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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7화 (107/227)

107화 비벼 볼 만할지도

“그럼! 뺑이치십쇼!”

[동료들에게도 버려졌는가.]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 1:1로 시간을 벌어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허리춤의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넣으면서 생각했다.

‘조금은 비벼 볼 만할지도?’

그렇게 주머니에서 꺼내 든 물건은.

뭐, 내가 꺼낼 만한 게 뭐가 있겠어.

당연히 요리였다.

다만 이번엔.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파란의 물방울 젤리]

예전에 이미 먹어 본 요리.

작은 비닐에 쌓여 있는 젤리였다.

[어리석구나.]

내가 요리를 꺼내 든 것을 본 거인이 말했다.

[요리의 효과는 하나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상식이 아닌가.]

“……묘하게 잘 아시는구만.”

아까도 느꼈던 거지만.

저 녀석.

[요리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번에 한 말도 마찬가지.

‘원래라면…… 요리의 효과는 한 번에 하나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당연한 얘기지.

요리의 효과가 중첩된다면 최고의 직업은 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닐 거다.

몇십인 분씩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푸드 파이터가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겠지.

다만.

나에게만은 그건 좀 옛날얘기가 돼 버렸단 말이지.

[절대미각(강화)]

얼마 전.

창수의 그룹에 있던 사람들을 요리를 통해 치료한 뒤.

업적의 보상으로 [랜덤 스킬 강화권]을 얻었었다.

그 강화권의 효과로 인해 강화된 것이 바로 [절대 미각].

‘강화라고는 해도, 기본적인 효과는 이전하고 비슷했지.’

요리의 효과 증가량이 약간 더 늘어나는 정도?

다만, 괜히 (강화)가 아닌 것일까.

딱 한 줄의 효과가 더 추가된 게 있었다.

그게 바로…….

[본인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중첩 가능해집니다.]

정말 간단한 단 한 줄의 문구.

그러나.

‘미친 사기.’

그 효과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것이었다.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파란의 물방울 젤리를 섭취하였습니다!]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절대 미각(강화)의 두 번째 효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해주세요!]

[‘환경 동화’ 특성을 획득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요리]

[다스무리안 아성체 어묵 - 능력치 상승, 수속성 친화력 상승, 특성, ‘환경 적응 - 수’]

[파란의 물방울 젤리 - 특성, ‘환경 동화’]

스르륵…….

이미 적용 중인 요리의 효과가 있음에도.

그 위에 중첩되며 적용되는 또 다른 효과.

[이 무슨!?]

내 몸이 주변의 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전차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눈깔 괴물조차 발견하지 못한 은신 능력이다.

[……어디로 숨었느냐!]

그 부분은 강력한 괴물임이 분명한 저 녀석 역시 마찬가지.

바로 코앞에서 내 모습을 놓친 교황이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물어본다고 알려 주겠냐?’

나는 괴성을 내지르는 녀석을 무시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로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일단 모습을 숨긴 뒤.

다시 복구 중인 진형을 공격하려 할 때 슬쩍 모습을 드러내 어그로를 끌 생각이었으나.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만. 아무래도 이곳이 누구의 영역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혼잣말을 한 거인이 손바닥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콰아앙!!!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가슴 어림까지 올라온 물이 파도를 치며 일렁거렸다.

아까와 같은 강한 파도는 아니었으나.

그 파도로 인해 생겨난 물결이 내 몸에 닿은 순간.

[거기렸다!]

거인의 시선이 정확히 내 쪽을 향했다.

‘미친. 무슨 박쥐도 아니고……!’

물에 생겨난 파동을 통해 내 위치를 파악한 모양.

강한 게 전부가 아니라 묘하게 다재다능한 괴물.

녀석의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물의 창이 더욱더 커다랗게 변하고.

창을 던지기 위한 자세를 잡는 것이 보였다.

“돌겠네, 진짜!”

그 창이 던져지기 직전.

나는 급하게 또 다른 요리를 꺼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육포]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열화)’을 획득합니다.]

[절대 미각의 효과로 인해,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특성의 열화가 사라집니다.]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

[각력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인간을 초월한 마수의 영역에 근접합니다.]

423대대를 탈출해 산맥을 내려올 때 덤벼들었던 괴물, 슬레이파.

전투 능력은 그렇게까지 강력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각력을 통한 움직임이 특출났던 몬스터다.

그 특성의 효과는 이미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팡!

[벌레 같은 것이…… 귀찮을 정도로 날래구나.]

강화된 각력을 이용해서 빠른 움직임으로 몸을 날려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다만.

‘조금만 늦으면 맞았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한 공격.

창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느껴진 풍압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제대로 맞았다면 이미 시체가 돼 버렸겠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여러 몬스터를 사냥해 두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겠는데.’

[절대 미각]이 강화된 덕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미리 만들어둔 여러 종류의 전투식량들 덕분.

여러 종류의 괴물과 조우하고, 전투하며.

그 녀석들의 특성이 담긴 고기를 얻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쪽도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 왔다 이거야.”

[귀찮게……!]

콰아아앙!

멸망의 날 이후.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거듭하며 겪어 온 다양한 괴물과의 전투.

그 전투들이 지금 내 목숨을 구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 후로도.

환경 동화를 통해 몸을 감추고.

발각돼서 공격이 날아오면 슬레이파의 각력을 통해 공격을 피한다.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큭……!’

계속해서 녀석의 공격을 피하던 중.

갑자기 몸에 부담이 느껴졌다.

부담감의 정체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러 요리를 적용한 부작용.’

[절대 미각(강화)]

여러 요리의 효과 중첩이 가능해지는 터무니 없이 강력한 스킬이 돼 버렸지만.

강한 힘에는 페널티가 따르는 법.

[주의!!!]

[지나치게 강력한 버프는 오히려 사용자의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3]

내가 전력을 다한 요리를 만들어 줬을 때.

그 강력한 버프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던 병사들이 떠올랐다.

이 페널티는 그것과 비슷했다.

‘3개나 중첩해 버렸으니까.’

요리를 중첩할수록 강력해지는 버프.

그 버프 자체가 내 몸에 부담을 가하는 거다.

덕분에 혼자서도 저 괴물을 상대로 꽤 시간을 끌 수 있었다만.

슬슬 몸에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깡 스탯이 높아서 지금까지 멀쩡했던 거겠지.

‘몸이 무겁다.’

마치 독한 몸살이라도 걸린 것 같은 느낌.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런 움직임이어서야.

다음 피하지 못할 확률이 높겠지.

그렇다면야.

나는 마지막으로 전투식량을 꺼냈다.

[중급 요리사의 강철 리자드 육포]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으로 스며듭니다.]

[물리 방어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 ‘강철 비늘’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 * *

[드디어 잡았다! 이 벌레 같은 것!]

‘커헉……!’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내가 입고 있는 장비만 해도 리자드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

거기에 리자드의 요리까지 먹어 방어력을 더 키웠다.

그럼에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하…….”

허리 부분의 군복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그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만.

“돌겠네, 진짜.”

공격이 직격한 허리.

정확히는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륵…….

안에서 새어 나오면 안 되는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손을 가져다 상처 부위를 막았다.

“너무 강한 거 아니냐?”

마지막에 먹은 리자드의 요리가 없었다면 저 구멍이 더 커져 있었겠지.

불과 며칠 전에 절대 미각 스킬이 강화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테고.

그나마 전력을 다해 비벼봤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나는 요리에는 조예가 없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지.]

거인 녀석이 나를 다진 고기로 만들기 위해 다가온다.

걷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다음 공격을 피하는 건 절대 불가능.

하지만.

나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지?”

[뭐라?]

“얌전히 죽어 줄 생각은 없거든.”

내 말을 들은 거인 녀석이 주춤한 찰나.

쿵!!!

[크윽…….]

커다란 충격이 교황을 덮쳤다.

“신 병장님!!!”

“합류하겠습니다!”

파도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아군 병력들.

그들이 진형을 갖추고 돌아왔다.

[하찮은 것들이 방해를……!]

거인 녀석의 손에 커다란 창이 쥐어진다.

온갖 버프를 떡칠한 내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공격.

하지만.

[‘군단의 기운’ 효과가 발동합니다.]

[진형을 이룬 군단원들의 전투 능력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진형을 복구한 부대원들에게는 조금 달랐다.

“공격! 온다!”

“방어 태세로!”

[지휘의 함성 - 방어 태세]

김 중위의 지휘와 함께 아군에 버프가 부여되고.

“방패 앞으로!”

“충성충서어엉!”

탱킹에 특화된 각성자들이 창을 향해 방패를 들이밀었다.

쿠우우웅!!!

그 결과.

“끄으윽. 미친, 묵직한 거 보소.”

“위력이 엄청나다! 다들 조심해!”

“신 병장님은 이딴 걸 어떻게 버틴 거야? 그것도 혼자서.”

아군 진형의 피해는 전무.

방패병들의 손목이 아려 오는 정도로 끝났다.

‘이게 집단의 힘이다.’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이었다.

홀로서기는 답이 없는 직업이라, 부대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만.

그렇게 키운 부대는 꽤, 상당히 잘 성장해버렸거든.

개개인의 능력은 저 거인의 상대가 되지 않을지언정.

모이면 모일수록 시너지가 발생하는 각성자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 왔다.

그 병력이 모여 진형을 구축한다면.

강력한 보스가 상대라도 크게 꿇리진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가 쌓아 올린 힘.

내가 먹여 살린, 나의 부대였다.

* * *

“신 병장님! 이쪽으로!”

진형을 꾸린 병사들이 교황을 막아서는 사이.

후열에 있던 몇몇 병사들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빌려주었다.

“하하! 진짜 굉장하셨슴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턴 후임들한테 맡기시고. 신 병장님은 뒤에서 꿀이나……. 어?”

나를 부축하려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흠칫하는 병사들.

“……!”

“이, 이 상처는.”

“크흐흐. 아파 죽겠다, 야.”

놀랄 만도 하지.

사람 옆구리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제기랄. 농담할 때가 아니었네.”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하시다!”

“빨리 의무병 쪽으로!”

곧 후열에 있던 의무병과 군종병이 다가왔다.

“빨리 상처부터 보여 주십쇼!”

난 군말 없이 손을 치워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줬다.

손바닥만 한 구멍.

잘못하면 내장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무서웠는데.

슬쩍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스멀스멀 상처가 회복되고 있는 게 보였다.

“오오…….”

조금 징그러운 광경이긴 하지만.

상처 부위의 살점이 조금씩 재생되는 모습이 꽤 신기했다.

“고맙다. 역시 우리 부대 힐러들이야. 대단한 치료술인걸.”

“…….”

“?”

그런데.

그 상처를 보는 의무병과 사제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상처 부위를 바라보는 녀석들.

뭐야, 이 녀석들.

갑자기 왜 저래.

…….설마.

“혹시,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인 거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식은땀을 흘리길래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던 모양.

하긴.

이렇게 대놓고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데 치료가 불가능할 리는 없겠지.

그러나 그때.

사의준 일병이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신 병장님.”

“엉.”

“저희, 아직 아무 치료도 안 했습니다.”

“……앙?”

슬쩍 복부를 들여다보자.

느리지만 확실히 재생되고 있는 상처가 보였다.

“아니. 누가 봐도 재생되고 있구만, 그게 무슨 소리…….”

“신 병장님 하시는 일에는 일일이 놀라지 않는 게 저희 부대 국룰이긴 합니다만…….”

“국룰이고 뭐고. 이건 묻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든데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두 힐러들.

우리 부대의 군종병이자, [사제] 각성자인 신중수 일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상처가 재생되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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