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5화 (105/227)

105화 다스무르 공략전 (2)

[물러나라.]

“……!”

“방금 무슨 목소리가.”

“뭐, 뭐야 이건.”

갑자기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왜…… 이해가 되는 거지?’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하지만 머리로는 그 소리의 의미가 정확히 이해가 갔다.

말도 안 되는 기현상.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진정해.’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애초에 던전 자체가 기현상이다.’

던전을 만드는 것도.

언어를 강제로 이해하게 하는 능력도 기현상.

즉.

머릿속에 꽂혀 들어 오는 이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도.

‘보스 몬스터겠지.’

이런 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

무슨 짓을 할 수 있다고 한들 이상할 건 없었다.

-어머. 안쪽에서 굉장히 맛있는 피냄새가 나는데요?

내 추측을 긍정하는 듯.

그림자 속에 있던 준남작이 말했다.

-살짝 향이 비릿하긴 한데. 이건 이것대로 별미겠다 싶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질 좋은 피를 섭취하면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했지.’

이 녀석이 맛있는 냄새라고 했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 안쪽에 있는 괴물이. 밤의 귀족이 입맛을 다시게 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것.’

그때.

[어째서 우리의 영역을 침공하는가.]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어. 왜 침공하냐는데요.”

“침공이라니. 뭐라는 거야.”

“……우리도 대답을 하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병사들이 약간 주춤거렸다.

지성 없는 몬스터라면 그냥 열심히 싸워서 처치하면 됐으니까.

저쪽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씁. 어쩔 수 없지.’

이곳은 적진의 한가운데.

대치가 길어져서 좋을 건 없다.

게다가.

‘나도 한 번 얘기를 해보고 싶긴 했으니까.’

우선.

이해가 안 가는 내용부터 지적해 보기로 했다.

“여기가 왜 너희의 영역이라는 거지?”

우리가 영역을 침공했다니.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나와 동포들은 바다를. 그대들 토착종들은 하늘을.]

되돌아온 답변은 짧은 말이었으나.

대충 의미는 이해가 갔다.

‘물속은 자기들 영역이고, 그 위는 인간들의 영역이다. 뭐 그런 건가?’

미친 소리.

“애초에 이 도시는 인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영토거든. 그쪽은 남의 국가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셈이고.”

[크흐흐……. 정당성을 논하고자 하는가.]

헛소리에 반박을 해 주려고 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새어 나오는 비웃음 소리였다.

[국가라니. 우물 안에 갇혀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구나.]

“뭐가 웃기지?”

[가엾도다. 외부에서 온 나보다도 이 세상의 일을 모르는 토착종들이라니.]

……이 새끼.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우리 부대는 강원도에 갇혀 있는 신세.

바깥은커녕, 강원도 내의 다른 도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일개 군인인 우리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부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역시 그 형태는 유지하고 있을 거라 믿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낮지 않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으나.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사과하지. 허나 그대의 주장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를, 그대들은 하늘을. 지난 시간동안 그렇게 합의가 이루어진 것 아니었는가.]

“그딴 헛소리를 할 시간에 아까 말한 걸 더 자세히-”

[지상을 양도받은 대가 또한 치르고 있음이라. 우리가 외부의 적들을 막아 주고 있으니.]

“……?”

국가에 대한 얘기를 더 자세하게 듣고 싶었으나.

녀석이 내뱉은 말은 다소 뜬금없는 것이었다.

“외부의 적을 막아주고 있다고?”

“저 괴물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도시의 인간들은 그 얘기를 듣고 불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상을 빼앗은 대가로 적들을 막아주고 있다니.

저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헛소린가 싶겠지.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외부에서 온 우리 입장에선.

저게 마냥 헛소리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착종들이여. 그대들은 저 벽 바깥의 그대 동족들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아는가.]

“뭐, 뭔 소리래.”

“그야 뭐. 각자 잘 살고 있겠지.”

[그대들 토착종의 숫자는 전과 비교해 1할도 남아 있지 않음이라. 그중 대부분은 망자가 되어 제대로 죽지도 못한 채 지상을 배회하고 있지.]

“뭐, 뭐라고?”

그 얘기를 듣자.

도시의 각성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나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저 말이 진짜냐.’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

바깥에도 괴물이 나타난 것 정도는 얘기해 줬지만.

‘인류가 얼마나 죽었는지 같은 건 굳이 말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말해봐야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열의만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오나.

‘던전에 진입하고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숫자.’

던전이라는 특수한 환경.

그럼에도 이 곳은…….

이상할 정도로 살아있는 인간들이 많았다.

[내가 외적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임이라.]

그게 이 녀석이 의도한 일이었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이 공간을 떠돌던 질병의 기운 역시 정화해 주었다. 지상을 양보받은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습기가 많고 더러운 환경.

전염병이 돌아도 진작에 돌아야 했을 텐데 병자들이 멀쩡한 게 이상하다고도 생각했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그때.

한 남자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약혼자를 너희 괴물 놈들이 뼈째로 씹어 먹었다. 양보받은 대가? 이게 양보하고 사는 자들의 모습인가?”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우리가 누군가를 공격하지는 않았음이라.]

“말은 똑바로 하자, 생선 대가리.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겠지. 물 위로 나오면 숨도 제대로 못 쉬잖아, 네놈들은.”

[…….]

창수였다.

[그대가 누군지 안다. 동족의 아이들을 가장 많이 살해한 토착종이로군.]

“알아주셔서 영광이군, 그래.”

[우리가 죽인 토착종을 모두 합쳐도 그대가 살해한 나의 동족의 절반도 되지 않겠지. 그거 아는가? 그대가 살해한 동족은 모두 어린아이였다.]

“……그건.”

[그대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은 그대들 간의 상잔이 원인이었지.]

그런 얘기를 하긴 했었다.

인간들 간에 큰 싸움이 있었다고.

[물러나라.]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점잖게 바뀌었다.

[우리는 우리의 안식처가 필요할 뿐, 누군가를 침략할 생각은 없다.]

“…….”

[우리 영역을 침공해 왔을 때는 대응할 것이나, 그대들을 적대할 생각도 없지. 물러나기만 한다면 그대들에게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줄과 바늘을 드리워 물속의 생명을 가져가는 것도 묵인하고 있었음이라. 그러니 물러나라.]

이래저래 말이 길긴 했다만.

녀석이 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휴전 제안.’

아쉽지만.

나와 병사들은 들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보스를 처치해야 던전에서 나갈 수 있으니.’

이 던전에 쳐박혀서 평생을 살 생각은 없거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부대의 사정인 모양.

“……저, 정말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언제 괴물들에게 사냥당할까 봐 두려웠는데. 저 녀석들이 봐주고 있던 거라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던 거잖아?”

“밖의 인간들이 더 많이 죽었다니.”

“바, 밖이 더 위험한 곳이란 거잖아? 그럼 굳이 이렇게 고생해서 나갈 필요가 있나……?”

도시의 인간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와 달리 저들은 이 도시의 환경에 적응한 이들.

괴물의 말을 믿는다는 점이 어이가 없었지만.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흔들릴 만도 했다.

실제로 바깥이 그렇게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니까.

“개소리를……!”

“저 괴물 새끼의 말을 믿는 거냐!”

그나마 그 말에 흔들리지 않는 이들은 창수의 그룹뿐이었다.

“당신들도 알잖나. 낚시 따위로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먹일 수 없어.”

그중에서도 리더인 창수가 그나마 냉정을 되찾은 듯.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이대로라면 결국 식량이 모자라게 될 거요. 여기 갇혀 있어 봤자 굶어 죽을 뿐이지.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바깥으로 나가야만 해.”

“……지금의 숫자라면 그렇겠지.”

“뭐라고?”

그러나.

그 설득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먹을 입이 크게 줄어들면, 낚시만으로도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잖아.”

“너 이 새끼……. 내가 생각하는 그 얘기가 아니길 빌지.”

“우, 우리는 괴물과 전투하면서 그럭저럭 레벨을 올려 왔어. 각성만 하고 숨어 지내던 다른 인간들보다 유리하지……. 인간들 간의 전쟁이 일어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제기랄. 기어코 그 얘기를 해 버리는군.”

그 설득은 크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가장 유리한 건 당신들 아닌가? 이 도시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이니까.”

“복수 따윈 부질없는 거야! 산 사람이 중요한 거지. 괜히 복수하겠답시고 멀쩡한 사람들을 내몰기보다 자신들이 살 걱정을 하는 게 좋지 않겠소!”

뭔가 그럴싸해 보이게 말하긴 하는데.

결국은 약한 인간들을 죽이고 강한 자기들만 살아남자는 얘기.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데려온 이들이었는데 이래서야 역효과다.

전의가 넘치는 창수의 그룹까지 꼬드기려 하다니.

‘쯧. 그냥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정도라면 괜찮을 텐데.’

저 괴물을 토벌하는 데 성공한다면 던전은 사라진다.

저들은 원하지 않는 바깥 세계와의 조우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으려나.’

갑자기 복잡해진 상황.

난 잠깐의 고민을 거친 뒤.

‘쯧. 역시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이지.’

발걸음을 옮겼다.

저 앞.

신전 같은 건물의 문을 향해서.

“어어! 거기 군인 양반!”

“거기서 멈춰! 그 이상 움직이면 가만두지…….”

도시의 인간들이 나를 막기 위해 나서려고 했으나.

“움직이면. 뭐.”

그들의 앞을 커다란 팔이 가로막았다.

“뭐, 뭐야 당신은.”

“신 병장님이 움직이시겠다는데, 뭐 어쩌시려는지 말이나 해 보십쇼.”

전광일 상병을 필두로 한 병사들.

그 거구에서 오는 위압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으음…….”

“그게 아니라, 좀 더 대화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아아, 뭐야! 그런 거였나. 난 또 무력 행사라도 하시려는 줄 알았지!”

“…….”

“설마 그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는데 말이오. 내가 아주 큰 착각을 해 버렸어. 허허!”

퍽퍽!

껄껄 웃으며 사람들의 등을 내리치는 광일이.

녀석은 나서려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소.”

“이, 이거는 놓고 말 좀.”

“신영준 병장님이 그렇게 정 없으신 분이 아니거든. 다 생각이 있으실 테니 지켜봅시다.”

녀석 덕에 방해받지 않고 문 앞에 선 나는.

그 문을 열기 위해 양손을 가져다 댔다.

[이건. 거절의 표현이라 봐도 되는 것인가?]

“되겠다. 이 자식아.”

얌전히 물러나면 건드리지 않겠다?

‘X랄.’

애초에.

우리의 생사 여탈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양떠드는 꼴 부터가 어이가 없다.

‘너 지금 엄청 다쳤잖아.’

던전의 수위가 순식간에 낮아진 것.

녀석이 힘을 크게 잃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쫄리는 건 저쪽이란 말이지.

게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말에 거짓은 없었음이라. 서로에게 좋은 일을 어째서 거절하지?]

“우리가 굳이 지금 던전에 입장한 이유가 뭔지 알아?”

밖에서 봐도 규모가 상당했던 던전이다.

본래라면 좀 더 힘을 기른 뒤에 도전하던가 했겠지.

그럼에도 발견 즉시 던전에 진입하기로 한 이유는 하나.

“넓어지고 있더라고. 여기.”

[…….]

이 던전.

점점 넓어지고 있었단 말이지.

던전이 넓어진다는 것은 간단하다.

안쪽에 던전을 만든 존재의 힘도 점점 강력해진다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 힘은 강해지고 있다는 거잖아?”

[…….]

“네가 상처를 입고 힘을 잃자 이 던전의 수위가 낮아졌지. 그러면 반대로…… 네가 강해지면 이 던전의 수위도 올라간다는 거 아냐?]

[흠.]

“나도 하나 묻자. 이 상태로 2~3년쯤 지나면 이 던전의 풍경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쿠우우웅…….

커다란 흔들림과 함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누워 있던 존재가 대답했다.

[이 도시의 가장 높은 첨탑조차 바다 안으로 가라앉아 있겠지.]

“““……!”””

뻔한 얘기다.

물이 차오르다 보면 결국 사람들은 건물을 버리고 도망가야 할 터.

그때면 던전의 크기도 넓어졌을 테니, 더 외곽의 고층 건물로 가면 되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 이동을 쉽게 허락할까?

‘물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자기네 영역이랍시고 덤벼드는 놈들.’

바다와 하늘.

그렇게 영역을 나눴다고 하니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바다가 점점 하늘에 가까워져 간다면 얘기가 다르다.

자기들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고?

인간들이 죽은 이유는 자신들끼리의 동족상잔 때문이었다고?

애초에 그 전제부터가 틀렸다.

“멀쩡한 세계를 침공해서. 동족상잔을 벌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거. 바로 너잖아.”

[흐으음!]

여기서 우리가 한 번 물러난다고 한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뻔하다.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침범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면 그만이란 거지.

‘결국은 어떻게든 인간들을 제거하려고 할 터.’

내가 국가 운운했던 것도 의미가 없지만.

녀석이 대가 운운한 것 역시 의미 없는 말이었다는 것.

그래.

뭘 복잡하게 생각하고 그랬냐.

중요한 건 결국 하나.

“더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 그게 전부지.”

[큭…… 큭큭…… 하하하…….]

거대한 신전.

그 중앙에 누워있던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눈치가 빠르구나. 벌레 같은 것.]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