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11화 (111/227)

111화 해방된 도시 (2)

던전 공략이 끝난 뒤.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끝난 공략이긴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던전을 탈출해 우리한테 구원 요청을 해 온 남자.’

부대원들은 부대 외의 인물에게 영 관심이 없다 보니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 남자는 분명 저 던전을 탈출했다.

어떻게 던전을 탈출하고, 우리에게까지 도착했는지.

지금은 탄약대대 기지에 누워 있을 그가 눈을 뜬 뒤에야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또 하나는.

던전에서 마지막으로 치른 전투.

거기서 갑자기 내 몸에 나타난 현상.

‘말도 안 되는 재생력.’

배에 뚫린 구멍이 눈에 띌 정도의 속도로 치유되던 광경.

지금 생각해도 기묘하다.

“너 설마…… 나를 뱀파이어로 만든 거냐?”

갑자기 생겨난 재생력.

요리의 효과도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겪은 사건 중 의심이 가는 건 하나밖에 없다.

‘뱀파이어.’

이 녀석은 멀쩡한 인간을 뱀파이어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괴물.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 뱀파이어로 바꾼 거라면.

“설마요. 주인님도 참, 무서운 소리를!”

하지만.

그녀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뱀파이어라는 명칭이 문제인가? 네가 말하는 밤의 귀족이란 걸로 만든 거냐고 묻는 거다.”

“아니라니까요.”

한숨을 내쉰 그녀가 슬쩍 손톱을 세웠다.

공격하려는 건가 싶어서 손에 쥔 칼에 힘을 주었으나.

그녀의 손톱이 내 피부 위에 닿은 순간.

두웅…….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있는 듯.

내 피부의 바로 앞에서 가로막히는 손톱.

“저는 주인님의 허락 없이는 주인님에게 잔상처 하나 내지 못해요. 권속이 된다는 맹세는 그런 거거든요.”

“……그럼 이 재생력은 뭐지?”

“그렇게 말씀하셔도. 으음.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녀석.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으음. 제 짐작이 맞는다면, 그 재생력은 주인님이 선택하신 결과일 텐데.”

“뭐?”

“아~ 아예 모르시는구나.”

녀석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권속을 만드는 방법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그거야. 저번에 얘기한 적이 있긴 했지.”

녀석이 권속을 만드는 방법.

우선 대상의 피를 모두 빨아들인다.

그렇게 피가 모두 빠진 혈관을.

“네 피로 채운다……. 맞지?”

“잘 아시네요. 그럼 주인님이 저를 제압하실 때의 일은 기억나시나요?”

“그건. 솔직히 말하면 조금 가물가물한데.”

워낙 정신이 없었다.

흡혈 특성을 획득한 뒤에 밀려왔던 끝없는 갈증.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녀석의 피를 빨아 재꼈다는 것밖에 기억에 없다.

“주인님의 피를 제가 빨아들이고, 주인님도 제 피를 빨아들였잖아요?”

“……아.”

이거 설마.

“그러니까. 주인님이 가지고 있던 평범한 인간의 피가 저한테 오고, 제 마력이 담긴 피가 주인님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 자리를 메우고. 이거 뭐랑 비슷하지 않나요?”

“권속화랑 비슷하군.”

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피를 빨 때 떠올랐던 시스템 창 하나가 있었지.

[주의!]

[지나치게 많은 흡혈은 신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친.

“제 피를 적당히 드신 것도 아니고, 제가 남작으로 승작하기 직전까지 모아왔던 피를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빨아 가셨으니.”

“……네게 피를 줄 때까지만 해도 이런 변화는 없었다. 왜 이제 와서.”

“몸에 좋은 요리를 많이 먹었다고 하루 만에 효과가 나오진 않잖아요? 이제야 변화가 적용되기 시작했나 보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럼, 내가 네 권속이 돼 버리는 건가? 이럴 경우에 주종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시스템상으로는-.”

“아~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권속을 만들 때랑은 조금 달라요.”

“다르다니?”

“권속을 만들 때는 빨아들인 피에 제 마력을 담아서 그대로 제자리에 돌려 넣는 것에 가깝거든요. 그 마력에 지배에 관련된 힘이 담기는 거구요. 하지만 주인님이 가져간 피는 정말 온전한 제 피였으니.”

“네 피의 영향이 오더라도. 네 권속이 될 일은 없을 거란 거군.”

“네. 아쉬워라~ 주인님의 주인님이 된다면 정말 기분 좋았을 텐데.”

내가 자신의 동족에 가까워졌다는 게 즐거운 것일까.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녀석.

‘요즘 좀 풀어줬더니. 많이 기어오르네.’

이건 나중에 혼내기로 하고.

“권속들한테 들었어요. 이 세계에는 원래 마력도 없었다면서요?”

“그렇지.”

“다른 인간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낮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안 그래도 마력에 민감할 몸에, 밤의 귀족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피가 그 정도로 섞여 들어갔으니.”

싱긋.

“주인님은 인간보다는 밤의 귀족에 가까워지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번 확인해 볼까요?”

그렇게 말하더니.

옷깃을 슬쩍 내리고 자기 목덜미를 보이는 녀석.

“조금만 더 빨아 가시면 아예 종족이 변할 것도 같은데. 어떠세요?”

“…….”

“제가 권속으로 만들면 직업도 하나로 고정되겠지만, 이 방법이면 요리사라는 직업도 유지되지 않을까요? 저도 인간한테 굴복하는 것보단 동족한테 굴복하는 게 나은데.”

“절대 사절이다.”

흡혈을 통해 힘을 키울 수 있다는 등의 이점은 있겠지만.

태양에 약하고, 주기적인 흡혈을 하지 못하면 능력치가 저하한다는 점 등.

페널티도 상당한 종족이다.

아니,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인간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뱀파이어가 되라니. 끔찍한 소리.’

이 녀석의 피를 흡혈했을 때.

올라간 능력치의 양이 상당했다.

나중에 이 녀석이 능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 다시 같은 방법으로 내 능력치를 키워볼까 했었는데.

“큰일 날 뻔했잖아…….”

그딴 꼼수를 한 번 더 시도한다면 그걸로 끝.

그대로 인간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밤의 귀족으로서의 신영준이 탄생할 뻔했다는 거다.

……아니.

하지만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피와 관련된 종족이라고 해도 그렇지. 피를 먹었다고 종족이 바뀌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말씀드렸다시피 이 세계의 인간들은 유독 저항력이 약해서-”

“그렇게 따지면 내가 먹은 몬스터 요리가 몇 갠데.”

내 피와 살의 지분은 대부분 몬스터들이 차지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나도 진작에 몬스터가 되었어야 정상…….

‘아.’

뭔가.

머릿속에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그 걸리는 부분을 떠올리려고 하자 아리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

“괴물들의 고기는 요리해서 드셨다고 하셨잖아요? 반면 제 피를 마실 때는 그렇게 거침없이 빨아 드셨고.”

요리를 함으로써.

요리사의 힘이 무언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대화를 저 던전 안에서도 나눈 적이 있었다.

창수가 말했던 한 인물.

괴물을 잡아먹다가 이성을 잃고 인간까지 잡아먹게 되었다는 존재.

‘이상식욕자.’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몬스터의 마력에 취약하다.

분별없이 집어삼키면 그 자신이 또 다른 몬스터가 되어버릴 정도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마력을 정제하는 것.’

어쩌면.

그게 요리사의 본질이 아닐까.

‘내 종족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재생력이 생겼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

이 일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요리사에 대한 의문은 조금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나중에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네?”

마침 확인해볼 수단도 근처에 있었다.

창수가 말했던 그 괴물이 된 인간.

창수와 그의 그룹원들은 그 괴물을 토벌하지 못했다.

그 괴물은 우리가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도, 던전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라는 뜻.

던전이 폐쇄된 지금.

그 역시 이 도시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을 터.

‘조만간 마주치게 되겠지.’

그때가 오면 비로소.

내가 가진 의혹을 해결할 수 있겠지.

* * *

“근무 다녀왔습니다!”

“오냐. 교대자용 식사 해 놨으니까 먹고 들어가.”

“옙!”

우리 부대가 이곳에 남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

근처에 넘쳐 나는 각성자들을 우리 부대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그래서…… 오늘 입대하기로 한 사람이 몇 명이라고?”

“아. 두 명임다.”

“으음.”

두 명이라.

근무자용 식사를 우물거리던 병사들 역시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합류하려는 사람이 적더라구요.”

우리가 남기로 한 목적은 부대원을 늘리기 위함이었는데…….

정말 처참할 정도로 적은 인원만 합류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뭐지? 저 사람들은 약탈자로 변한 탈영병을 만나 본 것도 아닐 테니,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도 않을 텐데.”

“아주 좋지만은 않더군요. 우리 때문에 던전이 닫혔다는 건 유명해서.”

“그래도. 오히려 저 던전의 보스를 처치할 정도로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보통일 텐데.”

세상이 멸망하고 괴물이 돌아다니는 시대.

군대라는 타이틀은 이런 상황에서 꽤 안정감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이렇게까지 사람이 안 올 줄은 몰랐다.

“이유? 글쎄.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를 그나마 우리 부대와 친한 이 지역 출신.

창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마 가장 큰 건, 애초에 이 도시의 인간들이 뭉치기 힘든 사람들이란 점이겠지.”

“?”

“몇 번 말하지 않았나? 중간에 사람들끼리 큰 싸움이 있었다고 말이야.”

아.

“식량을 많이 확보한 이들과 그러지 못한 이들 간의 싸움이었지. 그때 꽤 많은 사람이 죽었어. 우리 그룹이야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전투력도 꽤 높은 편이다 보니 공격받진 않았지만.”

“허어.”

“아무튼 그 싸움으로 인해 여러 그룹이 와해되고, 와해된 그룹의 인간이 다른 그룹으로 들어가고……. 뭐 그런 일이 많았거든. 아마 다른 그룹에 철천지원수가 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요.”

어깨를 으쓱하는 창수.

“다른 병사들한테 들었는데, 각성자가 100명이 넘게 모이면 길드가 된다면서?”

“그렇죠.”

“도시에 각성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길드는 하나도 없었지. 다 이유가 있는 거요. 마냥 뭉치면 좋다는 이유만으로 뭉치기에는 사람들의 관계가 영 복잡한 거지. 전원이 각성자인 만큼, 굳이 큰 세력을 이루지 않아도 어떻게든 제 몸 간수 정도는 되니까.”

과연.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검사나 암살자 같은 직업이었다면 홀로서기라도 해 봤을 텐데.

저들은 그 홀로서기가 되는 이들.

차라리 힘없는 일반인이었다면 우리 길드에 가입하길 원했을 테지만.

제 몸 간수가 되는 이들은 굳이 합류해야 할 이유도 크지는 않다는 거다.

우리를 구심점으로 모이기에는 다른 그룹과의 관계가 영 껄끄럽기도 하니까.

심지어는.

“이렇게 되니 더 아쉽네요. 여전히 저희 부대에 합류하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눈앞의 남자.

창수와 그의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맞아요. 대장님.”

“그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안 그래도 숫자가 적던 그의 그룹.

그 인원 중 절반가량은 이미 우리 부대에 합류를 결정했다.

‘내 요리로 치료받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

얼마 전까지 누워 있던 이들이야 이제부터 천천히 각성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그 사람들을 간병하고 있던 이들은 즉시 전력으로 활용 가능할 정도의 레벨을 지닌 각성자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두 팔을 벌려가며 환영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라서.”

하지만 창수를 비롯.

일부 멤버는 합류를 거절했다.

“어디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실 이 그룹을 좀 더 키워서 해 보고 싶은 일이 있거든.”

“?”

“100명이 넘으면 길드가 된다고 했지. 일단 거기까지 그룹을 키워 볼까 해. 그리고 어느 정도 힘을 키운 다음에는…….”

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세상이 왜 이 꼴이 난 건지. 제대로 알아볼 생각이오.”

지난번 던전 공략 이후.

창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았다.

“그 괴물 놈들. 그냥 인간을 먹이로 보는 식인 짐승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결국 제 아이들을 살리려고 하는 짓이었지. 딱히 그렇다고 용서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지하철의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깨달았던 것을 창수 역시 느낀 모양.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종족.

각자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강한 이가 살아남는 게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었다만.

“생각해 보게. 그 괴물 놈들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거라면, 우리의 원수는 그 물고기들이 끝이 아닌 셈이지.”

당초에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던 괴물들은 모두 죽었다.

도시 곳곳에 퍼져 있던 괴물들은 던전이 폐쇄되자 숨을 헐떡이며 자연스럽게 질식사해 버렸지.

그렇다고 ‘복수는 허무한 거구나.’ 하고 끝나진 않은 모양.

“괴물들이 나타나게 된 이 현상 그 자체가 남아 있는 한, 우리 복수는 끝나지 않아.”

더욱더 깊은 곳까지 복수를 이어 나갈 셈인 거겠지.

“뭐. 그렇다고 안 좋게 지내자는 건 아니오. 그룹원들 대부분이 그쪽 부대에 합류를 선택해 버렸으니까,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혹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시오.”

하긴.

저 인제군의 군부대에도 부대에 합류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우호적인 세력이 늘어난 걸로 감사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창수 씨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죠.”

“어, 정말 그래도 되나?”

“예?”

“사실, 안 그래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바로 말을 꺼낸 게 조금 염치없게 느껴진 것일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창수.

“전투식량을 좀 나눠줄 수 없을까 해서 말이지.”

전투식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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