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해방된 도시 (1)
던전, [침식이계 다스무르]를 클리어한 뒤.
한동안은 혼란이 지속되었다.
-크라악!
“제기랄!”
던전이 붕괴된 직후.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
“갑자기 괴물들한테 목숨을 위협받아야 한다니.”
“차라리 갇혀 있을 때가 좋았어.”
저 던전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식량 등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의외로 괴물들의 습격에서는 안전했다.
어인들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건물에만 숨어 살면 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보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대로 가다간 몇 년 뒤에는 수장당할 운명이었다는 걸 모르는 이들.
불만을 가질 만도 했다.
물론 모두가 불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드디어…… 가족들한테 돌아갈 수 있게 됐어.”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해 기뻐하는 이들 역시 비슷하게 많았다.
그렇게 세상으로 풀려난 인원들이, 못해도 수천 명.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각성자이다 보니.
콰직!
“후우……. 겨우 잡았네!”
이래저래 불만을 내놓는 경우가 많긴 했다만.
사람들은 비교적 금방 바깥의 환경에 적응했다.
“저만한 인원이 세상에 풀려났다는 건…… 생각보다 의의가 클 거다.”
얼마 전에 겨우 병원 신세를 면하게 된 민재 형이 말했다.
“식량 문제 같은 것도 있고 하니, 언젠가 저들과 충돌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
‘인류의 전력이 크게 늘어났다.’
도시에 나타난 괴물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본래라면 저 인제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는 숨어 지내거나 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각성자들이 넘쳐 나는 도시.
각 그룹이 자신들의 영역 근처만 보호한다 해도 도시 이곳저곳에 안전지대가 생기는 셈.
던전 공략에 성공한 뒤 일단 인제군으로 복귀할 생각도 했었다만.
‘이 인재들을 놓칠 수 있나.’
안 그래도 인력에 목말라 있던 참.
한동안은 이 도시에 자리잡고 부대원들을 늘려 봐야겠지.
* * *
그렇게 돼서.
우리는 도시에서 주인이 없는 건물 하나를 차지했다.
‘차지라고 해 봐야 괴물을 정리하고 들어가 침낭을 깐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 안에도 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지라.
처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일단은 이곳을 임시 거점으로 삼은 뒤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된 거점을 늘려야겠지.
“그럼. 근무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괴물들이 늘어나긴 엄청 늘어났다.
부대원들은 주변의 안전 확보를 위해 주기적으로 순찰을 나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 주변에 넘쳐 나는 각성자들에게 합류를 권유하기도 해야 할 테니.
건물에 남은 나는 부대원들의 식사 준비를 마친 뒤.
잠깐 쉬면서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
[미수령한 보상이 존재합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
애초에 우리가 던전을 공략하려 했던 이유가 뭐였던가.
‘파밍이지.’
그 보상을 확인할 때가 됐다.
[침식 이계 - 다스무르의 공략 보상을 확인합니다.]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각성자, 신영준의 공헌도 - 1위]
내 공헌도는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1위.
2위는 아마 저 번개 마법을 구현했던 민재 형이 아닐까.
그리고.
[보상이 주어집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여기까진 이전에 던전을 공략했을 때와 비슷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기운.
그리고 포인트.
‘저번엔 이다음으로 집단 스킬이 주어졌지.’
이번에도 뭔가 집단 스킬 같은 게 주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조금 달랐다.
[조각난 세계의 정수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 확인 중…… 요리사.]
[보상이 주어집니다.]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
이번에 나타난 것은 집단 스킬이 아니었다.
정수.
‘부대원들한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확인을 좀 늦게 한 편.
먼저 보상을 수령한 부대원들이 있었다.
이번에 주어지는 보상이 집단 스킬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번에 던전 공략 보상으로 얻었던 것은 집단 스킬.
[군단의 기운].
당시 던전의 몬스터들이 가지고 있던 [검은모래의 기운]이라는 특성이 형태를 바꿔서 주어진 것이겠지.
거기에 이번 보상의 이름은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
‘던전의 보상은 던전 그 자체와 관계가 있다.’
이 가설은 확정이라고 봐도 되겠지.
부대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어진 보상은 직업군, 공헌도에 따라 모두 달랐다고 한다.
장비를 얻은 녀석도, 스킬을 얻은 녀석도 있다고.
마법사들이라면 수속성의 마법이나 스태프.
전사들은 수속성에 관련된 무기나 방어구, 혹은 온몸에 단단한 비늘이 솟아나는 스킬 같은 걸 얻었다고.
‘마법사들은 엄청 좋아했지.’
우리 부대의 장비들은 박씨 할아버지와 이상아를 필두로 한 공방의 생산직들이 책임지고 있지만.
칼 같은 걸 만드는 데에는 도가 튼 박씨 할아버지조차 마법사들이 요구하는 스태프 등의 제작에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마법사용 장비를 얻은 녀석들은 기쁜 마음에 스태프에 이름까지 붙여 줬었다.
‘대체로 공헌도가 높을수록 좋은 보상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공헌도 1위의 내게 주어진 보상은 바로 이것.
[다스무르 요리사의 정수]
살짝 푸른 빛을 띠는 동그란 공.
만져 보니 촉감은 말랑말랑했다.
“……흠.”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쓸만한 칼이나. 특성. 아니면 식재료 같은 거라도 주려나 했는데.’
왜, 식재료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있잖은가.
한때 판타지 소설의 필수요소로 여겨졌던 드래곤 하트라든가.
무협이라면 공청석유 천년설삼 등.
그런 류의 대단한 녀석이 주어지지 않을까 했다만.
‘요리사의 정수라.’
다른 이들이 받았다는 보상과는 조금 달랐다.
당장 랭킹 2위인 민재 형만 해도 마력을 크게 늘려주는 특성을 얻었었지.
다른 이들도 장비나 스킬 같은 거였고.
어떻게 써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았으나.
그 순간.
[주의!]
[격이 높은 식재료입니다.]
[재료에 비해 요리사의 경지가 낮습니다.]
[지금의 실력으로 요리를 시도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경지를 높인 뒤에 도전하기를 권장드립니다.]
“어. 뭐야.”
이거 먹어도 되는 거냐?
문구 자체는 지난번에도 본 적이 있는 문구였다.
교황의 살점으로 회를 만들려고 하니 떴던 문구.
‘생각해 보면. 그 요리가 성공했던 건 운이 좋았지.’
여러 요소가 작용하긴 했을 것이다.
온갖 버프 중첩으로 능력치가 올라가기도 했고.
마침 내 칼도 사시미 전용이었으니.
하지만.
‘요리를 실패했다면 아마 재료는 그대로 날아갔겠지.’
당시에야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
좀 과감하게 시도해봤고, 운 좋게도 성공했다만.
“이번에도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단 말이지?”
무려 던전 공략의 보상.
그것도 공헌도 1위에게만 주어진 보상이다.
“……나중에 도전하자.”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제 가능해질지는 대충 감이 왔다.
지금 내 직업은 [중급 요리사].
초보, 하급을 거쳐 도착한 직업.
그렇다면 중급의 다음은 아마도.
‘고급 요리사.’
그쯤 되면 어지간한 식재료는 전부 가능할 것 같은 이미지잖냐.
최근에 경험치를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인 덕에, 의외로 거기에 도착하기까지도 멀지 않았다는 느낌.
그때 제대로 된 요리로 만들어서 먹어 봐야지.
* * *
그렇게 보상을 확인하고 난 뒤.
나는 아무도 없는 내 방으로 들어간 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나와 보지.”
바닥을 보며 말을 걸자.
“네, 주인님.”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곧 금발의 여성이 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식사……가 아니라. 은총 시간은 아직인 걸로 아는데. 무슨 일이신지?”
내 요리를 제공받는 걸 조건으로 영혼까지 바쳐 버린 괴물.
뱀파이어들의 준남작.
이 녀석한테 물어볼 게 있었다.
“이번엔 꽤 열심히 했으니까, 간식을 줄까 해서.”
“어머!”
나와 부대원들, 거기에 저 도시의 협력자들이 [교황]을 레이드 할 때.
[동족의 아이들이 오지 않는구나.]
[필시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겠지.]
던전에 널려 있던 다른 괴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많은 괴물이 전투에 가담했다면 우리 운명도 꽤 달라졌겠지.
‘그 일을 맡은 게 바로 이 녀석.’
신전에 입장하기 전.
혹시 몰라 녀석에게 바깥의 방위를 맡겼다.
이 녀석은 밖에서 몰려오는 다른 어인들이 우리의 전투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역할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기껏 숫자를 채운 권속의 절반가량이 먼지로 돌아갔다던가.
‘살아남은 권속들이 어인의 피를 삼키면서 힘을 키웠으니, 결과적으론 비슷하다는 것 같지만.’
아무튼.
노력한 건 사실이란 말이지.
“이런 보상이 있을 줄이야.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요리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버린 녀석이다보니.
간식이라는 말에 신나서는 밤의 귀족의 체통이니 뭐니 하던 것도 무시한 채 다가오는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 뒤.
스윽.
“어머?”
내 팔목에 칼을 댄 뒤.
살짝 그었다.
주륵.
약간 따가운 느낌과 함께 혈관을 흐르던 피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간식이라는 게, 주인님의 피였나요?”
“싫냐?”
“설마요!”
이 녀석을 처음 굴복시킬 때는 내 피로 요리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비축해 놓은 피 같은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는 요리에 사용할 피를 쟁여둘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하니.
사냥해 온 괴물들의 피도 따로 빼두게 되어, 내 피를 쓸 일은 없어졌다.
이 녀석에게 내 피를 먹이는 건 그 후로 처음.
“이만큼 질 좋은 피는 어디 가서도 구하기 힘든데. 그 귀한 걸.”
“열심히 했으니까. 자. 마셔라.”
“헤헤, 감사합니다~”
손목을 들이밀자.
녀석은 거기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할짝.
요리를 거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꽤 맛이 있는 것일까.
고혹스러운 표정으로 피를 핥는 녀석.
살짝 간지러웠다.
그리고.
“어라?”
잠깐 피를 빨던 녀석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피가 멎으셨는데요?”
“……모르는 척하는 거야, 뭐야.”
“?”
무려 손목을 그었다.
본래라면 쇼크사가 일어날 정도의 과다 출혈이 있어야 정상.
하지만.
그녀가 한두 번 핥고 끝날 정도의 피가 배어났을 뿐.
피는 금방 멎어 버렸다.
‘피가 멎은 이유야 하나밖에 없지.’
스윽.
칼 닦는 헝겊으로 손목을 닦아내자.
이미 아물어버린 손목의 흉터가 보였다.
“어머, 벌써 상처가 나으셨네요.”
손목을 베어 버린 상처가 순식간에 나아 버릴 만한 재생력.
각성자들은 인간을 초월해 버린 이들.
일반인에 비하면 상처가 낫는 속도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긴 하다만.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진 않아.’
갑자기 생겨난 재생 능력.
덕분에 교황과의 싸움에 일찍 복귀할 수 있었고, 던전 클리어에도 좋은 영향을 줬다.
그땐 더 생각할 만한 시간이 없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만.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잖아.’
멀쩡한 사람의 상처가 눈에 보일 만한 속도로 재생되는 현상.
그런데.
‘이런 재생력. 난 한 번 본 적이 있단 말이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의심이 가는 원인은 눈앞의 이 녀석뿐.
뱀파이어.
심장이 뜯기거나, 태양 빛에 노출되지 않는 이상.
상처 따윈 금세 회복해 버리는 괴물.
“너 설마…….”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대답에 따라 칼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 채.
“나를 뱀파이어로 만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