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점령전 (1)
———!!!
저 멀리.
최소한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괴성을 질러 댄다.
그 땅울림이 먼 이곳까지 전달될 정도.
[점령전이 시작됩니다!]
머지않아.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교전 세력]
[녹색갈기 부족 VS 강철 군단]
[지휘관]
[녹색갈기 부족 워 치프틴 하라-발 VS 강철 군단 지휘관 김현석 중위]
[교전 지역]
[대도시 (3)]
[전투에서 승리한 세력은 ‘대도시 (3)’의 점령권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적들을 결코 용서하지 마십시오!]
“점령전이라.”
그래.
이 세상에 덮어 씌워진 이 ‘게임’은, 점령전을 베이스로 하는 게임이었지.
그동안은 누구의 주인도 아닌 땅을 차지해 왔다만.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점령전에서 튜토리얼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세력과 세력 간의 싸움.
이번 전투야말로, 처음으로 겪는 ‘진짜 점령전’인 셈이다.
요새의 성벽 위에 선 나는, 멀리 보이는 괴물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요리사의 눈]
[오르크 류 - 녹색갈기 종]
[신선도 - 상]
그러자.
눈앞에 놈들에 대한 정보가 나열되기 시작한다.
[녹색갈기 전사]
[오르크 족의 여러 분파 중 하나인 녹색갈기 부족의 전사입니다.]
[본래 오르크 족은 전쟁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족으로, 녹색갈기 부족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물량을 자랑하는 부족입니다.]
[녹색갈기 부족의 임신 주기는 1개월이며, 한 번의 출산으로 수십 마리의 새끼가 탄생하고, 그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6개월이면 훌륭한 전사로 거듭납니다.]
[항상 야생에서 뛰어다니는 종족의 특성상 탄력 있는 육질을 자랑하며, 특유의 감칠맛이-]
“가관이구만.”
설명을 읽어 보니.
저놈들은 말 그대로 전쟁을 위해 태어난 종족이었다.
‘임신 주기도 빠르고, 한 번에 많이 태어나고, 그 태어난 녀석들도 빠르게 성장한다고?’
종족 자체가 숫자 늘리기에 특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 눈앞을 가득 채운 저 숫자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저것도 적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
하지만.
‘우리도 만만치는 않을걸.’
전쟁을 위해 태어난 종족?
뭐 어쩌라고.
우리는 군대.
이쪽도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거든.
“응……?”
그런데.
몰려드는 괴물들 사이사이.
그 한가운데에, 뭔가 익숙한 물건이 있었다.
“수혁아.”
“……예 신 병장님.”
“저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니가 시력은 가장 좋잖냐.”
“음. 그렇긴 한데. 아마 신 병장님이 보고 계신 게 맞을 겁니다.”
공성전에 앞서 괴성을 지르며 도열하고 있는 괴물들.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거대한 철 덩어리.
“괴물들이 전차를 끌고 오다니.”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괴물들 사이에 있는 저 물건은, 전차.
그러니까.
탱크였다.
* * *
“미친.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 거야?”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조금 보입니다.”
서수혁 상병이 전차 근처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조종하는 건 인간이겠죠.”
“그 사람들이 자의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예. 주변에 다른 괴물들이 있습니다. 전차병 출신의 인간들을 노예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군요.”
“……노예라.”
까득.
“건방진 새끼들.”
강원도에는 대한민국 육군 전력의 대부분이 집결되어 있다.
놈들이 점거했다는 강원도 서부 역시 상당히 많은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겠지.
‘그 군부대 중 한 곳을 턴 건가.’
군부대가 많다는 것과 그 군부대를 탈환한다는 건 전혀 별개의 얘기.
모든 군부대에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괴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도 2개 이상의 군부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 바.
놈들 역시 그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수준의 세력이라는 뜻이다.
설마하니 그렇게 턴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을 노예로 쓸 줄은 몰랐다만.
‘진정하자.’
괴물 새끼들이 인간을 노예로 사용하는 모습.
처음에는 조금 분노가 치솟았으나.
지금 화를 내서 좋을 게 없다.
“우리가 할 일은 변함없겠지.”
놈들이 전차를 끌고 오든 뭘 하든.
여기서 놈들을 격퇴할 뿐.
놈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들고 온 요리를 꺼내 들었다.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몬스터 백반]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섭취 시, 모든 특성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섭취 시, ‘중급 피해 저항’ 효과가 적용됩니다.]
[섭취 시, ‘중급 피해량 증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번 전투를 위해, 특히나 고품질의 재료들만을 때려 박아 만든 요리.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오병이어.”
요새의 병사들과 각성자들.
그 앞에, 요리가 나타났다.
“뭐, 뭐야.”
“깜짝이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요리에 당황한 각성자들.
병사들이 그들에게 그냥 먹으면 된다며 안내를 해 주는 것을 지켜보며.
나 역시 요리를 입에 담았다.
[절대 미각의 효과로 효과가 증가…….]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이윽고.
괴물과 인간.
서로가 서로의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쯤.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제1 포대 Lv.2이 작동을 개시합니다.]
[제2 포대 Lv.2이 작동을 개시합니다.]
포인트를 들여서 요새의 성벽에 건설한 시설.
거대한 포신이 적을 향해 움직인다.
그 옆에 늘어지듯 서 있는 사수와 마법사들.
그리고 탄약대대에서 끌고 온 전차들까지.
모두가 조준을 마친 순간.
“포격 개시!!!”
[지휘의 함성 - ‘포격 명령’이 울려 퍼집니다.]
김 중위의 함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원거리 공격에 대한 보너스가 부여된다는 등의 메시지가 눈앞을 지나갔다.
그와 함께.
콰앙-
파지지지직!
두다다다다다…….
우리 부대의 모든 화력이 적들을 향해 쏟아진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커다란 소음.
다양한 속성의 마법이 지면을 강타하자.
그 충격이 먼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세, 세상에…….”
“말도 안 되는 화력이군.”
경험이 적은 각성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인간의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화력 투사.
많은 이들이 이 공격으로 인해 적들이 거의 괴멸할 만한 피해을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쯧.”
“역시 쉽게 당해주진 않나 봅니다.”
군단의 병사들은 달랐다.
포격이 적들을 강타하기 직전.
녹색 피부의 괴물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으니까.
둥…… 두둥 둥.
포화로 인한 먼지 속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괴물들은 그 북소리에 맞춰 괴성을 질렀다.
북소리에 맞춘 리듬이 느껴지는 괴성.
단순히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녹색갈기 부족’의 전쟁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녹색갈기 부족’의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전장의 ‘녹색갈기 부족’ 외의 개체들의 능력치가 소폭 하락합니다.]
[‘녹색갈기 부족’의 모든 개체에게 일시적으로 특성, ‘원거리 공격 저항’이 부여됩니다.]
[‘녹색갈기 부족’의 모든 개체에게…….]
[…….]
[……]
[칭호 : 왕 시해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종족의 정점. 왕들을 살해하는 자.]
[드높은 권위도, 강렬한 위압감도. 당신의 앞에서는 의미를 잃습니다.]
[전쟁 노래의 효과에 저항합니다.]
저건 일종의 피어.
심지어는 노래의 형태를 한 피어였다.
전쟁 노래라.
“군가 같은 건가?”
“저희도 질 수 없는데. 군가 제창 한 번 합니까?”
“큭큭. 아서라.”
여러 개체들이 협력해서 만들어 낸 피어.
어지간한 보스급 몬스터의 그것보다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그 안쪽에 있는 것은.
-구어어억!!!
상처를 입은 건가 싶을 정도로 멀쩡해 보이는 괴물들이었다.
“계속해서 포격해라!”
괴물들은 ‘전쟁 노래’를 부르며 방패를 들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아군의 화력 투사가 이어졌지만 어떻게든 몸으로 막으면서 전진하는 모습.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에.”
“완전 제대로 준비하고 왔네.’
전진하는 괴물들 사이.
커다란 공성병기 같은 것이 같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습은 조잡해 보일지언정 그 위력마저 조잡하진 않겠지.
개중에는 노예로 잡힌 인간들이 조종하는 탱크 역시 끼어 있었으니까.
상당히 위압감 있는 모습이긴 했다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거다.”
옆에서 마법을 발사하고 있던 민재 형이 말했다.
“놈들은 일단 저 강을 건너야 할 테니까.”
아군의 요새.
비마나는 강 위에 세워져 있었다.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 자연의 해자를 뚫어야 한다는 뜻.
이 강을 우회해 크게 돌아서 접근하려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전차나 사수 등.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아군의 화력이, 멀리 돌아오는 적들에게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을 테니까.
‘요새의 힘이란 거지.’
강력한 방어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치러지는 방어전의 이점.
[강철 군단]은 산맥의 423대대를 방어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초창기에 각성한 정예 부대원 중에는 사수와 마법사 등 강력한 원거리 직종이 다수.
어쩌다 보니 그동안은 공격해 들어가는 싸움을 자주 했다만.
사실 우리 부대가 가장 자신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방어전.
콰아아아아앙!!!
“공성병기 한 대, 격추했습니다!”
느릿하게 접근해 오던 공성병기 중 한 대가 박살 나며 흩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몸으로 버티며 전진하던 괴물들 사이에서도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은 저 ‘전쟁 노래’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만.
피어류의 스킬을 계속해서 지속할 수는 없는 법.
결국은 우리 화력이 먹히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응?”
괴물들 사이로 같이 전진하던 공성병기들.
그중에서 조금 특이한 것이 하나 보였다.
“벽인가?”
움직이는 거대한 장벽.
공성병기의 일종으로 보였다.
우리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공성병기를 가져오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만.
조금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벽으로 뭘 어쩌겠다고?’
결국은 강을 넘어야 하는 것이 저들의 과제.
그 전까지의 공성병기들은 성벽의 포대를 제거하기 위한 공격 수단이 대부분.
저런 장벽은 없었다.
그렇다고 저게 강을 가로지르는 가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물을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자니.
적 진형의 뒤 편에 있던 괴물들이 앞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락부락한 거인 같은 모습을 한 [녹색갈기 전사]들이었으나.
지금 방벽을 향해 달려가는 괴물들은 조금 달랐다.
기괴할 정도로 왜소하고 마른 모습의 괴물들.
놈들이 다른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장벽의 뒤로 몸을 날렸다.
“서수혁!”
“예! 상병 서수혁!”
나는 뒤를 보며 소리쳤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놈들이 벽 뒤로 숨는 걸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
“저 새끼들 쏴 버려!”
“충성!”
내 명령이 떨어지자.
서수혁 상병과 사수들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놈을 향해 발포했다.
-크륵, 컥……!
사수들의 총알은 저 괴물들에게 확실히 적중했다.
광역 공격에 특화된 마법사들과 달리, 대인 화력에 특화된 사수들.
‘피어’가 적용된 상태라고는 하나, 사수들의 화력은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빼빼 마른 괴물들 중 반수 이상이 머리가 터져 사망하고.
나머지 역시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어 댔으나.
그게 마냥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고통에 몸을 비틀어 댄다는 건 즉.
죽이지는 못했다는 뜻이니까.
“아니. 저 노래의 효과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장벽 뒤로 달려들던 괴물 중.
요격에 성공한 것은 반 정도.
나머지 반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벽 뒤로 몸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저 벽을 향해 공격해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김 중위가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부대원들의 화력이 그 벽을 향해 쏟아졌으나.
쯧.
‘조금 늦었군.’
아군의 공격으로 벽이 무너지기 직전.
그 뒤쪽에서.
커다란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 어어!?”
“뭐야, 저건!”
파바바박!!!
놈들이 서 있던 땅을 중심으로.
바닥의 흙과 모래들이, 마치 의지를 가진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방벽 같은 것이 전진할 때는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만.
멍청한 생각이었다.
공성병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저들의 전략이 중세의 그것과 같을 리가 없는데.
놈들과 요새의 사이를 막아 주고 있던 강.
그 자연의 해자 한가운데.
“기, 길이 생겼어……?”
흙과 모래로 이루어진.
넓은 대로가 만들어졌다.
* * *
‘저딴 짓도 가능할 줄이야.’
요리가 요새에 접근할 때 가교를 설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 위에 걸어갈 수 있는 땅을 만들어 버리다니.
-카아아아아아악!!!
강 한가운데에 길이 생기자.
괴물 놈들은 그 위로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요새를 지켜 주던 자연의 해자가 그 의미를 잃었다.
쿠웅!!!
길을 타고 달려든 것은 괴물 놈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놈들이 끌고 온 공성병기가 성문을 두들기고.
멀리서는 캐터펄트가 성벽 위의 포대를 노렸다.
“계속해서 사격해라!”
그에 맞서 아군의 화력 투사가 계속되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저들의 ‘전쟁 노래’는 유지되고 있는 상태.
저 성문이 열리는 것을 막기는 힘들 것 같았다.
“대단한 짓을 해 주셨어.”
강에 길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상상도 못 한 짓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강에 길을 만든다는 것만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지.’
요새의 성문이 뚫릴 경우는.
얼마든지 상정해 뒀거든.
콰아아아앙!!!
[주의!]
[남쪽 성문 Lv.2가 파괴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공성추의 공격.
결국 요새를 지키던 성문이 무너졌다.
“서, 성문이 뚫렸다!”
“제기랄. 이제 어떻게-”
도시의 각성자들이 혼란에 빠지는 모습.
이해는 간다.
일반적인 공성전이라면, 성문이 뚫린 시점에서 수비 측의 패색이 짙어졌다고 봐야 할 테니까.
하지만.
놈들이 전략이 평범한 중세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
우리의 전략 역시.
요새가 뚫린다고 마냥 당해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카하아아아악!
괴물 놈들은 신이 난 듯 괴성을 지르며 부서진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들이 원하는 신나는 학살극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카……악?
무너진 성문.
그 안에서.
철그럭…….
[열화 용아병]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강철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