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29화 (129/227)

129화 요새 (2)

“소환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태도였다.

“소환한다니.”

“……뭘요?”

뜬금없는 얘기에 당황하는 사람들.

하지만 단 한 사람.

반응이 다른 인물이 있었다.

“그 요새 얘기로군.”

“이민재 병장님?”

부대 초창기부터 나와 부대의 운영에 대해 소통했던 인물.

민재 형만은 내 말의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확실히 가능하다면 나쁘지 않아. 하지만…….”

민재 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소환할 수 없는 거 아니었나?”

“그게 문제긴 해?”

[대지역 - ROK 소속 인간의 첫 번째 ‘점령’입니다.]

[업적 달성!]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땅]

[1위 특전이 부여됩니다.]

과거.

423대대를 습격해온 리자드의 군대.

놈들을 격퇴하고, ‘산맥’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 순간 달성한 업적이 바로 저거다.

그리고.

[특전 - 기동요새 비마나]

저 업적을 달성했을 때.

그 보상으로 부여받은 특전이 바로 이것.

‘무려 인간 중 최초 달성 보상이야.’

어떤 게임이든 간에.

최초 달성 보상이 시시한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단한 보상일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한바.

실제로.

나는 그 위력의 일부를 체험해보기도 했다.

‘아리엘라의 그림자 장막 속에서. 딱 한번이지만.’

[그림자 장막]은 구성원들의 심상을 구현하는 공간.

저 특전, 기동요새 비마나는 소환되기 전까지는 내 심상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인지.

그림자 장막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

‘덕분에 죽을 위기를 벗어났으니.’

그리고.

그때 그 요새가 보여 줬던 능력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현실로 복귀한 뒤에도, 이 요새를 사용해 보려고 시도는 해 봤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해 봤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럴 때마다 나타난 것은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로 익숙해진 ‘띠링’ 소리.

그와 함께 나타나는 한 줄의 메시지.

[소환에 필요한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래.

기껏 얻은 점령전 1위 보상.

그 보상을 우리가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어이없게도.

‘너무 커서’였다.

423대대는 산꼭대기에 지어진 부대였다.

아무래도 부지가 넓지 않다 보니 그러려니 넘어갔지.

지상에 내려온 뒤.

좀 넓다 싶은 공간이 보일 때마다 소환을 시도해봤다.

‘얼마나 크다는 거야. 제기랄.’

하지만 결과는 모두 꽝.

딱 한 번.

그 위력을 체험해 본 곳이 그림자 장막이었으나.

그마저도 아리엘라의 힘이 약화되고 난 뒤.

그림자 장막이 좁아지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최초로 길드 단위 단체를 만든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 [용의 이빨]과 함께.

비마나는 초창기에 얻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슬슬 써 봐야지 않겠냐.”

“어. 제가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는데.”

요새에 대한 설명을 끝내자.

전광일 상병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공간이 모자라서 소환하지 못하고 있던 거면, 지금도 못 쓰는 거 아닙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야.”

“그렇게 큰 요새를 올릴 만한 땅이 어디 있다고…….”

웬만큼 넓은 논밭 위에서도 안 됐다.

장막 속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이 도시 위에 요새를 소환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하지만…….

최근에 물로 가득한 던전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보니.

그 경험이 내 생각을 조금 바꿔 주었다.

“요새를 소환하는 거.”

“예.”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거든.

“굳이 땅 위일 필요는 없잖아?”

* * *

사실.

임시 거점을 떠나 제대로 된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미뤄 온 것이 후회될 뿐.

나름대로 회의를 거친 적도 있었지.

당시에 꽤 여러 가지 후보지가 언급되었었다.

근처의 대학 부지, 저 괴물들이 건물들을 모조리 치워 놓은 도시 중앙부 등.

그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던 지역은 바로.

“강.”

춘천시 옆에는 커다란 강이 있다.

그 강에는 여러 개의 넓은 섬이 떠 있다.

그 섬을 거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자연의 해자가 된 강이 적을 막아 줄 수도 있고.

식수 조달도 매우 쉬울 테니까.

그중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진 것은 유원지가 지어진 섬이었다.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경영난에 빠진 결과 망해 버렸다는 유원지.

그 유원지의 구조물들을 뼈대로 활용하면 방어시설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든가.

“꽤 본격적인 선까지 갔던 계획이다만.”

“지금은 시간이 없잖아. 섬들을 활용하는 건 나중으로 하자고.”

지금 중요한 것은 강.

그 자체였다.

도시를 끼고 있는 넓은 강.

섬과 섬들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비어 있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섬 하나쯤은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매우 넓은 공간이.

“여기에 요새를 띄우자니.”

“……전 잘 모르겠는데요. 이거 맞습니까?”

내 작전은 간단했다.

그 넓은 공간.

강 위에 요새를 소환하는 것.

“어떻게 기적적으로 소환된다고 해도,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지 않을까요?”

“밑져야 본전이잖냐.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강 사이의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여기서도 공간이 부족하다고 소환이 실패한다면…… 진짜 답도 없다.’

다음에는 바다로 나가야 그나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실패했을 때의 경우고.

“만약 성공한다면.”

“거점으로 삼기에는…… 최고의 위치이기는 하군.”

자연의 해자인 강이 수비를 도와줄 것이며, 식수 확보도 쉽다.

저 던전화의 영향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 중심부와도 가깝다.

주변의 섬들과 폐허가 된 도시 중앙부까지 일종의 앞마당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

부대 근처에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고의 위치였다.

‘그러니 제발!’

강의 앞으로 도착한 뒤.

나는 속으로 온갖 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기동요새 비마나를 소환하시겠습니까?]

[Y/N]

망설임 없이, 소환 버튼을 눌렀다.

띠링.

[장소를 스캔합니다…….]

[스캔 중…….]

익숙한 문구다.

지금까지는 이 문구의 다음.

[소환에 필요한 공간이 부족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오르곤 했지.

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띠링!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는…….

[소환 가능 영역이 확보되었습니다.]

“……!’

이전까지 봐 왔던 것하고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해당 장소에 ‘기동요새 비마나’를 소환하시겠습니까?]

[주의!]

[소환 장소는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소환 해제 시, 다음 소환에는 긴 대기 시간이 소요됩니다.]

[필요 대기 시간 : 30일]

“하, 하하.”

여기에 소환하겠냐고?

‘당연한 걸 묻고 있어.’

경고고 메시지고 뭐고.

망설일 이유 따위는 없다.

곧바로 요새의 소환을 선택했다.

그러자.

[요새가 소환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응?

‘뭔 충격?’

그 문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콰아아앙!

귓구멍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폭음.

‘……!?’

그와 함께.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우리를 향해 몰아쳤다

“미친!”

“다들, 충격에 대비하라!”

갑작스러운 해일.

병사들이 급하게 몸을 웅크렸다.

“푸핫……!”

“다, 다들 괜찮아!?”

“예!”

“푸읍! 멀쩡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쪽은 전원이 각성자로 이루어진 무리였다는 것.

파도에 밀려 뒤로 날아간 이가 몇 명 있긴 했다만.

대부분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어. 어어……?”

“잠깐.”

“신 병장님?”

병사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 병사들이 입을 떡 벌리며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 저거 좀. 봐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

병사들이 가리킨 장소는.

본래라면 강이 있어야 할 장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

세상이.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아니구나.”

세상이 검은색으로 뒤덮인 게 아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벽.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요새의 벽이었다.

* * *

던전에서 해방된 각성자들.

그중 일부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먼 길을 떠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춘천 근처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춘천에 남아 있던 각성자들 사이에는, 최근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얼마 전.

명실상부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군인들.

그 군인들의 기지에서 들려온 전투 소리 때문.

“군인들만 있는 건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몬스터의 사체를 교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이들도 많다.

군인들의 거점 근처는 일종의 광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많은 각성자들이 오고 가는 만큼, 괴물 따위는 진작에 청소된 지 오래인 장소.

“그곳에서 전투를 벌일 이유가 뭐가 있다고?”

부대 외부의 인간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이 추측해 보기로는.

‘내분…… 혹은 쿠데타.’

나름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적은 수준이긴 하나, 부대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는 알려진 상태였다.

군인들의 지휘관은 김현석 중위.

그와 같은 부대였던 병사들이 핵심이 되어 일구어 낸 세력이라는 점 정도.

다만.

저 군부대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은 간부 출신도, 병사 출신도 아니었다.

‘새롭게 합류한 외부인들.’

분명 군부대는 군부대지만.

출신 성분으로 따지면, 병사 출신이 아닌 일반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군인과 일반인들.

“뭔가 특별한 수를 쓴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하지.”

“……내부 분쟁이라.”

군인들뿐인 건물에서 전투가 벌어진 상황.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 바로 이것이었다.

“저 식량 생산만은 유지됐으면 좋겠는데.”

“쯧. 그러게 말이다.”

군부대가 무너져서 혼란이 생긴다고 한들.

도시의 인간들은 대부분이 각성자였다.

어떻게든 제 한 몸 지킬 수는 있는 이들.

문제는 식량이었다.

괴물의 고기를 먹으면 괴물이 된다.

농사를 짓자니, 하루아침에 농작물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군인들이 가공해 주는 전투식량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번 내분에서 그 가공에 필요한 시설이나, 병사가 죽었다면?”

“……이 도시의 각성자들 중 반 정도는 굶어 죽겠지.”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군부대의 동향을 살필 수밖에 없게 된 것.

그 순간.

쿵!

“응?”

“군인들이다.”

군인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물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병사들이 어딘가를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모든 병사가 함께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든 채 다가오는 병사들.

그 손에 들린 물건은 이 도시의 인간들에게는 꽤 익숙한 것이었다.

대충 휘갈겨 쓴 글씨가 잔뜩 적힌, 싸구려 종이.

“군인 양반! 지난번에 있었던 소란은 대체 뭐였던 거요?”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거고.”

몇몇 사람들이 종이를 붙이려고 오는 군인을 향해 말을 걸었으나.

“…….”

“그건 해결됐으니 걱정 마십쇼.”

군인들의 반응은 묘하게 싸늘했다.

“걱정 말라니.”

“자세한 일은 내부 사정이라. 이해해 주십쇼.”

군인들이 이상할 정도로 외부인들을 배척한다는 사실.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몇 안 되는 군인들에 대한 정보였다.

궁금한 게 많은 이들이었으나, 한숨을 내쉬면서 물러날 수밖에.

뒤로 물러난 사람들은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붙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히 대충 썼군.’

‘얼마나 귀찮았던 거야.’

병사들을 모아다가 쓰게 시킨 것일까.

귀찮음이 넘쳐 흐르는 글자들.

[경고]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살벌했다.

[서북부 방면에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발생을 감지하였습니다.]

[대규모 괴수 집단이 도시로 접근 중.]

“……뭐?”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불안 불안한 군부대의 분위기에 술렁이던 각성자들.

이 종이에 적힌 내용은 너무 파격적인 것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라니.”

“……뭐. 걱정할 거 있겠어?”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굳이 놀랄 것 있냐는 태도였다.

“군인 양반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잖아.”

“아…….”

“게다가 여기에 모인 각성자들만 해도 수천 명은 될걸. 괴물이 몰려온다고 해 봐야 이 도시를 함락시킬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얘기를 듣자, 사람들이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아무리 많은 몬스터라고 한들, 저 강한 군인들이 있는 도시를 함락시킬 수는 없-

“아니.”

“응?”

“저거. 마지막 줄을 봐.”

[본 부대는 전력을 다해 지역 사수 작전에 임할 것이나, 작전 승리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

[근방 민간인분들의 대피는 자유이나, 동부 방면으로 피신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작전 승리를 확신하기 힘들다.

피신할 거면 동쪽으로.

저런 내용이 붙은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설마.”

“……아마 그거겠지.”

몬스터 웨이브에 대항하는 지역 사수 작전.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냐……?”

“그 강하기 짝이 없던 군인들이……!?”

* * *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춘천 외곽에 있는 한 건물.

지금 그곳은 한 그룹이 점거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

괴물들이 침공해 온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

“떠나야 한다고 본다.”

“떠나자니.”

한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꼭 그래야 하나? 다들 알잖아. 저 군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맞아요. 저 어제도 군인들이 괴물 사냥하는 거 봤는데. 저게 같은 각성자가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괴물이 온다고 해도 저 양반들이라면 어떻게든…….”

“강한 거 알지! 아는데.”

작게 소리친 남자가 창가로 몸을 옮기며 말했다.

“강하면 뭐 하냐고.”

창문 밖의 풍경을 보라는 듯 팔을 펼치는 남자.

창밖에 펼쳐져 있는 것은…… 도시.

“저기에 방어시설이 있길 해, 뭐가 있길 해?”

멸망한 끝에 성한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스러져 가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큼. 뭣도 없긴 하네.”

“그래! 아무리 강해 봐야. 방어시설이 없다고!”

그룹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건물이 많으면 방어시설로 활용할 수 있을 텐데.”

“……그 건물도 많이 없어졌잖아?”

가장 많은 건물들이 지어져 있던 도시 중심부.

하지만 그곳은 지금 텅 빈 폐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도시가 던전화되어있던 시절.

가장 수심이 높았던 곳이 도시의 중심부였다.

그리고.

“어인놈들이 씹어먹어버렸으니.”

정말로 씹어먹은 건지 뭔지.

그 물속에 잠긴 건물들은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군인들. 강하지. 그냥 강한 것도 아니고 엄청 강해. 하지만…… 숫자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조용해진 사람들을 보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 군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더 많은 수의 적을 이기려면 방어시설은 필수야.”

“방어시설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1:1이라면 지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 군인들이지만.

“1대 다수의 전투를 하게 되겠지.”

“끄응.”

“아예 우리가 가담하는 건 어때? 이 근처에 넘치는 게 각성자 아닌가?”

한 남자가 그런 말을 꺼냈으나.

“가담하는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대부분은 도망칠걸?”

“하긴. 우리가 저 군인들만큼 강한 것도 아니고. 방어시설도 없으니까.”

방어시설이 없는 만큼.

전투는 꽤 불리한 상황에서 치러질 것이다.

그리고 불리한 전투라고 한다면.

“군인들보다 약한 평범한 각성자들이 가장 먼저 죽어나갈 테지.”

“……그걸 알면서 참전할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에, 그룹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결국 대화의 방향은 한곳으로 치우쳤다.

춘천을 떠나.

동쪽 어딘가로 피난을 가는 쪽으로.

그 순간.

한 여자가 말했다.

“그럼 도망가실 분들은 가세요.”

“어? 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전 여기 남으려구요.”

다른 그룹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를 말리려 들었다.

“……드디어 미쳐 버린 거냐?”

“괴물들이 몰려올 게 뻔한데, 굳이 여기서 죽겠다고?”

“그건 그렇긴 한데. 다른 곳 가서 굶어 죽을 바에야, 여기서 싸우다 죽는 게 나을 것 같지 않아요?”

“…….”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군인들이 제공하는 요리.

전투식량.

“……다른 곳으로 간다고 꼭 굶어 죽으란 법은 없다. 어디 빈 땅 하나 찾아서 농사라도 지으면.”

“농작물들은 뭐 하루아침에 나와요? 그리고 여기 농사 지어 본 사람이 있기나 한가?”

“농사야 배우면 되는 거고. 작물이 나올 때까진 버티면 되는 것 아냐. 지금 비축해 둔 전투식량……은 여유가 없지만. 포인트로 호밀빵이라도 사가면서 버티면.”

“호밀빵…… 호밀빵 좋죠. 근데.”

여자의 얼굴에 실소가 지어졌다.

“많이들 드세요. 전 이제 그 빵은 못 먹을 것 같아서.”

“…….”

“다들 아시잖아요? 저 입맛 까다로운 거.”

전투식량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식량이나, 버프 아이템으로써의 효과도 크지만.

“저 전투식량으로 맘껏 배 채우는 생활을 하다가. 다시 그 맛대가리 없는 호밀빵을 먹어야 한다니”

가장 중요한 건 맛.

“죽으면 죽었지, 그 생활로는 못 돌아가겠네요.”

“이해는 하는데…… 여기 있으면 정말로 죽을 거다.”

“꼭 죽는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저 군인들이 어떻게든 방어전을 한다고 했으니 방법이 있겠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숫자 앞에는 장사 없는 법이라고. 이 도시에 무슨 요새 같은 거라도 지어져 있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 방어전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긴 한데요, 어떻게 하든 제 맘이잖-”

짧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쿠우우웅!!!

“……!?”

“뭐, 뭐야!?”

건물 밖.

도시의 중심부 근처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얘기에 집중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 소리…….”

“아까 그 군인들이 향했던 방향이야.”

그중.

뛰어난 청각을 지닌 한 각성자가 중얼거렸다.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경고.

군인들의 이동.

군인들이 이동한 곳에서 들려온, 커다란 굉음.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설마.”

“그 몬스터 웨이브라는 거. 당장 오늘부터 시작되는 거였어?”

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고.

군인들이 전투에 나섰으리란 것.

“제기랄. 벌써 침공이라니.”

“야! 너랑 말싸움하다가 다 같이 죽게 생겼-”

“헛소리할 시간에 짐이나 챙겨!”

정말로 침공이 시작된 것이라면.

당장 짐을 챙기고 도망가야만 했다.

당황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을 챙긴 뒤 동쪽으로 도망치려던 찰나.

“어?”

한 남자가 창문 바깥의 풍경을 보고 멍한 소리를 내뱉었다.

“뭐해 인마!”

“늦으면 다 같이 죽는…….”

“아, 아니. 다들 저기 좀 봐.”

“?”

남자의 말에.

급하게 짐을 챙기던 이들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

그리고.

그룹원 모두가,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요.”

다들 도망치더라도 자신은 남겠다고 한 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까…… 요새라도 있으면 모를까, 라고 하셨죠?”

“그랬지. 어어. 그랬어.”

“그러면.”

그녀의 손가락이 창문 밖을 가리킨다.

창문 밖.

저 멀리, 도시 중앙부를 조금 더 지나.

커다란 강이 있는 장소.

그곳에 자리 잡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검은 요새를.

“저 정도면.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거 아니에요?”

“하. 하하.”

여자가 요새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도망쳐야 한다며 사람들을 설득하던 남자가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모르긴 뭘 몰라.”

“네? 분명 아까는 방어시설이 있으면 모른다고.”

“그러니까.”

여자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는 남자.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너 진짜 바보냐?”

“바보라니……!”

군인들이 향한 장소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요새.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 갑자기 요새가 나타났어.”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냐.

“당연히. 저런 기적을 일으킨 쪽이 이기겠지!”

“…….”

불과 수십 초 전까지만 해도 다들 도망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해 내던 남자.

그가 얌전히 짐을 내려놓았다.

“다들 어여 짐 내려놔. 여길 떠 봤자 갈 곳도 없는데 어딜 가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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