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19화 (119/227)

119화 이상식욕자 (1)

부대원들과 나는 철로를 이용해 어찌어찌 춘천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오래 떠나 있던 것도 아닌데, 뭔가 많이 바뀌었네.”

“우리가 떠날 때가 너무 개판이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 춘천의 풍경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곳곳에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고, 몇몇 건물들은 근처에 다가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지역이다만.

또 어느 지역은 사람들이 모여서 안전지역을 형성한 것 같기도 했다.

대표적인 안전지대가…… 우리 부대 근처인데.

부대가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물에 접근하자.

그 근처의 무너진 상점가에 간판에 웬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각종 쓸 만한 물건 팝니다.]

[전 물품 작동 확인 완료.]

[구매자의 변덕으로 인한 환불 일체 불가.]

“엥?”

그야.

수천 명의 각성자가 풀려난 도시다.

사람들이 모이면 나름의 사회가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거래 같은 게 활성화되고 있나 보군요.”

“이거 기분 묘하네.”

이런 식의 사회가 만들어진 쪽은 저 인제군의 탄약대대 근처가 먼저겠지만.

그쪽의 마을은 뭐랄까, 공동체 생활의 분위기가 강했다.

다 같이 만들고 다 같이 나눠 먹는다는 느낌.

거래 같은 것도 딱히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

반면 춘천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각성자들은 여러 그룹에 퍼져 있으며, 던전에서의 일로 인해 서먹서먹한 관계가 많다.

애초에 던전 안에서도 필요한 게 있으면 주고받으며 나름의 교류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거래가 활성화됐다는 거다.

“나쁘진 않겠네.”

사실, 웬만한 물품들은 포인트 상점을 통해 구매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쪽에 있는 물건들은 비싸기만 하고 품질은 영 별로인 경우가 많단 말이지.

각성자들끼리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물물교환한다면 포인트를 아낄 수 있다.

‘남는 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리거나 랜덤 스킬북을 구매하는 등 성장에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응?’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밟혔다.

[캠핑용 대용량 파워뱅크 배터리 (작동확인 완료)]

[가격 : 3전]

무너져 가는 상가 건물의 유리창.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커다란 보조 배터리였다,

캠핑에 가거나 할 때 쓰는 그거.

용케도 저런 물건이 아직 남아 있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아래 적힌 가격.

“3전?”

전.

원도 아니고, 전이라고?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저게 무슨 단위인가 싶어 발걸음이 멈춘 순간.

“저 배터리 얼마요.”

“적혀 있잖습니까? 3전입니다.”

“고작 배터리 하나가 3전이나 한다고?”

마침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서며 흥정을 시작했다.

“이미 작동 확인도 끝났고, 용량도 90%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전기는 다 끊겨 버린 거.”

“그건 아는데, 그래도 너무한 거 아뇨. 이거 원래는 30만 원도 안 했을 물건인데.”

“그게 뭔 상관입니까. 얼마 전에 본 사람은 1억 원짜리 수표를 휴지로 쓰던데.”

“끄응.”

……3전이란 게 비싼 건가?

“싫으시면 안 사도 됩니다. 제가 강매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발전기랑 가솔린이라도 구해서 그걸로 전기 만들어 내시면 되겠네요. 발전기는 소리도 장난 아닌데 괴물이랑 좀비들 끌고 오는 데는 제격이겠습니다.”

흥정하던 남자는 잠깐의 고민 끝에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급하게 전기가 필요한 상황인 걸 다행으로 아쇼. 아니었으면 이딴 가격엔 눈길도 안 줬을 텐데.”

“흐흐.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물건을 건네는 남자와 헤실거리며 받는 상인.

그 사이에 오간 물건.

그걸 본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왜 저기서 나와.’

내겐 아주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야 익숙할 수밖에 없지.

내가 만든 거니까!

‘전투식량이잖아.’

* * *

“아아 그거? 알고 있지만 대충 묵인하고 있다.”

내가 만든 요리가 거래에 쓰이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얘기를 꺼냈더니.

민재 형은 꽤 덤덤한 반응이었다.

“묵인이라니. 내 전투식량이 저렇게 재화로 쓰이고 있는데, 그래도 되는 거야?”

“아~ 요리사로서는 좀 그런가?”

“솔직히 조금은.”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영준이 넌 가급적 많은 인간들이 살아남는 걸 바라고 있는 것 같다만, 아니냐?”

“그건 그런데.”

내가 사람 죽는 걸 보고 못 넘어가는 선인이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고.

‘지금 세상을 침공해 온 괴물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게다가 생존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부대에 합류할 사람도 늘어나는 셈이다.

내 요리를 먹게 될 고객이 늘어난다는 거지.

“나도 처음엔 좀 놀랐다. 초반에는 그냥 물물거래로 조금씩 오가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금방 화폐처럼 자리 잡아 버리더군.”

“……굶어 죽으려는 사람들 죽지 말라고 뿌린 식량으로 거래를 하는 건 좀 그런데.”

“이해는 한다만. 결국 사냥해 온 괴물로 만들어 주는 식량이니까. 전투직이 아닌 사람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거지.”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난 직접 사냥해 온 괴물만을 가공해 전투식량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야 도시의 괴물 숫자가 차곡차곡 줄어들고 있으니 이득이고.

저들은 식량을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니까.

하지만 모든 각성자가 전투직은 아닌바.

“전투로는 못 얻으니, 저런 식으로라도 전투식량을 확보하고 싶다는 거겠지. 전투식량의 버프라면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질 수도 있고 하니까.”

얘기를 듣자 하니.

이 근처에서 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그런 비전투직 각성자들의 영향이라고 한다.

‘비전투직들은 약탈에 무력하지만…… 우리 부대 근처에서 약탈을 벌일 미친놈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전투식량이라는 화폐가 발급되는 곳도 바로 여기.

장사를 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란 거다.

“그렇게 거래가 이뤄지다가, 아예 내 전투식량이 재화가 돼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저것도 물물교환인 건 여전하지. 왜, 물물교환 위주였던 조선시대 경제에서도 쌀이 가격의 기준이 됐다고 하잖아? 그런 거다.”

어이가 없네.

하긴, 기존의 화폐는 이제 휴지로 쓰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가치를 잃었다.

화폐의 가치를 보호하는 국가는 남아 있긴 한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니까.

반면 전투식량은 먹을 수도 있고, 버프도 제공한다.

가지고 있으면 확실히 이득이라는 부분이 화폐로써의 가치를 유지해 준다는 것.

거기에 식량으로써 꾸준히 소모되면서도 꾸준히 시장에 풀리고 있다는 점까지.

……이 정도면 뭐.

왜 지금 같은 상황이 됐는지 대충 이해는 가네.

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빡치는데?”

“뭐가 화난다는 거야? 요리로 장난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

“아니. 그런 것보다.”

내 요리가 재화가 됐다.

그것 자체도 기분이 좀 묘하긴 하지만, 뭐 큰 문제는 아니란 말이지.

진짜 문제는 여기 오기 직전에 봤던 광경.

“그 배터리가, 내가 직접 만든 전투식량 3개 정도의 가치라고……?”

이걸 반대로 말하면.

내가 만든 요리가.

예전엔 30만 원도 안 하던 보조 배터리의 3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잖아.

솔직히 말해.

자존심 팍 상하는데?

“형. 아예 공급 물량을 확 줄여 버릴까? 그럼 가치가 좀 오를 거 아냐?”

“……미친 생각은 하지 말고.”

“큼.”

잠깐 자존심이 상해서 이상한 생각을 해 버렸다만.

‘후우.’

뭐 어쩌겠냐.

시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건데.

내 요리의 가치가 낮다는 건 좀 슬프지만.

공급을 줄인다느니 하는 방법은 결국 사도.

내가 요리 실력을 키워서 요리의 가치를 올리는 게 정도겠지.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조만간 제대로 된 거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음? 여긴 좀 별론가?”

“아까도 말했지만. 비전투직들은 약탈에 취약하다 보니 그나마 안전한 우리 부대 근처에 모여들고 있거든. 이곳이 딱히 환경이 좋지는 않잖아.”

애초에 뭘 고려하고 들어온 건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잠잘 곳이 필요해서 일단 빈 건물에 들어가면서 생긴 임시 거점.

“기껏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려고 하는데, 쉽게 커질 만한 환경이 아니란 말이지.”

“하긴.”

“이쪽은 아무래도 방어시설도 미흡하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면.”

“제대로 된 거점을 마련해야 하긴 하겠네.”

“몇 가지 후보군도 있다. 저 강 위에 떠 있는 섬들이나, 아니면 지금은 폐허가 된 중앙부라던든가.”

확실히 이 부분도 가급적 빠르게 해결해야 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고.

‘일단 지금은…….’

춘천에 와서 가장 먼저 해결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따로 있다.

내 직업에 대한 의문들.

그걸 해결하기 위한, 이상식욕자의 탐색.

* * *

“탄약대대에서 일은 네가 잘 마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거기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춘천으로 복귀한 뒤의 첫 부대 회의.

나는 던전을 탈출했던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그 남자를 던전에서 탈출시켰으리라고 예상되는 존재.

이상식욕자에 대한 이야기도.

“이 녀석을 찾아야 해.”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용건이다.

내 직업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는 이유니까.

하지만 뒤로 미뤘다가 그 이상식욕자가 멀리 떠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다시는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음. 그렇게 말씀하셔도.”

“그런 괴물에 대한 목격담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무려 식인종 괴물.

본래라면 던전이 클리어된 후로 얼마 안 가서 소문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괴물이 활개 치면 소문이 안 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묘하게 조용했다.

부대의 간부들도 짐작 가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

“수아 양이 열심히 정령으로 주변 정보를 수집 중인 거로 아는데. 딱히 얘기는 없었다.”

“……정수아의 정령안도 만능은 아니니까.”

오랜 시간 사용하기에는 체력 소모가 크기도 하고.

정령의 눈이라곤 하나 결국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

꽁꽁 숨어 있는 존재까지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어떻게든 찾아내서 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내 전투식량이 화폐처럼 돼 버렸다고 했지?”

“아. 맞슴다.”

내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가치가 낮아 울분이 터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그만큼 전투식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생긴 현상이다.

그리고.

“그 전투식량이라는 화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어. 우리 아닙니까?”

그걸 찍어 내는 게 우리니까.

무려 완성된 전투식량 중 8할이 우리 부대 창고에 쌓이고 있다.

이제는 너무 넘쳐 나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짐작 가는 게 없는 상황.

이럴 때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이 하나 있지.

씨익.

“집단 지성을 이용하자고.”

“……?”

* * *

춘천의 중심부.

군인들이 자리 잡은 거점을 중심으로, 각성자들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근처의 몬스터를 주기적으로 정리해 주는 만큼 몬스터에게서도 안전하다.

그들의 거점 근처에서 분쟁을 벌일 정도로 간 큰 이도 없을 터.

거래 도중의 무력행사나 약탈에서도 안전.

“어디 보자. 오늘 순이익은 5전인가.”

그런 환경이기에.

이상협 역시 이곳에 자리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씁. 적네.”

하지만 장사는 영 시원치 않았다.

장사라고 해봐야 판매 물품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 그의 주 판매 목록은 과거 도시 안에 갇혀 있을 때 주운 물건들이 대부분.

그 외에는 최근에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주운 물건들이 전부다.

“장사가 잘될 리가 있나.”

이상협 역시 맘 같아선 장사 따위 때려치우고 싶었다.

다른 이들처럼 괴물을 직접 사냥해 전투식량으로 가공하면 얼마나 편할까 싶다만.

[이상협]

[신입 상인 Lv. 6]

“후우.”

그의 직업은 상인.

전투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기껏 어인을 사냥하고 각성했는데 나온 게 이딴 직업이었을 땐…… 정말 죽고 싶었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가 가진 특성이나 스킬이라 봐야.

[신뢰도 향상]

[화법 숙련]

[정보 습득 숙련]

거래에서 더 신뢰를 준다거나.

정보 습득 행동에 보너스가 있다거나.

말 그대로 상인으로서만 쓸 만한 것들이 전부.

“어디서 강도당해 죽기에는 딱인 스킬셋이군. 제기랄.”

사실.

그나마 순수익이 5전이나 난 것은 이 특성과 스킬들의 덕분이긴 하다.

‘전투식량의 가치는 엄청나니까.’

멸망한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식량으로써의 가치.

먹는 순간 엄청난 버프를 제공하는 아이템으로써의 가치.

그 두 가지만 감안해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전투식량의 가치가 오르는 데에는,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컸다.

‘기호품.’

그 맛 자체가…….

너무 뛰어나다는 것.

이상협은 초창기에 담배를 팔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담배가 있을 만한 마트나 편의점 등은 보통 1층.

던전 안에서 모조리 수몰되었던바.

담배의 희소가치는 매우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담배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기호품 아니던가.

이런 상황이니만큼.

한 보루의 담배라면 적어도 일주일 치 전투식량과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결국 1전에 팔리고 끝났지.”

이것도 그의 거래 스킬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준.

상협은 경악을 금치 못했더랬다.

사람들이 담배 맛을 못 느끼게 됐다거나…….

담배가 맛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정말 단순한 이유.

“담배보다…… 전투식량이 더 맛있으니까.”

기호품으로써의 가치.

그 맞대결에서, 담배가 처참하게 패배해 버리고 만 것.

“나 같아도 안 사지.”

아무리 담배가 맛있다고 한들.

전투식량 쪽이 더 맛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걸 전투식량 주고 사겠는가.

시장에 꾸준히 유통되고 있는 데다가 어느 정도 가치가 보호된다는 장점 등.

여러 이유가 붙어 재화처럼 쓰이곤 있지만.

1전의 가치는 매우, 매우 높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거래는 소수점 단위로 이루어질 정도.

‘오늘 낮에 판 배터리만 해도 정상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1전 정도가 정상…… 아니, 그 아래였겠지.’

상대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의 상인으로서의 특성과 스킬이 발동한 덕에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울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은 그래도 팔 만한 물건들이 있으니, 이 능력으로 어떻게든 바가지 씌워 가며 먹고 살 수 있어. 하지만…….”

그 물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상인으로서의 능력을 살리려고 해도, 팔 물건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판매하기 위한 물건을 구하려면, 조만간.

‘저 밖으로 나가야 하겠지.’

군인들에게 보호받는 안전한 영역을 떠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다른 각성자들.

그리고 괴물들이 넘쳐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후우…….”

그 생각을 할 때면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어려웠다.

그런데.

평소처럼 장사를 시작하려는 차.

길거리에 붙여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건?”

벽에 붙어 있는 종이.

평범한 A4용지에 대충 휘갈겨 쓴 손글씨.

조금 익숙한 형식이었다.

“이 귀찮아서 대충 휘갈긴 느낌이 넘쳐 나는 완성도는…… 군인들이 만든 거군.”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괴물을 잡아 오면 식량을 주겠다던 내용을 적었던 종이도 대충 이런 느낌이었지.

[강철 군단에서 알림]

[수몰된 도시 내부를 돌아다니던 식인종에 대한 정보를 구합니다.]

그런데.

적혀 있는 문구가 조금 달랐다.

“식인종 괴물? 그 녀석이 뭔가 저지른 건가?”

도시 안쪽을 돌아다니던 식인종.

녀석을 모르는 각성자는 적어도 춘천에는 없었다.

인간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약탈자들을 처형하는 그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으니까.

하지만 그것뿐.

“최근에는 솔직히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는데.”

한동안은 직접 본 적도 없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종이의 마지막 줄.

그곳에 적힌 내용을 보자,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보 제공자에게는 진위 여부 확인 후, 전투식량 300개.]

[혹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 지급을 약속드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군단 임시 거점에 문의 바랍니다.]

[약도 첨부]

“……사, 사. 사, 사…… 삼…… 삼ㅂ…….”

삼백 개!?

상협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실.

군단에 괴물을 가져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전투식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무려 수수료가 8할이나 되니까.

하지만 의외로 큰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괴물의 사체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군인들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런 짓을 하는 게 불가능할 터.

‘많은 노력과 재료가 들어갈 테고…… 맛도 효과도 뛰어나니까. 저 정도 수수료는 합당하다고 납득하는 추세.’

그런 점도 전투식량의 가치가 높게 책정된 데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전투식량을 30개도 아니고.

300개라니?

“완성된 파티 하나가 목숨을 건 전투를 수십 번을 반복해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양을…… 고작 정보 한 번에 주겠다고?”

그 식인종 녀석.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

‘……만약. 저 보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상협의 얼굴이 잠깐 흥분으로 달아올랐으나.

“아니. 흥분해서 뭐하냐.”

금세 짜게 식었다.

애초에 그 정보가 맞을 때만 진위 확인 후에 지급된다고 적혀 있는 보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라는 거다.

“……잠깐?”

그 순간.

이상협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이거. 혹시 그건가? 아니. 으음. 아니라면 쪽박 차는 건데.”

상협이 상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특성.

[정보 습득 숙련].

이 특성 덕에, 상협은 은근히 도시 내의 잡다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 짐작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으나.

문제는 그게 식인종 괴물의 정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

‘만약 이게 틀린 정보라면, 눈치를 봐야 하는 군인들한테서 미움을 사고 끝나겠지.’

그렇게 되면 최악이다.

하지만.

‘아니지. 군인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말거나.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물건이 다 소진된 뒤에 목숨 걸고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인데? 그렇게 죽으나, 군인들한테 미움받으나 뭔 상관이야.’

하지만.

만약 그게 옳은 정보라고 한다면.

전투식량 300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투식량 300개에 상응하는 대가……. 그렇다면.”

꿀꺽.

“저 군인들과 거래를 틀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그들과 선을 만들 수 있다면.

상인인 그는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조건 성장할 수 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까짓거. 도박 한번 해 보지 뭐!”

상협은 장사 준비를 때려치운 뒤.

군인들이 자리잡은 건물을 향해 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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