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이상식욕자 (2)
“어때?”
“맞는 것 같아요.”
정수아의 눈이 푸른 빛을 번쩍이며 빛난다.
정보를 찾고 있다는 종이를 도시에 뿌리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꽤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물론, 99%는 쓸모없는 제보였다.
그냥 틀리기만 한 정보면 그나마 다행이지.
보상에 눈이 멀어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 가며 제보한 이들이 대다수.
‘그 사람들은 따로 리스트를 작성했으니…… 장기적으론 다행인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우리 길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는 적절한 보상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생길 테지만.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은 제외될 것이다.
비교적 빠르게 그런 이들을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그렇게 쓸모없는 제보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사이.
드디어 정답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상협……이라고 했나? 바로 보상 지불해 줘.”
“예. 그런데 그게.”
“음?”
바로 전투식량을 지불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기 정보가 맞다고 판명이 날 경우. 일부는 전투식량으로, 일부는 다른 방식으로 받을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그래?”
“예. 아무래도 우리와 정기적인 거래 같은 걸 하고 싶어 하는 모양새라.”
거래라.
생각해 보니, 각성자들 사이의 거래는 활성화되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끼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한테는 쓸모없을 정도로 넘치는 물건들 중에 남들한테 필요한 것도 있을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겠지.’
대표적인 게 전투식량이겠지.
이 정보를 알려 준 공도 있고.
또 옳은 정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다소는 신뢰할 수 있다.
게다가.
‘그냥 식량을 받고 끝내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노린다라.’
잘만 이용한다면 꽤 쓸 만한 인간일지도 모르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전해.”
좀 더 얘기를 해 보긴 해야겠지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거래가 된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묘하게 조용하다 싶더니. 꽁꽁 숨어 있었을 줄이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정보가 사실인 게 확인됐으니, 바로 간다.”
“아, 예! 부대원들 대기 시키겠습니다.”
“아니. 나 혼자 간다.”
“뭐?”
내 말에 민재 형이 고개를 돌렸다.
“혼자 간다니……. 굳이 위험을 자초하려는 거냐?”
“그다지 안 위험해. 알잖아?”
툭툭.
발아래의 그림자.
그리고.
-끼잉.
내 군복 가슴팍에서 놀고 있는 까망이.
환경에 따라서, 그림자 안쪽의 병력들은 아예 쓸모가 없을 때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그냥 못 써먹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거든.
그도 그럴 게.
이상식욕자 녀석이 숨어 있다는 곳은 다름 아닌.
“하수도라. 좀 더러워지겠네.”
이 도시의 지하였으니까.
* * *
철벅…….
어두운 공간.
군홧발을 옮기자 물 튀기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진다.
나는 도시의 지하 수로에 진입했다.
퀴퀴한 물 썩는 냄새가 주변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남들은 바로 코를 막을 정도로 끔찍한 냄새였지만.
“짬 냄새에 비하면 뭐.”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는 게 일상인 직군이다 보니.
이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단 말이지.
“의외로 좁지는 않네.”
수로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니까.
내가 지금 찾아가는 곳은 저 이상식욕자가 숨어 있는 장소.
전에 만났던 다른 이상식욕자 놈은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놈과 비슷한 체격이라고 생각하면 평범한 지하수도는 통과하지도 못할 터.
어느 정도 넓이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싶었다.
딸칵.
부대에서 가져온 플래시를 켬 뒤,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요리를 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혹시 모르니까 아껴 두기로 했다.
그렇게 어두운 수로를 한참을 나아가던 중.
-……키익!
플래시의 빛조차 닿지 않는 저 멀리.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빛도 닿지 않는 거리.
본래라면 그곳을 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전투력 측정기]
지금의 내게는 그 모습이 조금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저 괴물이 내뿜는 마력이 보인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내보내면 될까요?
“아니.”
조금 더 다가가자.
괴물 녀석의 모습이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래시안]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주로 서식하는 괴물입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 사냥이 힘든 데다가, 위생적으로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기에 선호되는 식재료는 아닙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쥐를 닮은 거대 생명체.
녀석의 몸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붉은색 기운.
즉.
서걱-
-카악……!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별거 없는 놈이야.”
단칼에 녀석을 베어 낸 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시스템의 설명에 의하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는 녀석.
그렇다면 이 근처에 놈의 무리가 있을 터.
놈들의 습격을 예상해 주변을 면밀히 살폈으나.
“……조용하네?”
뭐지.
이 녀석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놈인 건가?
조금 의아하긴 했다만.
굳이 신경 쓸 일도 아니라 생각한 나는 조금 더 안쪽으로 진입했다.
얼마를 더 전진했을까.
저 앞에 보이는 붉은 기운의 무리가 보였다.
앞서 만난 괴물 녀석의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뭐라고 해야 하나.
딱, 절반의 정답이었다.
[래시안의 앞다리]
-사체뿐이네요.
래시안의 무리라면 무리는 맞다만.
살아있는 녀석이 한 마리도 없다는 게 문제.
“……맛있게도 드셨구만?”
바닥에 흩어져 있는 괴물의 사체 잔해들.
그 모두 대부분에 커다란 이빨 같은 것에 찢겨 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충 이미지는 그려진다.
이 몬스터를 가차 없이 물어뜯고, 집어삼킨 뒤.
대충 찌꺼기들만 남긴 채 떠나간 녀석이 있다는 것.
즉.
씨익.
“잘 찾아왔다는 거지.”
확신을 얻은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수로의 끝까지 나아가자.
“……?”
그 끝에 있는 것은 뭐랄까.
거대한 공동이었다.
플래시로 주변을 비추어 본 결과.
눈이 조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
살면서 이렇게 넓은 공간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
그 안에, 거대한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그 기둥의 높이만 해도 5미터는 될 것 같았다.
‘도시 지하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이거 뭐야, 그런 건가?
정부가 비밀리에 만든 비밀 벙커 그런 거야?
자고로 일단 큰 것은 남자의 마음을 울리는바.
조금 흥분해서 각종 상상을 해 보았으나.
벽면에 플래시를 비추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춘천시 대심도 빗물 저장소]
“아.”
벽면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문구.
빗물 저장소.
비밀 벙커 따위와는 거리가 먼 시설이란 거다.
자연재해에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대도시들의 중요 과제 중 하나.
그 과제의 결과물 중 한 곳이 여기란 거다.
“폭우에 대비해 만든 물탱크 같은 건가.”
수로의 터널을 나온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타고 공동으로 내려갔다.
물기가 많아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춘천의 각성자들의 말로는.
던전화가 시작됐을 때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고 했다.
덕분에 식량을 어느 정도 챙기고 높은 건물로 피난 갈 수 있었다던가.
‘멸망 초창기에는 전기도 아직 살아 있었으니, 이런 시설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겠지.’
공동 바닥은 저 수로에서 본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사방에 퍼져 있는 다양한 색의 기운.
“화려하게도 드셨구만.”
온갖 괴물들의 파편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던전이 닫힌 뒤.
도시 곳곳에는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듯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 괴물들이 장소를 가려 나타난 건 아니라는 듯.
저 수로나 이 공동에도 꽤 많은 괴물이 나타났었던 모양.
‘지금은 죄다 한 끼 식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지만.’
아무튼.
여기 이렇게 괴물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는 건 즉.
이놈들을 신나게 잡순 놈이 저 안에 있다는 뜻이지.
그런 생각으로 공동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조심하세요.
“?”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경고.
그리고.
-그르륵…….
저 안쪽에서.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리도 그렇고. 아리엘라의 경고도 그렇고…… 저기 있는 건 분명한데.’
문제는.
“왜 안 보이는 거지?”
내가 가진 특성.
[전투력 측정기]
이 특성은 단순히 적의 강약을 구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적의 피어오르는 마력을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능력.
즉.
아무리 어두운 공간이라도 마력을 봄으로써 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
굳이 [어둠 시야] 같은 특성을 제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는 어떤 마력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원인이 뭔가 싶었으나.
특성의 설명을 읽고 나니 이해가 갔다.
[전투력 측정기]
[이종족의 전투 능력을 그 마력량을 통해 측정합니다.]
이종족의 전투 능력을 측정하는 특성.
즉.
‘이거. 동족한테는 안 통한단 건가.’
생각해 보면 다른 부대원들을 상대로도 발동한 적 없었지.
그렇다는 건…….
‘저 녀석은 일단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건가.’
이상식욕자라고 한들.
시스템은 녀석을 ‘인간’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거다.
‘지난번에 처치했던 이상식욕자 녀석은. 그렇지 않았을 텐데?’
약탈자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던 녀석.
그 녀석은, 시스템이 확실하게 ‘인간이 아닌 존재’로 구분했었다.
아니, 그 녀석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인간이 죽어서 영락한 모습인 좀비들조차 붉은 기운이 맴돌았는데.
기준을 모르겠네.
어찌됐든.
눈앞에 있는 저 녀석이 내가 찾던 목표인 것은 틀림없는바.
한 발자국 녀석에게 다가가자.
-머, 멈춰라.
안쪽에서 거칠고 어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난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이성이 남아있는 거냐?”
던전을 탈출한 남자.
그는 저 이상식욕자가 자신을 던전에서 탈출시켜주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게.
이상식욕자.
처음 만나 보는 존재는 아니니까.
‘지난번에 만났던 놈은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리더라고 한들 어떤 지혜나 리더십으로 약탈자들을 이끌던 건 아니었다.
놈이 약탈자 그룹의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힘.’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힘만 괴물같이 강할 뿐.
말하는 것도, 실제 지능도 기껏해야 유치원생 수준…….
아니, 짐승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인간과 괴물을 잡아먹을수록 힘을 얻고. 그 대가로 이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던가.’
그 약탈자 그룹의 토벌도 이제 꽤 예전 일.
눈앞의 녀석은 그 약탈자 그룹의 리더보다 더 많은 괴물을 집어삼키면 삼켰지.
덜 먹지는 않았을 테지.
그럼에도 아직까지 정신이 남아 있다니.
대강 짐작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정신력이 상당히 강한 놈인가 본데.”
본체인 인간.
그 정신력의 차이.
저 녀석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는 창수에게 대충 들은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만.
아직까지 이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한 정신을 가진 놈이었을 확률이 높겠지.
-꺼, 꺼져라…….
그 녀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 지금은 배고프지 않다. 그러니. 보내줄 수 있어.
“…….”
-어서…… 돌아가라…….
꺼지라느니.
돌아가라느니.
아무래도 내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은가 본데.
난 내게 말을 거는 녀석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이 녀석. 잘하면 대화도 성립하겠는데?’
철퍽…….
놈이 나를 꺼리거나 말거나.
나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네가 던전 밖으로 사람을 탈출시켰다고 들었다. 내 의문에만 제대로 대답해 준다면 군말 없이 떠나도록 하지.”
내 직업 ‘요리사’.
그 요리사의 대적자라고 하는 ‘이상식욕자’.
놈과 대화할 수만 있다면.
내 직업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터.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아아…… 그래서 말했는데.
그르륵…….
어눌한 목소리에 짐승의 소리가 섞여든다.
-지금은 배고프지 않았는데……. 참을 수 있었는데…….
“…….”
-제발. 돌아가라……. 더는. 인간을 해치고 싶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하나.
대단한 놈이다.
‘이상식욕자는…… 괴물이나 인간을 먹을수록 이성을 잃어간다.’
이 녀석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하다고 한들.
그 정신 대부분은 이미 마모된 상태겠지.
그런 상태임에도.
나를 공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저렇게 버티고.
돌아가라는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
내가 저 꼴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조금은 경외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를 먹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라?’
그거.
쓸데없는 배려란 말이지.
난 가볍게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먹혀 주긴 한대?”
-……네가 자초한 일이다.
철퍽.
안쪽에 있던 거대한 형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던 괴물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진다.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것이 많다만.
아무래도 당장은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하니.
“조금 진정시켜 줘야겠네.”
바닥에 내려둔 플래시.
그 빛을 받아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툭툭.
그림자 위로 가볍게 발을 두드리자.
길게 늘어진 검은 얼룩 속에서.
수십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의 주인님에게.”
“충성을.”
당장은 얘기하기 힘들 것 같아 보이긴 한다만…….
뭐, 걱정은 없다.
“예로부터 몽둥이가 약이랬거든.”
조금 맞다 보면 말할 만한 상태가 되지 않겠어?
* * *
이상식욕자에 대해.
철욱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괴물이고 인간이고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던 사례가 있었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
던전의 공략이 끝나고 난 뒤.
난 그 일에 대해 조금 더 물어봤었다.
-얼마나 괴물을 증오했던 건지, 그룹에서 건네는 식량도 거절하면서 괴물의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하더군.
-허어.
-그걸로 그쳤으면 다행이지만, 괴물의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갔소. 조금 겉도는 면이 있긴 해도 원만한 성격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조금씩 신경질적으로 변하더군. 그 변화가 외형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할 때쯤, 스스로 우리 그룹을 떠났소.
그렇게 모습을 감춘 뒤.
이 이상식욕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
식량 문제를 두고.
인간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였다.
-식량 비축에 실패한 이들이 다른 이들을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됐지.
대규모의 약탈자가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말이 약탈자지.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그 규모는 비등하거나, 오히려 약탈자 측이 조금 앞섰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약탈자 측이었다.
지키려는 쪽이 기가 막힌 전략을 사용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려서 돌아왔더군.
그 얘기를 하던 창수의 눈빛에서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새어 나왔다.
-그자가 약탈자들을 처리할 때의 모습이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였어.
홀연히 나타나.
약탈자 측에 선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녀석.
그로 인해, 던전에서의 전투는 약탈자들의 패배로 끝났다.
아무리 저레벨이라고 하나.
수백 명의 인간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학살을 펼친 괴물이라는 것.
-……조심하시오. 만약 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괴물을 집어삼켰을 지금.
-당신들이라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괴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확실히 그 말대로.
“위압감은 엄청나구만.”
—————!!!
“크악!”
쿵!
괴성을 내지르는 ‘이상식욕자’.
녀석이 휘두른 손에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뱀파이어 한 놈이 튕겨 나간다.
“혀, 형제여!”
“…….”
벽에 처박힌 뱀파이어는 정신을 잃은 듯.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이전에 만났던 이상식욕자 녀석도 강하긴 했다.
부대원들이 단체로 덤벼들었는데도 버텨 내고, 오히려 우세를 점할 정도였지.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은, 확실히 그 이상이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현진]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그 모습은, 이전에 처리했던 녀석과는 꽤 달랐다.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던 녀석이 그저 부풀어 오른 살덩이에 불과했다면.
이쪽은 인간의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저건. 비늘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부를 뒤덮은 비늘들.
생선의 비늘같이 생긴 그것들이 피부를 덮고 있다.
나름대로 뱀파이어들이 공격을 가하고 있으나.
저 비늘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었다.
생선의 비늘 같은 모습.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았다.
“저 비늘. 그 비린내 나던 어인들의 비늘하고 똑같네요.”
“음.”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던 녀석.
그놈은 인간을 잡아먹으면서 몸을 불렸다던가.
하지만 이쪽은 괴물을 위주로 잡아먹었다는 것 같으니.
‘그 괴물들의 영향력이 몸에 나타났다는 거겠지.’
비늘이 전부가 아니다.
긴 발톱.
머리에는 커다란 뿔 같은 것도 나 있었다.
온갖 괴물들의 기괴한 융합체 같은 모습.
평범한 살덩이와 비교하면 더 까다로울 수밖에.
하지만.
이쪽 전력도 달리지는 않았다.
“가자, 형제들이여!”
“주인님의 주인님의 명을 따라라!”
지금 녀석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 속에 숨겨 놓았던 뱀파이어들.
약탈자, 범죄자…….
인간들 중에서도 쓰레기라 부를 만한 녀석들.
놈들을 아리엘라의 능력으로 재활용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재활용이라 해서 성능도 별로란 법은 없잖아?
“큭…….”
“형제여!”
이상식욕자 녀석의 커다란 손이 뱀파이어 한 마리를 붙잡았다.
-맛있겠다…….
붙잡힌 뱀파이어 녀석은 그대로 이상식욕자의 한입 먹잇감이 되는가 했으나.
“비상 탈출!!! 끼요오오옷!”
[안개화]
-그륵……?
이상식욕자의 손에 붙잡힌 뱀파이어의 몸이 붉은 안개로 변한다.
[안개화]
쿨타임이 길다는 게 문제지만.
물리적으로 타격할 수 없는 안개로 변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성.
‘개사기 특성이지.’
신성력 같은 공격 수단이 없는 한.
한 번의 여유 목숨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햇빛에 취약하다는 약점.
몬스터라는 점 때문에 부대원들에게 보이기 애매하다는 점 등.
대놓고 쓰기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전력이었다만.
“후후. 어둠 속은 귀족의 전장.”
여러 페널티가 있는 만큼.
뱀파이어들은 평범한 각성자들 보다 강력했다.
“하찮은 돼지 따위가. 밤의 귀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부하들이 활약하자.
아리엘라가 의기양양하게 중얼거린다.
‘신났네 그냥.’
조금 오그라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실제로 그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장비도 없던 시절에, 우리 병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했던 종족.’
부대의 제식 장비들까지 챙겨 입은 것은 물론.
내 선지 요리까지 먹은 지금.
이 뱀파이어들의 능력은.
우리 부대원들의 평균을 아득히 앞서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쿵!
-고오오오오오-!
-짜증 나는구나……!
전투로 인해 부서져 나가는 각종 철과 파편들.
[강철을 먹는 맥]의 먹잇감들이다.
온갖 파편들을 집어삼키며 급격하게 덩치를 키운 까망이.
어느 새 늑대같은 모습으로 변한 녀석이 이상식욕자의 얼굴을 강타했다.
조금만 성격이 더러웠다면 우리 부대를 진작에 전멸시켰을 몬스터.
-크륵……!
아무리 대단한 ‘이상식욕자’라고 한들.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이, 이제야 알겠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전력.
놈도 내 전력을 눈치챈 듯 으르렁거렸다.
-……너. 날 죽이러 온 거였구나.
하지만.
“이걸로는 좀 모자라지.”
아리엘라도.
까망이도.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상태다.
그나마 [안개화]의 상성이 좋아서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거지.
계속 싸운다면 이쪽이 이기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마지막 전력이 가세할 필요가 있겠지.’
[요리사의 대적 중 하나, 이상식욕자를 마주하였습니다.]
[직업 퀘스트 - 대적자 척살이 재활성화됩니다.]
[대적자를 주살하십시오.]
[안개화]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상성.
[대적자를 상대하는 데 한해, 모든 행위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요리사 나서신다.
* * *
도시 지하의 공동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땅이 흔들리고, 거대한 기둥 몇 개가 부서져 나가는 격렬한 전투.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배, 배고파…….
쿠웅…….
무릎 꿇은 쪽은 저쪽.
놈의 거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