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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34화 (134/227)

134화 점령전 (2)

-아프다, 아파!

녹색갈기 부족의 고위 주술사.

카르굴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주술을 연마한 이들은, 전사들에 비해 몸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사들이 방벽을 설치한 뒤에야 주술사들이 나선 것이었다만.

-카하하. 그 짧은 순간을 노리다니. 대단한 수완이로군.

전사들의 보호가 없어진 순간을 노린 사격.

그로 인해, 귀중한 주술사 중 절반이 사망.

이번 원정에 참여한 주술사들을 이끄는 카르굴은 오른팔부터 어깨까지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크륵. 적들을 칭찬하다니. 미친 것인가!

-……자업자득이다. 주술사.

-크으윽.

주술사의 말을 찍어 누른 것은.

다른 전사들보다도 유독 큰 몸집을 지닌 전사.

녹색갈기 부족이 자랑하는 전사 중에서도, 부대를 이끌 자격을 허락받은 치프틴.

하라-발이었다.

그가 대놓고 면책을 주었음에도.

고위 주술사 카르굴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놈들이 말한 대로라면 본래 저런 요새는 없었어야 정상 아닌가.

-크윽.

-요새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면 다른 전략을 준비해 왔을 테지.

하지만.

이건 주술사들로서도 억울한 일이었다.

‘저런 요새가 갑자기 어디서 솟아났단 말이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족은 전쟁을 멈춘 상태였으나.

주술사들만은 누구보다 바쁘게 일해야만 했다.

그들의 눈을 가리고, 천기를 숨기려고 한 존재.

그와 영적인 대결을 나누어야 했기 때문.

그 대결에서 결국 승리한 것은 주술사들이었다.

부족의 주술사들은, 별에 비친 지상의 모습을 보았다.

이 근방의 세력과, 방어시설 등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것.

그 정보를 바탕으로, 부족은 침공을 개시했다.

주술사들이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침공에 필요한 준비가 이루어졌었다만…….

‘이곳에 도시가 있다는 건 알았다. 상당히 많은 토착종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기에, 원정군의 전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느라 침공이 조금 늦춰졌을 정도로.

하지만.

그 준비는 어디까지나 도시에 있는 토착종들을 상대로 한 것.

‘강 위에 세워진 포격 시설까지 갖춘 요새?’

그에 대응할 만한 장비 따위.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요새가 있다는 정보가 없었으니까!

주술사들이 천기를 엿볼 때만 해도, 저런 요새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엄청난 규모의 요새로군. 고향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의 규모야. 저런 요새가 갑자기 허공에서 솟아날 리는 없으니.

-…….

-네놈들. 주술사들이 일을 잘못한 것이지. 그야말로 자업자득 아닌가.

-크으윽.

몇 번이고 확인을 거쳤던 주술사들로서는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으나.

부족의 입장에서는 주술사의 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몸으로 때웠지 않느냐!

-큭큭. 팔 한쪽 없어진 모습도 썩 나쁘진 않아.

주술사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술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였다.

자신들이 싼 똥은 자신들이 치워야 하는 법.

그들이 감지하지 못한 요새에 대한 공략법은 그들이 몸을 바쳐서라도 마련해야 했으니.

-아무튼 고생했소.

-흥…….

-강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다음은 우리 전사들에게 맡기시오.

강 위에 세워진 요새는 확실히 위협적이었으나.

일단 길이 생긴 이상.

그들 전사들이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저 도시의 토착종들을 처리하고도 더 깊이까지 침공해 들어갈 것을 상정한 부대.

수상 요새에 대비한 전략이 없었을 뿐.

전력 자체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동원되었으니까.

-요새가 있다는 정보는 틀렸지만. 그 외의 정보는 틀림없겠지?

-흥. 당연한 소릴. 토착종의 숫자는 많지만. 그중 주의할 만한 강적은 300명도 되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 전사들이 질 이유는 없지.

거구의 전사, 하라발이 호방한 웃음을 지으며 소리 질렀다.

-다들 전진하라!

이번 전장을 지휘하는 치프틴, 하라발의 명령에 따라.

부족의 전사들이 요새를 향해 전진한다.

그들의 전쟁 노래가 울려 퍼지며 적들의 공격을 무마하고.

인간들을 노예 삼아 끌고 온 전차들이 불을 뿜으며.

부족의 주술사들이 만든 공성 장비가 성문을 두들겼다.

아무리 드높은 요새라고 한들.

수많은 전쟁을 겪어 온 부족의 전사들에게는 공성전 역시 익숙한 것이었다.

그리고.

쿠웅…….

요새의 성문이 부서진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부족의 전사 수천이 요새에 들어가 안에 있는 적들을 처리한 뒤.

그 뒤에 있는 도시의 어중이떠중이들을 학살하는 것뿐.

……이라고 생각했는데.

서걱-

-뭣!?

가장 앞서서 요새로 들어가려 하던 전사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토착종…… 같지는 않군.

칠흑의 갑옷을 두른 기사들.

치프틴급의 전사인 하라발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한 전사들이었다.

그들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부족의 전사들이 무력하게 베어져 나갔다.

-주술사. 요새 외에는 틀린 정보는 없을 거라 하지 않았나?

-…….

-저런 존재는 들어 본 적이 없다만.

-그, 그게.

주술사가 변명을 해 보려 했으나.

그런 변명을 일일이 들어주기에는 전장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일은 나중에 부족 회의에서 다루도록 하지.

정말이지.

주술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 * *

[열화 용아병]

그 이름대로.

본래의 용아병에 비하면, 아무래도 그렇게 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래의 용아병에 비교할 경우고.

“가, 강하다…….”

부대의 병사들이 [열화 용아병]을 보며 중얼거렸다.

강자들이 즐비한 우리 부대의 병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지켜봐야 할 정도.

녹색갈기 부족.

저 괴물들도 상당히 강했다.

‘무려 노란색의 기운을 내뿜는 괴물이니까.’

게다가, 종족 자체의 특성일까.

저 수많은 전사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잠재력을 개화한 상태였다.

하지만.

서걱.

-크뤄어어억!!

그런 괴물들이, 용아병의 칼질 한 번에 두 동강이 난다

놈들이 성문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하나.

성문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수십 마리의 용아병이 충분히 틀어막을 수 있을 정도로.

‘한 마리의 용아병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3시간.’

지금까지 뽑는 데 성공한 건 총 80마리.

수천 마리의 적에 비하면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다.

막말로 평지에서 싸운다면 저 엄청난 병력에 파묻혀 금세 박살 나 버리겠지.

‘물론 그건 평지에서 싸울 때 얘기고.’

지금은 좁은 성문을 틀어막고 싸우는 상황.

수적 열세는 큰 의미가 없었다.

좁은 입구.

수십, 수백의 정예병이 수만의 병력을 막을 수도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저 녀석들. 얼마나 강한 겁니까?”

“음. 글쎄.”

수혁이 녀석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해 봤다.

내가 직접 성능을 실험해 본 결과에 따르면.

“우리 부대의 대장급…… 광일이보다 조금 약한 수준 아닐까?”

“……예?”

그 말에.

감정 변화가 적은 편이던 서수혁 병장조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말이 됩니까?”

“전광일 상병님 정도의 전사가 80마리나 있다니.”

“아. 그냥 단순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고. 세세하게 비교하면 다르긴 하지.”

검은 갑옷을 두른 전사들.

분명 강하긴 더럽게 강하다.

하지만 내가 성능 테스트를 하며 그 갑옷 안쪽을 살펴본 결과.

안쪽에는 인간 형태의 뼈다귀만 있을 뿐이었다.

즉.

“쟤네는 음식을 못 먹거든.”

“아.”

김 중위의 피어 계열의 버프는 적용되겠지만.

내 요리를 통한 버프를 얻기는 힘들다.

최근에야 괴물은 물론 나무에게도 요리를 먹여 봤다지만.

뼈가 음식을 먹는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거든.

“요리를 통한 버프나 [광기] 같은 특성까지 포함하면 광일이 녀석이 훨씬 더 강하겠지. 요리까지 감안하면 전사 중에서도 비슷한 급이 몇 명 있을걸? 대원이랑 한일이라던가.”

“그, 그렇군요.”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요리를 비롯한 버프를 모두 받는다고 한들.

저 정도의 강함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다.

말 그대로 최고참 병사들의 바로 아래 수준.

우리 부대에도 10명은 될까?

“저게 열화된 거라니.”

열화되기 전의 용아병은 저것보다 20배는 더 강했겠지.

괜히 ‘최초 달성 보상’이 아니란 거다.

“그리고. 그냥 강한 게 전부가 아니지.”

강한 걸로 따지면 결국 버프를 받은 광일이가 훨씬 더 강하다.

하지만 광일이가 80명이 있다고 한들.

수천의 병력을 상대로 저렇게 성벽을 막고 버틸 수 있을까?

‘될 리가 있나.’

아무리 광일이가 강하다고 한들.

저만한 숫자의 괴물들이다.

놈들에게 당하지는 않을지언정, 사람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전쟁에서 미쳐 날뛰는 광전사라 할지언정.

언젠가는 지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거든.

[용아병들은 절대 지치지 않습니다.]

[파괴되기 전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파괴되기 전까진 절대 지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체력의 소모가 없다는 것.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만큼 숫자로 밀어붙일 수도 없다.

저 용아병들을 치우려면, 애초에 용아병보다 강한 존재가 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저 괴물들…… 숫자도 많고, 강하긴 한데. 딱 거기까지야.”

“예?”

전쟁을 위해 태어나는 종족이라고 했나.

엄청난 출산 능력에, 6개월 만에 1인분의 전사로서 완성되는 놈들.

여기까지만 들으면 완벽한 종족처럼 느껴진다만.

내가 [전투력 측정기]를 통해 살펴본 결과.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다.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으로 강해. 특별하게 강한 괴물은 극히 드물더라고.”

일정 수준까진 빠르게 도달하지만.

그 이상으로 강해지는 건 힘들다는 거겠지.

“수천 마리나 모여 있지만, 용아병을 부술 수 있을 만한 강자는 드물 거야.”

어쩌면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좁은 성문을 지키는 싸움이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의미가 없다.

“성문을 뚫었을 때는 자기들이 이긴 줄 알았겠지.”

하지만.

그곳을 용아병들이 막아섰다.

기껏 성문을 부순 노력이 무색하게도.

괴물 놈들은 저 용아병들을 뚫지 못한 채 막혀 있었다.

게다가.

우리 병력은 용아병만 있는 게 아니거든.

“계속해서 쏴라!”

[전장의 함성 - 포격 명령이 울려 퍼집니다.]

요새에서는 화력 투사가 계속되고 있다.

[전쟁 노래]를 통해 피해를 어느 정도 무마시키고 있다고 하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지치지 않는 용아병들을 어떻게든 뚫어 내지 못하는 한.

이 국면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놈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략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

물론 놈들이 돌아가는 걸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다.

후퇴 중인 병력만큼 빈틈이 많은 병력도 없는 법이니까.

후퇴를 결정할 경우, 뼈아플 정도의 피해를 안겨 줄 자신이 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어떻게든 방법을 내서, 이 국면을 돌파하는 것.

“슬슬 오려나?”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을 경우.

곧 뭔가 제스처를 취해 올 터.

그리고.

과연 내 예상대로.

“저기, 뭔가 접근합니다!”

“……투석기 같은 건가?”

멀리서 접근해 오는 공성병기.

캐터펄트…….

투석기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성벽을 무너트리겠다는 건가?’

성문을 뚫기가 힘드니.

다른 곳에 구멍을 내겠다는 전략은 이해가 간다만.

“그건 안 먹힐 텐데.”

[기동요새 비마나 Lv.1]

[내구도 = 91873/100000]]

이 요새.

성문은 Lv.2에 불과한 탓인지, 비교적 금방 무너졌다만.

성벽은 이상할 정도로 튼튼했다.

투석기에 몇 번 두들겨져 봐야 금도 안 갈 정도.

실제로 저들은 전차를 끌고 오기까지 했다만.

그 전차의 포격에도 내구도가 거의 닳지 않은 모습이었다.

저 투석기도 평범한 중세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제 아무리 성벽을 공격해 봐야 의미는 없겠지.

“응?”

그런 내 예상과 달리.

놈들이 끌고 온 투석기 위에 올려진 것은 커다란 돌덩이 따위가 아니었다.

“허허, 미친.”

팡!!!

투석기가 작동하고.

요새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무언가.

그 무언가는, 부숴야 할 성벽을 노리고 날아온 게 아니었다.

놈들이 노린 것은 조금 더 위쪽.

성벽의 위를 지나, 요새 안으로 떨어진 것은.

-크륵!!!

-크워어어어어어!

[녹색 갈기 전사]

[녹색 갈기 정예 전사]

“화끈한 새끼들일세.”

괴물들.

투석기에 탑승해 몸을 던진 괴물들.

놈들이 요새 안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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