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밀림 (2)
“파란색…….”
[전투력 측정기]가 알려 주는 적의 강함은 색에 따라 나뉜다.
빨, 주, 노, 초.
그리고 파랑.
‘노란색만 되어도 상당히 강한 편인데.’
초록색 괴물쯤 되면 우리 부대원들이라도 여럿이 붙어서 상대해야 할 정도의 괴물이다.
그걸 넘어 파란색이라니.
사실.
파란색 기운을 내뿜는 괴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내 그림자 속에 있는 괴물.
‘밤의 귀족이란 종족이 딱 파란색이었지.’
다만.
아리엘라를 바라보았을 때 나오는 푸른색은 아주, 아주 옅었다.
아슬아슬하게 파란색에 해당하는 강자지만, 딱 그 정도라는 뜻.
그야 준남작이라는 칭호만 봐도 그렇겠지.
반면 눈앞의 존재는…….
‘아주 짙은 건 아니지만, 옅지도 않아.’
최소한 아리엘라보다는 강한 괴물이라는 뜻.
나도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이 없었으면 애초에 이 안에 혼자 들어오지도 않았지.
-어떻게, 저희가 나서 볼까요?
그림자 속에 있는 병력만 100인.
울창한 밀림 속으로는 햇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전력이 감소되지도 않을 터.
다만, 문제는 이 환경.
‘밀림을 움직이는 괴물이라.’
저 녀석이 이 주변의 나무들을 조종하는 존재라면.
이 전투는 100:1이 아니다.
‘이 숲 전체와 싸우는 꼴이 되겠지.’
어쩌면 지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
잠깐 고민한 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모습만 확인하고 후퇴한다.’
애초에.
내 강점은 서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전면전 따위가 아니니까.
[요리사의 눈]
[식재료 감별(강화)]
적의 약점과 정보를 파악하는 두 능력.
그리고 그 능력으로 파악한 약점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요리] 버프.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잘 이용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 나의 주된 전략이다.
여기서 바로 싸워 줄 필요 따윈 없단 말이지.
하지만 그 전략을 활용하기 위해선 일단 적의 모습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요리사의 눈]은 상대를 어느 정도 집중해서 바라보기 전에는 발동하지 않으니까.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몸을 옮긴다.
푸른 기운을 내뿜는 형체.
그 모습이 조금 보이려고 하던 순간.
콰직.
“……!?”
발목을 조여 오는 감각.
바닥의 나무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미친.’
들킨 건가!?
혹시나 해서 특성을 확인해 보았으나.
[환경 동화]는 유지되고 있었다.
난 아직 이 밀림에 동화된 존재라는 뜻.
그런데 어떻게…….
아니.
“제기랄, 파란색쯤 되는 괴물이잖아.”
무슨 짓이 가능해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이 숲은 놈의 영역.
아무리 [동화]되었다고 한들, 방심해선 안 됐는데!
파아아아악!
내 발목을 붙잡은 나무뿌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내 몸을 어디론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한테 좋은 일 해 주려고 이러는 건 아닐 테니.
“전투 준비……!”
급하게 그림자를 보면서 소리친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뱀파이어 병력이 다 갈려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볼 수밖에.
생각의 회로를 전투용으로 바꾸며, 급하게 칼을 뽑아 들었다.
일단은 이어질 공격을 쳐낸 뒤, 발목을 자른 나무 또한 베어 낼 생각이었으나.
…….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뭐지……?”
내 발목을 붙잡고 어디론가로 이동하던 나무.
그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아도, 공격해 오는 움직임은 없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제자리로 돌린 순간.
“……ㅆ……바 깜짝이야.”
내 얼굴 정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식재료 감별 - 강화]
[알라우네]
[요리사의 눈]
[중급 요리 비결, ‘알라우네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 그루의 작은 나무였다.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대수림.
그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왜소한 나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무늬가 조금 신기하다는 점이었다.
왜, 그런 거 있잖은가.
나무의 결과 무늬가 마치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거.
이 나무도 마찬가지.
중심부의 무늬는 마치 사람의 이목구비를 빼다 박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뒤룩.
‘정신 건강에 안 좋네, 이거.’
나무에 박혀 있던 이목구비.
그 눈이 떠지는가 싶더니, 눈알이 뒤룩뒤룩 구르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처럼 보이는 무늬가 아니라 진짜 얼굴이었냐.’
나무껍질에 뒤덮인 얼굴이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도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눈싸움을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정신 건강에 좋은 짓은 아닐 것 같았다.
너무 징그럽게 생겼잖아, 이거.
“…….”
-……
그 뒤로 한동안 눈싸움이 이어졌다.
공격은커녕.
계속해서 잠자코 내 얼굴을 바라보는 녀석.
-주인님? 공격할까요?
“아니…… 아니. 일단 대기해.”
지금 나는 발을 붙잡힌 채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
피가 정수리 끝에 모이는 기분이 영 불쾌했다.
마음에 드는 꼴은 아니다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를 공격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혹시라도 내가 공격당하면 바로 반격한다. 필요하다면 네 권속들을 모두 잃어도 좋아. 내 목숨을 최우선으로 한다.”
-명하시는 대로.
일단 혹시 모르니 그렇게 명령을 해 놓은 뒤.
매달린 상태로 눈앞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갸웃……?
그러자.
나무에 박힌 얼굴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휘익.
발목을 붙잡은 나무뿌리에 이끌려.
거꾸로 매달린 내 몸이 어딘가로 움직인다.
슬쩍 뒤쪽을 돌아보자.
꽤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휘익.
또 다른 곳으로.
이번에는 종이 조금 다른 것 같은 나무가 또 한 그루.
“사람 거꾸로 매달아 놓고 뭐 하는 짓이냐. 이건.”
-저는 좀 알겠는데요?
“뭐?”
영문을 모를 행동에 당황하고 있었으나.
제3 자의 시선에서 보고 있던 아리엘라에게는 짐작 가는 게 있었나 보다.
-다른 나무들에 가져다 대면서 비교하고 있잖아요.
“그게 뭔…….”
-주인님을 처음 보는 모양의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특성, [환경 동화]는 유지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밀림에 동화된 상태라는 뜻.
보통의 경우에는 은신 능력 정도로만 활용한 특성이다만.
정작 이 녀석에게 은신으로써의 효과는 없었다.
다만.
이 특성이 아예 효과를 상실한 건 또 아니라는 뜻.
-매달려 있는 주인님 시점에선 모르겠지만, 여기서 보면 딱 그 느낌이거든요. 얘만 왜 이렇게 모양이 다르지? 하면서 여기저기 비교하는 거.
“……그럴싸하군.”
은신 효과가 없어졌을지언정.
이 밀림에 동화된 효과는 유지되고 있다 보니 날 특이하게 생긴 나무로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저 눈빛도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이런 나무도 있었나?
그야.
땅에 박히지도 않은 채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나무다.
내가 저 녀석의 관점이 되어도 신기할 것 같긴 해.
-일단은 잘된 거 아닌가요? 공격당할 일은 없다는 뜻이니.
“그건 아직 모르지.”
당장은 여유가 있는 듯하니.
난 방금 알아낸 알라우네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알라우네]
[역사와 규모가 남다른 숲속에서만 드물게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종족, 알라우네입니다.]
[주변의 식물들을 영향하에 둘 수 있는, 식물들의 지배자로서의 힘을 타고난 종족입니다. 그 특별한 능력 덕에, 잠재력을 모두 개화한 강대한 알라우네는 세계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알라우네를 손질하기 위해서는 우선 뿌리를 깨끗이 씻고-]
설명에 따르면.
이 녀석은 주변의 식물을 지배하고 영향하에 두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밀림이 그 결과물이겠지.’
그리고.
“이 녀석의 관점으로 보면, 난 녀석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무인 셈이잖냐.”
식물들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괴물.
그런 녀석이 자기 지배를 따르지 않는 존재를 마주했다.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
‘건방지게 내 말을 거부하다니!’
오만방자한 귀족이 반항하는 노예의 목을 한 번에 댕강- 해 버리는 그런 장면.
이 녀석이 식물을 지배하는 존재라면.
지배를 거부하는 나를 건방지다며 처분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응에 따라 대처도 달라져야겠지.
그리고.
투욱.
“어. 내려 주는 거냐?”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놓는 나무줄기.
바닥을 딛고 서자.
이번에는 알라우네 본체에 나 있던 뿌리가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뿌리.
이건.
“악수라도 하자는 건가?”
-잘됐네요.
그림자 안에서 들려오는 키득거리는 소리.
모든 식물을 지배하는 존재.
그 앞에 나타난 지배받지 않는 식물.
건방지다는 이유로 없애 버리지나 않을까 했다만.
-친구로 인정받으셨나 본데요?
생각해 보면.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수도 있는 일이지.
* * *
알라우네는 나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공격할 의도는 없는 것 같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려나 싶던 찰나.
녀석의 눈이 스르르 잠겼다.
이거 설마.
“……자는 거냐?”
-꽤 태평한 나무네요.
아무리 동등한 존재로 인정했다고 해도 그렇지.
편하게 대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거 아냐?
‘그래도 뭐. 위험하진 않겠네.’
저 녀석이 편하게 잠이나 자는데 나 혼자 긴장하는 것도 웃긴 일.
나도 조금은 긴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하늘 위까지 뻗은 거목들.
“천천히 보니 더 대단하네.”
이 정도의 밀림.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을 게 확실했다.
아니 해외로 나가도 있긴 할까?
밀림의 중심부여서 그런 것일까.
주변의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거대하고, 높았다.
인터넷에서 본 바오밥 나무 같은 게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특히, 알라우네 주변.
주인을 지키듯 모여 있는 거목들은 특히나 거대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사이즈.
덕분에 덜 자란 가로수 같은 사이즈의 알라우네가 더 작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밀림에 있는 것은 그냥 거대한 나무가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의 다양한 식물들.
처음 본다고 하긴 했지만, 애초에 식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보니
당연히 원래 이 산에 있는 것들이 변이된 건가 싶었다만.
[버제스토마 약초]
[미스쿠스 나뭇가지]
“뭐야.”
자세히 보니.
애초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중간부터 식물들의 모습이 좀 이상해진 것 같기도 하고.
철욱이 남겼던 말도 떠올랐다.
-저 안에! 농부의 혼을 타오르게 하는 것들이 자라나고 있다고!
“이것들 얘기였나 보구만.”
다른 괴물들이나, 알라우네와 마찬가지.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식물들.
농부인 그가 흥분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품질이 다소 저하됩니다.]
“환경의 영향이라.”
이 밀림이 생겨난 산.
농담으로도 명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나무도 듬성듬성하게 나 있었고, 그 나무들 상태도 영 메롱이었단 말이지.”
뭐 평범한 동네 뒷산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식물의 성장에는 땅의 힘도 중요한 법.
우리나라는커녕, 세계를 뒤져 봐도 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의 숲.
일개 동네 뒷산의 지력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 그렇다는 건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알라우네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잠들었을 때는 참 태평한 놈이다 싶었다만.
알라우네가 박혀 있는 자리의 바닥을 내려다보자.
[식재료 감별(강화)]
[흙]
[신선도 - 최하]
“최하…….”
흙에게 신선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냐 싶을 수도 있다만.
저 [신선도]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저 흙은 지력을 모두 상실했다는 뜻.
알라우네 역시 설명에 의하면 식물의 한 종류.
그렇다면 땅에서 영양 섭취를 해야만 할 텐데.
갑자기 잠들어 버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양실조로군.”
이 땅의 지력은 저 알라우네와 주변 식물들을 감당할 수 없다.
갑자기 잠든 건 마음이 편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었던 거야.’
다리도 없는 알라우네가 다른 지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을 리는 없다.
부대원들도 자신들의 감시망을 뚫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아마 내 추측대로 갑자기 ‘뿅’ 하고 이쪽에 나타나 버린 거겠지.
그렇게 나타나고 보니 땅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는 거고.
‘운도 더럽게 없는 나무로군.’
대충 상황은 파악됐다.
그리고 내가 파악한 게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처리하기가 어렵진 않겠네.”
이 밀림을 만들어 낸 주범.
알라우네는 이곳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밀림의 영역이 넓혀지고 있던 것도…… 어쩌면 새로운 영양을 섭취할 만한 땅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그렇겠지.”
다만.
적어도 이 밀림이 넓혀져 가는 방향 중 한 곳은 우리 부대원들이 틀어막고 있다.
다른 방향으로 나가도 그렇게 영양분이 넘치는 땅은 없을 터.
즉.
-가만히 두기만 해도 금방 말라 죽겠는데요?
지금 부대원들이 하고 있는 제초 작업.
그걸 범위를 좀 넓혀서 몇 주 정도만 이어 가도 충분하다.
영양을 섭취할 만한 새 땅을 찾지 못한다면, 녀석은 혼자서 말라 죽어 버리겠지.
탄약대대와 마을을 위협하던 사건은 간단하게 해결되는 셈이다.
나쁘지 않다.
나쁘진 않은데.
흠.
“좀 아까운걸.”
-네?
“저 식물들.”
알라우네 주변에 퍼져 있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처음 각성했을 때라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마력을 품고 있단 말이지.”
철욱이 괜히 농부로서의 혼 어쩌구 한 것이 아니다.
요리사인 내게도 마찬가지.
평범한 고기보다는 마력을 품은 고기가 맛도 효과도 뛰어나다.
그렇다면.
채소도 비슷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요즘 재료들이 좀 빈약하다고 생각했거든.”
저대로 말라 죽게 만들기엔 너무 아깝잖냐.
난 아까운 건 그냥 못 넘어가거든.
결정을 내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꿈뻑…….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감겨 있던 알라우네의 눈이 다시 떠지며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르르.
힘없이 다시 감기는 눈.
어지간히 배고픈가 보지.
“금방 다녀오마.”
녀석은 내가 떠나는 것도 붙잡지 않았다.
올라갈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려오는 길은 그보단 나은지라.
별다른 방해 없이 산을 내려와 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어어!”
“신 병장님이 돌아오셨다!”
부대에 돌아오자.
열심히 밀림의 침식을 막고 있던 부대원들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이상아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무모한 짓은 안 하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봐. 멀쩡하게 돌아왔잖아.”
“…….”
할 말을 잃은 듯한 그녀.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지금은 좀 바쁘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이상아를 뒤로한 채.
나는 모여 있는 부대원들 사이에서 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박철욱 부대원.”
“추, 충성.”
내 부름에 부대원들 사이에서 달려 나오는 남자.
농부 각성자, 박철욱.
그는 전역한 지 오래되었다가 최근에야 재입대한 셈이다.
지금은 취사병 총각으로서가 아닌 군단장으로서의 호출.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에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중요한 임무가 하나 있어.”
“뭐든지 말만, 아니. 말씀만 해 주십쇼!”
긴장한 듯 몸을 쭉 핀 그에게 명령했다.
“비료 만드는 법을 좀 가르쳐 줘야겠다.”
“……예?”
전역한 지 오래된 양반이라 그런 것일까.
대답이 영 군기가 빠졌는데.
“영양가 있는 흙이 필요하니 비료 만드는 법…… 아니.”
“……?”
“비료를 요리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흙이 영양을 잃은 탓에 영양실조가 된 나무들.
그렇다면 요리사로서 할 일은 하나뿐이잖냐.
기다려라.
‘내가 만들어준 흙이 아니면 안 된다고 울부짖게 만들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