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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22화 (122/227)

122화 이상식욕자 (4)

어눌한 말투로 하는 이야기.

전부 알아듣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해는 갔다.

‘경찰 출신이라.’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안 가는데 말이지.

도시의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직업.

신입이라고 하나 녀석은 기묘할 정도로 자신의 의무에 집착했다.

하지만.

“경찰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군대조차.

우리 부대를 제외하고는 전멸했다고 봐야 하는 상황.

경찰.

그중에서도 일개 신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손이 닿지 않는 일이었다고 한들.

녀석은 도시의 질서가 무너진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 책임감 때문에 그룹에서 제공하는 식량도 거부.

그 대신.

괴물을 입에 담았다는 것.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다.

“멍청한 짓을 했네.”

그 결과가 이 모습이란 거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해도 말이지.

결과물이 이래서야 멍청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잖냐.

아무튼.

점차 괴물이 되어 가는 자신을 눈치챈 녀석은 창수의 그룹을 떠났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몸을 피한 뒤.

한동안은 괴물을 잡아먹으면서 지냈다던가.

그랬던 녀석이 한참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탈자들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였겠지.”

-……놈들은 범죄자들이었다. 제압하는 게, 내 의무.

수몰된 도시.

식량에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많은 식량을 챙긴 그룹들은 사정이 좀 나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극한의 상황.

그들은 결국 약탈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빼앗으려는 자.

지키려는 자.

그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고…….

미약하게나마 이성이 남아 있던 시절의 녀석이.

그 전쟁을 목격했다.

그 결과.

“약탈자들은 모두 네게 처리되어 버렸단 거지.”

-…….

“제압이라고? 경찰이라면 살아서 제압한 뒤에 법정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웃기는 얘기로군. 법정이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 과잉 진압을 하게 된 것은 인정하나…….

“꽤 유연성 있는 마인드시네.”

난 팔짱을 끼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 사람들도 식량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걸 텐데.”

-……그건.

과잉 진압이니 어쩌니 하더니.

내심 찔리는 건 있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무는 녀석.

사실.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나도 약탈자들 잡아다 병력으로 쓰고 있는데 뭐.’

하지만 바깥의 약탈자들과 그 도시의 약탈자들의 사정이 같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깥의 생존자들 역시 상황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하나…….

그럼에도, 식량을 얻고자 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약탈을 선택한 것일 뿐.’

내가 약탈자들을 병력으로 활용하게 된 데에는.

그 이유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생존자들은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그 외에는 먹고 살 만한 식량을 얻을 방법 자체가 없었을 테니.

-나,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

궁지에 몰려서 이뤄진 범죄.

법원에서도 이런 류의 범죄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될 테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즉결처형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정말 제압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간부터, 너무, 너무 배가 고파져서…….

“대충 알겠네.”

비꼬듯이 말하긴 했다만.

사실.

속으로는 꽤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성을 거의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도 범죄자를 제압한다는 생각은 남아 있었다는 거잖아?’

무슨 수십 년을 헌신해 온 사람도 아니고.

경찰관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던 녀석.

세상이 이 꼴이 나지 않았더라면 꽤 훌륭한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만.

‘마냥 감동하기에는, 그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씹어 먹어 버렸으니.’

저 꼴이 되어가면서까지 남아있는 광기에 가까운 신념.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조금 시무룩해진 녀석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네 말대로. 도시의 식량이 충분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음?”

-다시 비슷한 싸움이 벌어질 것 같더군.

도시의 사람들도 말했었다.

우리가 던전에 들어갈 때쯤.

곧 다시 인간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아아. 그래서 우리한테 지원 요청을 보낸 거구만?”

처음 일어난 전쟁이 식량을 두고 일어난 전쟁이었다면.

그 식량마저 다 떨어질 때쯤.

두 번째 전쟁은, 그나마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낚시가 가능한 장소들.

그 영역을 두고 싸우는 영역 전쟁이 벌어졌겠지.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녀석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일종의 도박수.

쓰러진 녀석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비늘에 뒤덮인 괴물의 모습.

하지만.

“오른팔에는 비늘이 없네.”

-…….

“맞춰 보지. 그쪽으로 폭포를 막고. 그 남자를 내보낸 건가.”

-바깥에 인간이 살아 있을지는 모르나……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았지.

사람들을 집어삼킨 것은 괴물이라 할 만한 짓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녀석이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보낸 덕에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또다시 인간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겠지.

전쟁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 던전의 수위가 오름에 따라 모두가 물에 빠져 죽어 버렸을 수도 있고.

난 복잡해진 머리를 긁적였다.

‘죄도 상당한 편인데, 공도 상당하단 말이지?’

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사람을 살렸다.

이 녀석이 한 짓을 뭐라고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왜 그런 걸 판단하려 하지?

‘내가 판사도 아니고. 그런 거 판단하러 온 건 아니잖아?’

내가 이 녀석을 만나고자 한 이유는.

내 직업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함.

“얘기가 많이 빙 돌아가 버렸는데. 사실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고.”

-…….

“아무튼. 네가 그 꼴이 돼 버린 건 인간과 괴물들을 집어삼킨 결과라는 거지?”

-먹는 거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 응?”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질문하려 했으나.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못된 방법으로 먹었다는 게, 중요하지…….

“……너 이 새끼!”

-역시. 네가 듣고 싶다는 얘기가. 이 주제였군.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대로.

“뭔가 알고 있는 거냐?”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졌을 때, 상태창이 말해 주었지.

“상태창이?”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확신할 수 있다.

그 상태창의 메시지가.

내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줄 단서일 것이라고.

-먹는다는 건…… 다른 존재를, 자신의 피와 살. 그 일부로 만든다는 것…….

녀석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남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먹으면……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말아.

“너처럼?”

-……큭큭. 그래 맞다. 나처럼. 너, 요리사라고 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요리. 원래는 맛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란 건가.”

-생각이 바뀌었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요리란…… 일종의 의식이다. 독을 없애고, 나쁜 요소를 제거하고, 정제하고.

온전하게.

올바른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되는…… 그런 의식.

살덩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했던 예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 모습은 부작용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된 결과…….

과거에는 잘못된 식사로 인한 대가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제대로 익히지 않아 바이러스까지 섭취했을 때 걸리는 것이 식중독.

독을 제거하지 않았을 때 독에 감염이 되는 정도.

하지만 이 경우엔 좀 다르다.

재료에 담긴 게 독이나 바이러스 따위가 아닌…….

마력이었으니까.

“……인간은 마력에 대한 내성이 없지.”

그렇기에.

분별없이 괴물을 집어삼켜 나가다 보면.

자신이 또 다른 괴물이 되어 버린다.

그 거친 마력을.

인간에게 부작용이 없도록 정제하는 것.

‘그것이 요리사.’

꽤 많은 각성자들을 만나 보았고.

그들 중에는 식당을 운영하던 이들도 있었으나.

[요리사]로 각성한 이는 없었다.

그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 직업.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고…… 강력한 직업이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괴물의 힘을 정제해 인간의 것으로 가공하는 능력.

그 영향력은 방대하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게임에도 가끔 이런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리고.

그런 직업을 뭐라고 부르는지도 알고 있다.

‘레어 클래스.’

숫자가 적을 수밖에.

이런 직업이 흔해서야 쓰나.

“고맙다.”

이놈이 죄가 더 많건, 공이 더 많건 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준 것만은 확실했다.

이것으로.

내가 여기 온 목적은 해결된 셈.

그러니.

“아까 말한 부탁이란 거. 말해 봐.”

한동안 의문이었던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된 지금.

난 꽤 기분이 좋거든.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뒤룩.

녀석의 눈알이 다시금 어디론가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허공.

그래.

각성자로 치면, 상태창이 있을 만한 위치.

-내 상태창은 부서져 가고 있다.

“부서지다니?”

-작은 노이즈들…… 대부분의 화면이 가려져 보인다.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되며 생긴 대가겠지.

녀석이 괴물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본 메시지는 이랬다고 한다.

[주의!]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섭취는 신체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기 직전입니다.]

[더 이상의 무분별한 섭취가 반복될 경우,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상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그래. 난 이미 길을 벗어났다. 돌이킬 수는 없어.

클클거리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낸 녀석이 말을 이었다.

-아까 말한 조건. 너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

-죽여다오.

쯧.

대충 이런 게 아닐까 싶긴 했다만.

-가끔…… 지금처럼 이성을 되찾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난 마음 편히 죽을 수가 없다. 물속에 몸을 던져도, 기절할 것 같으면 괴물의 본성이 튀어나와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뒤.

다시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집어삼킨다는 것.

‘이 지하에 숨어 있던 이유도 알 것 같네.’

인간들에게 사냥당하는 게 두렵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자신이 인간들을 잡아먹을 게 두려웠겠지.’

뒤룩.

녀석의 눈알이 기괴하게 돌아가며, 내 눈과 마주쳤다.

-노이즈 낀 상태창이지만. 조금씩 보인다. 너는 내 천적이자 사냥꾼.

그건 아마도, 내 상태창에도 떴던 내용.

[대적자]를 말하는 거겠지.

-말했잖나? 너라면 쉬운 일일 거라고.

“…….”

-이제 그만. 쉬게 해 다오…….

그렇게 말을 끝맺으며, 깊은숨을 내쉬는 녀석.

여러모로 지쳐 보였다.

‘쓸데없이 정신력이 강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괴물이 돼 버리고 말았을 텐데.’

저 약탈자 그룹에 있던 녀석처럼 아예 괴물이 되었다면 편했겠지만.

이 녀석은 쓸데없이 강한 정신력 탓에 마음대로 이성을 내려놓지도 못한다.

‘내가 여기서 녀석을 살려 두고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편한 삶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도망 다니고.

이성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괴물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평생을.’

죽어서라도 안식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

이해는 간다.

그래.

이해는, 가는데.

……뭐라고 할까.

“싫은데?”

-……뭐?

편하게 쉬려는 듯.

감겼던 녀석의 눈이 크게 떠진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다 야.”

애초에 이 녀석과 약속할 때도 생각했었다.

이 세상은 강한 자가 법칙.

-아까 약속했다. 조건을 들어준다고……!

약속이고 뭐고.

더 쎈 놈이 나니까.

그딴 약속.

어겨 버리면 그만이거든.

“약속한 건 맞긴 한데…… 편하게 쉬겠다니. 그건 좀 그렇지 않나?”

-무, 뭐…… 대체 무슨 말을.

신입 경찰관이었다며?

‘누구 맘대로 먼저 쉬려고 그러냐.’

말년 병장이었던 나도 뭣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그리고 하나 고쳐 주자면.”

녀석은 자신이 인간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인간으로서의 정신이 남아 있어서일까.

[전투력 측정기]

‘이종족’을 향해서만 발동하는 특성.

이 녀석에겐 발동하지 않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인간종 - 이상식욕자]

식재료 감별에 보이는 정보도 일단은 인간종.

거기다가 노이즈가 꼈다고는 했지만.

일단 상태창도 남아 있다고 했으니.

“너, 아직 아슬아슬하게 인간일걸?”

-……뭐?

아예 괴물이라면 또 모를까.

아직 인간으로 판정되는 녀석이라면.

방법이 없지는 않거든.

“그래. 입맛은 좀 까다로운 편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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