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12화 (112/227)

112화 해방된 도시 (3)

“전투식량을 좀 나눠 줄 수 없을까 해서 말이지.”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창수.

그가 내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든 요리.

전투식량이었다.

“큼. 너무 염치없었나?”

“무슨 부탁인가 했더니. 그거였습니까?”

“효과가 정말 엄청나더군. 맛은 그보다 더 훌륭하고.”

그야 뭐.

누가 만든 요리인데 당연하지.

‘음.’

하지만.

그 요리를 만든 나로서는 조금 미묘한 생각도 들었다.

‘전투식량이라고 해 봐야…… 제대로 만든 요리에 비하면 맛도 효과도 별로 아닌가?’

뭐랄까.

내 대표 요리라고 할 수는 없단 말이지.

이들은 내가 제대로 만든 요리 역시 맛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전투식량만을 요구한 게 조금 의아했으나.

“맛도, 효과도 대단하지만, 사실 그보다 대단한 건 다른 부분이지.”

“예? 요리가 맛이나 효과가 전부지. 뭐가…….”

“버퍼가 없어도 버프를 제공할 수 있는 아이템 아닌가.”

아.

그게 [전투식량] 스킬의 핵심이긴 하지.

“거기에다가 먹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휘되니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고. 거기에 유통기한도 길고 부피도 적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야. 솔직히 말해도 되겠나?”

“…….”

“만약 이 세상이 게임이었으면 즉시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졌을걸. 지나친 오버 밸런스였다고 말이야.”

창수가 끌린 부분은 맛이나 효과가 아닌, 바로 그 부분이었나 보다.

내 능력이기도 하고.

얻은 지도 오래됐다 보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다만.

요리 스킬을 겪어 본 것 같은 저 [교황]도 전투식량을 보고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

‘이거 생각보다 사기 스킬이었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만한 아이템을 공짜로 달라는 말은 안 하겠소. 분명 제조하는 데도 꽤 많은 대가가 필요할 테니.”

“까짓거 드리죠, 뭐.”

“우리가 모은 물건 중에는 유용한 것들이 많아. 부족하지만 그걸 대가로 약간이라도……. 어? 지금 뭐라고 했지?”

“가져가시라고요. 전투식량.”

내 말을 들은 창수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전투식량을 달라는 말을 한 것은 본인인데.

“아니,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렇게 가볍게 줘도 되는 물건이 아닐 텐데.”

“그렇긴 한데. 앞으로 우호적으로 지낼 관계란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내줘도 상관없거든요.”

사실 그런 물건이 맞기도 하고.

부대에 가입하는 순간 기본적으로 수십 개씩 보급되니까.

‘몬스터의 고기는 이제 꽤 많이 쌓였으니, 어느 정도는 내줘도 티도 안 나고.’

만드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대규모 조리]의 재능을 각성한 뒤에는 요리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서 말이지.

전투식량용 육포 정도야.

재료만 갖춰진다면 하루에 수백, 수천 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그래서 그냥 건네주려고 했으나.

거절한 것은 창수 쪽이었다.

난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공짜로 준다는데도 거절합니까?”

“말했잖소. 전투식량의 효과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식량 자체가 귀한 시대야. 그런 걸 그냥 공짜로 받아 버릴 수는 없지.”

“딱히 부담을 느끼실 필요는 없는데.”

“그 말이 더 부담이야. 우리가 그쪽 길드에 가입한 거라면 모를까. 일단은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거든.”

으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창수가 말한 대로 전투식량의 효과를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대단한 물건이 맞다.

즉.

“가치를 제대로 매기고 대가를 받으려고 하면 값이 상당할 텐데요.”

“크흠. 그렇겠지.”

“제대로 지불은 가능하겠습니까?”

괴물과의 전투로 번 포인트가 많기는 하겠지만.

저들은 식량을 저 [딱딱한 호밀빵]에 반쯤 의존해 왔다.

상점에서 파는 [딱딱한 호밀빵]은 그 맛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의 포인트를 잡아먹는다.

아마 여유가 있지는 않을 텐데.

“도시에서 주운 물건들이 꽤 있어. 나름대로 가치 있는 물건도-”

“저희도 본진으로 가면 꽤 비축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어지간한 건 눈에도 잘 안 찰걸요.”

“큼……. 그래도 가능한 만큼이라도 받고 싶어서 말이오. 우리 그룹원들이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인당 1개씩만이라도.”

그럴 바에야 그냥 준다고 할 때 받지.

전투식량이 필요는 하고, 그렇지만 공짜로 받는 것만큼은 거절하고 싶나 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 이렇게 합시다.”

“응?”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지만.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도시에 괴물들이 넘쳐 나는 상황이고 하니, 그쪽 분들도 괴물들을 사냥하고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특히 우리 그룹은 레벨업에도 중점을 둘 생각이야.”

“그 괴물들의 시체를 가져다 주시죠. 그럼 그걸 재료 삼아 전투식량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

“대신 가져오신 몬스터의 고기 중 50%는 저희한테 주시는 걸로. 일종의 수수료 같은 개념이죠.”

이 방법이라면 나름대로 대가도 지불되고.

우리도 손해는 안 보니까.

그 얘기에 창수가 눈을 크게 떴다.

“대가가 그걸로 충분한가?”

“……50%면 많은 거 아닙니까?”

“어차피 괴물의 고기는 먹을 수도 없잖나. 가죽이야 어떻게든 쓸 구석이 있다고 해도, 고기는 어차피 버리는 부위였는데.”

괴물의 고기를 먹은 자는 괴물이 된다던가.

이들 입장에서는 쓸모없게 느껴질 만도 하다만.

“그 고기. 우리한테는 그럭저럭 가치가 있거든요.”

내가 요리한 고기는 지금까지 부작용이 없었다.

식재료야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기도 하고.

“으음. 그래도 말이지. 수수료를 더 챙겨가도 될 것 같은데.”

“50%면 충분해요. 아니면 그냥 없던 일로 하시든가.”

“아니, 아니! 내가 괜한 말을 했군.”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그렇게 거래가 확정되자.

난 그림자 속에 손을 집어넣어 전투식량 한 박스를 꺼냈다.

“……그 아공간? 같은 건 언제봐도 기묘하군. 그런 능력을 갖추고도 직업이 요리사였다니.”

[요리사의 특별소스].

박스의 내용물에 소스를 한 줌 뿌린 뒤, 창수에게 건넸다.

“이건 일단 계약금 같은 겁니다.”

“……정말 고맙소.”

고맙긴.

던전 클리어를 비교적 빠르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협력 덕분이 크다.

특히 창수 본인은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함께 전투를 치렀던 인물이기도 하고.

창수에게 넘겨준 전투식량에는 정신 안전과 관련된 소스들을 뿌려주었다.

복수에 미친 이들이라고 하나 인간성은 유지하고 있으니.

저 요리가 정신 안정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다시금 말하지만. 고맙소. 언제든 우리 힘이 필요하면 찾아오시오.”

“예예. 들어가세요.”

* * *

“뭐.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창수를 보내고 난 뒤.

난 부대의 간부들에게 이런 식의 거래가 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 양반은 나름 열심히 싸워주고 했으니까. 신 병장님만 괜찮으시다면야.”

“그렇지?”

허허 웃으며 말하는 광일이.

나도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흠.”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

이민재 병장과 서수혁 상병이었다.

‘……?’

그러고 보니.

저 둘은 부대에서도 특히나 실리를 추구하는 성향이 높은 편이었지.

말하자면 극한의 효율 충들.

그들의 표정을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 너무 호구같이 군 건가?’

지금의 거래.

창수의 그룹이야 어차피 우호적인 세력이고, 전투식량 정도야 만드는 게 어렵지도 않고 하니.

별생각 없이 전투식량을 건네줘 버렸다만.

전투식량의 가치가 사실 꽤 대단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좀 퍼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란 말이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건 100% 잔소리 각이군.’

둘 모두 내 의견은 가급적 존중해주는 편이다만.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조언이란 이름의 잔소리가 날아오는 편이란 말이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 어어.”

따끔한 조언을 들을 생각에 약간 긴장했으나.

서수혁 상병의 질문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질이 높은 요리를 자주 먹은 사람은 질 낮은 요리의 효과를 잘 못 본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확실합니까?”

“아. 그랬지. 나도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던 [깊은 자들의 교황]

그 이름에 붙은 [교황]이란 건 어떤 비유가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인 세계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었을 존재.

덕분에 온갖 고급 요리를 먹은 결과.

‘내 요리로는 녀석의 높아진 입맛을 맞출 수 없었지.’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

여유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요리 실력을 올린 뒤에 그 말을 후회할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 버렸을 텐데.

서수혁의 질문에 대답하자 이번에는 민재 형이 말을 이었다.

“영준이 너는 아마 현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겠지.”

“그렇다면 으음…….”

뭔가를 계산하려는 듯 고민에 빠진 두 사람.

그들은 이내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영준이로군.”

“현명하십니다.”

“엉?”

뭐야.

뭔가 오래 고민하는 것 같길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결론이 왜 이래.

“네 계획은 잘 알겠다. 병사들에게도 전해야겠군. 도시의 각성자 중 전투식량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몬스터 고기를 가져오라고 말이야.”

“다른 이들한테는 수수료를 더 높여 받긴 해야 할 겁니다. 저희 길드에 우호적인 이들일수록 그런 부분에서 혜택이 있다는 걸 알려야죠.”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 빼고 알아서들 이야기를 진행하는 두 사람.

‘호구짓했다고 욕먹지나 않을까 했는데, 다른 이들한테도 전투식량을 제공하자니.’

도대체 무슨 의도지?

* * *

“……모두 모인 것 같군요.”

아직도 물기가 모두 빠지지 않은 도시.

그 한구석의 건물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 합쳐서 서른 명 정도인가. 꽤 적구려.”

“어쩔 수 없잖아요? 서로 믿고 함께 하기에는 일이 꽤 많았으니까.”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서로 간에도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대화를 주도하려고 하는 이 역시 구심점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들.

저 던전 안에 있을 때 같은 그룹이었던 것도 아니다.

본래라면 서로 의심하는 통에 한곳에 모일 리도 없었을 인간들.

“일단 확인해 두겠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들이 여기 뭉치게 만든 공통점은 하나.

“우리 목표는 춘천을 탈출하는 겁니다. 다들 동의하십니까?”

“음.”

“동의하오.”

“애초에 그러려고 모인 거잖아요?”

이 도시.

춘천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드디어 집으로.”

애초에 춘천 시민이 아닌 이들.

일이 있어서 잠깐 이곳에 들렀다가 얼떨결에 던전에 갇혀 버린 인간들.

그리고.

‘드디어……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어.’

소중한 사람이 다른 도시에 있는 이들.

던전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잊고 살았으나.

밖으로 나온 이상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족, 연인, 친구.

소중한 이들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임의 리더를 맡은 남자.

이주혁이 말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저희 첫 번째 목표는 영동 지방으로 이동, 강릉에 도착하는 겁니다.”

지도를 펼치며 말하는 남자.

“여기 모인 사람들의 목적지는 모두 영동 지방 쪽이니까요. 일단 강릉에 도착한 뒤에는 각자 목적지에 따라서 개별 행동하는 걸로.”

그들이 뭉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나마 목적지가 가까운 편이라는 것.

강원도를 반으로 가른 산맥.

춘천은 영서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인 반면, 여기 있는 이들의 목표는 영동 지방 쪽에 있었다.

목표를 확실히 한 뒤에는 회의가 시작되었다.

“도로는 사용하기 힘들 거예요. 고장 난 차량들이 들어찬 건 물론이고. 그 차량 구석구석에 괴물이나 좀비도 숨어 있다더군요.”

“빌딩 옥상에서 봤는데 고가도로 하나는 아예 무너져 있었어. 터널 같은 곳도 멀쩡할지 모르겠군.”

여러 가지 문제가 논의에 올랐으나.

대부분의 문제에는 나름대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회의가 계속돼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하나.

“하아, 역시 식량이 문제로군.”

이주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나마 이동을 빠르게 도와주던 도로가 대부분 무너지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 지금.

괴물들과 싸우면서 강릉까지 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 길을 풀떼기만 먹으면서 이동할 수도 없는 일.

“가는 길에 보이는 마트 같은 걸 털다 보면.”

“우리가 저 안에 몇 달을 갇혀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지간한 식량은 바깥의 생존자들이 이미 다 털어간 상태일걸요.”

“끄응.”

“괴물을 사냥해서 구워 먹어 본다거나.”

“미친 소리. 난 가족을 만나고 싶은 거지, 괴물이 돼서 가족을 잡아먹고 싶은 건 아니야. 당신이 괴물이 되고 싶은 거라면 말리진 않겠소.”

“노, 농담이오.”

사람들의 고민이 이어졌으나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만큼, 확보해야 하는 식량도 상당할 겁니다.”

“으음. 그렇겠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여러분들은 어디까지 각오하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갑작스러운 이주혁의 말에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생각입니다. 여기서 하루 지체되는 동안, 혹시라도 아직 살아 있을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셈이죠.”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각오로는 질 생각 없어요.”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로는 빠르게 식량을 수급할 만한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설마.”

“그만한 식량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인간을 공격해 식량을 확보하자는 것.

저 던전에 갇혀 있을 때도 비슷한 비극이 있었다.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어디까지나 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얘기입니다. 일단은 평화적인 방법을 알아봐야겠죠. 안전하게 식량을 구할 만한 다른 방법을.”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라는 듯 말을 끊는 이주혁이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생각했다.

‘그딴 방법이 있을 리가 없잖아.’

모두의 직감이 한곳을 향했다.

결국 자신들은 죄 없는 누군가를 공격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 순간.

휘잉-

그들이 머물던 건물 바깥에서 큰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면서 바깥을 뒹굴던 종이 한 장이 창문을 통해 건물 안쪽으로 들어왔다.

“뭐야 이건.”

“전단지 같은 거겠죠. 대충 버리고 회의에 집중을…….”

“아니, 뭔가 적혀 있는데?”

평범한 하얀색 종이.

그곳에는, 손으로 휘갈겨 적은 듯한 문장이 하나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식량을 원하는 자. 군단으로.]

“……?”

모두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식량을 얻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