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09화 (109/227)

109화 깊은 자들의 교황 (2)

“잠시 물러나 계십쇼.”

“…….”

창수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내가 앞으로 나서자 군말 없이 몸을 비켜주었다.

복수를 위해 살아온 인물인 만큼 괴물의 숨통을 직접 끊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겠지만.

이번 전투에서 가장 활약한 건 우리 부대원들이니까.

“마무리를 지을 권리는 그쪽에게 있겠지.”

뭐, 그런 거다.

난 물속에 쓰러져 있는 거인에게 다가갔다.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거인.

설마 기절한 건가 싶어서 얼굴을 가져다 대자.

[훌륭하도다.]

깜짝이야.

시체처럼 굳어서 미동도 없던 녀석의 목소리가 갑자기 머릿속을 울렸다.

정작 쓰러져 있는 녀석의 입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 내 육신은 이미 일어날 힘을 잃었으니.]

음.

상태를 보면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 녀석 특성 중에 정신 언어란 게 있었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와중에도 이렇게 대화를 걸 수는 있는 모양.

[작은 벌레야. 꽤 재주가 다양하구나.]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큭큭. 지난날 내 몸을 태운 힘은 뭐라고 하는가.]

“……?”

[물속을 타고 들어온 공격 말이다.]

아.

“번개를 말하는 거냐?”

[그래. 그 현상은 번개라고 하는가. 나의 고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 죽기 직전에 새로운 걸 배우는군.]

이계에서 온 괴물들.

이 녀석의 세계에는 번개라는 현상 자체가 없었던 건가.

‘과연. 이만한 괴물이 미처 대처하지 못할 만도 하네.’

존재 자체를 모르는 현상에 대응책을 가지고 있는게 이상한 일이니까.

“질문에 대답해 줬으니, 나도 하나 묻자.”

[음?]

“넌…… 아니, 너희 괴물들은 왜 이 세상을 공격해 오는 거지?”

나름대로 진지한 물음이었으나.

[침략이라. 그 말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군.]

녀석의 대답은 영 애매한 것이었다.

“또 말장난이나 하자는-.”

[어디까지나 진실을 말하고 있음이라. 굳이 따지자면…… 나는 침략자가 아닌 난민에 불과할지니.]

난민이라고?

“던전의 영역을 그렇게 넓혀 놓고 침략이 아니라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 부분에는 대답할 수 있겠군. 아이들을 위함이었다.]

녀석의 대답에.

뒤에서 창을 쥐고 지켜보고 있던 창수가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생선 대가리. 그건 무슨 의미지?”

[너희도 보지 않았는가? 이 공간의 곳곳에 퍼져 있는 동족의 아이들을.]

아이들이라니.

……설마.

“다른 어인 놈들을 말하는 것 같군.”

[그렇다. 작고 왜소한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던가.]

작고 왜소하다니.

유체라는 녀석들도 성인 남성만 하고, 아성체란 녀석들은 2m가 넘어갔다.

5m가 넘어가는 이 녀석한테는 그 정도 크기도 왜소한 건가.

[우리 종족은 성장하기 위해선 넓은 공간이 필요함이라. 더 넓은 물일수록 더 크게 자라날 수 있지.]

이거 그건가.

물고기들이 바다에서는 크게 자라고 수조에서는 일정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하는 현상.

[최대한 힘을 쥐어짜 이 도시를 모두 덮어 보았으나. 그럼에도 너무나도 비좁았음이라.]

그러고 보면.

눈앞의 이 거인은 5m에 달하는 크기.

그다음으로 컸던 건 2m에 달하는 아성체.

중간이 없긴 하군.

[없는 힘을 끌어모아 이 세계를 굽어보았노라. 그나마 많은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이 보였으나…… 그마저도 모자라.]

아마 이 녀석이 말한 곳은 바다겠지.

그런데 바다로도 모자라다는 건.

[동족의 아이들이 정상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 행성 표면을 모두 덮을 필요가 있었다.]

“……허.”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았지만.

결국 이 던전의 영역을 세상 전체까지 넓히려고 했다는 거다.

나로서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고?”

창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가 당황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저 지하철의 던전.

그곳의 보스가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도 꽤 마음이 복잡했으니까.

[실패한 것이 아쉬울 뿐. 후회는 없다.]

“그럼 다음 질문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으나.

[벌레야. 너는 나를 괴물이라 부르지만, 내겐 너야말로 동족의 아이들을 잡아먹은 괴물로 보이노라.]

“…….”

[방금의 이야기는 번개라는 현상에 대해 알려준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을 알려줄 의무 따위는 없겠지.”

과연.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내 재주가 꽤 다양한 것 같다고 했던 녀석.

그렇다면.

‘가장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지.’

난 녀석의 얼굴 부분으로 다가간 뒤.

그 커다란 입을 살짝 벌렸다.

[무얼 할 셈인가.]

녀석의 질문에 굳이 답할 필요는 없겠지.

벌려진 입 안에, 내가 가져온 요리를 집어넣었다.

[중급 요리사의 극한의 행복이 담긴-]

전투식량으로 제조된 요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전력을 다해서 만든 요리.

‘이 거인. 엄청 강했단 말이지.’

그런 괴물을 그냥 죽이는 건 좀 아깝잖냐.

이미 아리엘라 같이 요리로 굴복시킨 괴물의 사례가 존재한다.

‘이 녀석도 비슷하게 부하로 들일 수만 있다면.’

가지고 있는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고.

강한 병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테니 일석이조.

그런데.

[흐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하구나.]

“……어?”

뭔가.

반응이 영 미적지근했다.

[갑자기 요리를 먹인 저의는 무엇인가? 그대들만의 장례 방식인가.]

“그…… 요리를 먹고 나니까 엄청나게 행복하다던가. 그런 기분 안 드나?”

[전혀.]

녀석의 대답에 조금 당황한 그 순간.

띠링.

[대상의 입맛이 너무 높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요리의 효과가 먹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스템 메시지.

[고급 요리를 자주 맛보며 입맛이 극한에 달한 대상입니다.]

[대상의 입맛에 비해 요리의 격이 낮습니다. 효과가 감소되어 적용됩니다.]

“입맛이 너무 높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 그대는 내 지위를 아는가?]

지위라니.

이 녀석을 [식재료 감별]로 살펴봤을 때 나온 이름은 분명.

“교황이었지?”

[최고의 요리를 매일같이 맛보았노라. 네 요리는 못 먹겠다 할 수준은 아니나. 내 전속 요리사가 해주던 것에 비하면 맛이 좀 떨어지는군.]

……이 새끼가.

내 요리를 먹고 이런 반응을 보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최근 들어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꽤 올라왔으나.

그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생겨 버렸다.

“너 딱 기다려. 이건 대충 만든 요리고, 내가 제대로 힘줘서 만들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여 버리고 싶었으나.

[요리 효과 적용률 - 5%]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발이 주춤한다.

‘5%라고?’

그럼 뭐야.

이 녀석의 입맛을 맞추려면 내 요리가 지금보다 20배는 맛있어져야 한다던가.

뭐 그런 건가?

‘차이가 너무 크잖아.’

생각해 보면.

내 직업은 [중급 요리사].

처음 요리사로 각성하면서부터 요리로 온갖 일을 다 해왔다만.

등급으로 쳤을 때, ‘중급’이라는 명칭은 그렇게 높은 느낌은 아니다.

요리를 통한 버프에 대해 알고 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네 세계에는. 나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요리사가 존재했던 거군.”

그에게서 요리를 대접받은 결과.

입맛이 높아진 녀석은 내 요리 따위 통하지 않은 거고.

……고기를 안 먹는 종족 같은 건 겪어봤지만.

이런 이유로 내 요리가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과연……. 의도를 이해했다. 귀여운 장난이었노라.]

“큭.”

[요리사로서의 경지는 얕으나. 이래저래 재주가 많은 것 같구나. 요리를 본격적으로 배운 지 얼마나 되었지?]

그러나.

요리의 효과는 크지 않았을 것임에도.

나를 대하는 녀석의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뭐지?’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어, 2년 조금 넘었지.”

취사병이 되고 처음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각성자가 된 뒤의 기간만 따지면 1년도 안 되겠지만.

[흠! 2년이라?]

내 대답에 녀석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고작 2년에 그 정도 경지라니. 훌륭한 재능이다. 작은 벌레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지라.]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니, 뭘…….”

[요리의 경지. 네가 가지고 있는 의문. 모두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일이니.]

뭐야.

결국 제대로 알려주는 건 하나도 없는 건가.

[그럼에도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자면.]

“……?”

[시간이 갈수록 적들은 더욱 강대해질 것이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지.]

커허…….

그렇게 말을 마친 녀석의 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구나. 이제 그만 끝내다오.]

녀석의 말에.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식인 괴물들이 아니었다니.”

녀석의 숨통을 끊을 생각에 흥분했었던 창수였으나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여러모로 바빠 보였다.

그래 뭐.

가는 길 정도는 쉽게 보내줘도 되겠지.

양손에 식칼을 나눠 쥔 뒤.

거인 녀석의 아가미에 찔러 넣었다.

스윽…….

이 녀석들의 약점 부위.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장기들이 부드럽게 베여 나가고.

[벌레야.]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녀석의 정신이 마지막 말을 건네왔다.

[맛이 썩 훌륭하진 않았으나……. 간만에 그럭저럭 기분 좋은 음식이었노라.]

녀석의 몸 안을 맴돌던 기운이.

내게로 쏟아져 왔다.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깊은 자들의 교황’을 처치하였습니다.]

[한 종족의 수장을 처치하셨습니다.]

[업적 - 킹 슬레이어의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3/3)]

[인간종 최초로 종족 수장급 개체를 다수 제거하였습니다.]

[앞서가는 이를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성 강화권]

[칭호 - 왕 시해자]

[특성 - 전투력 측정]

‘미친.’

달성 조건이 미친 듯이 까다로웠던 칭호.

그래서일까.

달성으로 인한 보상이 무려 세 가지나 주어졌다.

‘특성 강화권은 저번에도 받은 적이 있으니 익숙하다만…….’

눈길이 가는 것은 그다음.

[칭호 - 왕 시해자]

[여러 종족과 문명의 수장이 당신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모든 지도자들은 당신을 보면 영문 모를 공포감을 느끼며, 당신을 보고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의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왕의 위엄은 더 이상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스탯이 30% 상승합니다.]

[지도자급 개체를 상대로 하는 모든 종류의 효과가 100% 상승합니다.]

[피어 계열의 스킬, 특성에 대해 완전 면역을 획득합니다.]

안 그래도 깡 스탯이 어마어마했던 내게는 큰 의미를 가지는 능력치 상승이었다.

게다가.

‘모든 효과가 100% 상승한다니.’

종족 지도자 급의 개체에 한해서는 내 모든 능력이 2배가 된다는 것.

교황을 대상으로는 내 요리의 효과가 5%밖에 적용되지 않았지만.

이 칭호가 적용되는 상태였다면 10%로 적용됐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 거 아닌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성 - 전투력 측정]

[많은 종족을 만나고 그들의 피를 거둔 결과, 당신은 대략적으로나마 각 종족의 강함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 종족이 가지는 잠재력과 강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해당 특성이, 특성 - 식재료 감별의 하위 효과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신 병장님!”

“나와 보십쇼!”

건물의 바깥에서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쩌적…….

어두운 하늘이 부서지고.

그 사이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던전이 닫히고 있다.’

가슴팍까지 차올랐던 물 역시 어디론가로 사라져가고.

이윽고.

[이계 던전 - 다스무르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방랑하는 세계의 파편을 수습하는 데에 성공하셨습니다.]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공헌도 - 최상]

[조각난 세계의 정수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 확인 중……. 요리사.]

[보상을 선택해주세요.]

* * *

춘천 시내 전체를 뒤덮고 있던 던전.

그 던전이 클리어되자, 도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어느 정도 돌아왔다.

가장 번화했을 중앙부 근처의 건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상한 신전 같은 게 세워졌다는 것 정도가 조금 다른 점일까.

다만.

그렇다고 평화로운 도시가 된 것은 아니었다.

-크라악!!!

“제기랄!”

“이 녀석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커다란 야생견처럼 생긴 괴물이 도시의 시민을 덮쳤다.

던전이던 시절에는 다른 몬스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던전이 폐쇄되자,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는 듯 괴물들이 나타난 것.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괴물이 나타나다니.”

“예전이 더 나았어!”

본래 던전의 몬스터들을 피해 고층 건물에서 생활하던 이들.

그들은 우리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던전에서 탈출하게 된 셈이다.

괴물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이 불만에 찬 소리를 내질렀으나.

“으랴!”

-께엥!

불만 가득한 소리와 달리.

무기를 휘두르는 손놀림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부대와 비슷할 정도로 안전했던 환경.

그 안에서 살던 이들은 대부분이 각성을 마친 상태였다.

비록 레벨이 높은 이들은 많지 않다지만 그럼에도 각성자들.

제 몸 하나 지킬 정도의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부대원들의 성장을 위한 던전행이었지만…….’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드는 생각.

“이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득을 본 거 같은데요.”

“그러게.”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등장.

그로 인해 인류의 9할 이상이 사망했다.

괴물과 인류의 싸움은 언제나 인류의 압도적인 수적 열세였으나.

‘그 차이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닫힌 도시 속에서 힘을 썩히고 있던 수많은 각성자들.

그들이 세상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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