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밀림 (3)
저 밀림의 근간이 된 것은 탄약대대 뒤편의 산.
하지만 그 산은 본래도 지력이 썩 강하진 않아 보였다.
저만한 밀림을 감당할 만한 지력 따위 있을 리가.
그 결과
‘알라우네는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즉.
인간으로 비유하면, 배를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다른 복잡한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단순히 배고파 죽겠다~ 하는 거라면.
‘까짓것 해 주면 되는 것 아니겠냐.’
식물이 좋아할 만한 요리를.
“크흠. 이런 걸 윗사람한테 가르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박철욱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료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니.”
“아까는 뭐든 맡겨 달라고 하지 않았나?”
“……알겠습니다.”
불만은 잠시.
그의 얼굴이 조금 진지하게 바뀌었다.
“일단 가르쳐 드리기로 한 이상, 군단장님은 제 가르침을 받는 제자인 셈입니다.”
“그렇지.”
“제가 말하는 걸 절대적으로 따라 주셔야 한다는 뜻이죠.”
무슨 걱정을 하는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취사병 총각으로 알고 있던 때라면 모를까, 길드원들 사이에선 내 위치가 절대적인 갑.
혹시라도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취사병 병장이었거든.
시키는 것만 하는 데에는 도가 튼 게 대한민국 군인 아니겠냐.
“그러면 일단 재료부터인데.”
“아.”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비료를 만들 생각을 하긴 했다만.
내가 살면서 비료를 만드는 장면을 본 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전부다.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도 그렇고,
그 영화의 장면도 그렇고.
“……혹시 분변 같은 게 필요한가?”
비료의 재료는 하나뿐이었다.
위생이 생명인 요리에서 가장 위생과 거리가 먼 재료를 쓰게 되려나 했는데.
“아뇨아뇨. 언제적 얘깁니까 그게.”
내 얘기에 철욱은 손을 가로로 휘저었다.
“분변으로 만드는 비료 같은 건 다 옛날 얘깁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시골 농가에서도 그런 방법은 안 쓰죠. 취미로 농사 짓는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거라면 모를까.”
어.
그건 그것대로 조금 충격인데.
“그럼 어떤 걸 쓰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뭐든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식물도 가능하고, 화학 비료로 가면 질소질 인산질 칼슘질…… 여러 가지가 있죠. 현실적으로 지금 저희가 쓸 만한 건.”
밭 근처의 창고.
그곳에서 봉투 하나를 여는 철욱.
“동물성 비료죠.”
동물의 사체를 이용해 만드는 비료.
세상에 넘쳐 나는 게 몬스터다 보니, 우리 부대에는 그 사체가 차고 넘쳤다.
[하급 농부의 정성이 들어간 아라크론 비료]
“제가 만든 비료입니다. 입대하고 나서 받은 몬스터 사체로 만든 놈이죠.”
“굉장한데.”
“몬스터들의 마력이 영향을 주니까요. 어지간한 고급 화학 비료와도 비교가 안 될 겁니다.”
확실히.
[식재료 감별]로 보았을 때도 꽤 훌륭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비료가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꼭 군단장님이 직접 만드셔야 하는 겁니까?”
“응?”
“군단장님의 직업은 요리사고…… 저는 농부죠.”
철욱이 볼을 긁으며 말했다.
“비료를 만드는 걸로 따지면 아무래도 제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글쎄.”
사실 당연한 얘기다.
요리사와 농부.
누가 더 비료를 더 잘 만드냐를 비교하기 전에, 애초에 요리사는 비료를 만드는 지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절대다수겠지.
하지만.
그건 평범한 요리사의 경우에나 그런 거고.
‘이미 철판때기도 요리해 봤는데 무슨.’
예전에는 식물에게 뭘 먹인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겠지만,
철물만 섭취하는 [강철을 먹는 맥]…… 까망이에게 요리를 해 준 뒤부터.
내게 요리의 개념은 한도 끝도 없이 넓어졌다.
비료 또한 식물을 먹이기 위한 요리.
그리고 요리라면.
“내 전공이거든.”
* * *
“후우…… 정말 안전한 거 맞죠?”
“이미 한번 다녀왔잖아. 안전 확인은 끝난 셈이지.”
“그 안전 확인을 자기 몸으로 하셔 놓고서.”
여전히 한숨을 내쉬는 이상아.
그녀와 부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금 밀림 속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한 번 가 봤던 길.
두 번째 산행은 처음보다는 훨씬 더 할 만했다.
“후우!”
겨우겨우 산을 올라 밀림의 중앙부에 도착했다.
중앙에 홀로 서 있는 나무.
그 가운데 박힌 얼굴이 나를 보고 눈을 껌뻑였다.
스륵…….
나를 보고는 다시 눈을 감는 녀석.
[재능]을 각성한 덕에 시간을 대폭 단축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료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들다 보니.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초췌해졌군.’
주변을 슬쩍 둘러보자.
근처의 나무들 역시 상태가 꽤 나빠진 것이 보였다.
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알라우네의 앞에 섰다.
나무 한가운데에 박힌 인간의 얼굴은, 솔직히 영 징그럽다만.
‘뭐, 몬스터 중에 안 징그러운 놈이 드물지.’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힘이 없는지 늘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한 뒤.
[그림자 장막]
나는 그림자 속에서 포대 자루를 하나 꺼낸 뒤.
그 자루를 열었다.
비료가 가득 들어 있는 포대 자루.
하지만 비료 하면 떠오르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완전에 가까운 무취.
철욱이 한 말이 떠올랐다.
‘냄새가 하나도 안 나다니……. 대단하시군요.’
‘뭐가 잘못된 건가?’
‘반대입니다. 비료라고 하면 악취가 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말 완성도가 높은 비료는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 법이죠. 몬스터의 사체로 만드는 비료는 난이도가 높다 보니, 제가 만든 비료들도 아직 악취가 심한 편입니다만.’
내가 만든 비료는 아니란 거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하나는 내가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레벨의 요리사라는 점.
요리의 제약이 없어진 내게는 비료를 만드는 행위도 요리의 하나.
내가 가진 스킬과 특성들도 그대로 적용되었겠지.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얼마 전에 얻은 특성.
[전투력 측정기].
‘이 특성이 강적을 판별하는 법은 결국 체내 마력의 질과 양이란 말이지.’
듣자 하니.
철욱이 비료를 만들기 위해 받아온 몬스터의 고기는 요리로 쓰기 애매한 것들이었다.
너무 상처가 심해 살이 뭉개지거나 한 것들.
당연히 그가 받은 몬스터들의 종류는 랜덤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특성을 얻은 나는 몬스터의 강함이나 마력량을 대충 측정할 수 있었고.
양질의 마력을 품은 괴물들만 골라 사용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깊은 친밀감의 혼합 몬스터 골육분 비료]
비료치고는 영 화려하고 긴 이름.
그걸 알라우네 주변의 흙에 뿌리고, 섞었다.
꿈뻑.
-……?
내가 하는 짓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녀석.
내게는 느껴졌다.
땅에 뿌려진 비료들.
거기 섞인 마력이 빠르게 땅에 섞여 들어가고.
그 마력이, 알라우네를 향해 움직인다.
‘지금인가.’
그 마력이 녀석의 몸에 닿아 흡수되기 직전.
나는, 활성화되어있는 특성 하나를 해제했다.
[특성 – 환경 동화가 해제됩니다.]
스륵.
주변의 환경에 동화되어있던 몸이, 평범한 인간의 것으로 변해 간다.
그 순간.
……!
나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알라우네.
녀석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고.
-카야아아아아아아악!
“뭐야 너. 말할 수 있는 거였냐?”
나무에 박힌 얼굴에서 괴성이 뿜어져 나온다.
꽤 살벌한 표정.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퍼져 있는 거대한 밀림.
나무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나 싶다만.
그 모두에게서, 엄청난 적의가 느껴진다.
이윽고.
콰직……!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땅을 뚫고 나왔다.
그것이 내 몸을 강타하려던.
바로 그 순간.
멈칫.
코앞에서 멈추는 거대한 뿌리.
‘식겁했네.’
멈춘 이유는 알 만했다.
내가 만든 요리.
비료의 마력이, 알라우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아……?
숲에 들어오는 모든 이물질을 공격하던 녀석.
나 역시 그 이물질 중의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녀석의 분노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요리사의 특별소스]
[깊은 친밀감]
“저번에는 네가 나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 줬지?”
하지만.
그건 좀 모자라단 말이지.
부대원들은 후임밖에 안 남았고,
유일한 동기는 저 산 위에 처박혀 있는 상황이다.
사실 지금 내 주변에는 친구라 부를 만한 존재가 딱히 없었다.
그러니.
“베스트 프렌드가 돼 줘야겠어.”
나를 바라보는 알라우네.
나무에 박혀 있는 그 눈빛에서는.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스륵…….
나를 공격하기 위해 튀어 올랐던 뿌리는 물론.
어느새 주변에 몰려 있었던 나뭇가지, 가시 등등이 조용히 물러났다.
생글생글.
“맛이 괜찮았나 보네.”
친한 친구를 보는 것처럼 기분 좋게 생글거리는 녀석.
보아하니, 요리의 효과는 직빵이었다.
‘그야 내가 전력을 다해 만든 요리니까.’
부대원들에게는 전력을 다한 요리를 먹이기가 힘들다.
그나마 20레벨이 넘은 간부급 인원들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만…….
그 외 병사들이 내가 전력을 다한 요리를 먹을 경우.
지나치게 강력한 버프가 오히려 신체에 엄청난 부담을 일으킨단 말이지.
반면…….
눈앞의 녀석은 무려 푸른색의 기운을 내뿜는 강력한 몬스터.
내가 전력을 다한 요리도 충분히 버틸 만할 터였다.
‘약간 걱정이었던 건 친근함을 느낀 나머지 하나가 되려고 한다든가, 어디도 못 가게 묶어 둔다든가 그러진 않을까였다만.’
다행히 이 녀석의 인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천성이 나쁜 녀석은 아닌 듯.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우린 친구지?”
싱글벙글.
기분 좋게 웃기만 하는 녀석.
다만.
이걸로는 아직 조금 모자라다.
[요리사의 특별소스]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지금이야 기분 좋게 웃고 있다만.
효과가 끝나는 순간 다시 괴성을 지르며 나를 공격해도 이상할 게 없단 말이지.
하지만.
모든 게 일시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지나친 용기의 잔재가 광기로 남아 버린 전광일 상병.
지나친 안도감과 친밀감이, 전우를 제외한 이들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진 부대원들.
특별소스의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그 효과가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질수록.
그 후유증.
감정의 잔재는 오래 남는다.
그러니.
턱.
턱.
턱.
그림자 안쪽에서 비료 포대를 꺼내 바닥에 쌓는다.
한두 포대로는 모자랄 테니, 일부러 잔뜩 가져왔거든.
미안한 얘기지만.
“좀 과하게 친해져 보자고.”
일시적인 효과를 넘어.
나를 보기만 해도 친근함이 들 때까지.
* * *
“……후우.”
부대를 침범한 밀림.
그 앞에 선 이상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걱정되십니까?”
“그야. 걱정되지 않을 리가요.”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답이 안 나와서 구원 요청을 보내긴 했지만…… 설마 저 안으로 혼자 들어가서 해결하려 하시다니.”
아무리 그녀로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들.
무려 길드 마스터 직위에 있는 사람을 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다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본인 선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녀의 책임이나 다름없었다.
“에이. 신 병장님이면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하신 일을 보면 뭐. 그렇지?”
그녀의 반응을 본 다른 병사들은 맘 편하게 웃었다.
그들의 군단장에게 관심이 없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무언가 막힌다 싶을 때면 어떻게든 해결법을 내놓던 것이 신영준 병장.
병사들 사이에선 슬슬 그가 무슨 짓을 해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돌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생각이야.’
이상아는 그런 생각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맘 편하게 웃고 있는 다른 병사들을 살짝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결국 그도 사람인걸.’
개중에는 정말 그를 신처럼 여기는 사람도 종종 있을 정도이다.
그야 지금까지는 정말 뭐든지 해낸 인물이니 이해는 간다만…….
‘그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건 신영준 병장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신영준 병장이라면 괜찮을 것이라 방심했던 주변 인물의 책임이 되겠지.
20명 남짓한 인원이었다고는 하나, 한 그룹을 이끌어 봤던 그녀다.
단체를 이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실수 하나가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지.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당장 내 그룹도 범죄자들 때문에 무너질 뻔했으니까.’
그 위기를 구해 준 것이 이 부대와 신영준 병장.
은인이나 다름없는 그가 안 좋은 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는 ‘괜찮겠지 뭐~’ 같은 안일한 태도로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말려 봐도 본인이 말을 안 듣는다는 게 문제지만.”
하아.
그렇게 한숨을 내쉬던 순간.
그 순간
스스슥.
“……!?”
그녀와 부대원들이 열심히 잘라내며 침범을 막고 있던 밀림.
그 나무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영역을 넓혀 오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격렬한 움직임.
“……전투 대형으로!”
이상아의 명령에 부대원들이 급하게 무기를 빼 들었다.
곧바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녀의 명령은 적절한 것이었으나.
스스슥…….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부대 일부를 침범하고 있던 나무뿌리가 점차 뒤쪽으로 후퇴하고,
그 나무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마치 땅이 스스로 움직여 길을 여는 듯한 모습.
묘한 경외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진 나무들 사이에 생긴 길.
그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상아는 그 남자를 보고 헛웃음을 지은 뒤.
지휘관을 향한 경례를 올렸다.
“……충성. 복귀가 생각보다 빠르셨네요.”
“충성.”
그녀의 경례를 받은 인물은, 당연하게도 신영준 병장.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