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전투식량 (1)
수몰된 도시…….
아니, 던전에서 풀려나 세상에 풀려난 각성자들.
그 숫자는 무려 수천 명에 달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 수천 명인 것에 비해, 식량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
자칫 잘못하면 수천 명의 약탈자들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쿵!
“그쪽이 말한 대로 괴물들의 시체를 가져왔소.”
본래는 평범했을 상가 건물.
그 건물의 주변에는 정체불명의 회색빛 장벽이 세워지고 있었다.
강철을 연상시키는 잿빛 장벽은 군사 시설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강철 군단이라……. 이름값 하는군.’
사내는 건물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조금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괴물의 사체를 가져다주면 식량을 준다고 했지? 속는 셈 치고 와 보긴 했지만…… 솔직히 믿기 힘들군.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어디 보자. 예.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이름 적으시고. 2~3일 뒤에 다시 오시죠.”
“……큼.”
남자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덤덤하게 일지 같은 것을 작성하는 군인.
‘어차피 괴물의 사체는 쓸모도 없으니까.’
만약 거짓말이라고 해도 손해 볼 일은 없다.
남자는 약간의 찜찜함을 남긴 채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며칠 뒤.
“어디 보자. 예. 이거군요.”
쿵.
남자가 가져온 가방에 반쯤 채워진 육포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말했다.
“내가 가져왔던 괴물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을 텐데. 이게 전부요?”
“수수료가 80%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80%라니…….”
단순 공임비라고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수치.
남자의 인상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아무리 괴물의 사체가 쓸모없다고는 하나, 그 정도로 뜯어 가면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하지만 그 표정을 본 병사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제 말 믿으십쇼. 80%도 싼 겁니다.”
“……군인이라는 양반들이 이렇게 폭리를 챙겨도 되는 건가?”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비꼬는 것처럼 들릴 테니. 뭐. 먹어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군인들은 저 수몰된 도시의 괴물들을 전멸시킨 세력.
눈앞의 군인도 총 한 정을 메고 있었다.
‘약한 게 죄로군.’
남자는 씁쓸하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주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식량을 얻긴 했으니까.”
가방에 담긴 육포들.
이 정도 양이라면 배불리 먹어도 1주일, 아끼면 2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물을 사냥하면서 식량을 모두 소진해 버린지라 벌써 이틀을 굶주렸던 상황이었다.
남자는 일단 배를 채우기 위해 가방의 육포 한 점을 꺼내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어?”
남자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입 안에 들어간 순간 부드럽게 녹아드는 고기.
이빨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새어 나오는 육즙까지.
과거에는 나름대로 고급 육포도 자주 먹어 봤던 남자였으나.
“마, 맛있어.”
어지간한 고급 육포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맛이었다.
“뭐야.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 건가……? 아니, 이 맛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잖아.”
어떻게 괴물을 먹을 수 있게 가공했는지조차 의문인 상황.
게다가 그 가공처는 군대였다.
군대에서 나온 전투식량에 맛을 기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맛.
그 맛에 감동한 남자는 남은 고기 역시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그러자,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데?’
단순히 배고프던 것이 해결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상태창을 열어보자.
실제로 버프를 받은 것처럼 능력치에 보너스가 추가되어 있었다.
남자는 과거 사제 계열의 각성자에게서 버프를 받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올라간 능력치를 보면서도 꽤 감탄했더랬지.
“그때 그 버프는 지금이랑 비교하면 뭣도 아니군.”
엄청난 능력치의 상승.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요리를 먹은 것만으로도 그의 전투력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그제야 아까 만났던 군인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 정도의 버프가 있다면, 저번에 사냥했던 괴물 정도는 훨씬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다.’
이 요리를 통해 괴물 사체의 수급이 쉬워진다면.
군단을 통해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될 터였다.
80%의 수수료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하…… 그 군바리들. 꽤 괜찮은 녀석들이었잖아.”
가방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주일 치 이상의 고기.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최근 내 일과에는 한 가지 일이 추가되었다.
전투식량의 양산.
‘옛날이었으면 전투식량 하나 만드는 데에도 꽤 시간이 들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재능 : 대규모 조리]
[요리 속도가 크게 증가합니다.]
괴물 한 마리를 육포로 만드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기를 말려서 건조해야 하다 보니 최소 이틀 정도를 잡기는 한다만.
내 작업 시간만 따지면 부담은 없는 수준.
[전투식량이 완성되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 적은 노동만으로 경험치를 얻기도 하고.
또한.
“식량이 쌓이는구만.”
“당분간 고기 걱정은 없겠습니다.”
도시의 각성자들이 가져온 엄청난 양의 고기들이, 부대의 임시 창고에 쌓였다.
식재료야 다다익선.
그뿐만 아니라, 쓸 만한 특성을 가진 고기들은 따로 빼서 그림자 속에 쟁여 두었다.
말마따나 고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신 병장님.”
“엉?”
그때.
식량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병사가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아까 가져다준 재료들은 이미 작업 다 끝났는데.”
“그 많던 게 벌써 다 됐단 말입니까……? 아.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
“전투식량 완성까지 이틀 정도 걸린다고 안내했더니, 그 며칠을 못 기다리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거 기다리는 게 뭐 얼마나 어렵다고.”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자잘한 일은 병사 선에서 돌려보내는 식으로 해결해도 될 일이었다.
전투 쪽으로는 실력이 늘었어도 이런 업무 관련해서는 여전히 신병급인 녀석들이 많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제대로 알려줄 생각이었으나…….
“자꾸 어딜 가기 위해서 식량이 필요하다느니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잘…….”
“어딜 간다고 했다고?”
그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바로 병사의 뒤를 따라 몸을 옮겼다.
“괴물을 잡아 오면 식량을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가져왔다구요.”
“아니 그러니까, 이걸 정제해서 먹을 수 있는 요리로 만들어 주는 거라 최소 며칠은 기다리셔야-.”
“한시가 급하단 말입니다!”
끼익.
“어, 신 병장님?”
“……?”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병사를 상대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수고했다. 이 사람이랑은 내가 얘기해 볼 테니까, 넌 근무 복귀해.”
“아. 옙. 알겠습니다. 충성.”
고생하던 병사가 경례를 하며 방을 나가고.
난 한창 실랑이를 하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부대의 지휘관 분이십니까?”
“아뇨?”
여전히 사람들과 엮일 만한 귀찮은 일은 전부 김 중위에게 떠넘기고 있다.
“취사병인데요.”
“……취사병?”
“예. 요리 관련해서 얘기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저희 부대 요리는 다 제가 하고 있으니까.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영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
일개 취사병이라고 하니 뭐 하는 놈인가 싶겠지.
“후우. 어쩔 수 없군. 얼마 전에 도시에 돌아다니는 전단지를 봤습니다.”
“아. 그거 적느라 저희 부대원들이 엄청 고생했죠. 프린트도 없어서 죄다 손으로 적는데, 얼마나 노가다였는지.”
“……몬스터를 잡아 오면 식량을 준다고 써 있더군요. 그래서 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더 기다리라니?”
뭐, 이런 얘기인 건 이미 병사에게 들었다.
난 남자가 가져온 괴물들의 사체를 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대부분은 근처에서 부대원들도 조우했던 적이 있는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빨강색이 대부분이고. 주황색도 좀 있긴 하네.”
“예?”
“아. 혼잣말입니다.”
갑자기 색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당황하는 남자.
생각하던 게 새어 나와 버린 모양이다.
저 색에 대한 얘기는 별거 아니다.
[식재료 감별(강화) - 전투력 측정기]
얼마 전.
업적 달성의 보상으로 얻은 특성, [전투력 측정기].
[이종족의 전투 능력을 그 마력량을 통해 측정합니다.]
[대상 몬스터의 강함이 색으로 표현됩니다.]
효과는 간단하다.
괴물의 전투력을 볼 수 있다는 것.
‘스X우터 같은 거지.’
각성자들이야 레벨이 있으니 대략적인 전투력 측정이 되지만.
괴물들은 싸워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아니란 거지.
괴물들을 바라보며 특성을 발동하면, 그들의 몸 주위로 옅은 기운 같은 게 보인다.
그 색에 따라 강함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가장 약한 게 빨강이고, 강한 게 보라겠지.’
좀비들은 거의 핑크색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빨간색이 대부분.
도시에 넘쳐 나는 괴물들은 주로 빨간색에, 가끔 주황색 괴물들이 섞여 있는 정도.
그런데.
남자가 가져온 괴물들 중 한 마리에 시선을 두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이잖아?’
노란색의 괴물은 도시에서 보기 드물었다.
‘최소한 리자드급.’
우리 부대를 습격했던 괴물들.
리자드들이 딱 노란색의 괴물이었지.
게다가 이 녀석에게서 보이는 노란색은 그렇게 옅지도 않았다.
‘저 던전에서 싸웠던 다스무리안 아성체…… 그 녀석하고 비슷한 수준인가?’
우리 부대원들이야 1:1로도 처리할 수 있겠지만.
도시의 각성자들은 몇 명씩 조를 짜서 처리했던 그 괴물과 비슷한 수준.
사체에 난 상처를 보니, 무기는 한 종류였다.
“이 녀석. 혼자서 잡으신 겁니까.”
“예.”
뭐야.
좀 치는 양반인가 본데?
“실력이 대단하신가 본데, 왜 그렇게 급하게 구시는 겁니까?”
“……저 강릉 사람입니다.”
“?”
“여긴 잠깐 출장 온 거구요. 가족들은 강릉에 있어요. 어떻게 됐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음.
대충 사정은 이해가 갔다.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게 하루 늦을수록 가족들이 무슨 일을 당할 확률도 늘어나는 셈이구요.”
“강릉이라. 혼자서 가실 생각입니까? 위험하실 텐데.”
“그 근처에 볼일이 있는 사람이 저 말고도 있습니다. 스무 명 조금 넘는 정도. 그 사람들과 함께 이동할 생각이죠.”
흠.
20명 이상의 인간이 먼 곳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거지.
이거.
마음에 드는데?
“잠시만 기다리십쇼.”
식량 창고로 쓰는 방으로 이동한 나는 거기 쌓여 있는 박스들을 둘러보았다.
“노란색이…… 여기 있네.”
노란색 빛을 띠는 괴물로 만들어진 전투식량.
그 박스를 남자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져가십쇼.”
“이, 이건.”
“가져오신 몬스터들로 요리한 거랑 비슷……은 아니고, 더 좋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고마움에 고개를 숙이는 남자.
“하지만 원래는 저희가 가져온 괴물로 요리를 하는 거라고.”
“원래는 그런데.”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가족들 찾아가야 한다는 사람을 어떻게 붙잡아 둡니까.”
“……!”
“원래는 수수료로 고기 중 80%까지 가져가는데, 대충 50% 정도 뗀 거로 계산했습니다. 이런 특혜 얼마 없으니까 남들한테 말하고 다니진 마시고.”
“정말 감사…….”
“그리고 강릉으로 가실 거라고 하셨죠?”
“예에.”
난 품에서 노트 한 장을 꺼낸 뒤.
거기에 약도를 하나 그려 주었다.
“저희 부대원들 정찰 결과에 따르면 이쪽 도로가 그나마 쓸 만할 겁니다. 다른 길은 괴물들도 많고 해서.”
“이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다른 병사에게 소리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감격에 몸을 떠는 남자.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기필코…….”
“은혜는 무슨. 가족분들 꼭 찾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예!”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떠나는 남자.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감사하긴 뭘.’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지.
* * *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나오는데.
“은인이시여.”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정수아.
‘아.’
내 요리 덕에 눈이 치료됐다는 점 때문일까.
정수아는 나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그 강력한 특성 덕에 부대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공을 생각해 부대의 간부급 자리를 하나 내주는 것도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지만
너무 떠받드는 말을 하다 보니 솔직히 말해서 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단 말이지.
이번엔 무슨 얘기를 하려는가 싶었는데.
“……저들에게 너무 많은 온정을 베푸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