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8화 (108/227)

108화 깊은 자들의 교황 (1)

“어떻게 상처가 재생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힐러인 니들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냐.’

다시금 상처 부위에 시선을 옮겼다.

꾸물꾸물하며 재생되고 있는 살점들.

‘요리의 효과……라기엔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게 힐러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일단 한시가 급하니 치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해 주십쇼.”

“사실 상처가 오염되었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이 정도로 재생된 걸 보면 금방 끝날 검다.”

의무병이 손에 바늘을 쥐고.

불교도 출신 사제가 십자가를 쥐며 기도를 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앞에서는 아직도 부대원들이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 원인을 찾을 여유는 없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밖에.’

다시금 거인과 병사들의 전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괴물.

“신 병장님은 혼자서도 상대한 괴물이다!”

“이 숫자로 지면 쪽팔린 줄 알아!”

전투가 진행되다 보니 아군 중에서도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그나마 멀쩡하지만, 이 도시의 주민들은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는 모습.

‘……부상 입은 거 맞나? 뭐가 저리 강해.’

민재 형과 마법사들의 전격은 바로 이 건물의 상공을 직격했었다.

아마 그 전격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저 녀석일 터.

저게 부상당한 상태에서의 힘이라니.

‘그래도 전황이 아주 나쁜 건 아니야.’

아군의 피해도 클 것 같긴 하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이기는 건 우리 쪽이 될 것 같았다.

‘나머지는 쟤들이 알아서 잘해 주겠지 뭐.’

난 뒤쪽에서 후임들이 뺑이치는 모습을 편하게 구경하기만 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동족의 아이들이 오지 않는구나.]

싸우던 녀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동족의 아이들이라.

아마 밖에 넘쳐 나는 다른 괴물들을 말하는 거겠지.

저 교황 하나를 상대하는 데도 이렇게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거다.

다른 괴물들까지 난입하면,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불리하게 변하겠지만.

‘그 녀석들은 안 와.’

그쪽에 대한 걱정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미 수를 써 둔 게 있으니까.

[필시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겠지.]

패색이 짙어짐을 느낀 것일까.

녀석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

[각오를 다져야겠구나.]

그리고.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거인의 몸에 새하얀 빛무리가 일었다.

* * *

“뭐 뭐야 저건.”

“당황하지 마라!”

갑자기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이는가 싶더니.

분위기가 크게 변한 거인.

‘아까까지는 공포영화의 괴물 같았지만.’

새하얀 빛을 두른 지금.

녀석은 신이 강림시킨 빛의 거인처럼 보였다.

“흥. 그래봤자 한 마리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진형만 유지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예!”

하지만 이쪽도 그동안 온갖 경험을 쌓았다.

부대원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콰아아앙!

“컥!”

“병민아!”

“진정하고, 진형 채워!”

공격을 받아낸 병사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간다.

공격을 받아낸 무기에는 금이 가 있었다.

‘우리 부대원을 한 방에 보낸다고?’

도시의 협력자들은 그나마 레벨이 낮은 편이다 보니,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만.

우리 부대원들은 레벨도 장비도 비교가 안 되는 정예.

방금 날아간 병사만 해도 부대에서부터 함께 싸워 온 엘리트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괴물.

녀석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뜻.

‘2페이즈도 있다는거냐?’

안 그래도 빡센 괴물이 더 강해지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순간.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깊은 자들의 교황이 마지막 남은 신성력을 발휘합니다.]

[다스무르 신전이 신역으로 지정됩니다.]

[신역이 유지되는 동안, 영역에서 탈출이 불가능해집니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지막 남은 신성력을 불태우는 대가로, 교황의 신체가 붕괴를 일으킵니다.]

과연.

“저런 능력이 아무런 페널티도 없을 리가 있나.”

특히 나를 다진 고기로 만들고 싶어 하던 때 바로 사용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힘.

버티기만 한다면 녀석의 몸은 알아서 붕괴한다는 뜻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콰앙!

“제기랄, 몇 명이 떨어져 나간 거야!”

“진형의 빈틈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 이상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

그 붕괴란 게 끝나기 전에 우리 부대원들이 전멸할 것 같다는 거지.

에휴.

뒤에서 지켜보며 꿀이나 빨 생각이었는데.

“어, 신 병장님?”

“아직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

“이 정도면 충분해.”

상처가 어느 정도 치료된 걸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놨다.’

마법사들을 갈아 넣어서 번개를 꽂아 넣고.

도시의 인간들을 설득해서 병력도 추가하고.

그 병력들에게 요리를 통한 버프까지 뿌렸다.

온갖 요리 효과를 중복해가면서 저런 녀석을 상대로 시간까지 끌었고.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냐.

‘……사실 생각해 놓은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어디까지나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방법.

-고오오오오!

“크악……!”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기기 힘들 정도로 강해진 녀석.

그렇다면.

“도박을 걸어 봐야겠네.”

* * *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진형에 다가갔다.

후열의 마법사들.

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을 찾았다.

“정수아.”

“아. 은인이시여!”

정수아.

우리 부대의 유일한 정령사다.

정령안이라는 특성을 가진 덕에 부대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만.

전투 능력은 영 높지 않은 그녀다.

거인이 일으킨 파도에 휘말려 저 멀리까지 밀려난 것을 봤었다.

“상처는 괜찮으세요!?”

“대충은.”

“대충이라니……. 몸을 보전하셔야.”

본래라면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나마 여기에는 물이 많다 보니.

물의 정령과 계약한 그녀도 나름대로 활약하고 있던 것 같았다.

걱정스러운 눈치로 내 몸을 살피는 그녀에게 말했다.

“작전이 있다. 알려 줄 테니까 준비해.”

“네……!? 하지만.”

부상으로 빠져 있던 내가 돌아온 게 영 걱정되는 모양이다만.

그녀도 이제는 우리 부대의 군인.

군인 정신이 좀 알려 줄 필요가 있겠는데.

“명령에는 예라고만 대답할 것.”

“……예!”

“그렇지.”

그녀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작전에 필요한 다른 부대원들에게도 얘기를 전달하도록 당부한 뒤.

나는 진형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네놈.]

부대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거인이 나를 보고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봤을 때도 민재 형의 마법의 영향으로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던 녀석인데,

가까이서 보니 지금은 더 심했다.

‘빛무리에 가려져서 신성해 보였던 건가.’

여기저기 그슬리고 베인 전투의 흔적.

그 외에도 살점이 가루처럼 변해 흩날리고 있었다.

저게 그 ‘신체의 붕괴’란 거겠지.

[동족의 아이들이 오지 않는 것도 분명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렸다.]

이곳은 괴물들이 넘쳐 나는 던전.

본래라면 보스 몬스터와의 1:1 따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너희들 피. 꽤 질이 괜찮은 것 같더라.”

그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이 신전 바깥에선 추격해 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겠지.

[원통하고 비참하도다. 이깟 벌레들에게 사냥당하는 꼴이라니.]

정말로 분한 듯.

부릅뜬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내 바다로 돌아갈지언정. 네놈만큼은 같이 데려갈 것이라.]

후웅!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날려 오는 녀석.

여전히 몸이 무거웠지만.

[슬레이파의 준족]

쿵!

여전히 중첩된 요리들의 효과는 지속되고 있었고,

대충이나마 치료를 받고 온 덕에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헛친 거인의 주먹이 내 옆의 바닥에 꽂힌 것이 보였다.

그 팔을 향해 손에 쥔 칼을 휘둘렀다.

[독고구식]

생선을 손질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칼.

본래의 용도로 쓰이게 된 것이 기쁜 것일까.

살점을 베어 넘기는 감각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고오오오오오!!!

분노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진다.

‘엄살은.’

워낙에 덩치가 큰 녀석.

이 정도의 공격은 잔 상처에 불과하겠지.

애초에 나도 피해를 주는 게 목표는 아니었고.

[깊은 자들의 교황의 앞다리살]

잘라낸 녀석의 살점을 쥐고 진형의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가느냐!]

“너야말로 어딜!”

후퇴하는 나를 거인이 추격하려 했으나.

전열의 전사들이 몸을 던져 막아냈다.

“커헉……!”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짧은 신음소리.

나를 대신해서 공격을 받아 준 부대원이 멀리 날아가는 게 보였다.

‘얼굴 기억해 뒀다!’

저 녀석한테는 나중에 반찬 뭐라도 하나 더 해 줘야지.

덕분에 후방의 전투차량까지 도망친 뒤.

손에 쥐어진 거인의 살점을 보았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앞다리살]

[깊은 바다의 세계, 다스무르의 종족들에게는 한 가지 민간 설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들 세계의 수호종족, 어인 다스무리안의 고기를 먹는 자는 불로불사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가 그저 소문인 줄 알지만, 마냥 거짓은 아닙니다.]

[신에게 수호 종족으로 선택받은 다스무리안은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바.]

[그 잠재력을 모두 개화한 성인의 살점은 최고의 식재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뭐랄까.

“설명 한번 거창한데.”

[주의!]

[격이 높은 재료입니다.]

[재료에 비해 요리사의 경지가 낮습니다.]

[지금의 실력으로 요리를 시도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경지를 높인 뒤에 도전하기를 권장드립니다.]

지금까지 다뤄봤던 어떤 요리 재료보다도 상세하고 화려한 설명.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괴물이었나보다.

재료로써의 격이 높아 요리하기가 힘들 정도라니.

하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는 다루기 어려울 거라고?”

나도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있다.

내 자존심을 건드리다니.

‘작전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요리해야 한다.’

어인의 살점.

제대로 된 요리 도구 따위 꺼내기도 힘든 환경.

지금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고 해봐야 하나뿐이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만.

자칫 잘못하면 취사병 후임 녀석의 밑에 들어가 배울 뻔한 요리.

[독고구식]의 가장 올바른 사용법.

‘회.’

교황의 살점에 조심스럽게 칼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최대한 정성을 담아, 그 결을 베어 들어갔다.

‘격이 높은 재료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도 평범한 상태는 아니거든.’

[적용 중인 요리 효과 (4)]

무리를 해가면서 버프를 중첩한 결과.

능력치의 상승량이 엄청났다.

요리사의 능력치는 요리의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

쥐고 있는 칼 역시 본래가 생선을 손질하기 위한 것.

어디까지나 도박이라고 한들.

도박의 승률은, 최대한 높여 놓았다.

그 결과.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회]

도박에서 승리한 쪽은.

아무래도 내 쪽이 된 것 같다.

[격이 높은 재료를 성공적으로 요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요리사로서의 역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됐다!”

어떻게든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맘 같아선 부대원들한테도 먹이고 싶지만.’

[스킬 - 오병이어를 발동합니다.]

[격이 높은 요리입니다!]

[마력이 부족합니다.]

[스킬 - 오병이어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대규모 조리’ 재능을 각성한 나임에도.

복사에 필요한 마력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어차피 부대원들한테 먹여도 너무 과한 버프였을 거야.’

과한 버프는 오히려 몸에 피해를 준다.

결국 혼자서 먹기로 결정했다.

완성된 회를 한 점 집은 뒤.

조심스럽게 입 안으로 옮겨 넣는다.

“……저 녀석. 짜증 나는 괴물이지만.”

이 말은 해 줘야겠다.

“맛은 있네.”

특별한 소스가 없음에도 불구.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맛.

[최고위 식재료 - 성자의 신체, 어인의 고기를 섭취하였습니다.]

[관련 효과가 적용됩니다.]

정체 모를 효과가 적용되었다는 메시지.

저런 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절대 미각의 효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기다리던 문구가 나왔다.

[절대 미각의 효과를 적용합니다.]

[대상 식재료의 특성 한 가지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해주세요.]

식재료에서 원하는 능력만을 골라 적용시키는 효과.

[정신 언어]

[신성력]

[제한된 미래시]

[세계 침식]

뭔가.

엄청나게 화려한 특성들이 눈앞을 지나갔다만.

모두 걸러 버렸다.

내가 찾는 능력은 하나.

‘찾았다.’

[수속성 지배]

* * *

[……네놈!]

“그래, 그래. 형 왔다.”

원하는 특성을 적용시키는 데 성공한 직후.

나는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녀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몸이 부서져 가는 와중에도, 주변에 두른 새하얀 빛무리 덕일까.

묘하게 신성한 분위기가 감도는 괴물.

[도망쳐도 모자랄 마당에. 겁도 없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가 동족을 요리했다는 사실로 인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분노한 녀석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어 오고.

나 역시.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방금 얻은 특성을 사용했다.

[수속성 지배]

파도의 위력을 강화하고.

물을 모아 거대한 창으로 만들고.

……이 도시를 수몰시킨 힘.

“어……?”

“괴물 녀석 주변의 물이.”

도시 전체를 덮은 물.

그 물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거인의 주변 일대만.

“이, 이건 설마.”

“모세의……?”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아쉽게도 그런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겠네, 제기랄.’

[수속성 친화]도, [수속성 저항]도 아니다.

[수속성 지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특성.

이제 잠깐 사용했음에도, 온몸의 마력이 쥐어 짜내지는 게 느껴졌다.

[네 놈이 어떻게 내 힘을……?]

자신의 능력이 내 손에서 고스란히 사용되자.

제아무리 대단하신 양반이라도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나를 요리한 것인가……? 하지만. 그럴 만한 격이 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뭐,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았지만.

작전은 간단하다.

[내게서 물을 앗아갈 셈인가.]

창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겠지. 물 위로 나오면 숨도 제대로 못 쉬잖아, 네놈들은.’

저 녀석들.

물고기 같은 생김새대로.

기본적으로 물속에서만 생활하는 종족이란 말이지.

‘지원 병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군에게 줄 수 있는 버프량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잖아.

“네 녀석이 약해지면 되는 거지.”

[어리석긴.]

[특성 - 수속성 지배가 간섭받고 있습니다.]

“어, 물이 다시……!”

내가 기껏 제거한 물이 다시 제 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놈에게서 가져온 특성, [수속성 지배].

그리고 녀석이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 [수속성 지배].

두 특성이 격돌한 것.

[애초에. 이 힘은 본래 나의 것.]

녀석의 말대로.

나도 나름대로 온갖 버프를 둘러서 능력치를 뻥튀기시키긴 했다만.

[수속성 지배] 간의 힘 싸움으로 간다면, 원본인 저쪽을 이길 수가 없겠지.

다만.

“애초에 혼자였으면, 이딴 싸움 안 걸었어.”

[뭐라?]

그 순간.

“방울아!”

[……!]

진형의 후열에 있던 이들이 앞으로 나왔다.

정수아.

물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

그녀가 정령을 이용해 교황 근처의 물의 지배권을 강탈하려 들고.

“저희도 가세하겠습니다!”

거기에 수속성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들 역시 가세했다.

‘혼자서 딸리면 숫자로 밀어붙인다.’

이렇게 하더라도 물에 대한 지배권은 녀석이 우위겠지.

하지만.

지금은 한창 전투 중이란 말이지.

“크륵!”

[벌레 같은 것이……!]

광기를 해방한 전광일 상병의 공격.

거인의 몸이 살짝 주춤거렸다.

그 짧은 순간.

[특성 - 수속성 지배에 대한 간섭이 약해집니다.]

거인 주변의 물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녀석은 공격해 오는 부대원들을 계속해서 상대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물에 대한 지배력 경쟁까지 신경 써야 할 테니.

아마 죽을 맛이겠지.

[특성 - 수속성 지배에 대한 간섭이 약해집니다.]

[크윽…….]

점점 우리 쪽으로 우위가 넘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커허억!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

숨을 쉬지 못하는.

질식 현상이었다.

* * *

쿠우웅…….

거대한 어인의 몸체가 힘을 잃고 쓰러진다.

‘숨을 못 쉬는 상태에서도 몇 분을 더 버티면서 싸울 줄이야.’

주변의 물을 모두 제거한 결과.

중간부터 숨을 쉬지 못하게 된 녀석이었으나.

그 상태에서도 꽤 긴 전투가 이어졌다.

결국 승자는 우리 쪽이었지만.

“…….”

그리고.

쓰러진 거인을 향해 한 남자가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창을 쥔 남자.

긴 전투 끝에 우리 부대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부상을 입고 전선에서 이탈했으나.

창수만은 끝까지 전투에서 이탈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싸웠다.

그가 손에 쥔 창을 높게 치켜들고 중얼거렸다.

“뒈져라……!”

거인의 약점인 아가미를 향해 내리꽂히는 창.

팍!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그 창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과연. 숨통은 직접 끊겠다, 뭐 그런 건가.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난 내 눈으로 이 녀석이 죽는 걸 보기만 하면 그만이니.”

아쉽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잠깐 시도해 볼 게 있어서.”

창수와 그의 그룹원들은 어인들에 대한 복수심 하나만으로 살아온 이들.

여기서 창을 찔러 넣어도 복수는 그럭저럭 마무리될 것이나.

이만큼 강력한 괴물.

“정확히는, 먹여볼 게 있거든.”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깝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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