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네가 데려온 사람은 일단 의무병한테 맡겼다. ……괴물을 만나러 간다던 놈이 왜 사람을 주워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얘기가 좀 복잡한데. 나중에 설명해 줄게.”
“……후우.”
지하 수로에서의 일을 마친 뒤.
나는 부대의 임시 거점으로 복귀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민재 형이었지만.
‘그 식인종 괴물이 사람으로 돌아왔다고 말한다고 아 그러시구나, 할 리도 없고.’
설명할 게 좀 많단 말이지.
“몇 시간 전에, 도시에 큰 지진이 있었다.”
“응?”
민재 형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부대원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각성자들도 느낄 정도의 흔들림이었지. 대부분은 그냥 자연재해로 넘어간 것 같다만. 몇몇 사람들은 혹시 도시 지하에서 괴물들이 날뛰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하더군……. 우연히 네가 지하로 향한 시점에 말이야.”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거.”
“내 얘기 맞을걸.”
“……역시.”
한숨을 내쉬는 민재 형.
“땅이 울릴 만한 전투라니. 그렇게 강한 괴물이었던 거냐.”
확실히 엄청나게 강하긴 했지.
던전의 보스였던 저 [교황]보다 조금 못한 수준.
“역시 부대원들을 데려갔어야 했…….”
“아니. 부대원들을 데려가면 뱀파이어를 못 쓰잖아.”
민재 형을 비롯한 간부급들은 내 그림자 속에 있는 병력들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
‘아직 괴물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큰 부대원들이 많단 말이지.’
그나마 몬스터의 일종인 까망이와 같이 지내던 공병들이 조금 반발이 덜한 수준.
나머지는 몬스터라고 하면 일단 적으로 인식한다.
하물며 우리가 직접 토벌한 적.
그 과정에서 몇몇 부대원들을 죽이기까지 한 뱀파이어니까.
“알잖아? 햇빛이 없는 곳에서는 뱀파이어들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단 거. 그놈들도 많이 죽은 전투였거든.”
“부대원들은 데려가지 않은 게 정답이란 건가. 그래서. 원하던 건 얻은 거냐?”
“다행히도.”
“그건 잘됐군.”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 형을 보며.
나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하게 됐네.”
“음?”
“이번 작전은 사실상, 나 혼자 궁금한 거 해결하겠다고 개인 행동한 거잖아.”
이번 지하 행은 내 직업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일.
사실상 내 독단이었다.
나는 일단은 우리 길드의 장을 맡고 있는바.
그런 놈이 제 궁금증 좀 해결하겠다고 위험한 일에 몸을 들이밀었으니.
고지식한 편인 민재 형이라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었다만.
“무슨 소리를.”
“응?”
“다른 부대원들이 돕지 못한 게 문제면 문제지. 네가 한 행동은 아무 문제없다.”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넌 물론이고, 네 직업이 가진 능력은 우리 부대 전력의 핵심이니까.”
“어…….”
“네 직업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며. 그건 의미가 크지. 내가 아쉬운 건 그 과정을 부대원들이 돕지 못했다는 것 정도야.”
의외로 긍정적인 모습.
지금 생각해 보니.
민재 형은 부대의 완전 초창기부터 내 직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단 말이지.
‘이 형, 생각보다 감이 좋은 건가?’
나야 이번 일을 통해 요리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상향조정했다지만.
그전에는 그냥 요리사가 요리사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날 대장으로 추대한 것이 민재 형.
예전부터 내 직업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까지 생각하면.
생각보다 감이 좋은 양반인가 보다.
아무튼.
이번 지하 행은 내 입장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의문점을 해결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퀘스트 - 대적자 척살]
[퀘스트 목표치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초과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게이트 소환권]
[업적 : 기적의 요리사]
[앞서가는 이를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최상급 식재료 : 천년 빙하의 핵]
[최상급 식재료 : 세계석의 물방울]
“큭……큭큭.”
퀘스트 완료 보상.
그리고 업적 완료 보상까지.
일단 첫 번째로 얻은 것이…….
퀘스트, [대적자 척살].
이 퀘스트는 저번에도 클리어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보상은 특성 강화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퀘스트 이름은 척살인데, 살려서 인간으로 바꾸니까 초과 보상을 주네.”
당연히 퀘스트가 실패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이 잘 풀려 버렸다.
퀘스트의 조건을 초과 달성함에 따라 보상도 바뀌었다.
[게이트 소환권]
[원하는 키워드들을 입력할 시, 키워드에 적합한 게이트가 소환됩니다.]
“음…….”
게이트.
게이트라.
‘그게 뭐지.’
차라리 던전이라면 이해가 간다만.
게이트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게 문제.
어떻게 써야하는 아이템인건지.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는다만.
‘그래도. 무려 초과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이야.’
효과가 나쁠리는 없겠지.
그리고 다음으로 얻은 것은 바로 업적 보상.
이쪽의 보상은 꽤 심플했지만…….
그 내용물은 결코 앞엣것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그야.
무려 두 가지의 [최상급 식재료]였으니까.
“다른 업적들을 달성했을 때는 기껏해야 하나였는데.”
요리로 김 중위를 굴복시켰을 때와, 아리엘라를 굴복시켰을 때.
각각 하나의 ‘최상급 식재료’를 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려 둘.
“이번 업적이 그만큼 대단하단 건가?”
하긴.
인간을 벗어나 괴물이 돼 버린 녀석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 버렸다.
시스템이 계속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것을 기어코 뒤집어버린 것.
사람 한 명, 괴물 한 마리를 내 요리가 아니면 못 살 정도로 중독시켜 버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단 거다.
그리고.
최상급 식재료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용처는 단 하나.
[식재료 감별(강화)]
[‘능력치 상승의 물약(힘)’의 감별 결과]
[아룡의 심장 - 10%]
[잊혀진 성자의 성혈 - 10%]
[천년 빙하의 핵 - 10%]
[세계석의 물방울 - 10%]
[정체불명의 재료 - ??%]
“흐힛. 히히힛.”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힘들었다.
능력치 상승 물약의 재료.
그게 40%나 모였다.
내가 직접 능력치 상승의 물약을 ‘요리’할 수 있게 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사실.
[신력]의 효과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
혹시 재료가 없어도 능력치 상승의 물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바로 도전해 볼까 했으나.
[신력 : 2]
[‘2’의 신력만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주의!]
[당신의 도전이 실패할 경우, 쌓아 올린 모든 신력을 상실합니다.]
괴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한 뒤, 1이 늘어 2가 된 신력 스탯.
설명을 보니 신력의 수치에 따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문제는 저 ‘주의’ 문구.
핵, 혹은 치트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능력이다만.
페널티가 없지는 않다는 것 같았다.
신력을 사용해 가면서 시도한 도전이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신력 스탯이 한 번에 소멸해버린다는 것.
그리고 요리를 시도해 보려고 하기 직전.
요리사로서의 직감이 말했다.
“씁. 안 되겠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2’의 신력으로는 저 부족한 재료들을 메꾸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 직감이 호소하고 있었다.
어쩌면 굉장히 낮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나친 도박수.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도박을 할 필요는 없겠지.”
이미 신력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재료의 4할을 모으는 데 성공한 상황.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재료를 모을 수 있겠지.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겠답시고 도박을 건다는 건 하수.
“지금처럼만 하자.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름만 봐도 한가락씩 하는 ‘최상급 재료’들.
그게 무려 10개나 들어간다.
물약 한 병 정도 만들고 끝나진 않겠지.
1000점이라는 상당한 포인트를 요구하는 능력치 상승의 물약.
그걸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순간.
부대원들의 능력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될 터.
“헤헤헤.”
상상만 해도 기분 좋구만.
이번 지하행에서 의도한 것은 내 직업에 대해 알아보는 것 하나였다만.
의도치 않은 보상들을 엄청나게 얻어 버렸다.
보상들의 정리가 끝난 나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저 보상들을 얻을 수 있던 이유는 뭐…… 내가 잘난 덕이다만.
계기가 되어 준 사람이 있으니까.
“병문안 정도는 가주는 게 예의겠지.”
* * *
“아, 충성. 신 병장님 오셨습니까.”
병문안……이라고 말하긴 했다만.
우리가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물은 본래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다.
‘의무실 따위 있을 리가 없지.’
어쩔 수 없이, 상가 건물의 구획 하나를 떼어다가 의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좋은 환경이라는 말은 농담으로도 하기 힘들지만.
임시 거점이니 어쩔 수 없잖냐.
급한 일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제대로 된 거점을 만들어야겠지.
“마침 잘 오셨습니다. 신 병장님.”
“음?”
의무실을 지키고 있던 의무병.
사의준 일병이 내 얼굴을 보고 기쁜 듯 말했다.
“마침 잘 왔다니?”
“하하. 병장님이 데려오신 그 환자분 있잖습니까.”
“어어.”
“오늘 아침에 막 정신을 차리신 참입니다.”
오.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
나는 사의준 일병의 안내를 따라 의무실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가장 안쪽.
커튼이 쳐져 있는 간이침대 하나가 보었다.
“깨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더군요. 직접 대화를 나눠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의준 일병이 그 커튼을 열자.
[이현진]
[Lv.1 이상식욕자]
비대해진 살점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덩치.
전신을 덮은 비늘에, 거대한 뿔, 날카로운 발톱.
거친 짐승의 그것과 같은 목소리까지.
그런 거창한 보스 몬스터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하얗게 센 머리카락 때문일까.
조금 신비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쯤 괴물이었으나.
내가 직접 때려잡은 뒤, 고생고생해 가며 인간으로 되돌려 놓은 인물.
이현진.
‘적응 안 되네.’
그 모습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며 다가가자.
기척을 느낀 듯, 그녀의 시선이 사의준 일병을 향했다.
“아. 의사 선생님.”
“환자분. 기분은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잘 보살펴 주신 덕분에…….”
“다행입니다.”
사의준 일병의 말마따나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인데도 꽤 멀쩡해 보이는 모습.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은 순간.
“안녕하십니…….”
“히, 히익……!”
귓가에 울리는 짧은 비명 소리.
‘……히익?’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대화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 살려…….”
비명을 내지르며 구석으로 도망치는 그녀.
팔에 박혀 있던 링거 등이 거칠게 때어져 나갔으나,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듯.
덜덜덜…….
방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도망친 그녀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
“…….”
“…….”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의준 일병의 시선이 느껴졌다.
크게 떠진 눈 속에는.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니.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