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27화 (127/227)

127화 암살 (2)

강원도 서북부.

본래는 인간들의 도시가 자리 잡았던 장소.

그러나 지금.

그곳의 높은 건물들에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야만스러운 문양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본래 인간들이 거닐던 번화가에는.

쿠웅…….

발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덩치의 괴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 중심에 있는 건물.

한때는 청사라고 불렸던 건물의 중앙에는, 다른 괴물들의 두 배는 될 법한 거인이 앉아 있었다.

-보고하라. 대주술사.

근방 일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이들.

[녹색갈기 부족]의 수장을 맡고 있는 대전사.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대전사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혹시라도 또 출전을 미뤄야 한다고 말한다면, 아무리 주술사들의 의견이라고 한들…….

-걱정 마시게.

녹색갈기 부족을 이끄는 수장은 본래 대족장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대족장이 죽은 지금.

이 부족을 이끄는 것은 이 자리에 서 있는 둘.

대전사와 대주술사었다.

대전사가 부족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주술사의 의견을 존중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결과.

그들 부족의 진격은 꽤 오래 막힌 상태였다.

과거.

주술사가 남긴 말의 영향이었다.

-동쪽에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하나, 볼 수가 없다.

-무슨 의미인가?

-동쪽에 있는, 드높은 산맥…… 그곳에 있는 존재가 내 눈을 가리고 있다.

주술사가 앞일을 점치고 전사들이 싸운다.

그것이 부족의 전쟁 절차.

하지만 누군가가 주술사의 눈을 가로막았다.

별의 운행을 엿볼 수 없도록.

‘주술사의 눈을 가릴 만한 존재가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그만한 존재가 있는 곳에 어떤 정보도 없이 쳐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드디어 끝을 보았소.

-그 말은.

-별의 운행을 가로막던 이와의 싸움이 드디어 끝났소. 저쪽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있던 탓에 조금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대주술사의 말을 들은 대전사가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광소를 내뿜으며 소리치는 대전사.

-전사들을 소집하라!

-이미 소집령을 내려두었소. 그뿐만 아니라…….

그들 부족이 행하고 있는 것은 정복 전쟁.

그리고 전쟁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 수집.

그리고 또 하나는.

-암부를 보내 두었지.

요인의 암살.

-전쟁에 방해가 될 만한 녀석들은, 지금쯤 처리가 되었을 거요.

* * *

[무당 : 몬스터 웨이브다.]

눈앞에 나타난 태준이 녀석의 메시지.

하지만.

그 메시지를 읽을 틈 따위는 없었다.

“……큭!”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

그 기운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급하게 칼을 뽑아 들고자 했으나…….

[독고구식]의 손잡이를 쥔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늦었다.’

지금 칼을 뽑아서 휘두른다고 한들.

이 공격을 쳐낼 수는 없으리란 것을.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든다.

그 순간.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호되게 당하실걸요?

얼마 전.

탄약대대에 잠시 방문했다가 다시 그곳을 떠날 때.

이상아 대대장이 한 말이었다.

-군단장님도 사람이잖아요? 사람인 이상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바쁜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된 참.

나와 부대원들은 남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심지어 기대도 안 했던 점령전에서도 성과를 올렸다.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조금이지만.

그런 생각에, 마음이 늘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방심했다.’

거기에, 태준이 녀석이 보내온 메시지.

그 내용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경계에 소홀해졌다.

‘……실수했다!’

방심한 것으로도 모자라.

실수까지.

지금까진 어떻게든 잘 헤쳐 나가며 살아남았다만.

나도 결국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까.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고,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다.

예전이었다면 실수 한 번쯤이야 문제 될 것도 없었을 테지만.

문제는…….

-지금 세상은 실수 한 번에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 한 번의 실수를 봐주고 넘어갈 정도로.

인심 좋은 세상이 아니었다는 것.

꿀꺽.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짧은 시간이었으나.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죽음의 위협 앞에,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이상아 대대장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었다.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

한 차례의 경고 뒤.

조언과 함께 내 품에 안겨 준 것이 있었다.

[잔말 말고 데려가세요.]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

그 기운이, 내 정수리를 두 동강 내버리려던.

바로 그 순간.

-끼잉!

군복의 가슴팍 사이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팍!

이윽고, 검은색의 작은 형체가 내 머리 위로 솟구친다.

검은 고양이처럼 생긴 괴물.

[강철을 먹는 맥].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우리 부대를 전멸시킬 수도 있었을 괴물이었다.

캉!

“나이스, 까망아!”

철이 부딪히는 소리.

내 머리를 두 동강 내려던 기운이, 까망이에게 부딪혀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나는 급하게 몸을 던졌다.

“후욱. 후욱.”

제기랄.

진짜 뒈질 뻔했네.

까망이의 도움으로 적에게서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 생각한 나는 자세를 추스른 뒤.

나를 공격한 존재를 노려보았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식재료 감별(강화)]

[녹색갈기 오르크 암부]

눈앞에 있는 것은, 덩치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괴물.

그 덩치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공격 자체도 공격이었지만.

‘저만한 덩치를 가진 괴물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녀석의 이름에는 [암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대충 짐작은 간다.

‘암살자다.’

내가 [환경동화] 특성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녀석도 무언가 기척을 감추는 특성을 가지고 있단 거겠지.

-크륵……!

-끼잉!

그 녀석은 지금은 까망이와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 보니, 까망이의 입에는 처음 보는 낯선 쇠붙이가 하나 물려 있었다.

괴물의 오른쪽 손에 들려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칼.

‘……까망이가 없었으면, 저게 내 머리를 으깨 놓았을 거라 이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른다.

등줄기를 스치는 약간의 서늘함.

그 뒤에 찾아온 것은.

“이 새끼가.”

차가운 분노였다.

분노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지금까지 어떻게 아득바득 살아남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 들어?”

잠깐이지만.

진짜로 뒈지는 줄 알았다.

‘쪽팔리게.’

간만에 느껴 본 죽음의 공포.

이딴 공포를 내게 안겨 준 녀석에 대한 분노.

그리고 두 번째는.

‘방심을 해?’

신영준 이 병X 같은 새끼.

요즘 잘 나간다고 뭐라도 된 줄 알았냐?

뭣도 없는 놈 주제에 방심하고 있다가 죽을 뻔했다.

안일하기 그지없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

-%^!#@^!.

“야. 형이 지금 좀 빡쳤거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분노를 방출할 방법이 눈앞에 있었다.

“너는 좀 맞자.”

[요리사의 눈]

[중급 요리 비결 - ‘녹색갈기 오르크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중급 요리사의 리자드 육포]

[절대 미각의 효과로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오른손에 [독고구식].

왼손에 [검정중식].

두 자루의 식칼을 양손에 나눠 쥔 채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정체 모를 외계어를 중얼거리며 쓰러지는 거대한 괴물.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퉷!

“별것도 아닌 게.”

암습을 당했을 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전면전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대놓고 내 목숨을 노리고 온 암살자.’

이런 괴물이.

과연 한 마리만 달랑 찾아왔을까?

“습격이다!”

나는 식당 문을 열고 나서며,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소리쳤다.

“다들 적습에 대비하라!”

나를 찾아온 암살자.

이 한 마리로 끝날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몬스터 웨이브다.]

태준이 녀석이 남긴 말.

‘몬스터 웨이브.’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기도 하다.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몰려드는 현상.

보통은 디펜스 게임에서나 쓰이는 용어이지만.

‘하필 지금은 현실이란 말이지.’

소름 끼치는 단어일 수밖에 없다.

“신 병장님!?”

“습격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

“말 그대로다! 다들 방들 돌아다니면서 부대원들 상태 확인해.”

내 경고를 듣고 무기를 챙긴 병사들이 보였다.

명령을 내리자, 건물 곳곳을 뒤져 가며 다른 병사들의 상태를 체크하러 뛰어가는 녀석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대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모든 부대원들이 습격당한 건 아닌가 본데.’

내 명령을 받은 병사들.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적어도 나처럼 습격을 받지는 않았다는 뜻.

어쩌면 정말로 나만 노린 습격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가정했을 때.

저들이 공격당하지 않고, 나는 공격당한 이유가 있다면.

‘주요 인물만 습격했다는 건가?’

평범한 병사들과 달리.

나는 이 부대의 대장이자 유일한 식량 공급책.

암살자가 노리기에는 적당한 주요 인물이다.

그런 면으로 생각했을 때, 나 말고도 습격당할 만한 이들을 떠올렸다.

‘민재 형, 광일이, 수혁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대의 간부급 인물들.

그리고.

-카하하하하!!! 심심하던 차에 재밌게 됐구나!

광일이의 방이 있는 방향에서 들려오는 괴성.

그뿐만이 아니었다.

타다다다당…….

콰릉.

동시에 수혁이와 민재 형의 방 쪽에서 총성과 번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쪽은 문제없는 것 같고.”

나처럼 방심한 상태라면 모를까.

대부분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실력자들이니까.

평상시에는 전투 면에서 나보다 훨씬 강한 인간들이다.

방심해서 죽을 뻔한 나와 달리.

무난하게 적습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

그렇다면 그 외에는 누가 있을까.

대부분은 괜찮을 것 같은데…….

‘아.’

생각해 보니.

딱 한 명.

괜찮지 않을 것 같은 간부급 인물.

‘아니.’

간부가 있었다.

“김 중위님. 지금 어딨어.”

“김 중위님이요?”

“아, 저 압니다. 최근에 합류를 결정한 신참 부대원들하고 면담한다고 면담실에…….”

병사의 말을 들은 나는 급하게 몸을 내던졌다.

면담실은 임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거점의 가장 위층에 있었다.

“어, 보십쇼!”

“면담실 문이 부서져 있슴다!”

“설마.”

김 중위.

과거 423대대 시절에는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의 폐급 간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광역 버프에 특화된, 초고효율 서포터.’

대규모 군대에 퍼센트 버프를 뿌려 줄 수 있는 광역 버퍼.

우리 부대가 대규모 전투를 벌일 때.

내 요리 다음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바로 김 중위다.

능력치를 일정 수치 이상 고정 상승시키는 내 요리.

능력치를 퍼센트로 상승시키는 김 중위의 지휘.

두 버프는 엄청난 상승효과를 일으키니까.

‘만약 김 중위님이 죽었다면.’

그냥 부대원 한 명 죽은 정도랑은 비교도 안 된다.

말 그대로 뼈가 아플 정도의 손실-

“히, 히익!”

“어? 살아 계시네?”

일 터였으나.

다급히 달려간 면담실 안.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고 있는 김 중위가 보였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모습.

습격이 없었던 건가 싶었지만.

그 앞.

[녹색갈기 오르크 암부]

나를 습격했던 거대한 괴물이 쓰러져 있었다.

다만,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신체의 절반이 이빨 같은 것에 뜯겨 나간 모양새.

“과연.”

꽤 강력했던 괴물.

김 중위는 신참 부대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중위와 신참들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라 생각해서 달려온 것이었다만.

생각해 보니.

지금 신참 중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하나 끼어 있었거든.

[이현진]

[Lv.2 이상식욕자]

“구, 군단장님.”

“잘 해줬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여자.

다만, 그 피 중 대부분은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레벨 하나 올랐네. 이 녀석 잡고 오른 건가.’

레벨과 스탯으로는 비견될 자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그런 나보다도 높은 스탯을 가진 ‘신참’.

“여, 영준아. 저 신병. 보통 신병이 아니다.”

“저도 잘 압니다.”

“아, 안다고?”

커다란 이빨 같은 것에 씹어 먹힌 사체의 모습.

“이 녀석을 먹은 거냐.”

“네, 네에.”

힘없이 대답하는 이현진.

그녀의 오른팔은, 녹색의 근육질로 변한 상태였다.

“그. 제 팔이 이렇게 된 건.”

“다시 괴물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

지금 쓰러져 있는 저 괴물.

그 녀석과 비슷하게.

‘괜히 최고의 보상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지.’

[이상식욕자]라는 직업을 얻은 그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하나였다.

[식탐]

[이상식욕자의 끝없는 배고픔이, 다른 형태로 발현됩니다.]

[이종족을 섭취할 경우, 대상의 마력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이종족을 섭취할 경우, 섭취한 대상이 가지고 있던 신체 능력, 특성, 스킬 중 일부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섭취된 대상의 능력은 소화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보존됩니다.]

[이상식욕자의 소화에는 대략 한 달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자신이 먹어 치운 적.

그 적의 능력을 재현할 수 있는 특성.

즉.

‘개사기 특성.’

적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도 활용 가능한 전천후 특성이다.

다른 특성이나 스킬을 타고나지 않는게 이해가 갈 정도.

이 녀석 덕에, 김 중위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잘 해줬어. 김 중위님은 지금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거든.”

“네. 네에……. 저기, 면담실이 좀 많이 부서졌는데. 인간이 되고 나서 싸워 본 적은 처음이라 힘 조절이 안 된 부분은 죄송…….”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고. ”

맘 같아선 좀 더 칭찬해 주고 싶었으나.

“일단 쉬고 있어.”

“아, 네.”

“그리고. 김 중위님은 이리로.”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여, 영준아? 나는 왜.”

“회의실로 갑시다.”

“회의실?”

태준이 녀석의 말대로라면.

이 공격은 어디까지나 맛보기.

“진짜 공격은 아직 오지도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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