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25화 (125/227)

125화 예상 못 한 보상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기껏 병문안을 왔건만.

덜덜덜…….

내가 찾아온 환자는 나를 보고 공포에 떨고 있고.

“…….”

의사 양반은 ‘뭔 짓을 한 거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돌겠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멍하니 있자니.

사의준 일병이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일단 환자분은 제가 최대한 진정시켜 볼 테니, 병장님은 잠깐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어어.”

등을 떠밀려 병실에서 쫓겨난 뒤.

몇 분이 지나자.

“후우.”

병실에서 나온 사의준 의병이 말했다.

“일단은.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행이네.”

“예. 다만, 아무래도 신 병장님을 보면 조금 진정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얘기할 때는 언행을 좀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다시 병실에 들어가기 전.

나는 사의준 일병에게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묻기로 했다.

“저 사람.”

“예?”

“머리카락은, 원래 저런 색이었던가?”

“아아. 그렇진 않을 겁니다.”

잠깐 보고 쫓겨나게 되었다만.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의 머리는 새하얬다.

평범한 한국인의 머리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설마 환자가 그사이에 염색을 한 것도 아닐 테고.

왜 저런 색이 돼 버린 건가 궁금했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짐작 가는 부분은 있습니다.”

볼을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의준 일병.

“아무래도 최근에 엄청난…… 정말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 적이 있던 모양이더군요.”

“……?”

“저 머리 색은 그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각성자의 신체는 평범한 인간의 그것하곤 조금 다르다 보니, 정확한 원리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 고통으로 인해 머리가 하얗게 세 버렸다는 것.

“머리가 저렇게 될 정도의 고통이라니. 후. 솔직히 저로서는 짐작도 안 가는군요.”

“크흠.”

사의준 일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머리가 저렇게 변한 원인이 다름 아닌.

‘나 때문이란 거잖아?’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긴 했다만.

그녀는 말 그대로.

‘산 채로 피와 뼈와 살이 분리’

되는 경험을 했다.

‘심지어는 [차분한 정신]의 요리를 먹은 탓에, 편하게 기절하지도 못했지.’

결과적으로는 좋게 끝났으니 다행이지만.

머리가 저렇게 돼 버릴 정도의 고통이었다는 것.

“아까 벌벌 떠는 모습도 그렇고. 대체 저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괴물한테 붙잡혀서 고통을 받았다든가? 가끔 PTSD를 호소하는 병사들도 있긴 합니다만. 저건 그중에서도 심한 것 같던데요.”

“크흠. 컴.”

인간을 학살한 죗값에 대한 대가라느니 생각하긴 했다만.

아무래도 그 결과물을 직접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찔릴 수밖에 없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자.

“……감사합니다.”

그러자.

조금씩 움찔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꾸벅이는 현진.

조금 전까지 내가 준 고통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왔던 터라.

순간 뭐가 고맙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덕분에 죽는 줄 알았다, 고맙다.

뭐 이런 비꼬긴가? 싶었는데.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거야 뭐.”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도박 한번 해 본 겁니다. 딱히 그쪽 좋으라고 한 일도 아니었고.”

진심이다.

딱히 그녀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냥, 될 것 같으니까 해 봤을 뿐.’

막말로 성공했으니 다행이지.

도박이 실패했다면 그녀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은 다음에야 죽을 수 있었을 터.

감사받을 만한 입장은 아니지.

“감사할 일은 그 외에도 많죠.”

“음?”

“원래라면 이 도시를 해방하는 것도 제가 해야 했던 일. 그걸 군인분들이 대신해 주셨으니까요.”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 말했던 경찰이 어쩌구. 그 얘깁니까?”

“네.”

저번에도 들은 얘기다만.

다시 들어도 조금 의아한 얘기다.

‘그렇게까지 집착할 일인가?’

그녀는 딱히 수십 년 복무한 경찰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제 막 경찰이 되어 경력을 시작하려던 참.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의무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했다.

약간은 광기라고 느껴질 정도.

‘……일종의 PTSD 같은 걸지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멸망의 날’이 만들어 낸 하나의 병일지도 모른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한계였던 그녀.

그 마음에, 어떤 부채 같은 것이 자리 잡아 버린 것이겠지.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사람 한 명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 정도가 한계였죠. 바깥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야 뭐.

실제로 우리 길드 정도가 아니고서야.

굳이 저 위험한 던전을 공략하려 들 사람은 없었겠지.

“그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도시를 구해 주셨으니, 이제라도 감사를 드려야죠.”

“…….”

“그걸로 모자라서,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포기하고 있던 저를 이렇게 되돌려 주기까지 하셨으니……. 진작에 감사를 표했어야 했는데.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뇨.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다시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

하지만 뭐랄까.

난 그 감사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딱히 엄청난 선의를 가지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

구원 요청을 받아들인 건 던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우리 부대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표.

이 사람을 찾아간 건 내 궁금점을 해결하기 위함이었고.

인간으로 되돌린 건…….

‘자꾸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자존심 상해서, 억지 꼬장 한번 부려 본 거였지 뭐.’

결과는 좋게 됐다만.

딱히 감사받을 만한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그런데도 저렇게까지 예를 차리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조금 쑥스러워진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감사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그만 본론-”

“히익……!”

“…….”

“아, 아앗. 죄, 죄송해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그녀.

“그…… 살점을 도려내시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서.”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 알아요. 결과적으로는 감사드려야 할 일이란 것도요. 하지만 뭐랄까. 그,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마음대로.”

“이해하니까. 그만 얘기하셔도 됩니다.”

조금만 과격하게 움직여도 트라우마로 고통이 떠오를 정도라니.

내가 맘 편하게 감사를 받을 수가 있겠냐고.

여기서 계속 앉아 있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니.

그냥 간단하게 본론만 묻고 떠나기로 했다.

“일단.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건 있으십니까?”

“네? 계획이요?”

“이젠 괴물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셨잖습니까.”

괴물이었던 시절의 그녀가 어떻게 지냈을지는 뻔하다.

짐승처럼 잠만 자다가 배고프면 일어나서 괴물을 사냥하고 다녔겠지.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하셔야 할 텐데. 혹시 계획이 있냐 묻는 겁니다. 뭐 아는 사람이라던가.”

“글쎄요……. 이 도시에는 배정받아서 온 거라, 아는 사람은 딱히.”

“음. 일단 창수 씨의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그건, 목적이 얼추 비슷했으니까요.”

그녀는 도시를 어지럽히는 어인들을 사냥해 도시를 원래대로 복구시키길 원했다.

창수의 그룹은 어인들에게 복수하길 원했고.

“어인들을 사냥하기 위해 같이 활동한 것뿐이에요. 친하게 지낼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구요.”

결국.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은 딱히 없다는 듯.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하고 싶은 일…….”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전 일단은 경찰이었으니까요.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긴 하지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뭐. 그런 것도 나쁘진 않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은혜를 갚고 싶어요.”

은혜라.

“제가 받은 은혜가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그걸 모르는 척 넘어가기는 싫거든요. 어떻게든 이 은혜를 좀 갚고 싶은데…….”

사람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내게 은혜도 갚고 싶다라.

“크흠.”

이거.

얘기의 흐름이 나쁘지 않은데?

“일단 사람들을 돕는 부분입니다만.”

“네.”

“혼자서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저 도시 안쪽하고 다르게, 바깥세상의 괴물들은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요. 개중에는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는 종류의 괴물들도 많죠.”

“으음……. 그런가요.”

혼자서는 힘들 것이라는 얘기에,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그녀.

“다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죠.”

“네?”

“제게 은혜를 갚고 싶다고도 하셨으니.”

내게 은혜를 갚는 가장 쉬운 방법.

그건.

“저희 부대에 가입하신다면, 도와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부대의 인력난을 해결해 주는 것.

그나마 최근에 부대에 합류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다만.

그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부대원을 늘리는 것도 무리가 있다.

부대에 받아들이고 봤더니 미치광이 사이코패스였더라~ 하는 경우도 있잖냐.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단 말이지?’

과거 사람들을 학살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몬스터의 본능에 지배당했기 때문.

반대로 몬스터의 본능이 머리를 침범하는 와중에도 경찰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그 의무감의 발로가 일종의 정신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들.

인성 평가는 통과한 거나 마찬가지.

나한테 어느 정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잘 꼬드겨서 부대원 한 명 늘어나면 이득이거든.

“……고마운 제안이긴 하지만.”

난 나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뭐 거슬리는 부분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건 진심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줘야 하는 명령 같은 걸 내리신다면, 제가 순순히 따를 수 있을까 싶어서.”

그 얘기에.

나는 조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슨 미친놈도 아니고.”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남들한테 고통을 주라는 명령을 내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네? 아닌가요?”

“…….”

아니 뭐.

어쩌다 보니 눈앞의 이 여자에겐, 엄청난 고통을 줘버리긴 했지.

“큼. 그쪽은 조금 예외적인 경우였고.”

이건 정말 억울하다.

정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약탈자 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

머릿속에 그저 무능하단 이유로 내 요리를 강제로 먹게 된 한 간부의 얼굴이 아른거렸으나.

그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고.

“아시다시피, 옛날부터 군인과 경찰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관계였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각자 업무가 조금 다를 뿐, 국가를 수호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고 봅니다. 저희 부대에 합류하는 것도, 그 협력의 연장선으로 생각해 주신다면.”

조금 망설이는 듯했으나.

내 설득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알겠어요.”

“좋은 선택이십니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곧바로 병사들한테도 전달할 테니, 머지않아 부대원들한테 지급되는 전용 장비들을 받을 수 있으실 겁니다.”

“아, 네.”

“부대에 대한 자세한 일은 차근차근 알아 가시면 되겠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걸로 내 용건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업무에 복귀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 그러고 보니.”

“네? 다른 볼일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잘 꼬드겨서 가입시킨 건 좋은데.

아직, 이 여자의 능력치를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레벨 1 이상식욕자라고 했지?’

이상식욕자라는 직업은 처음 본다만.

그래 봐야 레벨은 1.

‘괴물이었을 시절의 강함은 없을 테지.’

지하에서 싸웠던 괴물이 그대로 전력이 되었다면 참 든든했을 텐데.

아쉽긴 하지만.

군단에 가입한 이상 충분한 장비와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몇 개월만 지나면 든든한 전력이 되어줄 터.

“……?”

이상식욕자라는 직업이 어떤 특성과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니.

그녀를 조금 유심히 바라보자.

곧, 특성이 발동했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현진]

[직업 : 이상식욕자 Lv.1]

여기까진 얼마 전에도 본 내용이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능력치]

[힘 94]

[민첩 79]

[마력 65]

[행운 12]

[특성]

[식탐]

“…….”

그 내용을 본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뭐지 이거.

버그인가?

‘능력치가 왜 저래.’

부대에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으며.

스탯 또한 가장 높은 게 바로 나다.

하지만.

그녀의 스탯은, 그런 나보다도 미세하게 높은 수준이었다.

‘아니, 나도 모아 둔 포인트로 물약을 먹으면 순식간에 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마어마한 스탯.

저게 레벨 1이라고?

“하, 하핫.”

짐작 가는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괴물이었던 그녀의 피와 살을 그렇게 분리해 버리긴 했다만.

그렇게 분리해 버린 공간은, 내가 만든 요리들로 다시 채워 버렸으니까.

당시 가지고 있던 힘에는 미치지 않겠지만.

그 힘 중 일부가 그녀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대박이군.’

이번 일로 얻은 보상들.

다른 것들도 그야 대단하다만.

“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지……?”

이 영입 또한.

다른 보상들에 절대 꿇리지 않을 보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