지 않네.”
부대원들이야 워낙 전투에 이골이 났으니 당연하지만.
레벨이 낮고 전투 경험도 적은 편인 사람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전투에서 활약하는 모습이었다.
‘아직까지는 우리 쪽이 완전히 우세인가.’
이제 막 던전 공략을 위해 물속으로 내려온 참이다.
창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외곽 지역의 괴물들은 비교적 약한 편이라던가.
아무리 내 버프가 있었다고 한들, 저 사람들이 활약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부분도 컸겠지.
[식재료 감별(강화)]
[심해의 다스무리안 유체]
외곽의 괴물들은 약하다.
그 말인즉슨.
던전 안쪽으로 진입할수록…….
“카아아아악!”
“크윽!”
더 강한 괴물이 나타난다는 뜻.
“뭐야, 이 자식들은!”
“조심해! 엄청나게 강하다!”
외곽의 괴물들을 처치하면서 중앙 쪽으로 진출하던 중.
이제까지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강한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해의 다스무리안 아성체]
[깊은 물의 세계, 다스무르의 수호 종족인 다스무리안의 아성체입니다.]
[다스무르의 생명체들에게는 그들 세계를 수호하는 어인, 다스무리안의 살점을 먹는 자는 불로불사를 이룰 수 있다는 민간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귀한 식재료입니다.]
[높은 잠재력을 지닌 종족이지만, 잠재력의 대부분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전까지의 어인들은 [유체].
녀석들의 크기는 잘 쳐줘 봐야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다만.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 녀석들은 [아성체].
키만 해도 거의 2m에 달하는 수준에, 손과 발의 길이도 기괴할 정도로 길었다.
단순히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힘도 피부의 단단함도 배가 된 느낌.
“다들 진정해라!”
“숫자가 많지는 않아! 한 마리당 두세 명씩 덤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았단 것이었다.
각 그룹의 리더 격인 인원들이 지휘하며 진형을 짜고 상대하자.
그럭저럭 피해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숫자가 적어서 다행이군.”
“그래. 아마 저번의 그 마법 덕분이겠지.”
“새삼 대단하군. 그때 물 위로 떠오른 엄청난 숫자의 시체들이 다 이 정도 수준의 괴물이었다는 거 아닌가?”
본래라면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괴물의 숫자도 많아지고.
그 강함도 더 강해진다고 했다만.
민재 형과 마법사들을 갈아 넣어가면서 만들어 낸 공격.
그 대규모 번개 마법으로 인해, 중앙부에 있던 괴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
“원래라면 이 정도 수준의 괴물들이 말 그대로 떼를 지어서 몰려 왔을 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배터리 낚시가 불법이긴 하다만.
효과는 직빵이였다는거다.
해 둬서 다행이지.
게다가.
강해진 괴물에게 고전하는 것은 도시의 사람들뿐.
서걱-
회칼의 형태를 한 식칼.
[독고구식]을 쥐고 어인을 베어 넘겼다.
녀석도 제 용도로 쓰이는 것이 기쁜 것일까.
여느 때보다 더 날카로워진 느낌이란 말이지.
‘괴물들의 평균 수준이 올라가긴 했지만. 부대원들은 물론이고, 창수의 그룹원들 정도라면 충분히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
괴물뿐만이 아니라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수위도 문제였지만.
보스 녀석에게 피해를 입힌 덕인지 수위가 낮아진 지금.
중심부로 전진하는 데에 걸림돌은 하나도 없었다.
* * *
피를 닦아내며 다음 괴물을 찾아 이동하려던 순간.
-카라낙……. 다스…….
“…….”
약점을 찔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괴물.
녀석이 무언가 언어를 중얼거렸다.
“이놈들은 언어를 사용하는군요.”
근처에서 함께 싸우고 있던 광일이 녀석이 말했다.
그 말대로.
외곽에 있던 괴물들과 달리.
안쪽에서 나온 이 녀석들은 무언가 언어를 구사했다.
“외곽의 괴물들과는 확실히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저도 느꼈습니다. 뭐랄까. 지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외곽의 괴물들은 [유체].
이 녀석들은 거기서 한 단계 넘어간 [아성체]였다.
‘인간으로 치면 초등학생쯤일 테니,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나?’
언어를 사용하는 괴물 자체는 처음 보는 건 아니다.
인제군청을 장악하고 있던 고블린들도 그렇고.
당장 지금도 부대원들의 시선 밖에서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을 뱀파이어들.
그 수장이자, 내 권속이 돼 버린 아리엘라도 평범하게 말을 했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둘과는 의사소통이 되었지만, 이 괴물의 언어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 정도.
“잠깐 휴식!”
“옆 건물로 들어간다!”
전진을 잠시 멈추고 부대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여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까…… 너나 그때 그 고블린들은 어떻게 나하고 의사소통이 된 거지?”
외계의 존재.
본래라면 저 어인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놨어야 정상 아닌가.
-간단해요.
머지않아 그림자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제가 언어를 익혔거든요.
“언어를 익혔다고?”
-그 난쟁이들도 같은 이유겠죠. 드물긴 하지만 타 종족의 언어를 금방 익히는 종족도 종종 있거든요. 말투가 어눌했던 걸 보면, 언어의 습득만 빠를 뿐 지능이 높은 건 아니겠지만요.
“그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너는?”
-제 경우는 조금 특별하답니다.
특별하다니.
그 고블린들처럼 익힌 게 아니라는 건가.
-벙커에 갑자기 소환된 뒤,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눈앞에 있던 인간을 첫 번째 권속으로 만드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때, 녀석의 피를 마시면서 지식을 조금 가져왔거든요.
“뭐?”
지식을 가져오다니.
그딴 짓도 가능해?
-당연하죠. 피에는 그 존재의 일부가 담겨있으니까요. 고위 뱀파이어들 중에서는 인간을 잡아먹고 그 인간의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죠.
“세상에.”
인간을 잡아먹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인간인 척 행세한다.
‘이건 뱀파이어라기보단…… 다른 괴물 아닌가?’
왜.
도플갱어라던가.
“내가 아는 뱀파이어한테는 그런 설정은 없었던 거 같은데.”
-…….애초에 뱀파이어라는 종족 명부터가 잘못됐는걸요.
“?”
-주인님이 어째서 저를 뱀파이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는 대충 이해하지만요. 저는 밤의 귀족이에요. 제 세계의 언어로 제 종족 명을 읽었을 때의 발음은 뱀파이어와 단 한 음절도 겹치지 않죠.
“아.”
생각해 보니.
몬스터들의 정체는 이계의 존재들이라고 했지.
‘뱀파이어는 인간의 창작물 속에 나오는 종족.’
몬스터의 종족 명이 우리가 흔히 아는 종족인 게 오히려 이상한 일.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자기를 뱀파이어라고 소개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매번 밤의 귀족이라고만 소개했지.’
그전에 싸웠던 이 녀석의 권속들도 마찬가지.
녀석들을 뱀파이어라고 부르게 된 건…….
[뱀파이어 준남작]
‘상태창 때문이었잖아.’
상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녀석은 뱀파이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종족이었고.
……설마.
번역할 이름이 마땅치 않으니, 대충 성질이 비슷한 뱀파이어로 표기해 버렸다던가.
뭐 그런 건가?
‘어이가 없네.’
이 상태창.
여러모로 조금 대충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이 녀석도 자기가 인간의 언어를 익혔을 뿐.
일반적인 몬스터들과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얘기겠지.
‘아니 잠깐.’
이 녀석이 특별한 경우라고?
그렇다면.
다시 그림자를 보며 말을 걸었다.
“피를 빨아서 인간의 언어를 익혔다고 했지?”
-네.
“그럼 저 어인들의 언어도 배울 수 있나?”
이 도시를 던전으로 만든 어인들.
우리 입장에서야 다른 괴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만.
‘언어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들만의 건축 양식까지 가지고 있었어.’
어쩌면.
생각보다 발달한 문명과 지식을 가진 괴물들일지도 모른다.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괴물들.
그 침공의 원인은 아직까지도 불분명했다.
그나마 권속으로 삼는 데 성공한 괴물이 아리엘라이지만.
그녀는 봉인을 당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구였다고만 말했다.
‘어째서 자신이 지구에 온 것인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
하지만 저 괴물들은 조금 다르다.
저만한 숫자에.
지구를 향한 테라포밍까지 진행하고 있는 녀석들.
‘지구를 침공한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떤 의도인지는 이해하지만…… 어려울 거예요.
“왜지?”
-저는 하급 귀족에 불과하니까요.
아무래도 기대한 방법은 쓸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그 존재의 모든 기억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고위 귀족이나 가능한 일. 저로서는 언어 지식을 흡수하는 것도 비슷한 종족이어야만 가능한 수준이라…….
뭐야, 이 녀석.
생각보다 무능하잖아.
-……호호. 그런 말을 주인님이 하실 줄은 몰랐네요……!
“?”
-……원래대로라면 힘을 키워서 최소한 남작급으로 올라갔을 예정이었거든요? 누구 씨가 찾아와서 애써서 키운 권속들을 모두 죽이고 피까지 빨아가지 않았더라면.
“아.”
과연.
지금의 무능은 내가 만든 결과란 거다.
생각해보니, [그림자 장막] 역시 녀석이 약해짐과 동시에 엄청나게 좁아졌었지.
본래는 [기동요새]가 아슬아슬하게 구현 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으나, 지금은 아니니.
그리고.
중요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괴물들도 성장은 할 수 있단 건가.’
지금까지 만나본 것을 생각해 보면,
레벨이라는 명확한 성장 기준이 존재하는 우리와 달리.
몬스터들은 레벨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장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이 녀석을 권속으로 만들 때 떠올랐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혈족으로서의 서열은 말석에 불과하지만,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권속입니다.]
[권속을 소중하게 대하고, 키워보세요!]
[당신의 보조에 따라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괴물이라고 여겨서 그냥 이용하는 것만 생각했다만.’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성장시켜 줄 필요도 있겠는데.
준남작에 불과한 녀석은 영 쓸모가 없어 보이고 하니.
못해도 백작은 되어야 그나마 쓸 만하지 않을까.
‘어쨌든…… 의사소통은 어려울 거라는 뜻인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른 종족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한다던가.
그런 게 가능하려면, 정말 엄청나게 고등한 존재여야만 할 테니.
* * *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마친 뒤.
우리는 몇 번의 전투를 거듭해가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슬슬 물이 높아지는군요.”
“음.”
몇 번의 전투를 거쳤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까지는 허리 정도밖에 닿지 않았던 물이 꽤 높이 올라온 게 느껴졌다.
키가 작은 병사들은 가슴까지 차오른 물에 조금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
“저기! 보입니다!”
방금까지 보였던 수몰된 도시의 풍경은 사라지고
무언가 새하얀 재질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신전…… 같은 걸까요?”
“글쎄다.”
거대한 기둥으로 둘러싸인 건물.
기둥의 벽면에는 정체 모를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묘하게 장엄한 분위기가 신전을 연상시키긴 했다.
실제로 그런 용도의 건물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중앙의 건물 근처에는 다른 작은 건물들도 세워져 있었다.
마치 수몰된 고대 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애초부터 물속에서 만들어졌을 건물이라는 게 다른 점일까.
가슴까지 차오른 물을 보며 생각했다.
‘공략하려면 지금이다.’
본래는 저 커다란 건물조차 전체가 물속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환경적응 - 수] 버프를 얻는다고 해도 물속에서 싸우는 건 쉽지 않았을 테지.
마법사들의 대규모 번개 마법이 보스에게도 피해를 줬기에 진입이 가능해진 거다.
‘반대로 말하면, 보스가 회복하기 전에 빠르게 결판을 내야 한다는 거지.’
조금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진입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녀석이 다시 회복해서 이곳의 환경이 변한다면 공략의 난이도가 차원이 달라질 테니.
나는 신전 같은 건물에 가까이 다가갔다.
중심부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엄청 크네.”
“저 괴물들이 2m 정도 된다는 걸 감안해도…….”
“좀 지나치게 큰데요?”
못해도 5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문.
그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물러나라.]
“……어?”
갑작스러운 소리에 주변을 살펴봤으나.
다른 사람들 역시 놀라는 눈치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러나라.]
그리고 다시금 울려 퍼지는 소리.
두 번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한국어는 아니다.’
아마도 저 괴물들이 쓰던 언어.
그 소리 자체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째서인지, 그 의미만이 번역되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전혀 다른 언어를 가진 종족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등한 존재여야 한다.’
그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어머?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안쪽에서. 굉장히 맛있는 피냄새가 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